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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1972~2020

시리즈 : 헥사곤 한국작고작가선 [1]

이윤기 저 | 헥사곤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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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688554 / 392쪽 / 549g /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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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이윤기는 자신의 생활을 그리기라는 미술 형식을 차용해 미학화한다. 그에게 미술은 일기의 한 형식이자 영적 담화를 응집하는 묘판이다. 그래서 그의 미술은 농사 월령의 시간처럼 사계의 순간들과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좀 더 더하고, 빼고 하는 것 없이 묵묵히 제 시간을 쌓아가고 있단 얘기다. 작업실에 흐드러진 얼굴 꽃을 보는 일은 풍작의 들녘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자칫 이러한 형식이 완결성 없이 부유할 수 있다는 점도 발견한다. 인물의 세부 묘사가 거칠고, 화면의 여백이 뚜렷한 의지를 갖지 않아 정신의 근거를 약화시키는 면이 없지 않고, 오브제가 지닌 본래적 성질과 상징을 인물과 결합하는 것도 덜 섬세하다. 전통 인물화가 세필을 이용해 품격의 방향을 잡아낸 뒤 일종의 ‘품평회’를 거쳐야 본 작업에 시작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상이 되는 인물과 한 달여를 동거하며 전체로서의 상을 되새김했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사실주의와 현실주의의 리얼리티는 ‘닮음’의 오차가 아닌 ‘닮음’의 영성에서 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윤기의 시작은 들국화처럼 꼿꼿하다. 그의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가능성의 파동 안쪽에 있게 한다. 그리기에 대한 집요한 시선, 색의 차이와 언어를 달굼질해 나가는 행보는 그에 대한 희망이다. 생활미술의 힘은 ‘생활’에서 온다. 일상이라거나 날들이라거나 하는 반복적인 ‘날(日)’의 연속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는 것을 생활미술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기억이며, 현실이며, 시대다. 생활미술은 현실 언어에서 지독한 현실이 발생한다. 이윤기의 희망은 그 지독함이 이제 막 꽃망울을 가졌단 사실에서 시작된다. ● 김종길 | 미술평론가 -본문 중에서-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목리는 실개천 하나를 둔 작은 마을이었다. 예부터 씨족을 형성했던 집성촌도 아니고 너른 들녘을 품었던 양지골도 아니다. 그곳 사람들은 수원에서, 병점에서, 그 위 용인에서 밀려왔거나 더 먼 곳으로부터 떠밀려온 사람들이다. 목리 윗말로 올라가는 길 양옆으로 작은 공장, 빌라, 다세대주택, 단독주택, 교회, 식당이 들어찬 것은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다. 개천을 따라 오르다가 개천교를 건너면 시간은 훌쩍 1970년대로 가버린다. 굴렁쇠를 굴리며 달렸던 옛길이 보이고 두렁의 풀을 뜯던 누렁이도 따라온다. 수년 전 목리 작가들이 세웠던 팔랑개비가 길목에서 개들과 다투고, 그 옆 감나무 느티나무 밤나무가 시커멓게 서 있다. 작가들은 마을의 가장 안쪽에 둥지를 틀었다. 화가 이윤기는 빈집에 세 들었고 사람들은 그곳을 ‘아랫집’이라 불렀다. 소나기 온 후 장마가 지듯이 동탄 신도시 개발이 커지자 목리에도 장마가 졌다. 땅은 팔려나갔고 집은 보상을 챙겼다. 사람들은 하나둘 보따리를 켜 들고 마을을 빠져나갔다. 뜬소문과 잡소문이 휘몰아치더니 어느새 마른 바람의 뼈가 길 위를 뒹굴었다. 창작촌 작가들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뜬 무리를 따라 그들도 새로운 둥지로 떠나거나 길을 나섰다. 무리에서 이탈한 기러기는 결코 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랫집 작가 이윤기는 뒷산으로 포크레인이 넘어 올 때까지 아랫집에 있었다. 그는 마지막이 될 목리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가 살았던 시간의 켜들이 한 폭의 이미지로 새겨졌다. 논이랑 밭고랑 배꽃 아래 오리 가족, 지붕 위 고양이 솟대 장승 검은 숲 흰 구름 푸른 하늘……. 아이들이 흘리고 간 웃음과 어른들이 싸 놓은 욕지거리, 대장간의 망치 소리가 그사이를 떠다녔다. 그러나 그 소리도 이젠 바람처럼 길섶을 굴러다닐 것이다. 그러다가 어딘가에서 이름도 없이 부서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림 하나. 청천靑天. 화가의 시선은 청천에 가 닿았다. 대지는 화면 아래로 넓게 벌린 아랫집 지붕이다. 대지의 시간은 양 끝의 검은 숲에서 멈췄다. 숲을 파헤치며 밀고 오는 기계는 더 이상 지상의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가난한 삶의 희망을 솟대로 피워 올렸던 꿈들이 흔들린다. 솟대의 발목이 흔들린다. 아, 시방세계의 살림살이 주저리가 기운다. 그는 시간을 과거에 묶지 않고 새들이 가는 곳으로 풀어 놓는다. 새들이 가는 곳은 솟대의 발목이 걷는 곳이다. 그곳은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손짓으로 그린 곳이다. 저 너머엔 청산靑山이 있다. 강을 살리겠다고 강을 파헤치고, 집을 짓겠다고 땅을 살육하고, 길을 내겠다고 숲을 잘라내는 오적은 거기 없다. 그는 목리가 목리로, 아랫집이 아랫집으로 살아갈 수 있는 청산으로 갈 것이다. 청산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것은 유토피아적 상상일 뿐이다. 그런 상상조차 갖지 못한다면 현실은 결코 변혁되지 못한다. 그 상상의 조각들이 현실로 바뀌어갈 때 삶은 ‘사람 사는 세상’이 될 것이다. 미래는 최첨단 기계 도시들로 변장한 ‘휴먼시아 명품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도시에 있다. 우리가 그 진리를 명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마을은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이다. ● 김종길 | 미술평론가

