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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356507 / 480쪽 112 x 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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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초청된 화자들은 근대화의 역사적 궤적을 따라가며 국민 국가 형성과 민족주의 개념이 현재와 맞닿는 지점에 질문을 던지고(이택광, 이원재), 과학적 시간과 영화적 서사의 교차를 통해 공동체에 전제하는 동시성 개념을 살피고(서현석), 국가와 자본의 작동 방식과 그 재생산 기능의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주목해야 할 내부의 파열을 제안한다.(정강산) 때로는 “코로나19로 확진된 신천지 신도들의 동선으로부터 n번방 회원들의 행적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의 ‘상상’을 초과하는 ‘동시대성’이 폭발한 2020년의 상황에 주목하며(유윤성, 시민 z), 국가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희생이 어떻게 가능하거나 불가능하고 어떻게 극복되며, 어떻게 재사유될 수 있는지 묻는다.(곽영빈) 국가, 혹은 민족, 또는 번역을 거부하는 ‘네이션’이란 단어는 언어(프랭크 김), 인종(예카테리나 본다렌코, 탈가트 바탈로프), 시각 문화(최범)를 가로지르고, 국가 아닌 국가들의 모습으로 다가오며(클레가), 동아시아의 식민적 모더니즘(헤리 미나르티, 손옥주, 로이스 응, 마크 테)과 비동맹 운동(보야나 피슈쿠르)을 거쳐 현재의 홍콩 사태(로이스 응, 고금)에 도착한다. 이 모든 ‘나라 생각’들이 향하는 궁극의 질문은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프리 레이선) 혹은 아마도 이런, “우리는 길을 잃었다. 나는 길을 잃었다. 절망하고 마비되고 말이 막혔다. 나는 세상이 지금처럼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절대 못 했다. 정치적 나약함, 부패, 전쟁, 빈곤, 기아, 연대의 실종, 세계를 휩쓰는 포퓰리즘, 자기중심주의, 극단주의,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의 종식… 오늘의 세상은 이런 모습이다. ... 교감과 연대와 (자기중심주의에 대척하는) 너그러움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전쟁과 빈곤으로부터 피신하는 난민들을 우리는 왜 환영하지 못하는가? ... 나는 예술 창작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고 있다. 우리 사회에 예술과 예술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예술이 인류와 사회의 해악에 대한 실질적인 해독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을 수십 년 동안 품어 왔다. 예술의 진정한 효과는 무엇이란 말인가?” 참고: 디자인에 관한 주석 “이 호에는 두 가지 활자체가 쓰였다. 한글에 쓰인 활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개발해 무료로 보급되는 바탕체(‘문체부 바탕’)다. 이외 요소(숫자, 로마자, 문장 부호 등)에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파울 레너(Paul Renner)가 디자인한 기하학적 활자체 푸투라(Futura)가 사용됐다. 전자가 한글의 고유성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민족성을 넘어서는 보편적 형식을 꿈꿨다. (몇몇 문자에는 최종판이 아니라 레너가 시험했던 실험적 형태가 쓰였다.) 두 활자체는 조화가 아니라 이질성과 대비를 강조한다. ―슬기와 민

저자 소개

광주에서 태어나 그래피티 하위문화에 빠져 화물 기차와 지하철을 작업장으로 삼으며 20대 초반을 보냈고 2012년에 가상 그래피티미술관을 설립했다. 그 연장선에서 현재는 2019년에 시작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를 기록하는 홍통 반달리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아카펠라 그룹 ‘인공위성’의 멤버이자 리더로 「열린음악회」에 출연하고 게이코 리와 협연하며 바타유와 베버를 겹쳐 읽던 90년대를 지나, 영화학(과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술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21세기에 ‘콘텐츠’로 전락하기 전까지 ‘영화’라 불렸고, 그 이전엔 ‘캔에 넣은 연극’이라 불렸던 퍼포먼스 기록물의 매체적 궤적을 시대착오적으로 다시 듣고 보(려)는 중이다.
독립 관광 안내자이자 종이 연구가. 『무정부주의와 3D 프린팅』을 집필하고 있다.

책 속에서

미국이나 유럽 연합의 여권은 무관심의 징표다. 어디엔가 소속되었다고 스스로 믿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면에선, 이러한 삶이 곧 오늘날의 ‘범세계주의적’인 삶의 방식이다. 전 세계를 덮은 전염병의 시대에 국경이 경직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배타주의와 정체성 정치의 산화 작용 속에서 국경은 사실 녹아 버렸다. 이것이 아마도 인종주의, 엘리트주의, 글로벌리즘이 합체한 괴물의 모습이다.(클레가, 9쪽)

어떤 국적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노동력을 금전 가치와 교환할 수 있다. 일단 국적이 상품화되고 나면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은 어떤 국민 국가에서든 교환 가능해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상품은 난민과 정반대다. 난민 문제와 뒤섞이는 것은 인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 노동 분화다. 난민의 존재는 우리가 국민 국가의 정치적 함의를 재고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이택광, 36쪽)

