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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8710140 / 328쪽 / 886g / 227 x 2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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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목마와 유목민』은 춘천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화가 박동진의 30년 화업이 담긴 작품집이다.
‘목마 혹은 말[馬]’의 작가로 대표되기도 하는 박동진 화가가 지난 30년 동안 작업해온 모든 작품을 시기 및 주제별로 구분하여 열 개의 장으로 묶었다.
1장. 혁명의 시간 ― 목마
2장. 소요의 시간 ― 갯벌, 풀
3장. 존재의 시간 ― 몸
4장. 회귀의 시간 ― 혼성, 사이 공간
5장. 연성의 시간 ― 말, 단일자
6장. 거닐다 ― 이원성, 순수 공간
7장. 코스모스 ― 유영, 우주여행
8장. 세상에 없는 것 ― 유니콘
9장. 노마드 ― 역동
10장. 길들여지지 않는 시선 ― 드로잉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식인으로서 화가가 사회에 어떻게 참여하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1980년대의 정치적 혼돈, 1990년대의 경제적 혼돈, 2000년대의 사회문화적 혼돈이 박동진의 작품에 어떻게 투영되고, 어떻게 변용되었는지 살펴보면 이 사회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특별한 재미의 하나다.
물론 무엇보다 박동진이라는 뛰어난 화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일이겠다.
■ 발문 _ 이광래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Anima―Aesthetics를 지향하며:
노마드로서의 꿈, 자아로서의 말, 방법으로서의 회화
1
“나는 분명히 미술의 역사가 철학적 문제로 점철되어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미학자이자 미술철학자인 아서 단토(Arthur Danto)의 말이다. 그는 『철학하는 미술(Philosophizing Art)』(2001)에서 미술이 곧 철학이라는 생각에서 그 역사도 철학적 문제의 역사로 생각했다.
실제로 이제껏 30여 년 동안 화가 박동진이 캔버스 위에 남겨온 붓 결의 파노라마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그는 어떤 작품에서라도 조형 예술로서 ‘미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묻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회화란 무엇인가’와 같은 본질 해명은 화가의 철학하는 방법에 다름 아니다.
그 많은 제목들은 시간, 공간, 존재 등 자신의 ‘존재론’을 말하고 있는가 하면 cosmos(질서), chaos(혼돈), heaven(천국), 별, 우주 등 화가의 ‘우주론’을 설명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삶, 욕망, 자유, 꿈, 추억, 망각 등 자신의 ‘인간학’을 주저하지 않고 발언하는가 하면 역사, 혁명, 무정부주의 등 ‘사회적 자아의식’도 토로한다. 화가의 캔버스들은 그의 로고스(logos)와 파토스(pathos)를, 게다가 에토스(ethos)까지도 노트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의 역사에서 시대가 철학의 빈곤에 시달릴 때나 철학이 부재할 때 그와 같은 문제의식들이 철학자들에 의해 더욱 강조되어 왔듯이 미술의 역사에서도 미술가들은 그와 같은 미술의 본질에 대해 붓과 물감으로 말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20세기의 ‘표류하는 미술’을, 심지어 ‘회화의 종말’이나 ‘엔드 게임’을 염려하는 즈음에 개념미술가 조셉 코수스가 ‘철학을 따르는 미술(Art after philosophy)’을 강조한 까닭이 그것이다.
그동안 보여 온 박동진의 조형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일찍이 철학이 빈곤하거나 부재하는 미술(Art without philosophy), 그래서 ‘표류하는 미술’과 가래보거나 엔드 게임을 하기 위해 이른바 ‘철학을 지참한 미술(Art with philosophy)’을 간단없이 보여 온 것이다. 본디 철학의 밀절미는 ‘사유의 관점’이다. 존재, 세계, 인간, 가치 등에 대한 저마다의 관점이 개인의 세계관과 역사관, 가치관과 인생관, 즉 그의 철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철학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사유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본질이든 현상이든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곧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meta(따라서)와 hodos(길)의 합성어(methodus)에서 유래한 method(方+法)가 ‘따라가는 길’을 의미하듯이 우리는 존재, 지식, 가치 등에 대한 생각을 따라가는 방법에서 자신의 철학을 위한 가리사니를 찾는다. 화가 박동진이 30여 년간 걸어온 공시적/통시적, 현실적/초월적 여정이 바로 그 길이 아닌가? 그가 지금 자신을 따라보도록 초대하는 길이 바로 거기 아닌가?
