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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쩌다 어딘가에서 마주치더라도

시리즈 : 걷는사람 시인선 [15]

백애송 저 | 걷는사람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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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1262131 / 126쪽 12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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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백애송 시인에게는 오늘의 체념이 오늘과 다른 미래를 꿈꾸게 하는 동력(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집의 포문을 여는 첫 시 「쟁반」에서 “아직 봄은 오지 않았고/초록이 되기에는/많은 날들이 녹아야 한다”고 했던 시인은, 시집의 후반부에서 “가까운 미래가 나의 봄과/너의 봄을/씩씩하게 찾는다면”(「연쇄적 사건」), “스스로 깨어나지 기지개를 켜지”(「겨울잠에서 깨어날 때」)라는 긍정적 태도로 변모한다. 이렇듯 시인 백애송은 “살아 있는 모험”을 하게 된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체념, 그들의 고통, 그들의 기다림, 그들의 죽음을 고스란히 받아 적으며 ‘미라’로 남아 있는 시간을 해부한다. 해설을 쓴 장은영 평론가가 말하듯 시를 쓰는 행위란,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세상에 왔다 간 비정규직”(「돌의 기운을 누르고」)임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위태로운 생계를 이야기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돌의 기운과 뿌리의 기운들이 모여” 우리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밟”지만 누군가의 자살이라는 “오해”가 사회적 죽음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죽은 단어들의 의미를 다시 살려내는 일이 바로 ‘시 쓰기’라는 것. 그런 점에서 “아무렇지 않게 방치되는 사회적 죽음 앞에서 백애송이 시인으로서 보여 주는 입장은 단호하고 분명”하며, 다음 시에서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만나자고 하는 약속은 “‘우리’가 도착한 적 없는 미래가 저 앞에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을 때, 비로소 지켜질 것이다.” 다음에는 더 아름다운 곳에서 오늘처럼 예고 없이 만나자고요 우리는 어디까지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부분

저자 소개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호남투데이』 신춘문예에 시 「바다 미용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논문으로 「이성부 시에 나타난 공간 의식 연구」 「이성부 시에 나타난 지리산의 공간 의식 연구」 등이 있다. 현재 광주대학교 강사로 있다.


 

머리말

시인의 말

꽃을 보러 갔다가
앞사람의 발자국만 보고 왔다

뜨거운 기운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꽃을 보러 갔다가
꽃송이는 없고

떨어진 나만 보고 왔다

책 속에서

어떤 페이지에서
마음, 이라고 읽으려다
그 사람이 왔다고 착각했다

견딘다는 것은
체념과 또 다른 체념을
몸에 익히는 것

기대와 체념을 반복하는 것

혼자 중얼거리며 위로했다
─「어떤 페이지」 부분

우리는 세상에 왔다 간 비정규직

덜 자란 시간이
주저앉은 마음을 다독일 수 있을까

취한 도로에는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사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해 질 녘 실그림자로 이어진다

상처 주지 말아요
상처 받지 말아요
─「돌의 기운을 누르고」 부분

눈물을 흘려도 하루가 지나가고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하루는 지나간다

가끔 어느 것이
더 괜찮은 것인지 모호할 때가 있지만

어느 것이 더 잘 사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가는 것

눈물에는 악착같은 이동경로가 있을까
─「눈물의 이동경로」 부분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간절한 밤, 우리에게는 통역관이 필요합니다 쎄라비와 샐러드의 사이를 가늠하다 우울에 빠졌습니다 심심한 집이 싱싱한 집으로 불리는 순간 입안에서 초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심심함 그리고 싱싱함, 그레이와 초록 사이에 징검돌을 놓았습니다 그레이는 점점 검은색에 가까워지고 초록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날개의 행방은 찾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후가 가진 마음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 깊고 큰 눈 속에 질문을 가득 날렸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한참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른 것이 있습니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속도입니다 바닷물의 말은 조절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들이 바다 위에 뿌려 놓은 거품 같은 언어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통역관이 필요합니다」 전문

그 길을 지나왔지만 지나온 길에 흔적을 남길 수 없었다 귓가에 쏟아지는 별들의 멜로디는 가지런하지 못하다

가까이 있으나 도착해야 할 지점은 멀다 넘어온 고비도 넘어야 할 고비도 모두 내 안의 이야기

옆으로 보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적고 있는지 정면으로 바라보는 세상과는 다름의 다른 이름이다

무표정이 최선이라는 믿음은 서로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한다 허기진 생각만 자라난다 나를 발견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서

여전히 나는 오늘 당신 이야기의 다름이다
─「점성술사」 전문

어쩌다 어딘가에서 마주치더라도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

이 긴장은 참 쓸쓸해요

미리 준비했던 표현은 오늘도 하지 못했어요
했어야 했던 말 피했어야 했던 말

돌아서면 생각이 나요
내가 한 이야기가 옳은지
기억에 없어요

서로의 등을 하염없이 바라봐요
뒷모습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속삭여요

다음에는 더 아름다운 곳에서
오늘처럼 예고 없이 만나자고요

우리는 어디까지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전문

한쪽 면을 나란히 보고 앉은
등의 이력들
오이를 물에 데칠 것인가
소금에 절일 것인가

(중략)

때론 의미 없는 말이
가시가 되어 등에 박히기도 한다
가만히 두면 저 혼자
슬그머니 사라진다

땀에 절여지는 우둘투둘한 시간
팔십사 도의 편백나무 속에서
쪼글쪼글 절여진다

생의 번호를 손목에 차고
등들이 등끼리 속닥인다
물인지 소주인지
데칠 것인지 절일 것인지

가시에 찔린 자국에서
하얀 피가 흐른다

물에 취해 비틀거리는 한낮
─「장아찌 담그기」 부분

 

목차

1부 새들이 머무르다 종종 날개를 잃어버리는
쟁반
샤브티
눈길이 먼저 닿고 말았다
나무와 구름
더 이상 운세를 보지 않기로 하였다
어떤 페이지
별책부록
역주행
닿지 못하는 거리
마음의 구석
돌탑
미니멀리즘
돌의 기운을 누르고

2부 슬픔을 불러야 한다면
뒷모습
시간
눈물의 이동경로
잎샘
부분집합
통역관이 필요합니다
틈
입맞춤
유리날개
소리들은 자라났다 사라지길 반복했지
신호의 영역
그런 날이 있었지
그림자

3부 나는 당신을 모르고 당신은 나를 모르고
점성술사
발이 시린 계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불혹의 문장
카오스
부고가 날아오는 계절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
노멀크러시
해파리꽃
선인장
레드썬

4부 다정한 슬픔이 온 날
나비
봄바람
시간을 건너오는 방법
뿌리의 시간
연쇄적 사건
다정한 슬픔
장아찌 담그기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듯
바이러스
계절의 끝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리수리 코끼리
예고편

해설
오늘의 체념, 내일의 약속
-장은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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