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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6551576 / 500쪽 / 650g /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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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공명과 비판이 공존하는 공감의 언어 박명순의 문학평론은 공감의 언어다. 여기서 공감이라는 말에는 공명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비판도 포함되어 있다. 어쩌면 ‘공명’ 자체에 비판이 기본 속성으로 깔려 있을지 모른다. 비유하자면, 작품을 먼저 끌어안은 다음에 체온을 충분히 공유한 후 작품의 ‘얼굴’을 확인한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행위에는 이미 공유한 체온을 충분히 믿지 못해서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차이마저 서로 긍정하자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박명순의 문학평론에는 날이 서 있지 않고 마치 새 둥지 같은 느낌을 준다. 비판은 곧 탄핵이라는 살벌한(?) 정의가 고래로부터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성의 언어이지, 박명순의 언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서 박명순의 비평 언어는 분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말 걸기’ 내지는 ‘대화’에 가깝다. 다음의 예를 보자. 『고향』에는 부대끼며 살아가는 농민의 일상이 실감 나게 담겨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마름 안승학이 우체통에 넣은 엽서가 집에 배달되는 것을 신기해하는 수준의 촌사람들입니다. 김유정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떠돌이나 극빈의 인물들은 아닙니다만. 도긴개긴 부족한 인물들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저마다의 삶을 꾸려나갑니다. 당연하지만 이상적인 인물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희준과 갑숙조차 유혹에 약한 결함을 지닌 인물입니다. 못난이 아내와 못난이 남편이 티격태격하나 문제를 해결해낼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 건강한 생명력이 넘쳐납니다.(「민촌 이기영의 『고향』을 만나러 갑니다」, 31) 글이 경어체로 씌었다는 점, 그리고 읽기를 감행하고 있는 텍스트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범상하게 보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문제는 경어가 단지 외형적인 게 아니라는 점과 텍스트의 인물들에게서 “건강한 생명력이 넘쳐”나는 점을 찾아 읽는 것이 외형상의 경어체와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비록 경어체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도 박명순의 문학평론이 어떻게 독자로 하여금 공감의 길을 따라가게 하는지 잘 보여준다. 독자(또는 작가)는 잠재적 환자이자 현실적 치유자로서 존재한다. 진정한 환자만이 그 치유의 길을 가장 잘 안내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미루어 짐작한다. 이 추론은 대부분 성공적이며 따라서 질병은 때로는 작가에게 창작 의욕으로 작용하고 직접적으로 작품에 깊이 관여하기까지 한다. 이 경우 작품에는 삶과 죽음을 초월한 작가의 세계가 투영된다. 권정생의 『강아지똥』(길벗어린이)의 탄생에 옷깃을 여미는 이유이다.(「문학에 나타난 질병의 얼굴들」, 159~160) 지역 문학에 대한 애정 이 책에는 저자가 거주하는 충청 지역의 작가, 시인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자심하다. 이는 다순한 ‘지역주의’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글쓴이들이 자기 지역의 문학을 알게 모르게 떠나 ‘서울’을 지향하는 태도부터 돌아봐야 할 문제다. 저자는 이미 이기영의 소설을 읽으면서부터 이 로컬리티를 놓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이기영은 농촌에 살면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충남의 천안 사투리가 정겹습니다.”(29) 사실 충청 지역의 내로라 하는 작가와 작품만 읽어도 문학평론의 본령을 수행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이며, 이는 충청도뿐만의 사정은 아닐 것이다. 저자가 호출한 충청 지역 작가와 시인의 목록을 다채롭기까지 한데, 비록 짧은 독후감이지만 수필을 쓰는 임명희를 주목하기도 한다. 