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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407754 / 494쪽 145 x 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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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전쟁이 여성과 여성의 몸에 가한 모든 잔학 행위를 고발하다 “제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어요. 누구든 저를 붙잡을 때마다 강간했어요.” _ 빅투아 무캄반다(르완다 내전 성폭력 생존자) “제 삶은 그냥 강간당하는 것이 전부였어요.” 열여덟 살 야디지족 나이마는 다른 소녀들과 함께 ISIS에게 억류되었다. ISIS 대원들은 제비뽑기로 소녀들의 이름을 뽑았다. 이후 나이마는 ISIS 대원의 성노예가 되어 12명의 남자에게 “염소처럼” 팔렸다. 2014년 ISIS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점령했다. 인구 180만 명의 모술에서 수백 명의 야디지 소녀가 ISIS 대원들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렸다. 그녀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폭행 속에서 강간당하고 팔려갔다. “저를 두 번 쏘았어요. 오른쪽 무릎과 성기에요.” 2016년 버마군은 로힝야족에 대한 ‘소탕 작전’을 개시했다. UN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 1만 명이 죽고, 70만 명이 고향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여성의 52퍼센트가 강간당했다. 임신 8개월째였던 서른다섯 살의 사노아라는 아들의 목이 베이는 것을 보았고,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들은 강간을 마친 후 시노아라에게 총을 쏘았다. 뱃속의 아이는 어느 강둑에서 낳았지만 곧 죽었다. “여전히 감춰진 고통이지요.” 방글라데시의 한제라 카탐은 스물세 살 때 파키스탄 군인에게 딸이 밟혀 죽는 모습을 보았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강간당했다. 그녀는 마을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지금도 구걸을 하며 살아간다.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20만~40만 명의 방글라데시 여성이 파키스탄 군인에게 강간당했다. 그녀들은 지금까지도 “어둠 속에서” 산다. “저는 거듭해서 강간당했어요. 누구든 저를 붙잡을 때마다 강간했어요.” 반군을 피해 도망치는 빅투아의 뒤에서 누군가 몽둥이를 내리쳤다. 등에 업은 아이가 몽둥이에 맞았고, 죽었다. 빅투아는 셀 수 없이 강간당했다. 여동생은 난도질당한 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1994년 르완다의 후투족은 100일 동안 투치족 80만 명을 학살했고, 하루 250~500건의 강간을 저질렀다. 모두 25만~50만 건이었다. 피해자는 2세부터 75세까지 이른다. 가해자들은 여자들을 강간한 뒤 막대와 병 등을 성기에 꽂았고 신체를 훼손했으며, 살해했다. “그들은 제 큰딸을 저와 제 남편 앞에서 강간했어요.” 서른아홉 살이던 바키라는 ‘인종청소’의 희생양이 되었다. 강간당하고 폭행당한 딸을 치료하기 위해 약국을 찾던 중 그녀 역시 경찰에 의해 강간당했다. 1992년 시작된 보스니아전쟁으로 유고슬라비아군에 의해 9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사망자의 3분의 2가 무슬림이었다. 그리고 2만~6만 명의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 대부분 보슈나크인(무슬림)인 피해자는 6세부터 70세까지였고, 강간은 “의도적인 패턴”에 따라 “그 자체로 전략적인 용도”로 쓰였다. “그들은 강간 군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소련 군대가 베를린을 점령했다. 1944년 스탈린의 군대가 독일 국경을 넘어서면서부터 강간이 시작되었다. 베를린에서는 최소한 200만 명이 강간당했다. 8세부터 80세까지 모든 여성이 강간당했다.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역사책에는 이와 관련한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영원한 악몽이에요.” 필리핀의 나르시사 클라베리아는 열두 살 때인 1942년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가 강간당했고, 곧이어 그녀와 언니도 강간을 당했다. 전쟁 뒤 그녀는 마을 사람의 비난을 견디지 못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아시아에서 20만 명 정도의 여성과 소녀가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성노예가 되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버마,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비롯해 일본에 점령된 국가의 여성이 희생되었다. 강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강간은 사회가 가해자를 처벌하기보다 피해자를 낙인찍을 가능성이 더 많은 유일한 범죄다.” _ 프라밀라 패튼(분쟁하 성폭력에 대한 UN 사무총장 특별대표) 전쟁에서 강간의 사용은 “분쟁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존재해왔다”라고 1998년 UN 여성기구의 보고서는 선언했다. 