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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사는 세계 책, 책이 잠든 공간들에 대하여

헨리 페트로스키 저 | 정영목 역 | 서해문집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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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893572 / 376쪽 148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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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연필》 저자이자, 세계적인 공학자이자, 사물들의 철학자, ‘작게 쓰기’의 대가 헨리 페트로스키 “만약 ‘신은 아주 사소한 것에 거한다’면, 신을 찾는 이들은 페트로스키의 책을 읽어야 한다.” _《라이브러리 저널》 두루마리 텍스트를 담아두던 상자에서부터 책을 사슬로 묶던 시기를 지나 현대의 책장에 이르기까지___________ 왜 책꽂이 선반은 수평으로 놓여 있으며, 왜 책들은 그 위에 수직으로 서 있는 걸까? “인간은 책보다 오래 사는 구조물을 짓지 못한다.” 19세기 시인 유진 피치 웨어의 말이다. 책을 담는 그릇이 언제나 책 자체보다 작아지고 만다는 문제에 관한 한 이 말은 2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책은 주변 공간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도 같아서, 한번 책이 쌓이기 시작하면 돌이킬 길이 없다. 책장은 책들로 꽉 차다 못해 책등을 읽을 수도 없을 만큼 빽빽한 숲을 이룰 것이며, 책장에서 흘러넘친 책들이 바닥에까지 수북이 쌓이게 될 것이다. 사태가 이쯤에 이르면 새 책장이 필요해지지만 이 새로운 빈 공간은 잠시뿐이다. 새 책들이 꽂히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꽉 차버린다. 책장 선반은 서서히 휘어지기 시작한다. 견딜 수 있는 하중이 크지 않은 조립식 책장은 선반 지지대가 부러지거나 선반이 무너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점에서야 팔리지 않는 책을 애초에 들여놓지 않거나 반품함으로써 공간을 유지하지만, 책을 갖다 버릴 수도 없는 도서관에서는 서고를 확장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일쑤다(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여 아무리 단단한 책장이라 한들, 아무리 넓은 서고라 한들, 이들은 책보다 오래 살지 못한다. 새 책장을 들여놓는 속도보다 새 책을 들여놓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책이 빽빽한 책장들로 둘러싸인 공간에 들어설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책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보는 것은 책뿐이다. 심지어 책장이 비어 있더라도 그렇다. 텅 빈 책장 앞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수평을 이룬 선반들이 아니라 거기 부재하는 책이다. 책장에서 비어 있는 칸은 어서 메꾸어야 할 구멍일 뿐, 책장 자체로서 드러나지 않는다. 책꽂이는 그 목적상 그렇게 규정된 물건이기 때문이다. 책이 놓이지 않은 평평한 나무판을 책꽂이라 하지 않듯(그릇이 놓이면 그릇 선반이, 화병이 놓이면 장식 선반이 될 것이다) 책꽂이 이야기는 거기에 책이 어떻게 놓이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와 더불어 오로지 맥락 안에서만, 그 용도에 의해서만 의미를 지니게 되는 사물의 이야기다. 그렇다. 결국 평범한 선반을 책꽂이로 만드는 것은 책이다. 책이 놓이기 전에 선반은 단지 선반일 뿐이어서, 책꽂이 이야기는 책 이야기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책꽂이 없는 책을 보지도 않는다. 물론 책은 책꽂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바닥에 쌓아둘 수도, 상자에 담아 다락 한구석에 치워놓을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책이 아니라 짐에 가깝겠지만 어쨌든 존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아무리 튼튼한 책 탑을 쌓는다 한들, 이렇게 쌓은 탑에는 중대한 문제가 하나 있다. 맨 밑바닥에 깔린 책을 꺼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탑을 해체한 다음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할까? 낮은 탑을 여러 개 쌓는다면 어떨까? 그런데, 그렇다면, 책등에 적힌 책 제목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일일이 허리를 굽혀가면서 확인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던진 후에야 우리는 책꽂이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벽에 달린 수평 선반 같은 아주 단순한 형태에서부터 책이 존재하는 곳 어디서나 볼 수 있는 5단 책장 같은 보편적인 형태에 이르기까지, 책에 가려 보이지 않았거나 볼 생각도 않았던 부분을 그제야 비로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거의 모든 경우에 책꽂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사진을 찍을 때 뒷줄에 선 이들이 밟고 올라선 계단처럼, 거기 있지만 없는 것이다. 책꽂이는 책을 진열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 혹은 책을 전시하기 위한 액자 틀 같은 것이지 서재, 서점, 도서관 등에 핵심적인 요소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서재에서든 도서관에서든 더 많은 책을 더 효율적으로 보관할 방법을 찾는 분투 속에서 책꽂이의 형태가 바뀌고, 책꽂이가 놓이는 방식이 바뀌고, 그리하여 책의 형태까지도 바뀌게 된 역사는 (책꽂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존재했지만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 희미해졌다. 《책이 사는 세계》는 바로 이 책꽂이가 거쳐온 역사를 다룬다. 우리는 오늘날 책꽂이에 책을 꽂는 방식, 즉 책등이 책등 바깥을 향하도록 해서 수직으로 꽂는 방식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책을 다른 방식으로 꽂을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는 일조차 드물지만, 책은 아주 오랫동안 두루마리 형태로 누워 잠들었으며, 긴 세월 사슬에 묶여 지냈다. 지금은 서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지만 선반 위에 표지가 보이도록 진열되기도 했으며, 책등이 책장 안쪽을 향해 꽂히기도 했다. 책등이 책장 바깥을 향하도록 꽂히게 된 다음에야 책은 등에 제 이름과 자신을 집필한 이의 이름을 적게 됐고, 일정한 크기와 길이로 장정하게 됐다. 우리가 지금처럼 책을 색깔이나 길이에 맞춰, 혹은 다른 어떤 기준에 맞춰 책장에 아름답게 꽂아둘 수 있는 것은 책 자체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책꽂이의 변화 위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책꽂이는 책을 보관할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책꽂이는 책의 형식을, 우리가 책을 바라보는 방식을 만들었다고.