광장의 종교적 성격, 아니 정치가 본래 종교적 성격을 내포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근대의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새로운 신을 중심에 두고 스스로 종교가 되어야 하는 정치는 이미 존재하는 보편 종교와 통치권을 공유하는 애매모호함을 용납할 수 없었다. 정치/국민/민족이 스스로 신이 되어야만 자신의 도덕을 요청하고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한순간 모습을 드러냈던 신은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이원재, 66쪽)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행해진 쿠바의 의료 지원은 민주적 생명정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 너머에 있는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나토 가입국으로서 쿠바에 대한 온갖 군사적, 경제적 압력에 가담해 온 이탈리아의 전력에 비추어 볼 때, 혹은 경제적 합리성-자본주의적 이성의 눈으로 볼 때 이들의 의료 지원은 비합리 자체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적 실천이 상상하는 대상은 인구의 논리를 초과한, 인민이라 할 법한 어떤 인간의 형상이다.(정강산, 135쪽)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파행적으로 운영된 영화제의 사례들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벡터는 희한하게도 시네필이라 불리는 저 순례자들이다.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지도 않고, 영화를 사고파는 일을 하지도 않고, 영화에 대해 글을 쓰거나 공부하는 것도 아니지만 영화제의 가장 충실한 관객군을 이루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충실하다는 것이 다수를 점한다는 뜻은 아니다. 통계적으로는 미미한 존재에 불과한 이들은 영화제라는 제도를 움직이는 주요 행위자들이 아니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이 초래한 위기 상황에서 돌연 영화제들은 오직 이들만을 염두에 둔 듯한 정책을 취했던 것이다. 그것이 비록 일시적일 뿐이었다 해도 말이다.(유운성, 149~150쪽)

적지 않은 좀비 영화들은 텅 빈 도시 공간을 보여 주며 끝난다. 인간의 희생을 일일이 묘사하는 대신 경제적으로 축약함으로써 재난의 거대한 스케일을 나타내 보인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정사」(L’Eclisse, 1962년)로부터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Halloween, 1978년)으로 넘어온 텅 빔의 급습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적 동기로서 인간의 존재론적 결핍을 직시한다. 좀비물이 이에 보태는 사회적 함의는 엔트로피의 증가와 공동체의 상실이다.(시민 z, 168쪽)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1983/1991년)는 민족주의에 대해 쓰인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몇몇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이 책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대개 ‘공동체는 상상된 것’이란 한 줄 요약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관습적인 이해가 놓치는 것은 이 책의 중핵이 ‘희생’(sacrifice), 또는 죽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공동체가 겨우 ‘상상된 것’에 불과하다면, 다시 말해 ‘허구’(fiction)의 산물이라면, 사람들은 대체 왜, 아니 어떻게 이를 위해 단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단 말인가?(곽영빈, 174쪽)

대한민국은 1948년에 태어났지만 그것은 출발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기원과 정체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8.15 광복을 둘러싸고 해방(1945년)인가 건국(1948년)인가 하는 건국절 논쟁이거나 아니면 이승만과 김구 중에서 누가 국부인가 하는 국부 논쟁이 전부이다. 그 역시 따져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전에 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시각 문화의 차원에서만 보면 대한민국은 없다. 근대 국가 대한민국은 조선 왕국의 이미지로 커버되어 있을 뿐이다.(최범, 269쪽)

너무 많아 여기에서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마이크로네이션들 간의 상호 인지, 관심과 협업 등이 증가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이들이 표출하고 있는 것은 전체주의적 국가 장치까지는 아니라도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삶에 깊이 끼어들고 있는 기이하고 위협적인 국가 장치로부터 태어난 반국가 정서일지도 모르겠다. 국가에 대한 불만이 다른 국가로 이주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국가를 만든다는 발상은 이미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클레가, 360쪽)

제가 우즈베키스탄에 살 때 저는 러시아인이라 생각했습니다. 왜냐고요? 그곳에서는 모두가 러시아인입니다. 유대인도, 조지아인도, 아르메니아인도, 타타르인도, 메스케티투르크인도, 심지어 고려인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있잖아, 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왔어”라고 말하면 “그럼 우즈베크인이겠네?” 하고 응대합니다. 그럼 제가 말해요. “아니, 나 우즈베크인 아냐.” 그럼 제게 다시 물어 옵니다. “어떻게 그래? 거기가 우즈베키스탄이면 거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우즈베크인 아냐?” 그럼 전 생각하죠. “좋아, 그럼 내가 지금부터 160개 민족이 살고 있는 다문화 도시가 과연 어떤 건지 설명해 주지. 민족을 일일이 다 열거하면서 말이지.” 그러다가 생각하죠. “그러려면 시간이 지독하게 오래 걸릴 거야.” 그래서 말하죠. “그래 얘들아, 나 우즈베크인이야.”(예카테리나 본다렌코, 탈가트 바탈로프, 372쪽)

지난 호 『옵.신』에서 나는 홍콩의 1967년 시위가 어떻게 2014년 우산 혁명에 거꾸로 메아리쳤는지 2018년 말 시점에서 돌아보는 글을 실었다. 당시 시위에 대한 내 감정은 애매했고 혼란스러웠다. 아마도 나 스스로 얻은 정치적 교훈과 입양 가정에서 학습된 믿음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홍콩 정치 상황에 대해 다시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질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전의 글이 무척이나 순진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로이스 응, 고금, 431쪽)

 

 

목차

책을 내며

민족의 질문에 관하여 / 이택광
베네딕트 앤더슨 조사(弔辭) / 이원재
동시성의 변천사 / 서현석
국가를 역사화하기 / 정강산
움직이지 않는 순례자들 / 유운성
좀비학 ABC / 시민 Z
어떻게 허구를 위해 죽을 수 있 (었)을까? / 곽영빈
한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에 보내는 제안서 / 프랭크 김
식민지적 모더니즘 / 헬리 미나르티
타자성의 발견 / 손옥주
대한민국은 없다 / 최범
쇼와의 유령 / 로이스 응
말레이시아 지도 그리기 / 마크 테
예외적인 국가들 / 클레가
우즈베크인 / 예카테리나 본다렌코, 탈가트 바탈로프
남반구의 별자리들 / 보야나 피슈쿠르
이천십구년 십일월 십팔일 / 로이스 응, 고금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프리 레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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