『공장 지대』에 담긴 1970~1980년대 변혁운동의 한복판에서 밀려난 ‘일상성’의 고백과 기록의 서사는 10대 소녀의 표정을 노동자의 시선으로 담고 있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이론이 아닌 체험으로 채웠던 그녀들의 삶과 노동은 교조적 당파성의 빈틈을 채워, 시대의 실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경험이 강제하는 고통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분명 작가에게는 커다란 축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지요. 하지만 우연하게 주어진 이 역사적인 축복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 안에서 만들어낸 한글 독해 소모임이나 바둑 모임의 의미를 저는 자생적 노동운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임명희 작가에게 보내는 글」, 474~475) 이에 대해 추천사를 쓴 황규관 시인은 “자칫하면 인정 비평으로 흐를 수 있지만, 박명순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자기 지역에 사는 작가와 시인을 주목하는 비평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현상은 격려할 만하다는 점도 잊지 않는다. 충청 지역 작가들을 호명할 때도 저자는 예의 그 공감의 언어를 잃지 않는다. 이 책은 1부에서 소설 비평을, 2부에서 시 비평을, 3부에는 일종의 주제 비평을 실었다. 특히 3부에 대해서 저자는 “우리 시대 문학의 흐름과 관련하여 ‘연대’, ‘생명력’, ‘한국시 미래’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담아봤다면서 여러 시인과 소설가를 호명하는데 그 면면이 치우치지 않는다. 여기에서 저자의 성실성을 엿볼 수 있는 바, 이미 ‘작가의 말’에서 밝히기를,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해명하지 않듯이 저도 묵묵히 글쓰기에 집중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작품에 공감하는 바가 남다르다. 이언주의 시를 읽으면서 표출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그것은 여실히 드러난다. 엄격한 의미에서 타인의 고통을 내 것으로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고통을 다소 줄여줄 수는 있을 것이나 근본적으로 해결해주는 일 또한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다. 하지만 그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그들이 받은 고통을 우리 시대의 질병이나 인간존재의 미미함으로 인식하는 일은 귀하다. 비천함과 고귀함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속됨과 성스러움의 실체를 증명하는 시편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음률의 강렬함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이다.(「시를 통한 연대의 가능성」, 367) 책 속에서 1920년대는 동학의 잔존 세력과 의병 활동 참여자가 체험담이나 보고 들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주고받던 때이므로 항일 정신과 더불어 반골 정신이 꿈틀대고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지피기만 하면 횃불로 타오를 수 있는 만반의 태세가 마련된 셈이지요. 프롤레타리아는 공장의 기계나 토지 등의 생산수단을 지니지 못해 몸(노동력)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합니다. 지주나 자본가가 일을 시키고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노동력을 팔아 살면서 노예 취급을 당했었지요. 그런데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로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로 나누는 계급이론이 등장하면서 노동자의 권리의식이 높아졌습니다. 당당하게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 것이지요. 『고향』에서 그 권리의식을 주장하는 주체는 농민이니 이 점이 중요한 작가정신이지요. 1920~1930년대의 조선은 농업이 사회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기영은 농촌에 살면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충남의 천안 사투리가 정겹습니다. ―「민촌 이기영의 『고향』을 만나러 갑니다」 중에서 『세 여자』는 민중의 가능성이 항상 그리고 도처에 잠재해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믿음을 갈망하면서 한 치의 의심 없이 지닌다는 게 이미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믿음은 유효하다. 1987년 6월항쟁에서 그리고 2017년 촛불혁명에서 그 힘은 위력을 발휘했지 않는가. 