저자 소개

일상 속 사물들의 역사와 공학적 의미, 디자인의 유래를 방대하면서도 치밀한 분석을 통해 완성하여 대중에게 그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는 세계적 공학칼럼니스트. 사물의 철학자이며 ‘테크놀로지의 계관시인’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1963년에 맨해튼칼리지를 졸업하고, 1968년 일리노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토목학회 최고위원으로 동회 역사유산위원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아르곤국립연구소(Argonne National Laboratory), 텍사스대학교를 거쳐 현재는 듀크대학교 토목공학과 석좌교수 및 역사학과 교수로 있다. 미국 내외의 청중을 대상으로 TV와 라디오 등에서 강연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그 업적을 인정받아 1991년 미국기계학회로부터 랄프코츠로메달(Ralph Coats Roe Medal)과 2006년 웨스턴공학협회에서 워싱턴상(The Washington Award)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저자는 기술적 고안물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심도 있는 역사적 접근으로 저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과학전문지 〈아메리칸 사이언티스트〉를 비롯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등 다양한 잡지와 신문과 글을 기고해왔으며, 주요 학술지에 70편 이상의 논문 발표했다. 저서로는 《연필》, 《디자인이 세상을 바꾼다》, 《이 세상을 다시 만들자》, 《인간과 공학 이야기》, 《서가에 꽂힌 책》, 《기술의 한계를 넘어》, 《종이 한 장의 차이》, 《디자인 세상》 등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정영목

번역가로 일하며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프로이트》, 《제5도살장》, 《축의 시대》, 《문학이론》, 《문학의 번역》 등이 있다. 《로드》로 제3회 유영번역상을, 《유럽 문화사》로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책 속에서

