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샤를 페로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의 학교에서 수학한 후, 변호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였다. 페로는 문학을 즐기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1695년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아이들에게 헌신하기로 결심한 후 구전 민담을 모아 동화로 재구성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였다. 페로의 대표적인 동화집 <거위 아주머니 이야기(Tales of Mother Goose, 1697년)>는 페로가 아이들을 위해 유럽 여러 나라에 떠도는 민담을 빌어 쓴 것으로,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동화집 안에는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있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Sleeping Beauty)」, 「빨간 모자(Red Hood)」, 「장화 신은 고양이(Puss in Boots)」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민담을 품위가 없다며 무시했던 17세기 당시 프랑스의 귀족들과는 달리, 옛 이야기 속에 담긴 교훈을 어린이들에게 들려 주기 위해 노력한 샤를 페로는 '프랑스 아동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
저자 :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1854-1900)는 아일랜드 더블린(Dublin)에서 안과 의사인 아버지와 시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문학을 접하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대학 시절 이미 시를 발표하여 문단에 이름을 알릴 정도로 뛰어난 예술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1888년에 단편 동화집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 (The Happy Prince and Other Tales)〉을 출간했으며, 이 중 <행복한 왕자>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동화로 알려져 있다. 그 후 두 번째 동화집 <석류의 집 (A House of Pomegranates)>을 출간한 이후, 그는 동화뿐 아니라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The Picture of Dorian Gray, 1891)>, 희곡 <살로메 (Salome, 1893)>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여 큰 명성을 얻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기존의 동화들과는 달리 인간의 이기심과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동화를 주로 썼던 오스카 와일드는 세계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자 : 위다
영국의 서퍽 주 베리 세인트 에드먼즈 (Bury St. Edmunds)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마리 루이스 드 라 라메 (Marie Louise de la Ramee)다. 위다는 어릴적 가족들이 부르던 애칭이었는데, 작품 활동을 할 때 이것을 필명으로 썼다. 매우 감성적이었으며 여행과 글쓰기를 좋아했던 위다는 첫번째 소설인 〈포도원 그랑빌 (Granville de Vigne)〉이 월간지에 실리면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후 위다는 〈두 깃발 아래(Under Two Flags)〉, 〈뉘른베르크의 난로 (The Nurnberg Stove)〉 등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많이 출간하였다. 동물을 무척 사랑하여 동물에 대한 소설도 많이 썼던 그는 개와 소년의 순수한 우정과 예술에 대한 사랑을 담은 〈플랜더스의 개 (A Dog of Flanders〉가 큰 인기를 끌면서 유명 작가의 대열에 서게 되었다. 평생 40편 이상의 소설과 단편집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벌였던 위다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매혹적인 표현으로 19세기에 가장 인상적인 아동문학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자 : 제임스 매튜 배리
스코틀랜드 키리뮤어(Kirriemuir)에서 열 명의 형제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어머니가 가장 사랑했던 형 데이비드를 잃은 충격으로 우울증에 걸리자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형의 행세를 하는 등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배리는 에딘버러 대학 졸업 후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1885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자주 산책을 다니던 런던 켄싱턴 공원에서 데이비드 부부의 아이들을 만나 친하게 지냈는데 이들이 훗날 피터 팬의 모델이 되었다. 어릴 적 형의 죽음에서 영감을 얻었던 ‘영원한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피터 팬〉은 어른들을 위한 소설 〈작고 하얀 새(The Little White Bird)〉에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어린이를 위한 희곡 〈피터 팬〉으로 다시 쓰여 1904년 초연된 후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1928년에 소설로 재구성되었다. 