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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8771652 / 712쪽 / 1,070g / 170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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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장자』에게 씌운 왜곡의 두꺼운 가면을 벗겨내라 여기 오랫동안 왜곡과 오역으로 만신창이가 된 중국 고전이 하나 있다. 바로,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莊子, BC 369~BC 289?)의 명저 『장자(莊子)』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쩌면 유교 시조 공자(孔子)의 어록인 『논어(論語)』보다도 더 많이 선호되고 있는 고전으로 꼽을 수도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장자』의 왜곡과 오역의 폐해는 그 어느 고전보다도 심하다. 그 왜곡의 뿌리를 찾아보면 2~3세기 중국의 위진(魏晉)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후한 말기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원을 차지하게 된 조조(曹操, 155~220)는 당시 반란(황건의 난이 대표적이다)의 중심이었던 도교 세력을 체제 내로 편입시키고자 했다. 도교에서는 노자(老子)와 장자, 즉 노장을 스승으로 삼고 있었으므로, 조조는 노장의 사상을 담은 『노자도덕경』(이하 『노자』)과 『장자』의 글 속에 나타난 반체제성과 저항성을 제거하여 도교 세력의 민중성을 거세하려 했다. 이를 위해 하안(何晏, 190~240)과 왕필(王弼, 226~249)을 등용했고, 이들이 공자의 경학(經學)을 『노자』에 끌어 붙여 ‘현학(玄學)’을 만들면서 노장 사상을 체제에 순응적이고 권력에 친화적인 내용으로 왜곡한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人爲)와 문명을 거부하는 담론이었던 노장 사상은 이 현학자들에 의해 순종과 무욕(無慾)의 노예도덕론으로 변질되었고, 산수(山水)에서 노니는 청담(淸談)만이 부각되어 은둔의 철학으로 윤색되었다. 권력을 좇는 도가와 유가의 학자들 역시 이러한 왜곡과 변질의 일익을 담당했다. 왕필의 시대 때는 반란 세력으로 내몰린 도교의 지도자들이 생존을 위해 권력과 타협하는 길을 택했고, 도교를 국교로 삼은 당나라 때는 유가들이 도교에 기생하기 위해 유교의 경학과 노장 사상을 결합시키게 되었다. 오늘날 존재하는 『노자』와 『장자』의 주해 및 해설서 들은 왕필의 왜곡을 그대로 답습해 와, 노장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고 ‘불온’하다고 여겨진 부분을 윤색한 껍데기로만 남은 것이다. 오역은 또 하나의 굴레다 고전의 왜곡을 안타까워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청대의 유명한 고증학자 고염무(顧炎武, 1613~1682)는 『논어』와 노장을 왜곡한 하안과 왕필의 죄악이 천하의 폭군인 걸주(桀紂, 걸왕과 주왕)보다도 더 심하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고전을 다시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을 한 번 더 거친 우리의 노장 번역서들은 어떨까? 여기서 『장자』를 재번역해 내놓는 묵점 기세춘 선생에 따르면, 현재 시중에 나온 번역서들은 왕필의 왜곡된 주해를 고스란히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왜곡된 위에 오역으로 덧칠한 셈이다. 이러한 오역은 몇 군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역투성이’라고 할 만큼 전면적이고 방대하게 존재해, 감히 수정하겠다고 손댈 수도 없는 형편이다. 기세춘 선생은 우리 학자들이, 권력에 의한 왜곡 가능성은커녕 시대와 문화, 언어 등의 차이로 인한 변질과 오해(誤解)의 가능성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또는 모르는 ‘체’하며) 『장자』를 번역한 결과 “은미하고 철학적인 담론이 원문과는 전혀 다른 치졸한 처세훈”으로 전락하고, “서사적인 우화는 그 핵심을 놓치고 초점을 그르쳐 다른 길로 빠져”버렸다고 개탄한다. 