민중의 힘은 모래알처럼 무력하지만 어느새 폭풍처럼 엄청난 위력으로 우리 앞에 등장하기도 한다. 기계나 물질적 거대함 속에서 나날이 자잘해지는 듯하면서도, 인간적 위대함은 어떤 촉발의 계기만 있으면 언제든지 나타나 경외감을 몸소 체험하게 만든다. ―「역사를 배반하지 않는 소설의 진정성」 중에서 문학의 존재는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중간 지점이다. 성聖과 속俗을 깊숙이 보여주되 그 하나에 천착하지 않는 세계에서 피어나는 꽃이 문학인 것이다. 그러니까 갑작스럽게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겨졌을 때 인간은 신을 갈망하고 영원한 세계에 매달리고자 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불치병은 그렇게 인간의 심신을 헤집어놓으면서 나머지 인생을 가치 있는 일에 매진하도록 이끌어준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일상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생명이 있는 것들의 아름다운 음률을 듣게 해준다. 이처럼 놀라운 변화와 기적의 에너지는 내 존재가 죽음을 향하고 있다는 처절한 인식 그리고 질병을 받아들인 이후 한결 성숙한 세계관으로부터 나온다. ―「문학에 나타난 질병의 얼굴들」 중에서 신동엽에게 시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중요한 것은 신동엽이 시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고 싶다는 열망이 확고했다는 점이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위하여 그가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그 핵심 화두는 ‘세상의 변혁’과 ‘자기 구원’의 일체라고 추측해본다. 시인의 등단작인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참조한다면 그에게 시는 세상을 갈아엎는 쟁기질이라 할 것이며 이는 평등세상을 실현하는 ‘세상의 변혁’과 관계된다. 그러기 위해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채워야”(「좋은 언어」)한다는 ‘자기 구원’의 실천이다. 이 두 가지가 일체되는 순간은 맞서서 투쟁하는 순간, 순교하는 순간, 저항을 담아낸 ‘착한 언어’로 시를 쓰는 순간이 아닐까. ―「신동엽을 다시 읽다」 중에서 시의 외화는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직시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움직임을 담고 있다. 사진을 통해 알바트로스의 죽음을 목도하는 사건을 일으키며, 기후변화와 미세플라스틱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환경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생태적 의무를 일깨운다. 사진 속 알바트로스는 죽음으로 우리를 부른다. 우리가 여기에 호응한다면 그 언어는 애도에서 멈추지 않고 생태계의 소중함을 자각하여 실천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생명을 만들듯 죽음이 생태계에 보이지 않는 균형을 준다. 문제는 무지막지한 생태계의 교란이다. 시인은 알바트로스의 죽음이 곧 인간의 죽음이자, 지구의 종말이라는 예지叡智를 자각한다. 결국 알바트로스 가족의 죽음을 애도함은 인간에 대한 최후통첩의 깨달음이 되는 것이다. ―「애도의 언어, 소생의 힘」 중에서
작가의 말 4
1부
민촌 이기영의 『고향』을 만나러 갑니다 13
영원한 경계인, 박노갑과 엄흥섭 56
역사를 배반하지 않는 소설의 진정성―조선희의 『세 여자』 86
박상륭 소설 읽기를 통한 ‘죽음’의 의미 찾기 132
문학에 나타난 질병의 얼굴들 155
연민과 믿음에 대한 탐색―정낙추의 『노을에 묻다』 175
2부
봄을 향한 시적 페이소스―이문복 197
신동엽을 다시 읽다 209
경계를 사유하는 시 읽기―이명재 233
수묵화와 풍속화로 만나는 두 개의 자화상―정완희와 진영대 248
지상의 별을 노래하는 ‘시의 길’―이은봉 267
기억, 성찰, 치유, 그리고 정체성 찾기의 도정―이은숙 287
대화와 독백으로 치유하고 상생하는 시인의 꿈―박용주와 장인무 302
애도(哀悼)의 언어, 소생(蘇生)의 힘―박형권 319
원심력과 구심력의 언어 미학―박설희 338
3부
시를 통한 연대의 가능성 357
생명력 있는 시를 위한 요건 378
한국 시의 미래를 묻다 399
애도(哀悼)의 목소리들 409
실존적 체험과 사랑의 시학 428
생태학적 상상력, 변방에서 시를 묻다 438
시로 여는 생존 연습 462
임명희 작가에게 보내는 글 471
사랑과 바보 이미지, 기억의 힘 477
물의 상상력으로 읽는 유준화의 시 4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