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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한국사

여호규, 박준형, 김종복 외 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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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1425512 / 256쪽 152 x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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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최초로 시도되는 북방 중심 한국사
북쪽 지역의 우리 역사를 집중 조명하다!


남북 분단 이후 우리는 마치 역사마저 나눠 가진 듯 북방의 역사를 멀리해 왔다. 그러나 한반도의 북쪽 지역은 우리나라 최초의 나라인 고조선이 들어선 곳이자 가장 광대한 영토를 경영한 고구려와 발해의 발판이 된 곳이며, 고려와 조선이 외세의 침입을 막고 무역을 하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반도 북쪽은 물론 그 너머 만주에서 펼쳐졌던 ‘절반의 한국사’에 다시금 숨을 불어 넣어 한국사를 보는 인식과 지평을 넓히고, 가로막힌 북쪽 땅을 우리 역사의 한 축으로 바라보게 할 것이다.

출판사 리뷰

한반도 남쪽에 치우친 좁은 역사를 넘어 대륙까지 뻗어 있던 ‘통 큰 역사’를 만나다 역사는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곳에서 무수한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들의 총집합이다. 이 책은 역사를 바라보고 서술하는 다양한 시도 중에서 공간을 중심으로, 그것도 한반도 북쪽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춘, 최초로 시도되는 북방 중심 통사이다. 분단 이후 북쪽으로의 접근이 차단되면서 역사 교육 또한 한반도 남쪽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지금,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보다 균형 잡힌 역사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잊힌 북쪽에 역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북쪽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사를 다시 본다고 뭐가 다를까? 물론 그렇다. 대륙과 이어진 북쪽의 역사는 섬처럼 고립된 남쪽의 역사와는 달리 줄곧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과 연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배포 크게 전쟁을 벌여 주변을 평정하기도 하고, 외교적으로 수세에 몰렸을 때에는 자세를 낮춰 유연하게 대처하기도 했던 ‘북쪽’ 지역 국가들의 역사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 안에 갇혀 있던 좁은 시각이 훤하게 트이며 거대한 역사와 시대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각 분야 전문가 10인이 재조명한 우리가 놓치고 있던 한반도 역사의 절반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그런데 왜 우리 역사는 반 토막일까? 1950년 휴전과 함께 남과 북의 경계를 확정한 이후, 북한의 역사뿐 아니라 휴전선 이북의 역사 전체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그 결과 신라와 백제,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는 세세한 정치사까지 꿰고 있으면서 고구려의 수도가 어디쯤인지, 발해의 생활상은 어떠했는지는 모르는 상태가 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면서 우리 역사에 이토록 무지해도 괜찮은 걸까?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각 분야 전문가 10인이 나섰다. 고조선에서 남북 분단기까지,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북쪽의 역사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핵심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들을 뽑아 쉽고 명료하게 서술했다. 또 지금은 직접 찾아볼 수 없는 유물과 역사 공간의 도판, 지도 자료 등을 다양하게 배치하여 북쪽의 역사를 보다 생동감 넘치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시대에 따라 180도 다른 삶을 살았던 북쪽 사람들, 그들의 굴곡진 삶에서 역사의 흐름을 읽는다 한반도 북쪽은 강대국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우리 역사의 숙명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지역이다. 이곳 북쪽 사람들은 가장 먼저 대륙의 문물을 받아들였고, 가장 많은 전란을 겪으며 용맹을 보이고 고통을 겪었다.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가장 먼저 자신들의 역사를 개척해나간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이 책을 보면, 개성상인들의 활발한 활동과 평안감사의 호화로운 행차에서 북쪽의 풍요로움이 묻어나고, 홍경래 난의 배경에는 정치적으로 차별받는 북쪽의 아픔이 느껴진다. 북방을 노래한 북쪽 시인들의 시에서는 일제강점기에 힘든 삶을 버티지 못해 고향을 떠나 두만강, 압록강을 넘어 간도로 떠난 이들의 행렬이 보인다. 남북한 정권의 수립 과정에서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주도 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와 신문물을 재빨리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쪽 사람들의 질곡 많은 삶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복잡하고 어렵기만 했던 역사가 한층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여호규, 박준형, 김종복 외
저자 : 여호규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서로는 《고구려 성》(Ⅰ, Ⅱ), 《고구려 초기 정치사 연구》, 《한국 고대국가와 중국왕조의 조공책봉관계 연구》(공저), 《고대 도시와 왕권》(공저) 등이 있다.

