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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엘렌 식수 저 | 신해경 역 | 밤의책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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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346317 / 276쪽 13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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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글을 쓰겠다는 당신에게 H의 가호가 있기를! 이 책에서 엘렌 식수는 H를 가지고 글문을 연다. H는 I와 I 사이에 놓인 다리이다. 두 세계를, 두 언어를 진동시키거나 가르는 선이다. 엘렌 식수는 “글쓰기는 두 해안을 잇는 통로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엘렌 식수는 자신이 수수께끼 같은 애착을 가질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들은 모두 이런 사다리를 빈번하게 오르내렸다고 말한다. 그런데, 내려오기란 곧 올라가기이다. 아니, 올라가기보다 더 고통스러운 극단의 행위이다. 엘렌 식수가 H에서 프랑스어 단어 ‘Hache’(도끼)를 떠올리고, 이어 카프카의 도끼를 연상하는 것은 더없이 자연스럽고도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도끼는 은유어가 아니라 상징어이다. “더 깊이 내려가라고 다그치지만 말아줘” 하고 호소하던 카프카가 이번에는 “해치고 찌르는 책”을, 자살 같은 책을, 재앙 같은 책을, 그러니까 그 유명한 문장처럼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 같은 책을 써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승리하고 싶으면서도, 늘 패배를 원하는 자처럼 자신의 한계선 이내에서 한없이 유영하고 배회하는 신중한 사내가 결국 위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궁극의 글쓰기가 터진다. 금기가 있기에 반드시 위반이 있을 것이고, 건널 수 없는 제한선이 있기에 반드시 건너가게 되어 있다. 한없이 지연되는 내공술의 침잠이 H의 내려가기였다면, 도끼는 올라가기가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는, 축약된 기쁨과 공포의 예고이다. 사다리 H의 부적이 내 온몸에 숙지되었다면, 이제 실질적인 수행이 수반되어야 한다. 엘렌 식수는 이것을 세 칸의 방으로, 그러니까 세 칸의 학교로 명명한다. 망자의 학교, 꿈의 학교, 뿌리의 학교가 그것이다. 망자의 학교 (글쓰기를, 삶을) 시작하려면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망자들을 좋아하는데, 망자들은 한쪽을 닫고 다른 쪽 길을 ‘열어주는’ 문지기입니다. -19쪽 망자의 학교는 우선 읽기의 영역이다. 읽기란 우리의 첫 스승들을 만나는 일이고, 그 스승들은 대부분 망자들이다. 엘렌 식수는 어떤 망자를 읽는가? 어떤 스승을 두었는가? 아니, 어떤 “몰래 먹기”를 하는가? 식수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인 브라질 소설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와 러시아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 오스트리아 소설가 잉에보르크 바흐만, 토마스 베른하르트,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카프카를 읽는다. 엘렌 식수는 이 망자들과 우리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움이나 파괴가 아닌 사랑의 관계일 수 있고, 글을 쓰고 싶다면, 특별히 애착하는 이 망자들의 도움을 얻어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꿈에 나타나 놀라운 선물을 준다는 것이다. 꿈의 학교 여러분은 그 책의 문을 열자마자 다른 세계로 들어가서는 이 세계로 통하는 문을 닫아버립니다. 읽기는 백주의 도피이고, 타인에 대한 거부입니다. -41쪽 망자의 학교가 벽 너머에 있었다면, 꿈의 학교는 침대 밑에 있다고 엘렌 식수는 말하는데, 그렇다면 글쓰기 학교에서도 수련의 방법은 달라진다. 꿈의 학교는 우선 시작은 하지만, 도착하기를 꿈꾸어서는 안 된다는 훈련 지침이 따른다. 