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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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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호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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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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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15,750
- 17,820
- 16,650
- 16,200
출판사 리뷰
김춘리 시인은 언어의 특이성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대상의 의미를 한정하는 은유적 사고방식의 폭력성과 맞서고 있다. 그것은 언젠가 한 시인이 언어가 ‘명사’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동사’로 이루어진 세계를 포착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을 강조했던 사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김춘리 시인 역시 언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얽매일 수밖에 없는 의미와 이미지에 저항하고, 그 저항의 방식을 자신의 시적 구조로 삼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시인의 시적 태도가 기법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어로 구성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시 장르의 근본적인 운명이라고 한다면, ‘시인’에게 언어의 사용은 곧 세계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춘리 시인은 언어가 벗어날 수 없는 기본적인 자질들을 가장 극단의 지점에 이르기까지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에서는 인과의 관계가 쉽게 단절되면서 그것을 따라가던 의미들과 충돌하고, 다른 차원의 이미지들과의 만남이 자유로운 도약을 감행한다. 이는 단어 운용의 특징이면서 작품을 구성하는 기본 원칙, 그리고 세계를 감각하는 그만의 방식으로도 자유롭게 말해질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시를 하나의 의미 구조로 읽어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같은 시인의 특징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구조’는 ‘의미’가 될 수 없으며, ‘의미’는 ‘실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문제는 인과 체계 속에서 이 관계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의 기존 인식이다. 이번 시집을 통해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것은 관계들의 붕괴 현장이다. 그리고 김춘리 시인의 세계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바로 이 한 지점에서 무한히 태어나고 있을 뿐이다. 작가의 말 풍경이 잘린 후 우리들이 사다 놓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사 온 얼굴과 남들이 사다 준 얼굴들이 뒤섞여서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방명록을 뒤적이며 목소리가 묻어 있는 얼굴을 찾아 씻기 시작했다 추천사 남승원 (문학평론가) 김춘리 시인의 언어들은 실재를 포획하기 위해 현실의 모습 위로 끝없이 던져지는 운동성을 보여준다. 그렇게 던져진 언어의 그물들 사이로 길어 올려지는 이미지들은 현란하다고 느껴질만큼 생동감을 가진 채 우리의 의식 속에서 선명하게 움직인다. 일방향적 은유 체계에서 벗어나 일상어와 시어의 양쪽을 오가면서 우리 인식의 범주에 기대고 있던 세계를 무너뜨리고 다시 일으키는 것을 반복한다. 시인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이 진동은 어떤 의미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과의 격렬한 투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책 속에서 회귀(回歸) 부추들이 가난한 지붕처럼 자랐다 매일 부추를 뜯던 식구들의 입은 파래졌고 옥상에 세워둔 십자가는 밤에만 붉었다 목욕탕 이층에 있는 교회는 일요일마다 김이 가득했다 너는 파란 것을 믿니? 머리칼을 부추처럼 헝클어뜨리며 우리는 일요일마다 성내고 있었다 푸른 독을 내뿜으며 집요하게 바람의 속도와 창문의 개수를 기억했고 이불을 잡아당기다 실밥이 뜯겨도 자꾸 예배당에 방을 만들었다 개종한 엄마는 아들을 위해 굿을 열었고 파란 부채를 들고 뛰면 우리도 덩달아 뛰었다 신을 쫓아가고 있었다 명절을 앞둔 목욕탕 안은 뜨거운 김이 서려 있었다 머리를 감느라 숙인 가랑이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아버지는 거품을 씻어내고 때수건만 한 창문을 만들었다 생활이 창문 크기만큼 넓어졌을 때 집으로 돌아갔다 푸른 목덜미가 하얘질 때까지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꿈속에서 자주 부추밭을 헤매었고 목욕탕 이층에는 피트니스 클럽이 들어왔다 그 해 부추는 장판처럼 누렇게 죽어 갔다 더 이상 푸른 것을 믿지 않았다 평면과 큐브 모래밭에 엎드린 자세로 볼 거야 바닷바람은 멀리서 보면 오징어 같았어 희극적이었고 해변이라는 큐브를 맞추고 말 거야 (배가 올 거야) 4x4x4 퍼즐에서 5x5x5 퍼즐로 바꾸었을 때 SNS에 거짓을 연습하던 여자와 토끼 이빨 조각을 맞추던 남자의 독백을 받아 주던 물거품 해변은 창백한 목덜미 같아 목덜미를 내어주며 맹세했었지 맹세할수록 심장이 모래 같았지 타 오르거라! 타 오르거라! 개머리 능선을 밟고 모래밭에 엎드린 자세로 타 오르거라 사슴 똥을 주우며 타 오르거라 너는 여전히 엎드린 자세로 큐브를 돌리고 (배가 올 거야) 모래 위에 시간을 적고 평면을 만져 볼 수 있을까 해변이라는 비극은 아니니까 모래라는 큐브니까 행성에서 비둘기가 앉는 순간 창문이라는 거주가 시작되었다 배워본 적 없는 오토바이는 퀵서비스의 속도로 멀어지는 행성이어서 가스와 먼지로 둘러싸이고 포장된 우리는 흔들리고 황급히 달리며 인사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기상관측소에서 파도가 밀려온다는 경고문을 행성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주꾸미 먹물같이 관측이 불가능했던 일상들 비탈은 취향의 문제이므로 풍경을 자르면 취향이 사라졌다 옥탑방은 구글 지도에 없는 풍경이어서 굴러떨어진 적이 있다 방지 턱을 보지 못해 굴러떨어진 뼈를 주우며 우리는 이동하는 행성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스키드 마크가 희미해지기 전에 전파망원경 밖으로 멀어지기 전에 행성이라는 포장에서 나를 꺼내야 했다
시인의 말
제1부 모자와 불가사리
칼 11
여름 필름 12
모자와 불가사리 14
배교 16
박제사 Q 19
기념일 22
파적 24
레고 블록의 세계 26
평면과 큐브 28
바나나 동전 30
철학자의 나팔 32
제2부 노골적인 슬픔
회귀(回歸) 36
가족 Ⅰ 38
가족 Ⅱ 40
대한미니상회 42
노골적인 슬픔 44
사용법 46
축제 48
시인(詩人) 50
커튼콜 52
블랭크 54
총성과 튜닝 56
핑크시티 58
매일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 60
제3부 커서스(Cursus)
습관의 힘 62
세수의 형식 64
수강생 66
채식주의자 Ⅰ 68
봄밤 70
말리꽃 72
떨기나무 74
자세 76
몰약의 공동체 78
면역력 80
커서스(Cursus) 82
제4부 노매드
남해 호텔 86
젬베 88
표류하는 방 90
선샤인 시티 92
백야 94
정체 96
여름이니까 98
드로잉 100
노매드 102
오늘의 식단 104
핼러윈 축제를 지나는 밤에 106
행성에서 108
김춘리의 시세계 | 남승원 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