그는 이러한 고전의 왜곡 풍토를 학계의 고질병으로 인식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모든 고전들이 성리학을 위해 ‘복무’해야만 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내세운 경학원 중심의 ‘황도유학’으로 타락했으며, 해방이 된 이후에는 그마저도 몰락하고 지연과 학연, 관행만을 중시하는 교단의 허울만 남았다는 것이다. 고전을 ‘완역(完譯)’하는 일이란 누구라도 선뜻 나설 수 없는 일이다. 철학,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광범위한 소양이 요구되는 까닭이기도 하고, 고대 언어에 대한 고증학적 검증이 요구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일부 학자들이 고전을 완역했다며 함량 미달의 번역서들을 내놓는 것은 “곡학아세(曲學阿世)요 혹세무민(惑世誣民)”일 뿐이다. 그래서 기세춘 선생은 단호한 일갈을 던진다. 시중의 동양고전 번역서를 모두 수거하고, 폐기하고, 불살라 버리라고 말이다. 고전의 오역이 문제가 되는 것은 잘못된 번역서의 유통으로 출판계가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근본 취지를 그르친 악서와 저질 서적들이 ‘고전’이란 미명하에 우리의 후손들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고증에 의한 재번역만이 살길이다 중국의 고전들은 수천 년 묵은 고(古)문자이므로 오늘날 쓰이는 뜻으로, 특히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한자의 뜻으로는 온전한 해석이 불가능하다. 고전들이 쓰인 당시는 지금처럼 글자 수가 수만 자에 이른 것이 아니라 수천 자에 불과했기 때문에 빌려 쓰는 경우가 많았다. 또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뜻이 변했을 것은 상식적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된다. 그럼에도 현대의 잣대와 박학(薄學)에 따른 좁은 식견으로 고전을 완역하겠다고 나섰던 일부 학자들이 있어왔으니 그 대담함에 혀가 내둘릴 지경이다. 한학자이자 철학자인 기세춘 선생은 그동안 출판계를 대상으로 기존 번역서의 폐기 및 개정을 호소해왔고, 고전에 관심을 가진 대중들을 상대로는 제대로 번역한 고전을 텍스트 삼아 열정적인 강의를 펴왔다. 이런 오랜 인내 끝에 드디어 동양고전 재번역 운동에 직접 나서기로 결심하고, 그 첫 결실로 『장자』의 재번역판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기세춘 선생의 『장자』는 기존의 번역서들과 어떻게 다를까? 그는 재번역의 핵심은 철저한 고증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신념에 따라 『장자』와 관련된 각종 판본과 주해 들을 두루 찾아가며 참고했다. 『장자』의 원문은 청나라 왕셴첸(王先謙, 1842~1917)의 『장자집해(莊子集解)』를 저본으로 삼고, 『백자전서(百子全書)』와 『이십이자(二十二子)』의 『장자』도 참고했다. 『장자』의 주해는 곽상(郭象, 252?~312), 초횡(焦?, 1540~1620), 유월(兪?, 1821~1906) 등의 주해를 종합한 왕셴첸의 『장자집해』와 왕부지(王夫之, 1619~1692)의 『장자통(莊子通)』을 참고했다. 그러나 이 주해들을 참고하면서도 번역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 결과, 이 학자들의 주해를 따르기보다는 『장자』 전후로 쓰인 다른 고전의 용례와 『이아(爾雅)』,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강희자전(康熙字典)』, 『중화대자전(中華大字典)』과 같은 자전을 따른 경우가 더 많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기존의 번역서들은 오역에 더해 옮긴이 개인의 자의적인 생각까지 덧붙여 놓아 곡해의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러나 기세춘 선생의 재번역 『장자』에서는 불필요한 주해를 모두 뺐다. 대신에 한글 번역과 한자 원문을 양옆으로 나란히 제시해 독자들이 번역의 정확성을 검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거나 쓰임이 다른 한자들은 각주를 달아 그 뜻과 쓰임을 밝혔다. “곧고 맑은 동양 고전 번역체”로 『장자』를 읽으면… 이렇게 재번역한 기세춘 선생의 『장자』는 기존의 번역서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천지(天地)」편에는 길을 지나던 자공(子貢)이 밭두렁에서 일하고 있는 한 농부에게 “왜 두레박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힘들게 물을 퍼올리느냐”라며 묻는 장면이 나온다(262쪽). 