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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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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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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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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비하면 나약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들의 믿음은 위태롭고 현실에 대한 인식은 혼란스럽다. 오늘날 교회들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도인들이 심오하고 예리한 파람한사 요가난다의 주석註釋에 주목할 필요가 절실해졌다. 왜냐하면 그의 깊은 통찰이 정통 그리스도교 울타리 ‘밖’에서 온 것이기에, 오랜 신학적 논쟁으로 흐려지지 않은 안목의 신선함과 선명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p.105) 파람한사 요가난다는 오늘날의 왜곡된 그리스도교(Christianity)를 ‘교회교(Churchianity)’라고 비판한다. ‘그리스도교’는 영원한 진실에 뿌리내리고 절대 불변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인데 반해 ‘교회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그 속에 지혜가 결핍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 과학이 오랜 세월 ‘교회교’가 주장해온 신화의 장막을 환히 걷어내는 오늘날에는 그로 인해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가 위협받는 실정이다. 이에 요가난다는 깨달은 사람(성자聖者)의 지혜에 바탕을 둔,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오리지널 그리스도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부름받은 요기yogi 파람한사 요가난다는 어린 시절 영적인 수련의 세계로 입문해 오랫동안 미션mission을 준비해온 사람이다. 어느 날 히말라야의 큰 구루Guru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서양 세계로 제자 하나를 보낼 것을 명했다고 한다. 그 제자는 요가난다였고, 그의 소명은 예수가 전하고자 했던 진짜 가르침을 서양에 다시, 새롭게 전하는 것이었다. 요가난다는 이미 오래 전, 히말라야 구루들의 인맥을 통해 예정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서양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경험으로서의 신앙에 초점을 맞춘 가르침을 펼치기 시작했다. “과연 ‘믿음’이면 충분한가? 사람들은 한때 지구가 판판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믿었다 해서 지구가 판판해지는가? 인간의 믿음이 무언가의 진실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과학이 확실하게 입증했다. 오늘날 대중 속에서 그리스도교가 삼류 세력으로 서서히 내려앉는 것은 ‘믿음’을 좋은 그리스도인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믿음은 진실을 추구하는 일의 시작일 뿐이다. 믿음은 가설이다. 인간의 어떤 희망이나 기대를 입증하려면 그럴 동기가 필요하다. 가설이 먼저 있고 실험이 그 뒤를 따른다. 하지만 ‘입증’은 가설(이 경우에는 ‘믿음’)을 정확하게 실험한 후에야 오는 것이다.”(p.22) 오렌지색 힌두Hindu 스와미swami(승려) 복장을 한 그리스도교 선교사, 그리스도교 국가로 파송된 이방인 요가난다의 메시지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계에 깊은 감화를 주었다. 그가 서양의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전하려던 메시지는 덮어놓고 성경과 교회의 권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神, 그 하느님과 통교하며 우리 자신도 그분과 하나라는 사실을 일깨우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예수가 말했던 ‘온전한’ 존재로, 예수가 그러했듯 ‘하느님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말의 본뜻이었다. 요가난다는 사람들이 작은 자아를 내려놓고 무한한 사랑을 향해 가슴이 열리도록 돕는 일을 소명과 영광으로 여겼고, 종교와 학문의 경계를 넘어 변하지 않는 그리스도 진리의 보편성을 설파했다. 또한 종교와 이념, 인종과 문화를 초월한 단체를 설립해 요가와 명상 등의 개인적인 수련을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출간된 『요가난다, 영혼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a Yogi』은 전쟁으로 길을 잃고 피폐해진 사람들의 크나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요가난다가 사후 이 책 『그리스도의 계시들』을 집필한 스와미 크리야난다 역시 청년 시절 그 책을 읽고 단숨에 대륙을 가로질러 요가난다의 제자가 된 서양인이었다. 그리스도교를 넘어선 그리스도교 책의 후반부에 펼쳐지는 요가난다의 그리스도교 해설에 앞서, 전반부는 스와미 크리야난다가 요가난다의 메시지를 개괄하고, 현 상황을 진단하며, 요가난다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기본 지식과 개념을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 1부는 다양한 관점에 열려있는 그리스도교인들이라면 들어보았음직한 개념과 내용을 다루는 데 반해, 2부 요가난다의 본격 메시지는 비교?