저자 소개

1947년 경북 군위에서 출생하여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했다. 1977년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종교학 초빙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 찾기>로 동인 문학상을, 2000년 소설집 <두물머리>로 대산 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으로 <하얀 헬리콥터>,<외길보기 두길보기>, <나비 넥타이>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하늘의 문>, <사랑의 종자>, <나무가 기도하는 집>이 있다. 그 밖에 <어른의 학교>, <무지개와 프리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꽃아 꽃아 문 열어라> 등의 저서가 있으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을 비롯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미할리스 대장>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등 신화 연구에 매진해왔으며 번역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2000년 '대학민국 번역가상'을 받았으며 번역문학 연감 미메시스가 선정한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뽑히기도 했다. 소설가, 번역문학가, 신화학자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3세. 

1972년 경기도 화성에 태어나 자랐다. 1998년 목원대학교 미술교육과(서양화)를 졸업하고 여덟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대전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 화성으로 돌아와 2003년부터 2009년까지 ‘목리’, ‘생명’, ‘그물코’를 주제로 한 대표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며 작고할 때까지 새롭게 만난 예술가들과 함께 ‘이주’, ‘공동체’, ‘연대’ 등을 주제로 다양한 문화예술기획을 펼쳤다.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찾아가는 어린이 생태미술교육프로젝트〉 (2010)를 통해 그의 세계가 얼마나 순수하고, 사려 깊으며, 희망의 공동체를 지향했는지 잘 보여준다. 8회 개인전 〈숲의 끝에 멈추다〉(2010) 이후 프로젝트 작업들은 그의 미술세계의 중핵이라 할 생태, 환경, 공동체, 공공성, 연대, 저항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생태환경미술, 공동체미술, 공공미술, 민중미술의 문맥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미술이었다. 작가 이윤기는 ‘함께하는’ 공동체성이 몸에 익은 작가였다. 그는 모든 전시들에 여전히 남아 있고 살아 있으며, 묵묵히 외치면서, 소리치면서 남아있는 우리들을 향해 바꿔 나가라고, 다시 개벽의 순간들을 만들어 내라고, 더불어 사는 사회의 앞날을 지금 여기로 당기라고, 분단 모순의 현실을 넘어서라고, 하얗게 웃으며 서 있다. 없이 있는 그가, 여기로 돌아오는 순간들이다.