이토록 박동진의 회화는 ‘방법적’이다. 가시적/비가시적 대상을 사유하는 방법으로서의 회화, 그것이 그의 미술이고 철학이다. ‘방법’은 미술이 표류하는 시대에 그가 던지고 싶은 ‘미술을 위한 변명(apologie pour beaux―arts)’이라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
화가 박동진의 자아는 ‘말(equus)’이다. 그는 줄곧 말로써 자기를 타자화하고 있다. 말은 그의 조형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그가 자아를 대리 표상하는 ‘에이전트’이다. 또한 말은 그의 미학을 읽어주는 ‘에피스테메(episteme, 인식소)’이기도하다.
그는 공간은 물론 시간도 말로 달린다. 그는 코스모스뿐만 아니라 카오스도 말로 달린다. 그에게 말은 조형 기계이자 에고(ego) 자체이다. ‘욕망하는 기계’로서의 말은 이 화가의 욕망을 실어 나르는 에이전트인가 하면 그의 철학을 따라가게 하는 길잡이다. 그에게는 말이 있는 한 유토피아도 없다. 그의 말은 이미 유토피아에 있기 때문이다.
박동진에게 말은 형이상학적 존재이고, 우주론적 존재이다. 말은 「공간을 달린다 I. Ⅱ」(2009, 2010). 이어서 말은 「시간을 달린다 I, Ⅱ」(2011, 2017). 나아가 말은 「천상을 거닌다 I. Ⅱ, Ⅲ」(2017). 「우주 산책―만남」(2010)도 즐긴다. 이처럼 그의 말은 철학한다. 말은 사색하고 고뇌한다. 말은 「자아를 찾아서」(2012) 「사색으로의 산책」(2009)에 나선다.
그런가 하면 말은 「코스모스의 순례자」(2008)가 되어 「우주 속으로」(2011)도 나아간다. 이토록 말은 철학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에게 말은 말이 아니다. 말은 이미 ‘코기토(cogito)’이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의 말도 ‘cogito ergo sum’을 주장한다. 그래서 그의 말은 「철학자의 사유」(2007)를 말하고, 「철학자의 고독」(2013)을 대신 실토한다.
박동진에게 말은 인간학적 존재이다. 말은 「애상」(2009)에 젓는다. 말은 「추억을 그린다」(2010). (프란츠 마르크의 파란 말, 빨간 말처럼) 말은 빨강, 파랑, 보라 등의 색깔들을 드리우고 별빛 풍경에도 물든다. 말이 즐기는 산책은 「빨강에 물들고」(2005), 「파랑을 꿈꾼다」(2005). 「파란 여름」(2012)의 말은 빛, 색깔, 향기에도 흠뻑 취한다. 말은 여전히 새벽을 노래하고 「별빛을 만난다」(2018). 「별 속에서의 찬란한 유희」(2018)를 갈망한다. 그래서 그의 말은 시인이 되고 싶어 하고, 또 화가도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화가의 말은 처음부터 어둠의 징조가 드리워진 「계단의 정체」(1983)만을 드러낼 뿐 어떤 시적 유희도 향유하지 않았다. 도리어 「비상을 꿈꾸는」(1989) 말의 이상은 음산한 현실의 질곡을 가로질러야 했다. ‘에고(ego)로서의 에쿠스(equus)’는 자기에게 묻는다. 프롤로그로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그래서 말은 혁명을, 거친 광야를 달린다. 역사 속에서의 「삶과 고요」(1995)를 생각해 본다. 「살아 있기에」(1995) 「광야에서 순수」(1996)를 노래한다. 그 말은 지금도 「역사의 시간을 거닌다」(2017).