저자 : 박준형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 겸 군사전략학과 교수이다.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주요 논저로는 <예맥 관련 최근 논의의 비판적 검토>, <기원전 7세기 중반 동북아시아의 국제관계와 고조선의 위상>, <기원전 3~2세기 고조선의 중심지와 서계의 변화>, 《고조선사의 전개》 등이 있다.
김종복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 연수 과정을 수료했다. 발해사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 및 사학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저서로 《발해정치외교사》, 《정본 발해고》 등이 있다.

저자 : 박재우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저로 <고려 전기 왕명의 종류와 반포>, <고려 전기 재추의
출신과 국정회의에서의 위상>, <고려 최씨정권의 권력행사와 왕권의 위상>, 《고려 국정운영의 체계와 왕권》, 《고려 전기 대간제도 연구》 등이 있다.

저자 : 송용덕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사연구사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주로 고려 시대 국경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고려~조선 전기의 백두산 인식>, <1107~1109년 고려의 갈라전 지역 축성과 ‘윤관 9성’ 인식> , <고려의 일자명 기미주 편제와 윤관 축성> 등이 있다.
신병주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왕으로 산다는 것》, 《참모로 산다는 것》, 《왕비로 산다는 것》, 《조선평전》, 《조선과 만나는 법》, 《56개 공간으로 읽는 조선사》 등이 있다.

저자 : 이흥권
강원대학교 사학과 강사이자 의암류인석기념관 기념사업팀장이다. 주요 논저로는 《19세기~20세기 초 조선의 만주 이주민정책에 대한 연구》, 《조선의 명재상 횡성인 고형산》(공저), 《횡성 각림사와 태종의 강무 행차 재조명》(공저), <청의 간도정책과 이범윤의 이주민 관리 연구>, <19세기 조선인 만주 이주와 고종의 관리정책> 등이 있다.

저자 : 김상태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는 한국 근현대 의료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주요 논저로는 《제중원 이야기》, <평안도 기독교 세력과 친미엘리트의 형성>, 《윤치호일기 1916~1943》(편역), 《역사신문 5권》(공저), 《사진과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 의료문화사》(공저) 등이 있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에 재직하고 있다. 건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6년 《세계일보》에 <벽화 속의 고양이 3>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 《너는》,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등 여러 권의 시집과 다수의 논저가 있다.

저자 :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열림교양대학 교수이며,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저로는 <상처받은 민족주의>, 《대한민국사》 1~4권, 《지금 이 순간의 역사》, 《유신》, 《사법부》, 《4·19혁명》, 《5·18민주화 운동》,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 등이 있다.

책 속에서

한반도에서 ‘반도(半島)’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은 대륙에 이어진 땅을 뜻한다. 반쯤은 섬이지만, 섬과 달리 대륙과 이어졌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래서 흔히 반도를 대륙과 해양을 잇는 가교라 한다. 반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바다뿐 아니라 육로를 통해서 대륙으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 11쪽 <북녘 산하, 대륙으로 열린 땅>

고조선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지만 아직 해결이 되지 않은 것이 영역과 중심지 문제이다. 고조선과 한나라의 경계였던 패수의 위치에 대해 난하(중국 허베성에 있는 롼허강), 대릉하(중국 랴오닝성 서부를 흐르는 다링허강), 요하(중국 랴오닝성 중앙부에 있는 랴오허강), 혼하(랴오허강의 지류인 훈허강), 압록강, 청천강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 24~25쪽 <북녘 최초의 나라, 고조선>

신라와 발해가 소원하면서도 서로 경쟁한 이유는 신라가 나당 전쟁 이후 백제 유민은 물론이고 고구려 유민까지 받아들임으로써 삼한, 즉 삼국을 통일했다고 자부한 반면, 발해는 고구려 계승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고구려 유민이 고구려 옛 땅에 세운 발해의 등장은 삼국을 통일했다는 신라의 자부심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 60쪽 <고구려 옛 땅에 세운 나라, 발해>

고려가 천자, 황제를 칭하면서도 한족이나 한족이 아닌 세력이 세운 나라에 사대를 했던 것은 국제 정세에 대한 객관적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고려는 독자적 천하관을 바탕으로 한족이 세운 송을 서국(西國) 또는 남조(南朝), 여진이 세운 요를 북조(北朝)라고 하여 방위에 따라 부르기도 했지만, 송·요·금을 고려와 대등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 93쪽 <해동 천자의 나라 고려의 외교술>

고려는 여진 부락들을 간접 지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요지마다 성곽을 설치하고 남쪽 지역의 백성들을 이주시켜 신개척지를 직접 지배하고자 했다. 이때 고려가 성곽을 설치한 지역에 대해서는 함흥평야설, 길주이남설, 두만강 이남설, 두만강 이북설 등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지금까지도 여러 가설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관련 사료가 명확하지 않고 남북 분단으로 현지 성곽에 대한 발굴 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103~104쪽 <고려와 조선 시대 국경 이야기>

