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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의 난간

민금애 저 | 도화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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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526890 / 248쪽 / 322g /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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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누가 뭐래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만큼 행복한 삶. 어제까지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누구도 고칠 수 없는 기저질환. 요즘 나이가 기저질환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조용한 전원생활은 아닐지라도 나만의 공간에서 독서하고 글쓰는 일을 계속한다. 신의 축복이라 생각한다. 어느 선배님이 말했다. 소설가는 거짓말쟁이라고. 나름의 철학을 즐기시던 분이다. 제 글을 읽어보시고 보내주신 최고의 찬사다. 그 말씀이 용기가 되었다. 현시대의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도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직은 주변의 이야기만 쓰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주변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를 얼른 내보내고 싶은 간절함 때문에 조금은 초조하다. 책 속에서 아마도 아버지는 제일 힘든 일을 시킬 것이다. 흙을 반죽하는 일을 할 것이 뻔하다. 점토는 찐득거리며 다리를 물고 늘어진다. 흙과 흙 사이의 공기 구멍을 없애기 위해 일주일 이상 반죽한다. 마른 길도 걸을라치면 힘든데,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흙 위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골고루 밟아주는 일은 정말 보기도 힘들다. 보나 마나 아버지는 그 일을 시킬 것이다. 덩치로 보면 무난히 넘길 것 같지만 요령 없으면 쉬운 일도 어렵게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사내가 딱 맞다.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눈에 자꾸 어른거리는 사내의 벗은 몸에 만정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화색이 들자마자 기다렸다는 불쑥 솟은 곳. 손등 발가락까지 꼼지락거리던 털은 무슨 조화인가. 너무 신기한 몸에 숨이 멈출 것 같았다. 남자의 특정 부위라 생각이 들자 확 달아오르던 가슴은 무슨 지랄 같은 충동인가? 그릇의 전부가 깨지거나 뒤틀려 있다. 몇 달 동안의 일이 전부 허사가 돼버렸다. 생활 용기는 그렇다 치고 그릇을 한번 구울 때마다 걸작을 만들어 개경으로 보낸다. 그래서 가마에 불을 붙이려면 관아에 신고하고 허가가 떨어져야 한다. 그 이면에 진상품을 상납하는 묵언의 조건이 있다. 진상품에 대한 조정의 하사품은 백미 열 가마에 황소 한 마리로 대단했다. 그리고 최고의 예우로 수장에겐 개경 나들이가 부상으로 주어진다. 왕을 알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십여 년 전 이곳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불행히도 그때는 연하가 수장이 아니었다. 연하는 그런 수장을 보고 결심했다. 나도 왕을 볼 것이야. 그때부터 연하는 욕심을 키웠고 그 결심이 밑거름되어 남보다 빨리 수장이 되었다. 연하는 수장의 신임을 얻어 기술 익히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수장에게 자식이 없었던 것이 연하에겐 다행이었다.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세상사다. 무조건 선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연하를 기다린 것이다. 팔자를 거스르려니 따라온 것은 외로움뿐이다. 한 사내의 여자가 되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랐건만. 정에 허우적거리지 말고 정을 즐기라던 작부들의 넋두리. 그러나 송이는 언제나 정에 목마르다. 나이 헛먹은 주책 마음을 다스릴 재간도 없다. 외로움이 내지르는 고통에도 속수무책이다. 연하는 무심하기가 흐르는 세월하고 동류항이다. 사랑이라, 얼마나 갖고 싶은 것인데. 연하의 마음속에 들어가 천방지축 날뛰고 싶은 마음. 그런데 숨죽이고 있으려니 금계랍 맛이다. 참는 것도 한도가 있다. 