강간은 마체테 칼이나 곤봉,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이나 다름없는 전쟁 무기였다. 가해자들은 존엄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공포에 떨게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경쟁 종족이나 이교도로 여기는 사람을 말살하기 위해 강간을 사용했다. 1996년 1차 콩고 내전이 일어났을 때 하루 1000명의 여성이 강간당했다. 한 시간에 70명, 콩고 동부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넘는 수치였다. 서로 다른 종족과 서로 다른 편에 속한 민병대에 의해 강간이 자행됐다. 아이들 앞에서 집단 강간을 하기 일쑤였고, 여성의 생식기에 불을 붙인 막대나 총검을 밀어넣은 일도 있었다. 피해자의 방광이나 직장이 찢어져 누공이 생길 때도 많았다. 가해자들에게 피해자의 나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네 살배기 바이올렛 역시 강간을 당했다. 엄마가 볍씨를 뿌리러 나간 사이 어떤 남자가 학교 뒤 변소로 데려가서 강간했다. 아이는 항문으로 강간을 당했고, 직장에 구멍이 나 배설물이 샜다. 태어난 지 고작 일곱 달밖에 되지 않은 찬탈도 강간 피해자다. 엄마가 밭에 나간 사이 반군이 들어와 강간했다. 아기는 항문과 질이 닿아 있었다. 음경이 구멍을 뚫은 것이다. 18개월 된 알리앙스 역시 방광과 생식기, 직장이 모두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공포감과 굴욕감, 수치심에 치를 떨며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주민들이 떠난 곳, 강간 사건이 발생한 모든 곳에는 금과 콜탄, 코발트 같은 희귀자원이 있었다. 지하자원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기는커녕 여성들에게 저주가 된 것이다. 성폭력을 ‘전쟁의 흔한 부산물’로 여기기에는 그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다. 콩고에서 자행된 강간은 단순히 폭력적인 성행위가 아니라 전쟁 무기였다. 적은 비용으로 기존의 무기보다 훨씬 끔찍한 결과를 냈다. 공동체를 해체시켜 사람들을 사는 곳에서 떠나게 했다. 콩고뿐 아니라 이라크의 야지디족과 보코하람에 납치된 나이지리아 소녀들, 보스니아의 무슬림 여성, 로힝야족 여성에게서 볼 수 있듯이 강간은 분쟁 지역에서 체계적인 전쟁 무기로 사용되었다. 여성을 강제로 임신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인종청소’를 진행하고, 민족(종족)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전략으로 사용되었다. ‘느린 살인’ 전쟁 성폭력은 왜 드러나지 않는가? “저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어요. 저 혼자였다면 자살했을 거예요.” _ 투르코(ISIS 성폭력 생존자) 전쟁 성폭력은 자주 전쟁에 따르는 부산물로 인식되곤 한다. 남자들은 강간이 그저 동의를 얻지 않은 성관계일 뿐이라고, 거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강간은 피해자의 신체를 훼손할 뿐 아니라 내면을 무너뜨리는 범죄다. 그 피해자들은 강간이 죽음보다 끔찍한 범죄라고 이야기한다. 강간은 일반적으로 신고가 부족한 편이다. 특히 분쟁지역에서는 신고가 훨씬 더 적다. 보복당하기 쉽고, 낙인찍히며, 증거를 모으기 힘들기 때문이다. 살인과 달리 사체가 없고, 수량화하기도 힘들다. 심지어 공포정치가 횡행하는 나라에서, 돈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한 여성들은 더욱 신고하기가 힘들다. 상담이나 배상은커녕 피해자 자신이 비난을 받는다. 손상된 신체와 평생 이어지는 트라우마 속에서 친밀한 관계를 맺지도 못한다. 공동체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거나 심지어 가족으로부터 쫓겨나기도 한다. 수십 년 동안 강간은 세계에서 가장 소홀히 다뤄지는 전쟁범죄였다. 하지만 묵인되었고,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군과 정치 지도자는 강간이 전쟁에 으레 따르는 부수적인 문제인 양 넘기거나 부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와 도쿄에 최초의 국제재판소가 세워졌지만, 성폭력 기소는 단 한 건도 없었다 1998년에 강간이 전쟁범죄로 처음 처벌되었고, 그해에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결의한 ‘로마규정’은 강간을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하지만 국제형사재판소는 설립 후 21년 동안 전시 강간에 유죄판결을 한 건도 내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유죄판결이 내려진 적이 있었지만 그마저 항소로 뒤집혔다. 여성은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다 “저는 두렵지 않아요. 살아남아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할 겁니다.” _ 바키라 하세치치(보스니아전쟁 성폭력 생존자)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야지디족 생존자 로지안의 말처럼 “말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사람들이 모르고 있기도 더 힘든 일”이다. 