그래서 말은 「보랏빛 자유」(2011)를 거닐고 싶어 한다. 「자유를 꿈꾸며」(2011) 더욱 자유이고 싶어 한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나날」(2018) 앞에서 순수를 욕망하는 말은 「여백의 공간을 넘어」(2018) 「우주를 만나고」(2018) 싶어 한다. 순수에 갈급해 하는 욕망은 「미래를 달리고」(2018) 싶어 한다.
지금 말은 말에게 말하며 초인(超人)을 부른다. 니체의 말대로 ‘우리 뒤에 놓여 있는 하나의 기나긴 영원한 길을 달리는’ 말은 「코스모스 저 너머에」(2013) 있을 영겁회귀의 시공에서 짜라투스트라를 만나고 싶어 한다. 「천국의 이방인」(2012)으로서의 말은 초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말은 「천국의 노래」(2018)를 부르며 초인과 「초월 공간―만남」(2018)을 기다리고 있다. 말은 「찬란한 비상」(2018)을 꿈꾸며 그 공간의 「빛 속으로 달리고」(2018) 싶어 한다.
3
화가 박동진은 꿈꾸는 노마드다. 제8장의 제목 ‘노마드―역동’처럼 그는 꿈꾸는 말이 되어 순수를 가로지르려는 유목민이다. 그는 끊임없이 걷고, 산책하고, 달리고, 질주한다. 그는 정지하기보다 이동한다. 그의 캔버스는 인간이란 태초부터 현실 세계는 물론 이상 세계에서도 유목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삶에서의 희노애락과 더불어(meta) 이동하는 시공의 길(hodos)도 그의 캔버스에서는 지상에서 영원으로, 역사에서 미래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코스모스에서 우주 너머로, 현지에서 천국으로 무한정 열려 있다. 우선 책의 제1장?제4장의 제목에서 보듯이 그는 지금도 거닐고, 걷고, 달리며 시간 이동을 하고 있는 노마드다.
이를테면 「거닐다―존재」(2010)를 비롯하여 「거닐다―concentric」(2010), 「거닐다―추억을 그리다」(2010), 「거닐다―질주」(2011), 「거닐다―보랏빛 자유」(2011」, 「거닐다―야상곡」(2011), 「거닐다―우주 속으로」(2011), 「거닐다―별빛」(2012), 「거닐다―꿈결 속으로」(2012), 「거닐다―꿈의 비행」(2012), 「거닐다―자아를 찾아서」(2012), 「거닐다―보랏빛 유혹」(2012), 「거닐다―파란 여름」(2012) 「거닐다―생명」(2013」, 「거닐다―천국의 이방인」(2012), 「빛을 거닐다」(2014), 「순수 공간―거닐다」(2017), 「역사의 시간을 거닐다」(2017), 「천상을 거닐다 I, Ⅱ, Ⅲ」(2017) 등이 그것이다.
애초부터 영어 제목으로 표상된 「Take a walk―Violet」(2005), 「Take a walk―시간여행」(2009), 「Take a walk―space travel」(2012), 「Walk to hope―mirage」(2015), 「Take a walk―공간을 넘어」(2017), 「Take a walk―우주를 만나다」(2018) 등이나 「Run―together」(2018), 「Run―빛 속으로」(2018), 「Run―여백의 공간을 넘어」(2018), 「Run―우주를 만나다」(2018) 등의 공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가 거니는 시간은 주로 관념적이거나 몽상적인 ‘순수 공간’(espace pure)이다. 추억, 역사. 자유, 꿈결, 빛, 천국, 천상과 같이 물리적 공간이 아닌 순수 의식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행히도 앙리 베르그송이 말하는 생명의 창조적 약동이 이뤄지는 ‘순수 지속’(duree pure)으로서의 ‘순수한 시간’과도 같은 것이다.