가끔 서 의원의 끈끈한 눈빛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무시한 송이다. 외로워 잠깐 엉거주춤하고 돌아보면 서 의원이 있다. 반갑다기보다 소름돋는다. 가마에서는 검은 연기만 올라오고 있었다. 제대로 연소하지 못한다는 증거는 연기의 색으로 나타난다. 가마 안으로 열기가 들어가면 굴뚝에서는 백옥같이 하얀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뿜어나온다. 그런데 그날은 검은 연기가 매캐한 냄새를 주변에 흘려보냈다. 만정도 연기 냄새에 골이 아팠다. 나물을 만지던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그날 밤 아버지는 가마아궁이 앞에서 밤을 새우셨다. 초저녁부터 음산한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봄비. 얼마나 기다린 손님인가? 겨우내 가물었던 땅이 환호를 지를 것인데 그날은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안절부절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울부짖고 있었다. 빌어먹을! 장작을 가지러 간 남자들이 투덜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에게 질질 끌려나가는 어머니를 보았다. 만정의 기억은 그곳에 멈췄다. 산산조각이 된 그릇들은 멀리 산등성에 버려졌고 어머니만 보이지 않을 뿐 모든 것은 변함없었다. 네 어미는 바람나서 도망가버렸다. 송이가 들려준 말이다. 자라는 동안 누구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어렴풋이 들은 기억에 설마 하고 지금까지 함구하고 살았다. 가마터의 반란에 관한 이야기를 어느 날 우연히 장터에서 들었다. 그렇지만 믿고 싶지 않은 진실에 모른 체한 것이다. 어머니. 다른 남자를 꿰차고 떠나버렸는지도. 어느 경우도 만정에겐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다. 참으로 아픈 그리움으로 세월과 싸웠다. 일을 배우라는 연하의 성화가 빗발친다. 그렇지만 온은 정말 싫다. 죽은 목숨이지만 정말 죽음보다 하기 싫은 일. 아무려면 도공이 되라니. 최근 들어 자꾸 개경에 두고 온 식구들이 꿈에 자주 나타난다. 몸이 한가해지고 정신이 긴장을 푸니 생긴 현상인가 보다. 잠깐의 편안함은 그를 번뇌로 밀어 넣었다. 부족함 없이 산 세월인데, 무엇이 아쉬워 그런 유혹에 빠졌을까. 왕. 어찌 감히 뿌리칠 수 있는 유혹인가. 나라 걱정은 필부도 하거늘. 더구나 난 왕족이었어. 말 한번 잘못하면 언제 죽을지 모른 풍전등화 지위지만 그냥 바보처럼 살면 부귀는 따놓은 당상인 것을. 왕에 대한 욕망은 그냥 심심하면 한 번쯤 웃음을 짓게 하는 일장춘몽인 것을 왜 몰랐을까? 도연에게 연하의 뜻은 전하려는데 선뜻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차라리 내가 물러서자. 결국 만정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쉽다. 온을 만나 오랫동안 시달린 한이 버려지기 시작했는데. 남장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생김새. 연하의 괴팍한 고집도 만정에겐 견디기 힘든 일이다.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부터 이상한 억지로 자신을 괴롭힌 아버지다. 일상생활에선 너무나 자애롭지만, 가끔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아버지가 만정은 생소했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도 잠시. 온을 향한 뜨거움도 잠시, 모든 것은 그렇게 잠시 만정을 스쳐 갔다. 만정은 사람들 눈을 피해 연하로부터 여러 가지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이다. 옳은 말이다. 은밀한 기술을 온에게 전수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이다. 그래서 언제나 온이 일하는 곳에 나타났다. 사람들 앞에서는 건성으로 온은 몸으로 일을 배우지만 만정은 머리와 가슴으로 일을 배웠다. 틈만 나면 연하는 만정에게 열심히 말로 일을 가르쳤다. 그리고 남모르게 연하는 만정을 침실로 불러들여 실지로 일을 시켰다. 덕분에 온이 배워야 할 일의 양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저자 소개

  • 저자 : 민금애
저자 : 민금애
2007년 시사문단 소설 신인상.
장편 2013년 출간 『우리 금순이』 문학바탕
소설집 2021년 『붉은 구름』 청어
시집 2021년 『사랑은 왕복차선이 필요해』 도화
역사장편소설 2022년 『우물의 난간』 도화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 회원, 송파문인협회 회원, 강릉문인협회 회원, 강릉소설문학회 회원.

목차

작가의 말

1~20

10~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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