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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70370451 / 240쪽 / 456g / 170 x 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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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때로 청량하게, 때로 음울하게
다채롭게 변주되는 여름
태양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곳에 빛이 깃듭니다. 태양이 강해질수록 빛과 그림자는 더 또렷해집니다. 태양이 길어질수록 빛의 질감은 다채로워집니다. 그 태양 아래에서 파도는 더 파랗게, 나뭇잎은 더 푸르게 반짝입니다. 그렇게 여름과 닿은 모든 사물과 풍경은 제 빛깔보다 더 빛나게 됩니다. 계절이 주는 풍부한 빛과 선명한 색감 때문인지 사진가들은 여름에 더 바빠집니다. 여름의 빛과 색부터 여름의 공기, 여름의 밀도, 여름의 질감, 여름의 열기까지 그 모든 것이 사진가의 눈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모든 것들이 저마다 절정에 이르는 여름에는 들뜬 흥분과 에너지가 감돌기에, 또 그 고조된 열기마저도 결국 식어가고 사라질 것을 예고하기에 작업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호에서 그렇게 여름에 영감을 받은 시작된 사진과 글들, 여름을 감각적으로 그린 이미지와 문장들, 여름이라는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사진 작업과 에세이, 픽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잡지를 여는 프랑스의 사진가 로맹 파르르의 화보와 독일 사진가 베른하르트 랑의 화보에서는 여름에만 볼 수 있는 강렬한 빛과 색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이어지는 화보에서는 여름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스벤 야콥센, 한승무, 알랭 라보일, 세 작가의 사진 속에서 마음껏 뛰고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모든 것이 성장하는 여름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비비안 사센의 화보에서 사진가와 모델이 주고받는 눈짓과 몸짓은 여름의 열기와 관능을 닮아 있고, 이강혁의 사진 작업에서 펼쳐지는 ‘마계’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바라보면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밤이 떠오릅니다.
루크 스티브슨, 김승구, 훌리오 비텡코르트 세 작가의 화보에서는 여름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장면들을 눈앞에 가져옵니다. 여름 해변의 아이스크림, 장마철의 한강공원, 대형수영장 속의 수많은 인파들까지, 익숙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바라본 적 없는 장면은 우리의 주변 풍경과 삶의 양태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밤에 핀 꽃과 빈 침대의 모습이 교차되는 가레스 매코널의 화보와 극지방의 여름과 겨울을 함께 볼 수 있는 에릭 존슨의 화보는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경과 그리고 소멸에 관해서 사유하게 합니다.
텍스트 파트에서는 김선오, 권누리, 이반지하, 한정원, 강성은 다섯 명의 필자가 참여해 여름에 관한 생각과 기억을 독자들과 나눕니다. 그들이 시작을 기다렸던 어떤 여름, 끝나기만을 바랐던 어느 여름 등 그들에게 깊고 선명하게 남은 ‘여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한편 연재 코너 ‘영화의 장소들’에서는 스크린 속에 나타나는 공원에 관해서 흥미로운 통찰을 제시하는 영화평론가 유운성의 사유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동시대 시각예술을 재탐색하는 새연재 ‘일시정지’에서는 최근 주목받는 ‘몰입형 전시’에 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비평가 서동진의 예리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여름을 묘사한 사진과 글로 이번호가 채워질 것을 내심 기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코 그럴 수만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름의 낮과 빛이 아무리 화려하다고 해도 밤과 그림자를 모두 감출 수는 없고, 그렇게 공존하는 밝음과 어둠을 동시에 바라보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번호에 실린 사진과 글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때로 청량한 장조로 때로 음울한 단조로 여름을 연주하는 사진과 글을 통해서 한 계절이 지닌 다양한 음색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책속에서>
여름을 좋아하니까 여름에 대해서라면 한없이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폭염 속에서 사람이 죽고, 누군가는 평소보다 고된 노동을 하고, 어떤 사업은 망하고, 그런 일들이 있다. 그래서 여름에 대한 낭만적 글쓰기를 조금은 머뭇거리게 된다. 그러나 여름에 갖는 기쁨과 여름에 갖는 슬픔이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은 아닐 것이다. 계절이 아름다운 이유는 소멸하기 때문이고, 소멸과 슬픔은 한 몸이니까. 슬픔과 기쁨이 함께하는 곳이 세계이니까.
