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91188783281 / 512쪽 / 973g / 152 x 225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조아란, 권희, 이정윤
-
수전 손택
-
김현경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15,120
- 19,800
- 16,650
- 16,200
출판사 리뷰
“시종쉰(習仲勳)은 섬감변구(陝甘邊區) 혁명근거지를
창건한 인물 중의 한사람이다.”
시종쉰(習仲勳)은 원칙을 견지하고 자신의 입장을 견지 하였으며, 관점은 명확하게 당의 이익을 우선순위에 놓았다. 그는 나라를 위해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힘을 다하였다.
1. 단촌(淡村)고원의 농촌 소년
중국 역사에서 관중(關中)의 대지는 너무나도 많은 찬란함과 무거움을 담고 있다. 진(秦), 한(漢), 수(隋), 당(唐) 등 13개에 달하는 왕조가 이곳에다 도읍을 정할 정도로 왕기(王旗)가 펄럭였지만, 한편으로는 일월(日月)이 늘 상 뒤바뀌곤 했던 곳이었다. 이에 시성 두보(杜甫)마저 걸음을 멈추고 “진중(秦中)은 자고로 제왕의 주(州)라네”라 읊으며 감개무량해 했었다.
산시(?西)의 중부에 있는 푸핑(富平)은 자고로 “관중의 유명한 고을”이라는 명성을 갖고 있던 지역인데, 북쪽으로는 차오산(橋山)에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위수(渭水)와 손잡고 있으며, 황토고원의 웅장함과 800리 친저우(秦州)의 광활함을 겸유(兼有)하고 있어 “가히 사방의 형세를 파악할 수 있는, 관푸(關輔)의 으뜸 고을”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푸핑은 진려공공(秦?共公)1) 11년(기원전 456년)에 현이 설치되고서부터 지금까지 무려 2,400여 년이나 지속되어 오고 있다.
푸핑(富平)이라는 이름은 부유하고 태평스럽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고향에 대한 선인들의 소박하고 경건한 이상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남녀노소가 다 아는 노래가 있다.
“문관으로는 양작(楊爵)이 있고, 무관으로는 왕전(王?)이 있다네. 효자로는 양열(梁悅)이 있고, 충신으로는 장담(張?)이 있다네. 태보(太保)로는 손비양(孫丕揚)이 있고, 위징(魏徵)은 꿈속에서 용왕의 목을 베었다네.” 천백년 이래 나라와 민족을 위한 뜻을 세우고 기여했던 뛰어난 인물들을 기리는 마음과 아름다운 신화가 어우러진 노래이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또 장칭윈(張靑云), 자오즈징(焦子敬), 장이안(張義安), 후징이(胡景翼) 등 영웅호걸들이 등장하여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길에 앞장서기도 했다. 바로 이런 곳에서 1913년 10월 15일(음력으로 계축년 9월 16일) 한 농가에서 시종쉰(習仲勛)이 태어났다. 시 씨 가문과 푸핑현 서부의 단촌고원(지금은 단촌진 중허[中合]촌 중허조[中合組]에 속함)과의 인연은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쌍의 아들딸을 지게에 짊어지고 허난(河南) 덩저우(鄧州)로부터 서쪽을 향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시종쉰의 조부 시용성(習永盛)과 아내 장(張)씨는 1885년(광서(光緖) 11년) 초에 단촌고원의 더우촌천(都村川)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수 년 동안의 떠돌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들은 남의 머슴살이를 하며, 한편으로는 땅 몇 무(畝)를 소작 맡아 경작하면서 생활을 꾸려나갔다.
-중략-
시종쉰은 산간변구 혁명근거지의 주요 창건자이며, 지도자의 한사람일 뿐만 아니라, 중국 개혁개방 사업의 주요한 개척자이며, 추진자의 한사람으로, 그의 위대한 정신은 바로 실사구시의 정신이다.
2005년 5월 24일 시종쉰 서거 3주년이 되는 해에 그의 유골은 베이징 바바오산(八?山) 혁명 공동묘지로 부터 고향인 산시 푸핑현에 안치되었다.
관중의 대지는 그가 혁명을 시작한 곳이며, 일생동안 심사숙고하며 지키려하던 지방이다. 그날 수많은 어르신들과 마을 사람들은 사면팔방에서 푸핑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도로 양변에 숙연하게 서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시종쉰의 영령을 맞이하였다. 수 년 후 사람들은 중국 중앙텔레비전 방송국의 다큐멘터리『시종쉰』에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시종쉰의 영구차 대열이 푸핑에 들어설 때, 당시 중국공산당 저장성(浙江省) 성위원회 서기였던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당기가 덮인 아버지의 유골이 담겨 있는 유골함을 안고 있었다. 시진핑은 차안에서 묵묵히 도로 양변에 숙연히 서있는 고향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이 클로즈업되면서 사람들은 시진핑과 친척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볼 수가 있었다.
인기리에 방영된 다큐멘터리와 함께 시종쉰의 영령이 고향에 들어서는 이 장면은 오랫동안 중국 인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왜 나의 눈가에 항상 눈물이 맺혀 있는가 묻는다면 그건 내가 이 땅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오!(爲什?我的眼裏常含?水, 因爲我對這土地愛得深?)” 아이칭(艾靑)의 이 시는 중국인들이 선혈들에 대한 경모와 딛고 있는 땅에 대한 위대한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푸른 측백나무가 둘러져 있고, 사계절 푸른 묘지에 시종쉰의 조각 상이 우뚝 솟아 있다. 조각상의 뒷면에는 시종쉰의 부인이 친필로 쓴 “일생동안 투쟁하고, 일생동안 유쾌하였으며, 매일 분투하고, 매일 행복했다.(戰斗一生,快樂一生;天天奮斗,天天快樂)”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시종쉰의 좌우명이며 그가 후세에 남겨준 소중한 정신적 재산이다.