이렇게 지구 곳곳에 형언하기 힘든 전쟁 성폭력이 만연한 이유는 국제 사회와 각국의 법정이 가해자를 제대로 법의 심판대에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침묵이야말로 이런 일들에 공모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콩코민주공화국의 무퀘게 박사는 1999년 판지병원을 세운 뒤 20년 동안 5만 5000명이 넘는 강간 피해자를 치료했다. 지금도 매일 5~7명의 강간 피해자가 병원을 찾는다. 판지병원 근처에는 ‘기쁨의 도시’라는 시설이 있다. 열세 살에서 열여덟 살에 이르는 강간 생존자들의 자립을 위해 크리스틴 슐러 데쉬리버가 세운 곳이다. 이곳은 다양한 치유와 상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강간 생존자들의 자립을 돕는다. 보스니아전쟁 성폭력 생존자인 바키라 하세치치는 여성전쟁피해자연합을 세워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100명이 넘는 전범을 찾아내 법정에 세웠다.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의 브란카 안티츠스타우베르는 ‘여성의 힘’이라는 의미의 스나가제네라는 단체를 운영하며 생존자들에게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처음 여섯 명이던 가족은 300명 넘게 늘어났다. 그들은 장미를 재배하며 스스로 치유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있다. 르완다의 후투족 여성인 고들리브 무카사라시는 여성들을 위해 세보타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증오를 품은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는 그녀는 생존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녀는 대부분 학살로 남편을 잃거나 가족과 함께할 수 없는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닭과 염소를 키우도록 제공한다. 그녀는 법정에서 증언하도록 생존자들을 설득했고, 그 결과 가해자들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의 법정에 서게 됐다. 1992년 필리핀의 로사 헨슨이라는 여성이 방송에 나와 아홉 달 동안 일본군의 성노예로 살아야 했던 과거를 증언했다. 그녀는 방송에서 더 많은 여성이 증언하기를 요청했다. 이후 200명 정도의 필리핀 여성이 증언했고, 1994년 ‘릴라필리피나’라는 조직이 세워졌다. 릴라필리피나는 일본이 전쟁 위안소 운영을 인정하고 그것을 역사교과서에 실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배상과 공식적인 사과도 요구했다. 물론 일본도, 두테르테의 필리핀 정부도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변화를 위한 첫걸음은 침묵을 깨는 것이다. 이 책에서 증언한 여성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으로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을 꺼낸 용기있는 운동가들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말하기도 듣기도 쉽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놀라운 용기와 영웅적 행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처럼, 여성은 그저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다. 이제 이야기의 절반만 말하기를 멈춰야 할 시간이다. 추천사 _ “오랫동안 종군기자로 활동한 크리스티나 램은 이 책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위안부부터 독일 여성에 대한 소련 군대의 성폭행, 1994년 르완다 집단 강간, 보스니아의 강간 수용소, 보코하람의 나이지리아 여학생 납치까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의 여성들이 겪은 참담한 역사를 그려냈다. 강간이 전쟁 범죄로 인정된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저자는 강간범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려면 침묵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끔찍한 강간으로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겪은 어느 콩고 여성은 저자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되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참혹한 기록은 전 세계의 비극을 강하게 증언한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매우 충격적이고도 중요하며 끔찍하지만 심오한 감동을 주는 책이다. 전쟁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저자의 연민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깊은 배려가 돋보인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즐겁지는 않지만 강력한 경험이다.” _《가디언》 “저명한 종군기자 크리스티나 램은 분쟁지역의 여성들이 들려주는 이 끔찍한 증언을 통해 목소리 없는 자들에게 목소리를 되돌려준다. 