작가로서의 공로로 준남작의 지위와 훈장까지 받았던 배리는 평생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아동문학 창작에 온 힘을 기울였으며, 피터 팬의 모든 저작권을 런던의 아동병원에 기부하여 아이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저자 : 카를로 콜로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카를로 로렌치니(Carlo Lorenzini)다. 수도회에서 수사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그는 군대에 자원하여 이탈리아의 통일ㆍ독립 전쟁에 참전하였다. 그 후 콜로디란 이름으로 신문과 잡지에 강한 나라 건설의 희망을 담은 글을 기고하며 애국사상을 드높이는 한편 희곡을 집필하고 연극 무대감독으로 일하였다. 그는 또한 조국 이탈리아의 장래를 책임질 어린이들을 훌륭히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동문학에도 큰 관심을 가져, 로마의 한 어린이 잡지에 꼭두각시 인형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연재하였다. 이 소설이 바로 그의 일생 최고의 역작이자 대표작인 〈피노키오〉로, 이 소설을 연재와 동시에 큰 사랑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콜로디는 세계적 아동문학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피노키오의 성공과 더불어 그는 아동문학 작품 집필에 몰두하여 〈유쾌한 이야기(Cheerful Stories)〉, 〈붉은 털 아기 원숭이 피피(Pipi, the Little Pink Monkey)〉 등의 작품을 남겼다
저자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덴마크 오덴세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대개는 혼자 집에서 공상하거나, 자기만의 작은 극장을 갖고 놀거나 인형 옷을 만들어 놀았다. 가수나 배우가 되고 싶어 열네 살에 무작정 대도시 코펜하겐으로 가 여러 극단을 찾아다니지만 타고난 재능이 없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매번 퇴짜를 맞았다. 14세 때 코펜하겐의 덴마크 왕립 극장의 단원이 되어 배우의 꿈을 키우지만 변성기가 오면서 글쓰기에 집중하게 된다. 1822년 완성한 희곡 『알프솔』은 상연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을 들었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정치가 요나스 콜린과 국왕 프레데리크 6세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다. 1827년에는 시 「죽어가는 아이」가 코펜하겐 신문에 실렸다. 여행을 즐긴 안데르센은 유럽 곳곳을 누비며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1835년 서른 살에 첫 소설 『즉흥시인』을 발표하며 유럽에 이름을 알렸다. 같은 해에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발간했으나, 처음엔 비난받기 일쑤였다. 교육적, 계몽적 측면보다 환상적 묘사에 힘을 실은 동화는 외면받던 시대였다. 하지만 잇달아 기발하고 독특한 자신만의 창작 동화를 발표하며 명성을 떨쳤다. 오늘날 안데르센은 구전 민담의 원형을 넘어서서 ‘동화’ 장르를 개척한 ‘동화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못생긴 새끼 오리』, 『눈의 여왕』, 『성냥팔이 소녀』, 『빨간 구두』, 『나이팅게일』 등 생전에 남긴 200여 편의 동화는 ‘불멸의 이야기’라는 찬사를 받으며 100여 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다. 동화뿐만 아니라 소설, 시, 극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그는 자신이 관찰하고 상상한 모든 것을 현실로 불러들이고, 이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작가이자 예술가이다. 1875년 친구인 멜히오르가(家)의 별장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덴마크 국민들의 크나큰 사랑을 받았으며 그의 장례에는 국왕 내외도 참석했다.
저자 : 쟌 마리 르 프랭스 드 보몽
프랑스 북부 루앙(Rouen)에서 태어났다. 결혼 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런던의 한 신문에 전설, 역사, 지리 등을 바탕으로 한 어린이용 글을 쓰는 것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그녀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첫 작품집 〈진실의 승리(The Triumph of Truth, 1748)〉 를 출판하고, 학교 교과서와 여러 잡지를 출간하였으며, 여기에 어린이를 위한 교육용 이야기를 실었다. 1756년 〈아이들의 잡지(Le Magasin des enfants)〉에 실린 동화 〈미녀와 야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그녀는 작가로서의 명성뿐 아니라 부까지 얻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프랑스로 돌아가 프랑스 최초의 어린이 잡지를 출간하였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동화뿐 아니라 도덕, 문학, 신학 등에 관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평생 어린이를 위해 자유롭고 환상적인 느낌의 이야기를 선보였던 보몽 부인은 프랑스 아동 문학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