이에 대한 농부의 대답은 이렇다. “기계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를 부리는 자가 있고, 기계를 부리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의 마음이 생기고, 기계의 마음이 생기면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고,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면 정신과 성품이 안정되지 못하고, 정신과 성품이 불안정하면 도가 깃들 곳이 없다.” 그러나 이 부분을 기존의 번역서들은 ‘기교를 부리지 말라’고 번역하고 있다. ‘機’ 자를 ‘기계’가 아닌 ‘기교’로 번역함으로써, 원전에 나타난 ‘기계 거부’라는 반(反)문명의 테제가 순식간에 ‘기교를 멀리하라’는 ‘교양론’으로 변질되고 만 것이다. 이렇게 글자 하나에 대한 번역의 차이가 원전에는 없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버린다. 그런데 기존의 번역서들은 이런 오류를 무수히 범하고 있는 것이다. 기세춘 선생은 이런 철저하고도 세밀한 고증을 통해 『장자』의 본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한남대학교 김조년 교수는 이 책의 말미에 실린 발문에서 기세춘 선생이 재번역한 『장자』는 “전국시대의 고통받는 민중을 대변”하는 “저항 담론”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평했다. 번역에 자신이 없을수록 사족이 붙고 군더더기가 많은 법이다. 그러나 기세춘 선생의 번역은 간결하고 직설적이다.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인위적인 꾸밈이 없이 투명한 문체다. 그래서 김규동 시인은 발문에서 “기 선생의 글은 한마디로 아름답고 시원하다. 곧다. 그리고 맑다.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라고 하면서 “이는 번역이 아니고 제2의 창작”이라고 평했다. 다시 『장자』를 꺼내 들어야 하는 시대다 장자는 인간사회의 인위적 제도가 거짓과 억압, 착취를 지탱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을 얽매고 있는 외물(外物)을 초월해 무궁한 천지에 노니는 자연이 되고자 했다. 다만 그는 대자연의 무궁함에 비해 인간이 유한함을 통감하고 탄식했다. 그러나 그런 열렬한 자유 추구와 처절한 절망이 나타나 있는 『장자』는 혼돈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절대자유인을 꿈꾸게 해준다.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장자』의 번역서들은 장자가 그토록 싫어한 ‘인위(人爲)’의 결정체라 할 것이다.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때론 정반대의 내용으로 변질되고 윤색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장자』에서 인위의 장막을 걷어내고 그 본모습을 드러내도록 해야 할 때다. 기세춘 선생이 이번에 내놓는 책만큼 ‘완역’의 의미가 깊게 와 닿는 『장자』의 번역서는 없을 것이다. 원전에 가장 충실하게 재번역된 『장자』를 그동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 내용을 반영해 개정판으로 새롭게 세상에 내놓는다. 이제 독자가 이에 답할 차례다!
卷一. 內篇(내편)
제1장. 逍遙遊(소요유) 제2장. 齊物論(제물론)
제3장. 養生主(양생주) 제4장. 人間世(인간세)
卷二. 內篇(내편)
제5장. 德充符(덕충부) 제6장. 大宗師(대종사)
제7장. 應帝王(응제왕)
卷三. 外篇(외편)
제8장. 騈拇(변무) 제9장. 馬蹄(마제)
제10장. ??(거협) 제11장. 在宥(재유)
제12장. 天地(천지)
卷四. 外篇(외편)
제13장. 天道(천도) 제14장. 天運(천운)
제15장. 刻意(각의) 제16장. 繕性(선성)
제17장. 秋水(추수)
卷五. 外篇(외편)
제18장. 至樂(지락) 제19장. 達生(달생)
제20장. 山木(산목) 제21장. 田子方(전자방)
卷六. 外篇·雜篇(외편·잡편)
제22장. 知北遊(지북유) 제23장. 庚桑楚(경상초)
제24장. 徐无鬼(서무귀)
卷七. 雜篇(잡편)
제25장. 則陽(칙양) 제26장. 外物(외물)
제27장. 寓言(우언)
卷八. 雜篇(잡편)
제28장. 讓王(양왕) 재29장. 盜?(도척)
제30장. 說劍(설검) 제31장. 漁父(어부)
제32장. 列禦寇(열어구) 제33장. 天下(천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