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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박범신 저 | 파람북 | 202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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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2964072 / 320쪽 14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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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나는 왜, 무엇을 찾아, 이 낯선 길을 흘러 다니는 것일까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경쟁, 자학적 수준에 도달한 정신적 분열, 효율성의 구호 아래 일사불란하게 서열화를 이룬 생명의 가치, 실패하면 죽는다는 불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대충 이렇다. 육체와 정신이 서로 다른 곳을 배회하니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지경이지만, 이것만은 알겠다. ‘산다는 게 이건 아니지!’ 작가는 걸핏하면 짐을 쌌다. 짐은 헐거웠지만, 가슴은 열망으로 가득했다. 초월에 대한 열망이었고, 신성에 대한 열망이었으며, 순수에 대한 열망이었다. 매년 떠난 히말라야에서 고산증으로 정신이 가물거리기도 했고, 킬리만자로 허리에 엎드려 울기도 했고, 캅카스산맥 삼나무 그늘이나 시베리아 자작나무숲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잠든 적도 있었고, 산티아고로 향하는 멀고도 텅 빈 길에서는 또 여러 번 울었다. 히말라야든 킬리만자로든 피레네산맥이든, 그곳이 돌밭길이든 진창길이든 길은 모두 같았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소용이 없으니 빨리 가고 늦게 가는 것이 별반 차이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위아래가 없고 사람과 당나귀 사이에도 높고 낮음이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을 뿐이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걷는 것뿐이다. 두 다리 외의 어떤 이동수단도, 편리를 제공하는 물건도, 시중을 들어 줄 사람도 없으며 오직 내 앞에 놓인 길만이 나를 도울 뿐이다. 그러니 이 길 위에 흐르는 존재들은 몸은 고될지언정 불안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영혼은 분열하지 않는다. 순례는 사실 걷는 게 아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아득바득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길 위에 올라선 채 길이 흐르는 대로 나를 가만히 맡겨두는 일이다. 돌아올 날을 완주의 성취를 기약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먼 곳에서 바람으로 떠돌다가 혹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영영 잃어버리더라도 주저하지 않는 것, 그것이 흐르는 길에 대한 예의이며 참 순례라고 할 수 있다. 인생도 그렇다. 인생도 결국 하나의 순례이니까. 길 위에선 아무도 가면 뒤에 숨을 수 없고, 누구도 불안에 떨지 않는다. 자신이 본래 그 텅 빈 본성으로부터 걸어 나왔다는 충만감으로 마음속이 환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숨결을 정밀하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으며, 자신의 숨결이 본래의 자신과 일치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는 마치 자신 안에 깃든 신이 숨 쉬는 것만 같다. 살을 파고드는 배낭끈이 속살 자체가 되는 듯한 고통마저 신비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비로소 ‘고통은 업장을 쓸어내는 가장 커다란 빗자루’라는 말을, 뜨겁게 고통을 바친 순례자들의 비밀스런 축복을 알 것만 같다. 작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폐렴을 얻었고 돌아와 폐암 판정을 받았다. 이제까지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이 그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묵묵히 병고의 순례길을 걸었다. 흩어진 마음을 모아 진심 어린 기도를 드리며….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고 해도 사랑하는 이여, 나의 죽음을 결코 차갑게 여기지 마소서. 내가 태어날 때와 내가 죽을 때를 구별하지 마소서. 혹 슬플지라도 ‘환하고 따뜻한 슬픔’으로 나를 느끼소서. 내 평생 따뜻한 물로 흐르며 살기를 간구했으니, 갓 낳은 달걀을 두 손으로 쥐었을 때처럼, 탄생처럼, 죽음으로 떠나는 나의 영혼도 부디 따뜻한 파동으로 느끼소서.”

저자 소개

  • 저자 : 박범신
저자 : 박범신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토끼와 잠수함》 《흉기》 《흰 소가 끄는 수레》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빈 방》 등,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촐라체》 《고산자》 《은교》 《외등》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소금》 《주름》 《소소한 풍경》 《당신》 《유리》 등 다수가 있고, 산문집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힐링》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명지대 교수, 상명대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2023년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그 소소한 의미를 담아 두 권의 산문집 《두근거리는 고요》와 《순례》를 내놓았다.

목차

글쓴이의 말
005 인생이란 시간을 따라 걷는 하나의 순례이다

1장 비우니 향기롭다
-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사색 편지
012 들어가는 말 위대한 사랑을 꿈꾸며
014 왜 떠나는가
020 천연의 사원
026 신의 창으로 들어가다
033 우유의 강을 건너면서
037 실패하기 위해 히말라야에 온다
041 히말라야는 묵음의 언어이다
048 갈망과 염원이 솟아날 때
054 우리가 별처럼 영원할 수 있을까
061 왜 산사람들은 정상에 오르는가
067 색계에서 욕계를 보다
071 빙하 위를 걸어서 간다
080 사색을 잃어버린 근대화의 길
085 다시, 카트만두
088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092 티베트 불교의 성지 묵티나트 가는 길
097 천 년의 바람 마르파
102 세계에서 가장 깊은 다울라기리 계곡
106 푼힐 언덕에 해가 뜰 때
111 부족한 ‘여기’와 그리운 ‘저기’ 사이

2장 카일라스 가는 길
- 영혼의 성소를 찾아서
120 박수무당이 내게 한 말
122 왜 카일라스인가
127 하늘길
132 흔들리는 영혼, 라사
137 옴마니밧메훔
143 티베트의 젊은 꿈과 이상
148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
153 티베트 사람들의 축제
158 본성 그대로의 남쵸 호수
165 천장
170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체
177 길 없는 길
186 마침내 신의 얼굴을 보다
194 눈물의 돌마라 고개에서
202 우주의 자궁 마나사로바
206 다시, 옴마니밧메훔

3장 그 길에서 나는 세 번 울었다
- 산티아고 순례
212 바람의 길에 대한 예감
217 그해 봄 떠날 무렵 길 앞에서 중얼거리다
229 아주 오래된 길
233 아주 오래된 욕망
239 아주 오래된 짐
244 바람의 숨결
247 아주 오래된 도구
252 동행자
257 본성의 길
262 아주 오래된 침대
267 아주 오래된 행복
272 아주 오래된 갈망
278 아주 오래된 기도
288 꽃으로 필 다른 날들을 기다리며

4장 새로운 순례길의 황홀한 초입에서
- 폐암일기
292 길이 걷는 나를 보살핀다
296 어느 더운 여름날의 추억
299 존재의 품격
302 보자기로 싼 폭탄을 안고
306 나의 모든 사랑에게
308 생존율 27퍼센트의 길
311 취꽃
315 비밀
316 옹골찬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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