정의로 향하는 길을 내는 책이다.” _《에스콰이어》 “이 책에 담긴 잔학 행위들은 끔찍하다. 저자는 이러한 행위를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세상의 발전에 공헌했다.” _《뉴욕 타임스 북리뷰》 “훌륭하다. 수전 브라운 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이후 강간을 다룬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최근에 자행된 전쟁 성폭력과 그 생존자들에 대한 세계의 침묵에 강렬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폭로를 했다.” _《커커스 리뷰》 “용감하고 참혹한 책이다. 세상에 정의가 존재한다면 몇 주 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의 맨 위에 있을 것이다.” _《더 타임스》 “전쟁 성폭력 피해자를 희생자가 아닌 생존자로 자리매김하는 저자는 더 큰 그림을 소홀히 하지 않고도 개별적인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거의 상상할 수 없는 공포를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강력하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다. 오랫동안 감춰진 부끄러운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_《북리스트》 “이 책은 2000년대 들어 세계 곳곳에서 행해진 전시 강간 피해자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버마의 로힝야 집단 학살부터 방글라데시 해방 전쟁, 르완다의 투치족 집단 학살, 보스니아 전쟁,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과 함께 중동의 ISIS와 나이지리아 보코하람의 등장, 콩고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까지, 역사를 살아낸 개인의 이야기를 엮었다. 전쟁 성폭력 피해자는 네 살부터 여든아홉 살까지 다양하다. 강간은 ‘세계에서 가장 방치된 전쟁 범죄’이며, 그 피해자들은 강간이 차라리 죽음보다 끔찍하다고 호소한다. 그럼에도 강간은 테러와 인종 청소라는 범죄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일일 뿐이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거의 법정에 오르지 않는다. 다루는 역사적 사건이 다양하고 감정적으로 견뎌내기 쉽지 않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_ 제니퍼 플래허티 |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 “전쟁에서 강간이 얼마나 심각하고 끔찍한 일인지 일깨워주는 책이다. 강간은 세계에서 가장 무시되는 전쟁 범죄다. 이 여성들의 이야기에 우리는 눈물을 흘리고 세계의 무관심에 분노할 것이다.” _ 아말 클루니 | 국제 인권변호사 “크리스티나 램은 이 책에서 여성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는 무척 어려운 일을 해냈다. 이 책에 담긴 강한 여성 생존자들의 모습은 인간의 의지와 마음이 빚어낸 비범한 성취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역사적·세계적으로 강간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인지 경고한다. 올해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면, 이 책이다.” _ 이브 엔슬러 |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저자 “수천 년 동안 집단 강간은 전쟁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역사에서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마침내 이 용감하고 아름답고 혹독한 책이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인상적이고 감동적으로 담았다.” _ 베터니 휴즈 | 《아테네의 변명》, 《여신의 역사》의 저자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충격적인 책이다. 조사하고 집필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의무는 이 끔찍한 진실, 즉 여성에게 남성이 가한 비인간적 범죄의 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_ 앤터니 비버 | 역사학자, 《제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의 저자
프롤로그_ 여성의 몸, 전장이 되다
1 야디지 소녀를 만나다
2 죽음보다 끔찍한 범죄
3 보코하람에게 빼앗긴 소녀들
4 로힝야의 비극
5 수십 년 동안 감춰진 고통
6 역사를 바꾼 르완다의 여성들
7 보스니아의 무슬림 여성
8 이것이 제노사이드다
9 강간 군대와 사냥의 시간
10 삶을 도둑맞은 아이들
11 목숨을 건 구조 작전
12 정의의 여신은 어디에 있는가?
13 닥터 미러클과 ‘기쁨의 도시’
14 생후 18개월의 생존자
15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후기_ 다시 쓰는 여성의 역사를 위해
감사의 글
주요 참고자료
옮긴이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