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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2092065 / 196쪽 145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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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 ‘인류세’와 ‘세계화’라는 격변의 시대, 구원의 가능성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학계 일부에서 ‘은둔의 철학자’라고도 불리는 박동환 교수(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평생의 철학적 문제의식과 탐구의 결과를 집약한 『x의 존재론』에 이어, 그 신학적 함의를 성서와 그리스도신학에 비추어 다시 풀어낸 역작. 저자는 오래전부터 동서양 전통 철학이 인간과 도시문명 중심의 패권적 관점에 갇혀 있음을 지적하고, 한국과 같은 주변부의 사고와 언어로부터, 그리고 인간 중심성을 벗어난 미지의 개체 x로부터 우주 보편의 진리를 찾고자 노력한 철학자이다. 그 결과 인간과 인간 이외의 존재를 포괄하는 개체들의 존재양식 ‘x’가 무한의 절대적 타자 ‘X’의 한 계기이면서도 그것으로 다시 함몰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밝혀내는 존재론에 도달했다. 저자가 새로 펴낸 『왜 x의 신학인가?』는 『x의 존재론』의 신학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책으로, 구약 「전도서」의 설교자와 예수가 대면했던 시대의 문제가 현 시대에도 반복되고 있음을 통찰하는 데서 출발한다. 즉 ‘헬레니즘’이라는 시대적 격변에 처했던 이들처럼 ‘세계화’와 ‘인류세’라는 오늘의 파고가 우리에게 “지구적 시간대에 던져진 자아 존재의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혼란의 시대에 인간과 신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 예수처럼, 저자는 ‘x’라는 필멸의 시간적 존재가 ‘X’라는 영원의 차원과 어떻게 화해 합류할 수 있는지 모색한다. 인간이 여전히 붙들고 있는 자아의 주체성이라는 허상을 포기하고, 삶이라는 현재는 언제나 부재화(不在化)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개체성과 구원을 이해하는 태도가 이 시대의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음을 설파한다. ■ 예수의 메시지 안에서 캐내는 ‘x의 신학’ 이 책 『왜 x의 신학인가?』에서 저자가 던지는 물음은 크게 두 줄기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신과 인간의 관계 또는 영원의 시간과 지상에서 겪는 인간의 토막 난 체험적 시간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둘째, 헬레니즘 시대처럼 이 시대에 팽배한 개인의 자아의식에서 영원의 절대적 타자에 이르는 길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언제나 고통과 좌절에 처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이 더 이상 신의 약속을 믿을 수도 없는 시대에 구원의 가능성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질문들에 대해 한편으로는 성서 특히 구약의 「전도서」와 신약의 「복음서」(예수 行傳)가 쓰인 시대 배경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적 자아와 인간적 범주 체계의 허상을 지적한 과거 철학자들의 비판적 담론 등을 통해 다각도로 해답을 찾고자 한다. 그 과정은 사뭇 변증법적이기도 한데, 저자는 ①신정체제(神政體制)라는 신인합일의 전통적 질서에서 ②신과 인간의 단절적 사태와 파편화된 개인주의의 시대를 거쳐 ③개인의 내면의식과 구원의 가능성이 다시 합일하는 세계에 이르는 역사적/논리적 순서로 그 해답을 제시한다. 즉 우리는 히브리 민족의 부족적 ‘야훼’(YHWH) 신앙에서 헬레니즘 시대의 「전도서」 필자가 그린 보편과 무차별의 ‘엘로힘’(Elohim)으로 바뀐 하나님이, 다시 예수에 이르러 개인의 ‘가난한 마음’에서 지상의 천국이 실현됨으로써 마지막 화해를 이루는 드라마를 성서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x의 존재론’ 또는 ‘x의 신학’에서는 이렇게 번역된다. 