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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인연을 낳고 인연은 기적을 낳네

서창의 저 | 하양인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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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077299 / 312쪽 15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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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갈래머리에서 반백이 될 때까지 85세의 서창의 안나!!
가난한 이를 위해서 십여 년 몸담았던 수도회 옷을 벗다 

가난한 과부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봉헌하였듯이, 서 안나는 하느님께 오롯한 마음과 사랑을 다해 소외된 빈민촌에서 한평생 복음을 전하며 살아왔습니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 겸손한 세리의 기도,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 그리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나눔을 칭찬했습니다. 
갈래머리 소녀 서 안나는 한학자이신 아버지 곁에서 공부했습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이라는 뜻은 선을 베푸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선(善)을 쌓은 집안은 언젠가는 경사를 맞게 되고 부자라 하더라도 불선(不善)을 쌓은 집안에는 머지않아 재앙이 닥쳐오게 된다는 글입니다.
제부도 선감공소에서는 신자와 주민들이 공적비를 세울 만큼 지역의 든든한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만민이 평화롭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우리도 마음에 무엇을 쌓아 놓을 것인지 생각하면서 하루를 지냈으면 합니다.


출판사 리뷰

85세 서창의 안나의 인생 이야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뜻을 안고 태어났다. 서 안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만 골라 그곳에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갈래머리에서 반백이 될 때까지 낮은 곳에서 생활하며 사랑의 꽃을 피우고, 사랑의 향기를 퍼트렸다. 이 책은 인간적인 진실을 단순하게 덤덤하게 써 내려간 인생 이야기다. 세 가지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 수녀가 된 서 안나는 14년 동안 ‘수녀님’으로 불린다. 수녀복을 벗고 빈민촌으로 뛰어든 때에는 ‘전교회장’으로 불린다. 선감공소에 한글학교를 개설하고는 ‘선생님’으로 불린다. 지금은 만난 인연에 따라 수녀·회장·선생으로 달리 불린다. 아주 작고 평범한 인연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저자 소개

  • 저자 : 서창의
저자 : 서창의 안나
1936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다.
1957년 9월 22일 세레명 ‘안나’로 영세 받다.
1959년 6월 29일 정결·순명·청빈 서원 맹세하다.
1962년 10월 17일 첫 소임지 강릉 본당으로 가다.
1968년 12월 두 번째 소임지 종로 본당으로 옮기다.
1973년 건강 악화로 수녀복을 벗다.
1974년 12월 20일 보따리 하나 들고 상계동 빈민촌으로 들어가 그곳 성당의 전교회장을 맡아 그들과 함께 15년 동안 울고 웃으며 지내다.
1991년 3월 17일 상계동 빈민촌보다 더 오지인 대부도 선감공소로 들어가다.
그곳 공소회장을 거치며 갯벌이 턱밑에 찬 가난한 바닷가 이웃들과 한 몸이 되어 새로운 공소 성전을 짓다.
2007년 6월 3일 폐암 진단 후, 6개월 시한부 인생 선고 받다.
2009년 선감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다. 남양성모성지 미사 중 “아멘”이 터졌고,
몸속에 있던 암 덩어리가 일시에 빠져나가는 기적을 체험하다.
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께 이 사실을 알리고, 서 안나는 체험을 여러 차례 간증했다. 남양성모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들을 현양하는 성지다.
2021년 5월 현재 서 안나는 대부도 선감공소에서 살고 계시다.

머리말

너무나도 중요한 따뜻한 사랑

나는 1936년 12월 9일(음력)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열 살 때까지 유소녀기를 보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우리 가족은 경기도 양평의 비레마을로 이주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시골살이를 익혔다. 양평은 유난히 물이 맑았고, 우거진 숲이 많았다. 그 숲에는 여러 가지 야생화와 산채나물이 지천으로 자랐다.

봄이 오면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결에 영근 보리이삭들이 춤을 추었다. 누렇게 익은 보리밭은 물여울처럼 바람에 일렁거렸다. 잘 익은 보리 대궁 사이로 봄바람들이 숨바꼭질을 한다. 소금쟁이, 물방개, 우렁이들이 못가에서 함께 코러스를 한다. 황금빛 보리밭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쏠리며 넘어졌다 이내 일어났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서울에 두고 온 단짝친구 윤이와 현석이를 떠올렸다. 그 소꿉친구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넘쳐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흔히 6·25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 중인 1951년 1월 4일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정부는 수도 서울에서 철수하였고, 역사는 이를 ‘1.4 후퇴’로 기록하였다. 이 1.4 후퇴 때 우리 가족은 퇴각하는 국군을 따라 피난길에 올랐다. 부모님의 고향인 충청북도 청주에서 피난의 발길을 멈췄고, 그곳에서 우리 가족의 피난살이는 시작되었다. 나의 10대 중반을 보낸 양평 비레마을 생각이 고된 피난살이 틈틈이 떠올라 몹시 그리웠다.

우리 집 앞에는 ‘바가지우물’이 있었다. 두레박을 내리지 않고, 그냥 바가지로 샘물을 뜰 수 있는 우물을 가리켜 바가지우물이라고 불렀다. 그 우물가에 앉아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혼자 웃기도 하고, 때로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도 하였다. 삼베적삼 앞섶이 말려 올라간 밑으로는 늘어진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기엄마도 있었다. 비레마을에서 지내던 재미나고 신기하던 일들을 떠올리는 사이에 피난살이 기간도 길어졌다.