우리는 스스로, 내 몸으로, 걸어가고 걸어가며, 자아라는 올가미를 하나둘 털어내 버리면 그만일 뿐, 목표라는 도착점에 이르면 다시 자아의 올가미에 붙잡히고 말기 때문이다. 랭보처럼 바람구두를 신고 한없이, 신발을 닳게 하며, 즐겁게 걸어야 한다. 우리는 각자 꿈 일기를 써볼 수도 있다. 엘렌 식수는 꿈의 학교에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꿈을, 장 주네의 꿈을 특히 환기하고 서술하며, 어쩌면 모든 문학의 배양지를 이렇게 구성해 볼 것을 제안하는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힘을 잃을 때, 허무주의와 무기력에 빠져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을 상실했을 때, 꿈속의 그 섬뜩하고 생경한 밀도와 힘에 의존해 본다면, 서서히 글쓰기의 기운을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뿌리의 학교 어떤 추방자는 분노로 죽고, 어떤 추방자는 추방을 하나의 나라로 바꿉니다. -210쪽 그리고 마지막, 뿌리의 학교. 뿌리는 최고의 심층이므로 숭고한 근간이자 근원일 것 같지만, 엘렌 식수에게 그것은 우선 어떤 불결함이다. 새, 여성, 그리고 글쓰기. 이른바 ‘세계 바깥에 있는 것들’은 더럽고 불결하며 불순하다. 성서에서는 새가 그러하며,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는 여성이 그러하다. 그리고 글쓰기가 그러하다. 글쓰기는 장 주네가 말한 것처럼 “낮은 곳”에 가서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쓰는 자들은 제일 힘들고, 제일 살기 어렵고, 제일 위험한 나라에 사는 자들이다. 새와 여성, 글쓰기. 이것은 하나의 등가어이자, 삼중의 층위어로 이런 운명은 현실 세계에서 너무나 걱정스러운 삶을 살게 되겠지만, 문학으로서는 어쩌면 너무나 치명적인 광휘일 것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엘렌 식수
저자 : 엘렌 식수
프랑스의 영문학 교수이자 작가, 극작가, 시인, 문학 평론가 겸 탈구조주의 철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이다.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에서 유대인 가정의 장녀로 태어나 프랑스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제임스 조이스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중에 자크 데리다와 자크 라캉을 만나 공동 작업을 했으며, 같은 알제리 출신 유대인 프랑스인인 데리다와는 탈구조주의 비평 및 분석 방법론을 함께 구상하며 평생에 걸쳐 교유하며 공동 집필 등을 이어나갔다. 1968년에 출간한 《제임스 조이스의 망명 또는 대리 예술》로 평단의 격찬을 받았고, 1969년에 출간한 《안으로》로 메디시스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68혁명의 성과로 교육부 산하에 구성된 위원회의 의장을 맡아 파리 제8대학 설립을 주도했고, 이후 영문학부 초대 학과장을 맡으면서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학내에 여성학연구소를 설치했다. 1970년대 프랑스 페미니즘 흐름을 이끈 중심인물로서, 1975년에 현대 페미니즘의 중요 작품으로 평가받는 《메두사의 웃음》을 출간하여 기존의 남성 중심적 언어체계와 사고체계를 전복하는 이론적 틀이자 대항 담론으로서 ‘여성적 글쓰기’ 개념을 제시했다. 활발한 사회 참여 활동과 더불어 왕성한 창작 활동을 지속하여 시와 소설, 희곡, 문학이론, 예술비평 등 9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출간했다.

역자 : 신해경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KDI국제정책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공공정책학(국제관계) 석사과정을 마쳤다. 생태와 환경, 사회, 예술, 노동 등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저는 이곳에 있지 않을 거예요》 《어떤 그림》 《풍경들 : 존 버거의 예술론》 《누가 시를 읽는가》 《사소한 정의》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덫에 걸린 유럽》 《침묵을 위한 시간》 《북극을 꿈꾸다》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등이 있다.

목차

편집자의 말

망자의 학교
꿈의 학교
뿌리의 학교
옮긴이의 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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