즉 언어적 착오로 지어진 ‘자아’라는 허상과 인간의 범주 체계에 붙들린 플라톤적 세계상을 모두 벗어나서, 지금까지 우리가 주체로 이해했던 인간은 결국 영원의 기억을 저장한 개체 생명의 하나로서, 모든 개체성을 초월하고 무효화하는 영원의 X(우주의 시작이자 절멸을 의미하는 절대적 타자)로 회귀할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상에 존재하는 개체 생명들은 의식으로는 잡을 수 없는 X의 계기를 영원의 기억 x로서 깊은 내면에 저장함으로써 개체들 각자의 모양과 생태를 표현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우주의 먼지이자 지상(유한성)에 표현된 영원(무한성)이다. 이것이야말로 예수가 말하는 개인의 ‘가난한 마음’과 지상에 이룩된 ‘내 나라’가 의미하는 바이며, 우리들 인간 주체가 이 세계와 타자에 대한 ‘독선 금지’라는 윤리적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x의 신학’은 이렇게 「전도서」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해답처럼, 인류세와 기후위기라는 도전에 처한 현 시대에 하나의 신학적 응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말씀’ 가운데 합일하는 개체와 영원 저자가 이 책 『왜 x의 신학인가?』를 쓰게 된 계기는 「전도서」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에게 던진 질문 때문일 것이다. 「전도서」의 필자 코헬렛(전도자, 설교자)은 히브리 신앙에서 처벌과 응보의 뚜렷한 해답을 주던 야훼(YHWH)가 삶의 문제에 더 이상 해답을 주지 못하게 된 혼란과 파국의 헬레니즘 문화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BCE 3~2세기에 그가 겪은 전통의 붕괴와 개인들이 만개한 세계시민주의의 시대는 모든 믿음의 준거점이 사라진 ‘헛되고 헛된’ 무상의 체험만을 개인들에게 안겨주던 시기였다. 그의 신은 야훼가 아닌 보편의 하나님 엘로힘(Elohim)이었고, 그는 세계시민으로 재탄생한 개인의 자유를 환영하면서도 신의 부재에서 말미암은 허무감으로 개인들이 어디에도 의존할 수 없는 방향 상실에 빠진 상태를 대변한다. 저자는 이러한 「전도서」 필자의 절절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로부터 200년 후 예수에게서 제시되고 있다고 본다. “마음이 가난한 이에게 천국이 있다”는 예수의 가르침은 한편으로 헬레니즘이 탄생시킨 개인의 내면의식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가난한 마음에 ‘내 나라’ 곧 현재의 일시적 권력이 아닌 영원한 천국이 실현될 가능성(히브리적 전통)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예수의 응답을 ‘x의 신학’으로 다시 정식화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그 말씀은 범주와 개념의 체계로서 플라톤적인 로고스(Logos)가 아니라 히브리의 멤라(Memra)로서, 영원성으로서의 시간이자 시간 가운데 역사(役事)하는 ‘존재 행위’를 가리킨다. 즉 사람의 ‘말’(logos)로 잡을 수 있는 필연의 차원은 있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그러한 인간 주체의 관점을 무효화하는 미지의 영원한 차원 X( )를 인정하고 우리 자신을 그 ( ) 속에 묶인 삶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지만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그 나라(천국)가 임한다’는 예수의 두 구절을 ‘x의 신학’에서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땅 위에 태어난 한 개체 생명은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닿을 수 없는 수십억 년 이전으로부터 전해오는 자신의 태초를, 의식화할 수 없는 깊은 내면에 저장함으로써 그의 개체성을 유지한다.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한 개체 생명은 예외 없이 태초로부터 전해진 영원의 기억 x로써 그가 지닌 개체성의 모양과 생태를 재현 또는 실현하는 것이다.”(163쪽) 신학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신 앞에서 그의 절대성 영원성에 굴복하면서도 그 계기를 내면에 품고 사는 겸허한 무지의 존재인 것이다. 