조선 후기에 평양의 경제적 가치는 더욱 커졌다. 외교 관계가 안정되면서 청나라와 무역이 활발해져 평양은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실학자 서유구가 저서 《임원십육지》에 중국 무역에서 얻는 이익이 국내보다 몇 배에 이르며 평양의 번성함이 한양을 능가했다고 표현한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 준다. - 125쪽 <평안감사와 북쪽 최고의 도시 평양>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여진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이 여진인들에게 단행한 최초의 수직(조정에서 외국인에게 관직 임명장을 주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세력은 동북면(함경도 지역)을 기반으로 했고, 고려 유민과 여진인들로 구성된 사병(私兵) 집단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성계의 사병 집단은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했고, 이성계를 도왔던 여진인 이지란이 개국공신에까지 오른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 160쪽 <오랑캐라고 불린 여진>

평안도가 봉기의 선도 지역이 된 것은 광산이 많고, 대외 무역을 통하여 의주 상인, 평양 상인 등 대상인으로 성장한 이가 많았던 점도 주요한 원인이었다. ‘평안감사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란 말은 그만큼 이 지역이 경제적으로 풍요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평안도 지역의 이러한 경제적 선진성은 오히려 중앙 정부로 하여금 수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단군조선·기자조선의 문화 전통을 계승했다고 자부하는 평안도 지역의 자존심마저 지역 차별로 무참히 짓밟혀지는 실정이었다. - 174~175쪽 <1811년 홍경래 난, 평안도 차별에 반기를 들다>

1897년에 조선은 서상무를 서간도로 파견했다. 목적은 서간도 지역의 호구 조사, 한인의 재산 보호와 세금 징수였다. 서상무는 한인이 거주하는 서간도 지역의 토지를 측량해 토지 대장을 작성하고 호구 조사를 하며 간도 지역을 조선의 관할에 두기 위한 기초 작업을 했다. 이에 청은 서상무를 소환하라고 강요했지만, 서간도 지역 한인들은 서상무를 따르고 호전을 납부했다. - 193쪽 <국경을 넘는 사람들>

평안도에서 기독교는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근대 문명 그 자체였다. 기독교는 평안도 사람들의 정서와 이념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그것은 특히 기독교계 학교의 운영에 기초한 것이었다. 1910년에 전국의 사립학교는 2,200여 개였는데, 그중 평안도의 사립학교가 844개로 약 38%를 차지했다. 이 중 장로교와 감리교계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341개로 40%에 이르렀다. - 206쪽 <기독 세상이 된 평안도, 친미 엘리트를 배출하다>

이용악의 시편에 나타나는 북방은 아버지의 제삿날 단 하루만 쉬고 일을 해야만 하는 힘든 삶을 이어가는 곳(<다리 우에서>)이며, 아기의 탄생이 팔아나 먹을 수나 있는 송아지만도 못하고 마침내는 일가족이 무서운 북쪽으로 사라지고만 곳(<낡은 집>)이고, 반도의 남단 전라도에서 여인이 술집 작부로 팔려온 곳(<전라도 가시내>)이다. - 220쪽 <북방을 노래한 북쪽의 시인들>

북쪽은 민족 해방 투쟁에 적극 참여한 사람들이 세운 정권이라는 점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북한 정권이 민족 해방 투쟁에 적극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여 민족 해방 투쟁 과정에서 꿈에도 그리던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 소련 군정이 깊이 개입했다. - 227쪽 <북쪽 정권을 세운 사람들>

목차

머리말
01 북녘 산하, 대륙으로 열린 땅
02 북녘 최초의 나라, 고조선
03 동북아 중심 국가 고구려의 군사력과 외교력
04 고구려 옛 땅에 세운 나라, 발해
05 개성의 호족, 고려를 건국하다
06 서경 천도 운동, 통념을 파괴하라
07 해동 천자의 나라 고려의 외교술
08 고려와 조선 시대 국경 이야기
09 조선을 건국한 북방 출신 이성계와 이지란
10 평안감사와 북쪽 최고의 도시 평양
11 개성과 개성상인
12 북쪽 지역이 겪은 왜란과 호란
13 오랑캐라고 불린 여진
14 1811년 홍경래 난, 평안도 차별에 반기를 들다
15 국경을 넘는 사람들
16 기독 세상이 된 평안도, 친미 엘리트를 배출하다
17 북방을 노래한 북쪽의 시인들
18 북쪽 정권을 세운 사람들
19 평안도에서 내려온 우익 세력
이 책을 집필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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