-본문 중에서
약력 소개
약력 시종쉰(習仲勳)
걸출한 무산계급 혁명가이고, 중공과 중국인 민족해방군의 탁월한 정치공작 영도인이며, 산간변구(陝甘邊區) 혁명근거지의 주요 창건자인 동시에 영도자 중 한 사람이었으며, 중국 개혁개방사업의 중요 개척자이다. 간시(陝書) 푸핑(富平)현 사람으로 1926년 공청단(共靑團)에 가입했다. 1928년 옥중에서 공산당원이 되었다. 1932년 량당병변(兩當兵變)을 영도하여 일으켰다. 전쟁시기에는 중국공산당 산간변구 특위(特委)ㆍ군위(軍委) 서기 겸 산간변구 유격대 총지휘부 정위(政委), 산간변구 소비에트정부 주석, 중국 공산당 관중(關中) 특위 서기 겸 보안사령부 정위, 중공 쉬더지위(?德地委) 서기 겸 경비사령부 정위, 중앙조직부 부부장, 중공 시베이(西北) 중앙국 서기, 시베이 야전군 부 정위, 제1야전군 부 정위, 산간닝진쉬(陝甘寧晉綏)연방 군구 정위, 신 중국 성립 후에는 중앙인민정부위원회 위원과 중앙인민정부 인민혁명군사위원회 위원, 제1야전군 및 시베이국 제2서기(펑더화이가 지원군을 이끌고 들어온 후 시종쉰으로 하여금 시베이 당정군 업무를 주지하도록 전면에 세움), 정무원(政務院) 문교위원회 부주임, 중앙선전부 부장, 정무원 비서장, 국무원 비서장, 국무원 부총리 겸 비서장을 역임했다. 개혁개방시기에는 중공광동성위 제1서기 겸 광동성 성장 및 광저우군구 제1정위,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정치국 위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시종쉰은 중국인민의 해방사업과 신 중국의 탄생을 위하여,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사업을 위하여, 개혁개방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업을 건설하기 위하여 완강히 분투한 위대한 영도자로서 불후의 역사적 공헌을 남겼다.
1. 단촌(淡村)고원의 농촌 소년
2. 옥중에서 공산당원이 되다
3. 량당병변(兩當兵變)의 총소리
4. 류즈단(劉志丹)·세즈창(謝子長)과의 만남
5, 자오진(照金) 혁명근거지의 창건
6. 천자포(陳家坡) 회의에서 위기를 극복하다
7. 변구(邊區)정부의 ‘아기 주석’
8. 잘못된 숙반(肅反)운동과의 조우
9. 서북(西北) 소비에트구역이 홍군 장정의 근거지가 되다
10. 옌안(延安)을 위해 남쪽대문을 사수하다
11. “당의 이익이 첫째이다”
12. 옌안을 위해 북쪽대문을 사수하다
13. 혁명적인 “양지서(兩地書)”
14. 예타이산(爺台山)의 반격전
15. 마오쩌동에게서 온 아홉 통의 편지
16. 헝산기의(橫山起義)를 기획하다.
17. 변구의 각 부대는 “통일적으로 펑더화이(彭德懷)와 시종쉰 동지의 지휘를 받는다.”
18. 토지개혁에서 ‘좌(左)’를 바로잡고, 마오쩌동은 “완전동의”라는 서면지시를 내리다.
19. “모든 것은 전선을 위한 것이고, 모든 것은 새로운 해방구의 확대를 위한 것이다.”
20. 대 서북(大西北)을 다스리다.
21. 중앙인민정부의 특명 대표
22. 마오쩌동은 말했다. “당신은 제갈량보다 대단하구려!”
23. ‘높은 수준의 중선부(中宣部) 부장’
24. 국무원의 ‘대 집사’
25. 저우 총리(周恩來)의 ‘내교부장(內交部長)’
26. 군관 계급장 수여문(授與文)을 읽다.
27. 국무원 신방제도(信訪制度)를 건립하다
28. ‘대약진(大躍進)’의 열조 속에서 명석했던 시종쉰
29. 세 차례나 시안(西安)의 옛 성벽을 보호하다
30. 정(情)으로 이어진 진성(秦?)과 경운(京?)
31. 소설 『류즈단(劉志丹)』사건
32. 누명을 쓴 16년, 두 차례나 뤄양(洛陽)으로 하방(下放)되다.
33. 65세에 남하하여 광동(廣東)의 정무를 주관하다.
34. 억울한 사건, 잘못된 사건들을 대대적으로 바로잡다.
35. 표본겸치(?本兼治), ‘외국으로 탈출’하는 열풍을 제지하다.
36. 중앙에 ‘권리를 요구’하여 광동이 “먼저 앞서 나아가게 하다.”
37. 특별구역을 설치하여 “혈로를 뚫다”
38. 중난하이(中南海)로 돌아가다.
39. 드넓은 흉금으로 중화를 마음에 두다.
맺는말
시종쉰 일생의 대사년표(大事年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