책 속에서 구약의 시대를 마감하는 「전도서」의 설교자는, 다시 그때로부터 한 200여 년이 지나 나타난 새 시대의 메시아 예수의 신약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중간역 이른바 ‘중간시대’를 건너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간시대에 일어나는 인생과 자연, 시간과 영원에 관한 숱한 철학적 의문들은 지금 21세기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삶의 수수께끼로서 각자가 선택하는 미래의 진로를 헷갈리게 하고 있다. 왜냐하면 설교자가 살았던 B.C.E. 3~2세기 즈음에 그리스 출신 알렉산더 왕의 동방 원정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전통 해체 과정에서 심한 좌절과 혼돈을 겪었는데, 그때보다 더 심한 지구 범위의 문명 해체와 혼돈의 격류 가운데서 지금 온 인류가 또 하나의 ‘중간시대’ 곧 전통 붕괴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오늘 인류가 겪고 있는 지구 범위의 문명 해체와 혼돈의 과정은, 「전도서」가 품었던 ‘해체 시대’의 의문과 과제를 더 격화된 수준에서 추체험(nach-erleben)하도록 다그치고 있는 듯하다. (14~15쪽) “현상계에 몸을 드러낸 한 개체 존재 x가 달려가는 곳을 가상으로 추적해 따라가면, 그 길은 모든 것이 결국에 알 수 없는 어떤 영역 ( ) 안으로 소멸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영역으로 인도하는 영원의 진행자 X 그가 누구인지는 특칭할 수 없다. 그런데 모든 것이 영원의 진행자 X에 의해 격파당해 소멸해 들어가는 사태 곧 ‘X( )’는 미래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현재의 매 순간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설교자 코헬렛이 품었던 의문 곧 지상에서 덧없이 토막 나는 시간과 그 시간이 토막 난 채 쉼 없이 빠져들어 가는 영원, 그렇게 엮이는 시간과 영원, 소멸과 초월의 관계에 관련한 물음들은, 지금 21세기에도 여전히 모든 인생의 숙제처럼 다가와서 해답을 기다린다. (19쪽) 「전도서」에는 파란만장한 온갖 변화를 거쳐 가는 인생과 자연에 관여해서 그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초월의 심판자가 있다고 하는 믿음이 있다. 제각기 한 특정한 시간/시간대에 소속한 하늘 아래 모든 것들에 관여해서 그것들의 추적할 수 없는 인과관계에 대하여, 아니면 그런 인과관계 밖에서 움직이는 초월의 심판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전도서」의 설교자는 그렇게 온갖 모양으로 변화 이동하는 시간대에 소속한 것들에 관여하는 초월의 존재가 어느 전통에 소속하는 누구인지 특칭하지 않음으로써, 편협한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을 받쳐주던 ‘야훼’(YHWH) 신앙을 벗어난 보편 중립의 초월자 ‘엘로힘’(elohim)을 떠올리게 한다. 시간과 영원, 쉼 없이 스러져가는 하늘 아래의 것들과 그것들을 초월해서 움직이는 심판자가 서로 부딪히거나 겨루며 엮여가는 역사와 운명을 보여주고 있다. (31~33쪽) 땅 위의 덧없는 시간의 것들이 그들의 시간을 심판하는 영원의 진행자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무엇이 있는가? ‘부재화(不在化)와 초월’의 연이은 관계를 따라 땅 위의 덧없는 모든 시간의 것들 x(행위의 주체성을 양도할 순위의 객체)가 그 시간의 것들을 쉼 없이 심판하는 영원의 진행자 ‘X(행위의 숨은 주체)의 나라’로 합류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167쪽)
차례를 이끄는 의문과 과제들
길잡이 1.
ⅰ. 한 새로운 시대의 입문서
ⅱ. 신정체제의 마감
ⅲ. x의 신학을 위한 변호
길잡이 2.
ⅰ. ‘인류세’라는 한 시대 마감의 예고
ⅱ. 고도 근시에 갇힌 인류의 관점
ⅲ. 사람이 말할 수 있는 필연의 순서란 없다
ⅳ. 이 모든 문제를 예고한 B.C.E. 3세기에서 2세기의 설교자
ΣⅠ 그들이 각기 소속한 시대의 체험 다시 읽기
ⅰ. 「신명기」와 「아모스」에서
ⅱ. 「전도서」에서
ⅲ. 「마태복음」에서
ΣⅡ 새로운 시대 앞에 놓인 두 관문
ⅰ. 천국/천명 앞에 선 마음: 바리새파 사람과 맹자의 경우
ⅱ. 태초의 말씀은 말씀이 아니다: 왜 ‘†’ 또는 ‘X( )’인가?
ΣⅢ ‘내 나라’의 혁명가로서 떠오르는 예수
마지막 한 마디: 왜 x의 신학인가?
또 하나의 끝없는 이야기: 올가 토카르추크의 ‘다정한 서술자’와의 만남에서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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