제5장의 제목 ‘거닐다―이원성, 순수 공간’에서 보듯이 실제로 그는 ‘순수 공간으로서 시간’과 같은 ‘시공의 이원성’을 이동하는 노마드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Cosmos―Run the light I」(2009)이나 「Cosmos―Run the mint」(2010), 「Cosmos―시간을 달리다 I, Ⅱ」(2011), 「Cosmos―light, move)(2015), 「Cosmos―공간을 넘어서」(2011), 「공간 여행―시간의 길」(2017), 「공간 여행―햇살의 길」(2017), 「Cosmos―미지의 공간을 넘어서」(2018)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그의 이동은 의도된 두동짐이지만 정적이기보다 동적이다. 정주적이기보다 유목적이다. 명사적이기보다 동사적이다. 꿈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꿈꾸는 시공은 프로이트의 말대로 무의식적 이미지들의 대체(displacement)와 응축(condensation)의 두동진 융합일 터이므로 더욱 그렇다. 「몽중한」(2006), 「몽상의 공간―철학자의 사유」(2007), 「시간 여행―꿈결을 거닐다」(2009) 「몽유병자의 꿈」(2014) 등처럼 그는 꿈에서도 시공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꿈이다.
그에게도 꿈의 논리는 프로이트처럼 ‘왜곡된 소망(Wunsch)’의 위장 충족이므로 당연히 비논리적이다. 하지만 화가는 꿈꾸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꿈으로 말하고, 꿈으로 그린다. 「거닐다―꿈결」(2014)이나 「On the dream」(2016)에서 보듯이 그는 의식 아래에 대기하고 있던 억압된 소망들을 마음대로 응축하고 대체하며 캔버스 위에다 꿈을 유감없이, 그리고 과감하게 펼친다.
본래 꿈에는 제목이 없지만 캔버스 위에서 꾸는 그의 꿈들은 꿈이 아니므로 제목이 있다. 그에게는 꿈도 노마드의 여행이고 순례이기 때문이다. 「순례―내일을 꿈꾸다」(2010)에서 보듯이 그는 무지개 속을 거닐고 있는 말처럼 형이상학적 질서의 순례자인 것이다. “많은 예술가는 위대함으로의 여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용감한’ 예술가만이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무용평론가 월터 소렐(Walter Sorell)의 주장 그대로이다.
4
화가 박동진은 영혼(Anima)의 미학자다. 그에게 말은 자아를 표상하는 영혼의 기호인 것이다. 말은 영혼의 시니피앙이고 코드들이기 때문이다. 영혼을 표상하려는 그의 조형 욕망은 지금도 기호학적 메타포로서 ‘말의 미학’을 구축하고 있다. 30여 년을 힘차게 약동하는 ‘말의 거대 서사(grands recits de cheval)’로 꾸며온 그의 텍스트가 파라노이아적(paranoiaque)인 까닭도 마찬가지이다.
노마드는 스키조적(schizoidique)인 시대를 살아가려는 영혼의 목소리를 ‘말의 미학’으로 들려준다. 그는 무한 질주하는 노마드적 방법으로 시대에 응즉하면서도 ‘의도된 파라노이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비현실, 만들어진 질서(Cosmos)와 미지의 그 너머, 그리고 오늘과 내일을 넘나드는 흔들리지 않는 영혼이 노마드로서의 ‘욕망하는 기계’를 사로잡아온 탓이다.
「Cosmos―미지의 공간을 넘어서」(2018)나 「미래를 달리다」(2018)가 시사하듯 지금도 꿈꾸는 노마드는 ‘영혼의 약동(elan animique)’ 즉, 혼의 질주와 여행을 좀처럼 멈추려 하지 않는다. 캔버스를 달리며 ‘영혼의 미학(Anima esthetique)’을 지향하는 노마드의 영혼은 갈수록 길들여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1장. 혁명의 시간 ― 목마
2장. 소요의 시간 ― 갯벌, 풀
3장. 존재의 시간 ― 몸
4장. 회귀의 시간 ― 혼성, 사이 공간
5장. 연성의 시간 ― 말, 단일자
6장. 거닐다 ― 이원성, 순수 공간
7장. 코스모스 ― 유영, 우주여행
8장. 세상에 없는 것 ― 유니콘
9장. 노마드 ― 역동
10장. 길들여지지 않는 시선 ― 드로잉
에필로그
발문|이광래
Anima―Aesthetics를 지향하며:
노마드로서의 꿈, 자아로서의 말, 방법으로서의 회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