1957년 나는 청주에서 나길모(1926~2020) 주교님이 본당신부일 때 영세를 받았다. 교리를 공부하면서 머릿속에 깊게 새긴 것은 “너희는 가서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 유훈을 실천할 수 있을까? 나는 많이 고민하였다. 우선 내 부모형제부터 전교(傳敎)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내 부모 형제를 먼저 구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1959년 3월 26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정식 수녀의 길을 택한 것이다. 다른 수련자들은 12월에 입회하였는데, 나는 4개월 늦은 이듬해 3월에 혼자 입회하였다.

결국 하느님은 나의 기원을 들어주셨다.

의식주가 모두 제공되는 가운데 수녀에게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수도원 생활이 내게는 호강스럽게만 여겨졌다. 고민은 쌓이고 깊어졌다. 그럴수록 내 마음속 평화는 점차 쪼그라들었고, 내 몸에도 병이 생겼다. 그 상태는 악화일로였다.

마침내 나는 1973년 수도복을 벗고 세상 속으로 나왔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듯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광야로 나온 셈이다. 15년 동안 서울 상계동 판자촌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공부를 깊게 했다거나 명문대학 간판이라도 있었다면 이를 발판으로 삼아 다른 일을 도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처지에서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달할 수 있는 그 일이 가장 적합한 방법이었다.

수도복을 벗고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저 나는 내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며 살아왔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이 일만 성공하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소망마저 없었다. 지난 생활을 되돌아보니 쉽게 이루어진 일은 없다. 그러나 평생을 두고 소원하였던 것들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 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내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이제 사람들 앞에 꺼내 놓으려 한다. 보잘것없는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

서창의 안나

책 속에서

목차

내 마음의 오솔길 1
당신이 나를 부르셨던 그날

“어머니를 꼭 살려주세요!”
엄마의 사랑, 언니의 사랑
최초 공부방은 아버지 무르팍
내 눈에 들어온 새로운 세상
부산행 밤 열차를 탄 사연
당장 안 되면 안 되는 일
드디어 허락된 입회 소식
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
서원에 대한 맹세
갑자기 사라진 첫 소임지

내 마음의 오솔길 2
날마다 숨을 쉬지만

첫 소임지 강릉본당
결핵요양소에서의 교리 수업
급성간염에 걸린 순한 양
정동진 벌인 교리 교실
성당의 삼종이 부른 대소동
사제관 식복사 데레사
수녀가 부른 명곡‘살베 레지나’
강릉본당을 떠나던 날
요양과 휴식의 시간
두 번째 소임지 종로성당
이혼을 막아낸 결연한 판단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닌 이유
처음 밝히는 나의 고통
여섯 손가락 소녀
호스피스 병동에서 나를 부른 두 사람
청빈한 아버지에 그 아들
세운상가 아파트에서 사는 신자들
사라진 내 손가방
요셉피나의 일생
성당이 살림 나던 무렵
갈등을 겪은 종신서원
청빈한 삶이냐 가난한 삶이냐

내 마음의 오솔길 3
다시 세상 속으로 향한 나의 발길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잔별 무리들
가난한 자, 가엾은 자
성당 건축을 앞당긴 신부님
하느님의 사자로 오신 사람들
나의 유일한 전신 사진
제병을 사러 온 목사
가짜 목사의 아내
진실을 잃어버린 사람들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
험난한 가정방문의 길
가수 고복수 선생의 문패
낮은 곳을 택한 두 할머니
배밭 속 움막
바뇌의 성모상이 상계동성당으로
움막에서 살던 수산나 자매
인정 많고 착한 영민이
수녀님들의 희생과 봉사
가난한 자로부터 받은 연탄 30장
스테파노는 최고야!
나를 괴롭힌 중매쟁이들
수녀님들의 무료 진료
혼배미사와 장례미사가 가장 많은 본당
하늘에서 눈물바다를 이룬 이야기
행복했던 해외여행길
눈물콧물이 국그릇에 빠진 날
비명횡사한 예비신자 세실리아
15년 만에 찾아온 휴식
상대원성당에서 다시 1년

내 마음의 오솔길 4
하느님이 마련하신 길을 따라

대부도 선감공소로 이동
일하시라고 모셨어요
난감할 때마다 나타나는 해결사
늘그막에 얻은 행복
공소에서 치른 첫 영세식
원헥톨 신부님의 대한 기억
35년 만의 첫 서울 구경
이것이 기적인가?
천만 원을 가슴에 품고
공소도 무너지고 내 마음도 무너지고
30년 만의 해후
평생 잊지 못할 은인
선감공소에 성모상을 모신 사람들
루시아 할머니와 종탑
찾아가는 예비자 교리 교육
시몬을 끌어안고 울던 날
숙자의 초청장
신부님의 수단을 만들던 시절
한글학교를 개설하고
갈래머리에서 반백이 될 때까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선물
선감에서 만난 뜻밖의 인연
폐암 판정을 받고서
홀로 지내는 시한부 인생
졸지에 사라진 내 몸속 병마들
사람들에게 들려 준 나의 치유 체험담
민들레국수집과의 인연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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