- 88쪽, 김선오, <여름의 시퀸스>
불분명한 정황과 서사를 뒤로하고 순간과 감각만이 명확하구나.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의 모든 일들이 떠오르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까? 한 번에 한 가지 사건을 떠올려도, 사랑과 미움이 동시에 마음을 짓밟고 가는 건 왜 그러는 걸까. 나도 알아. 여름은 정답이 아니라 힌트일 뿐이야. 전 생애를 복기해도 여름만이 유난히 선명하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이 나라와 이 도시에서 살아 있으니, 여름의 선명도를 위해 감각의 조리개를 활짝 열어두지 않아도 된다. 뭉개진 시간도 가장자리 선명하게, 로 뚜렷해질 수 있는 거지.
- 94쪽, 권누리, <친밀한 미래, 빛 호리기>
튜브를 끌고 돌아오는 모터보트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더 멀리, 그 너머를 바라보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거대한 검은 머리들의 풍경을 담고 싶었다.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 듯 안아든 검고 불투명한 물과 오래오래 잠겨 있던 검은 머리들이 마침내 고개를 든 순간의 완벽한 풍경, 경치, 경개. 나는 바로 여기서 이렇게 여름이 끝났으면 했다. 누구도 본 적 없는 낯선 머리들과 지독하게 익숙한 머리들의 경계에서.
- 134쪽, 이반지하, <여름 경개>
유월 밤에는 살구나무 아래 앉아서, 열매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잠깐 딴청을 피우다 보면 그것을 금방 잊고서, 어둠을 울리는 소리에 흠칫 놀랐다. 칠월 낮에는 능소화가 송이째 떨어진 바닥과 그 사이를 살뜰히 오가는 개미들을 보았다.
거센 비가 자주 떨어졌다. 여름을 이루는 것은 오로지 거침없는 생명력인 줄 알았는데, 그전에 추락하여 죽는 것들이 많았다. 죽어서 다음, 또 다음이 있었다.
- 183쪽, 한정원, <여름 일기>
영이 돌아가고 난 밤불을 끄고 누웠을 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희미하게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실루엣이었다. 나는 갑자기 깨달아버렸다. 살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는 사십 대였는데 지금 내 집에 있는 이는 머리가 희끗하고 주름이 많고 구부정한 노인의 모습이라는 것을. 점점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아버지가 진짜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 192쪽, 강성은, <여름의 끝>
빛이 희미하게 사라지는 저녁 즈음일까, 아니면 빛이 슬며시 스며드는 새벽 어스름일까. 침대 주변에는 푸른 어둠이 무겁게 가라앉고, 하얀 침대 시트와 잿빛 이불과 베개에는 늙고 지친 사람의 손처럼 힘없는 주름만 가득하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누가 누웠던 자리인지, 그는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는 지금 어디로 갔는지 사진은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의 주인이 떠난 후에도 사진 속에 남겨진 푸른 어둠은, 주름진 이불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처럼 아프고 씁쓸하게 다가올 뿐이다.?- 202쪽,
2022. 7?8월호 | VOL. 34
특집 | 시작도 끝도 여름
001 The Boiling Point of Color _ Romin Favre
014 Summer _ Bernhard Lang?
040 Like Birds _ Sven Jacobsen?
056 숲과 바다 형제 사진 _ 한승무
070 La Famille _ Alain Laboile
085 여름의 시퀀스 _ 김선오?
091 친밀한 미래, 빛 호리기 _ 권누리
098 Roxane II _ Viviane Sassen
112 마계(魔界) 2018~202? _ 이강혁
129 여름 경개 _ 이반지하
136 99x99s _ Luke Stephenson?
150 리버사이드 / 밤섬 _ 김승구?
166 Ramos / Dead Sea _ Julio Bittencourt?
181 여름 일기 _ 한정원?
187 여름의 끝 _ 강성은?
194 Night flower / Meditations _ Gareth McConnell
212 Barrow Cabins _ Eirik Johnson
227 [영화의 장소들] 공원의 발견 _ 유운성?
233 [일시정지] 몰입의 이미지, 박탈의 경험 _ 서동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