엄격하게 말한다면 책들은 책꽂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의회도서관이나 지역 공공도서관 책들이 상자에 들어 있거나, 바닥에 차곡차곡 쌓여 있거나, 아니면 장작이나 석탄처럼 무더기로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의 존재 없는 책꽂이는 상상할 수 없다. 책이 없다면 그런 식으로 선반을 층층이 쌓아 올린 장이 없을 거라는 뜻이 아니다. 그런 장이야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책꽂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책꽂이는 책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의 한 부분이 되었으며, 집에 책꽂이가 있다는 사실은 문명화되었고, 교육받았고, 세련되었다는 것의 의미를 실질적으로 규정해주기도 한다. _12쪽

이런 경우에 책을 책꽂이에 도로 집어넣는 것은 정어리를 통조림 캔에 도로 집어넣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렵다. 책꽂이는 진공 상태를 혐오하기 때문에, 책 한 권을 뽑았을 때 생기는 공간이 다시 책을 받아들일 만한 크기를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에어 매트리스나 지도를 한 번 펼친 다음에는 처음 모양으로 도로 접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한 번 펼친 책은 다시 접으면 새로운 부피를 갖게 되는 것 같다. 분명히 원래 꽂혀 있던 자리인데도 다시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책꽂이에 발판이라도 마련하려면 책을 쐐기처럼 이용하여 전에는 관대했던 이웃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_22쪽

책꽂이와 거기 꽂힌 책이 상호 의존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보통은 무시하고 지나치게 마련인 책꽂이에 관심을 기울이면 책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아래에서부터 위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책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을 새삼스럽게 뜯어보면 우리 눈에는 다른 사물이 보이게 된다. 세상의 다른 모든 사물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질들을 가진 동시에 우리가 경험하는 다른 많은 것들과 유사한 점들을 가진 사물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_26쪽

온라인 서점들은 새 책을 팔든 헌책을 팔든 소비자에게 서가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 이들 가상 서가를 갖춘 가상 서점들은 소장 도서가 무한하고 가격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 편리함이 말할 수 없이 크다. 하지만 그런 가상 서점에서 쇼핑을 하는 것은 진짜 서가들(집에서 만들었든 공장에서 만들었든) 사이에서 책을 훑어보지 못하기 때문에 서점을 찾아갔다기보다는 꼭 도서관 카탈로그를 이용하는 느낌이다(그마저도 전산화된 카탈로그다). 그러나 구하기 힘든 책을 주문한 지 하루 만에 받아보는 기쁨을 경험해보면, 이런 새로운 서점들이 시적인 연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시인 메리앤 무어는 진짜 두꺼비가 살고 있는 가상의 정원들을 알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제 진짜 책들이 꽂힌 가상의 서가들을 알게 된 셈이다. _234쪽

페트로스키의 접근 방법 가운데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책 따로 서가 따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서가 위에 놓인 책을 동시에 다룬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페트로스키 특유의 눈에 잘 안 띄면서도 쓸모 있는 물건에 대한 세심한 관심이 담겨 있다. 그런 물건일수록 이미 눈에 익숙해져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페트로스키의 접근을 통해 낯익은 것이 낯설게 드러나며,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신선한 느낌도 이 책을 읽어나가는 데 중요한 재미 중 하나다. 또한 이런 접근은 단지 신선함을 유발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 익숙한 것이 변화 과정 중에 있음을 드러낸다. _367쪽

 

목차

1장 보이지 않는 책꽂이
2장 두루마리에서 코덱스로
3장 궤, 회랑, 열람실
4장 사슬에 묶인 책
5장 더 완벽한 책장
6장 책등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7장 빛이냐, 책을 꽂을 공간이냐
8장 완벽하게 장정된 책이 서점에 진열되다
9장 서고를 지탱하는 것들
10장 책들의 묘지
11장 장서의 과거와 미래
부록: 책을 배열하는 온갖 방법

책을 옮기고 나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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