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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동아일보의 탄생 언론에서 기업으로

장신 저 | 역사비평사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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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6964403 / 320쪽 15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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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개혁의 실패는 혁신으로 동아일보의 개혁, 조선일보의 혁신 동아일보는 김성수의 자본을 기반으로 창간되었지만 창간 초기에는 경영권이 특정 개인에게 집중되지 않았고, 전하는 기사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유심론과 유물론을 오가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였다. 그러나 ‘조선 민중의 표현기관’을 자임하던 동아일보도 자금난을 피해가지 못하고 1921년 주식회사로 발족했다. 주식회사 출범 후 동아일보의 주도층은 대주주 김성수와 그의 의중을 대변하는 사장 송진우로 바뀌었으며, 신문의 논조도 조선의 즉각 독립을 보류하고 현실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운동을 전개한다는 방침을 수용했다. 지면은 창간 정신보다 주식회사의 입장에 충실한 방향으로 나아갔고, 수익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이에 동아일보 내부에서는 경영진과 사원의 갈등이 쌓여가고 외부에서는 동아일보의 개량화와 상업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1924년 이광수의 「민족적 경륜」의 연재는 동아일보에 대한 공개 성토의 계기가 되었다. 마침내 동아일보 기자들은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며 개혁운동을 전개한다. 편집국장에 인선된 홍명희는 개혁 이전의 대주주 입장을 반영하던 동아일보와 명확히 선을 긋고 공리공복을 위한 신문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김성수와 그의 형제들은 주식을 대거 매입하여 소유상의 지배권을 강화했다. 개혁 주체들은 끝내 개혁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퇴사하면서 조선일보로 옮겨갔다. 동아일보 개혁 세력은 조선일보에서 그 뜻을 펼치게 되었고 조선일보 혁신에 들어갔다. 바로 이 혁신을 계기로 조선일보는 그 사사에서 자랑하는,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의 통일전선인 신간회의 기관지가 되었고, 이때의 항일운동을 적극 내세우게 된 것이다. 왜 그들은 소위 '친일'로 나아갔는가? 기업과 샐러리맨으로서 신문사와 기자 저자는 동아일보·조선일보를 민족지와 친일지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보다는 그들이 무엇을 계기로 친일로 나아갔는지를 살펴본다. 1920년대 중반 동아일보의 개혁운동, 조선일보의 혁신운동이 있었음에도 두 언론사는 확실히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친일적으로 노골화했다. 폐간 직전의 논조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와 다를 바 없었다. 신년호 1월 1일 1면에는 일왕 부부의 사진이 실리고 조선총독의 연두사가 실렸다. 친일의 고착화―이는 총독부의 언론 탄압으로 인한 부득이한 것인가, 아니면 타협과 자발에 의한 것인가. 동아일보는 1925년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김성수가 경영권과 편집권을 장악하고, 조선일보는 1933년 방응모에게 인수되고 그의 사장 취임을 계기로 소유주의 언론관이 편집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질적인 경영난은 언론사의 상업화를 부채질했다. 과거 저항의 상징이던 압수나 정간은 기업 경영을 위해 피해야 하며, 광고 유치에 온 힘을 기울였다. 편집국장의 주된 업무는 일제의 검열 수준을 벗어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총독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기사를 좋아한 독자도 만족시켜야 했으므로 한글신문들은 독자와 총독부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야 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던 총독부도 언론사에 천천히 압박을 가하면서 신중했는데, 이 같은 통제정책은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과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180도 전환했다.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조선중앙일보는 사실상의 정간과 다를 바 없는 휴간에 이어 결국 1937년 폐간되었고, 동아일보도 무기정간을 당했다. 폐간과 굴복의 기로에서 동아일보는 주식회사의 파탄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총독부의 「언문신문지면 쇄신요항」을 수용하고 인사 개혁 요구를 받아들였다. 한편 조선일보는 총독부의 탄압이 들어오기 전에 신문사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순응의 길을 택했다.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내에는 민족주의의 지도적 지위를 포기하지 않는 다수의 기자들이 존재했지만, 이미 그들은 신문사에 고용된 샐러리맨에 지나지 않았고, 주식회사의 경영에 관여할 수도 없었다. 언론의 편집방침은 이윤을 얻으려는 기업적 가치에 충실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친일로 나아갔다.

저자 소개

  • 저자 : 장신
저자: 장신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서 「1930·40년대 조선총독부의 사상전향정책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에서 한국근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조선총독부의 사상통제정책과 인사정책, 식민주의사학을 중심으로 한 역사학의 생산과 유통, 동아일보·조선일보의 경영과 편집권의 관계 등을 연구하였다. 진행 중이거나 계획하는 연구는 ‘감시와 미행―한국근현대 요시찰제도의 역사’, ‘명문과 학벌의 탄생’, ‘방응모 평전’ 등이다.

목차

1장. 1920년 대정친목회의 조선일보 창간과 운영
1. 창간 초기 조선일보 연구의 쟁점
2. 대정친목회의 조선일보 창간
3. 대정친목회의 조선일보 경영
4. 실업 없는 ‘실업신문’
5. 판매용 ‘항일’ 신문: ‘광적狂的 신문’의 본질
6. ‘창간 일등신문’의 생존법

2장. 1924년 동아일보 개혁운동과 언론계의 재편
1. 내분과 개혁 사이
2. 주식회사 발족 전후 동아일보 주도층의 변화
3. 동아일보 개혁운동의 전개
4. 개혁운동의 귀결과 언론계의 재편
5. 개혁의 실패는 혁신으로

3장. 1930년대 초 조선일보의 부침과 잡지 『신조선』
1. 『신조선』의 창간
2. 조선일보사의 경영권 다툼
3. 『신조선』의 속간과 재휴간

4장. 일제하 노정일의 언론관과 중앙일보 경영
1. 중앙일보 연구의 필요성
2. 노정일의 생애
3. 노정일의 언론관
4. 노정일의 『중외일보』 인수
5. 노정일의 중앙일보

5장. 1930년대 언론의 상업화와 조선·동아일보의 선택
1. 친일의 계기를 둘러싼 논점
2. 1930년대 초 언론계의 재편과 상업화
3.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의 발생과 동아·『조선중앙일보』의 선택
4. 중일전쟁의 발발과 조선일보
5. 언론에서 기업으로

6장. 조선총독부의 언론통제와 동아일보·조선일보 폐간
1. 의문의 강제 폐간
2. 동아·조선일보의 뒤바뀐 역사
3. 조선총독부의 언론통제 계획
4. 경무국과 조선일보·동아일보의 폐간 협상
5. 명분과 실리, 그리고 역사

부록
자료 소개 238|부록 1: 동아일보사의 『취체역회결의록』 242|부록 2: 조선 언론기관의 통제지도책 293|부록 3: 언문신문통제에 관한 건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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