책 속에서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목리는 실개천 하나를 둔 작은 마을이었다. 예부터 씨족을 형성했던 집성촌도 아니고 너른 들녘을 품었던 양지골도 아니다. 그곳 사람들은 수원에서, 병점에서, 그 위 용인에서 밀려왔거나 더 먼 곳으로부터 떠밀려온 사람들이다. 목리 윗말로 올라가는 길 양옆으로 작은 공장, 빌라, 다세대주택, 단독주택, 교회, 식당이 들어찬 것은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다.
개천을 따라 오르다가 개천교를 건너면 시간은 훌쩍 1970년대로 가버린다. 굴렁쇠를 굴리며 달렸던 옛길이 보이고 두렁의 풀을 뜯던 누렁이도 따라온다. 수년 전 목리 작가들이 세웠던 팔랑개비가 길목에서 개들과 다투고, 그 옆 감나무 느티나무 밤나무가 시커멓게 서 있다. 작가들은 마을의 가장 안쪽에 둥지를 틀었다. 화가 이윤기는 빈집에 세 들었고 사람들은 그곳을 ‘아랫집’이라 불렀다.
소나기 온 후 장마가 지듯이 동탄 신도시 개발이 커지자 목리에도 장마가 졌다. 땅은 팔려나갔고 집은 보상을 챙겼다. 사람들은 하나둘 보따리를 켜 들고 마을을 빠져나갔다. 뜬소문과 잡소문이 휘몰아치더니 어느새 마른 바람의 뼈가 길 위를 뒹굴었다. 창작촌 작가들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뜬 무리를 따라 그들도 새로운 둥지로 떠나거나 길을 나섰다. 무리에서 이탈한 기러기는 결코 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랫집 작가 이윤기는 뒷산으로 포크레인이 넘어 올 때까지 아랫집에 있었다. 그는 마지막이 될 목리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가 살았던 시간의 켜들이 한 폭의 이미지로 새겨졌다. 논이랑 밭고랑 배꽃 아래 오리 가족, 지붕 위 고양이 솟대 장승 검은 숲 흰 구름 푸른 하늘……. 아이들이 흘리고 간 웃음과 어른들이 싸 놓은 욕지거리, 대장간의 망치 소리가 그사이를 떠다녔다. 그러나 그 소리도 이젠 바람처럼 길섶을 굴러다닐 것이다. 그러다가 어딘가에서 이름도 없이 부서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림 하나. 청천靑天. 화가의 시선은 청천에 가 닿았다. 대지는 화면 아래로 넓게 벌린 아랫집 지붕이다. 대지의 시간은 양 끝의 검은 숲에서 멈췄다. 숲을 파헤치며 밀고 오는 기계는 더 이상 지상의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가난한 삶의 희망을 솟대로 피워 올렸던 꿈들이 흔들린다. 솟대의 발목이 흔들린다. 아, 시방세계의 살림살이 주저리가 기운다.
그는 시간을 과거에 묶지 않고 새들이 가는 곳으로 풀어 놓는다. 새들이 가는 곳은 솟대의 발목이 걷는 곳이다. 그곳은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손짓으로 그린 곳이다. 저 너머엔 청산靑山이 있다. 강을 살리겠다고 강을 파헤치고, 집을 짓겠다고 땅을 살육하고, 길을 내겠다고 숲을 잘라내는 오적은 거기 없다. 그는 목리가 목리로, 아랫집이 아랫집으로 살아갈 수 있는 청산으로 갈 것이다.
청산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것은 유토피아적 상상일 뿐이다. 그런 상상조차 갖지 못한다면 현실은 결코 변혁되지 못한다. 그 상상의 조각들이 현실로 바뀌어갈 때 삶은 ‘사람 사는 세상’이 될 것이다. 미래는 최첨단 기계 도시들로 변장한 ‘휴먼시아 명품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도시에 있다. 우리가 그 진리를 명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마을은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이다. ● 김종길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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