敎적, 밀교密敎적 특성이 짙게 드러난다. (저자 스와미 크리야난다는 ‘헤엄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익숙한 성경 구절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일은 단순한 흥미를 넘어 시야가 확장되는 경험일 수도 있다. “바로 이 점진적 깨달음이 고요한 명상의 '광야'에서 이루어진다. 모세가 그랬듯이, 쿤달리니kundalini가 척추 맨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미망에 속지 않는다. 모세 또한 깨어난 뒤에 아래로 끌어내리는 세속적 욕망의 뱀들에게 물린 사람들을 미망의 독毒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었다.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놓았다. 그것이 움직일 때 뱀한테 물린 자들이 그것을 쳐다보면 살았다.’” (p.230)? 이 책에는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만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낯선 이야기도 제법 담겨있다. 밀교에 가까운 크리야Kriya 요가 수행법이나, 공생애 전까지 예수의 성장기가 성경에 누락된 이유 등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쓰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혹 전체 메시지에 대한 신뢰 문제로 번질 만큼 민감할 수도 있음을 저자 또한 인지하고 있다. 저자 스와미 크리야난다는 그 사실을 충분히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자신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스승 요가난다의 대범하고 거침없는 표현들을 한결같은 존경과 헌신의 자세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신을 담아 전하고 있다. ‘영원한 진실’은 하나이며 나머지는 그 영원한 진실의 서로 다른 표현일 뿐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그 신앙이 더욱 확장되고 깊어지는 계기를 제공해줄 것이다. 우리가 알던 그리스도교에서 우리가 모르던 그리스도교로, 그리스도교 너머의 그리스도교로, 나아가 ‘영원한 진실’로 서로 다른 표현에 불과한 모든 것을 품어볼 계기. ‘이것 아니면 저것’보다는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라는 유연한 토대에 서있다면 이 두 관점을 통합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어쩌면 꽤나 흥미로울지도 모른다.
종교의 진실은 얼마든지 실험하고 입증될 수 있는 것이다. 입증은 경험이라는 잣대로 이루어진다. 이 말이 너무 단순하게 들리는가? 잠시 생각해보자. 무엇이 영적 진실을 실험한다는 것인가? 에고의 흔적을 자신의 삶에서 철저히 추방하여, 잠시만이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느님 한 분이시고, 그분 홀로 모든 일을 하신다.’는 진실을 깨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를 진지하게 해본 사람이라면 자기가 당면한 도전이 자신에게 영웅적인 정신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머잖아 발견할 것이다.
-「불리한 여건들」중
한번은 미국에서 파람한사 요가난다가 오렌지색 스와미 복장으로 열차를 탔다. 마침 같은 열차에 동승했던 그리스도교 설교자가 ‘이교도’ 를 보고 큰소리로 물었다. “당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소?” 요가난다가 답했다. “아, 예. 믿습니다.” 어? 이건 기대했던 답이 아니잖은가? 그가 다시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유일한 구주로 영접했다고?”
스와미가 조용한 어조로 답했다. “나는 하느님을 내 구주로 모십니다. 그분이 예수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성취한 여러 아들들을 이곳에 보내시어 당신의 구원역사役事를 이루신다고 나는 믿어요.”
그러면 그렇지! 설교자가 성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주로 영접하지 않으면 당신, 지옥에 떨어질 거요!”(그날 열차에 탄 사람들 모두가 둘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나라에 파송된 그리스도교 선교사가 그에게 말했다. “글쎄, 나는 어쩌다가 그리로 가게 될지 모르겠으나, 당신은 벌써 가있군요?” 그 성난 얼굴이 지금 자기가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평화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열차 안 사람들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인가」 중
모든 종교의 신자들 거의 대부분이 교조敎祖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붓다가 인생의 목표를 ‘니르바나nirvana’에 두었기 때문에 신神의 존재를 부인했다고 주장하는 불자佛子들이 많다. 대부분 불교 신자에게는 그것이 인간의 의식을 비롯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영구적인 소멸, 달리 말해서 영원한 무無(nothingness)를 의미한다. 하지만 어떤 뜻으로도 붓다가 제자들에게 받아들이라고 한 것이 ‘무無’는 아니라는 게 우리 구루의 설명이다. 무의식을 가장 높은 진실로 믿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어떻게 무언가가 ‘무’에서 나온단 말인가? 붓다의 자비와 연민이 어떻게 무감각에서 나온단 말인가? 본질적인 무의식의 표출과는 거리가 먼 ‘의식’이 전체 우주를 떠받드는 실재다. 의식은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것이 스스로 저를 나타낼 따름이다. 다시 말하지만, 잘 알려진 붓다의 자비는 결코 무감각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다. 불교 신자들이 말하는 무신론은 교조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일 뿐이다.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인가」 중
정확하게 똑같은 눈송이 두 개는 없다고 한다. 하느님은 저마다 다른 원자들, 요가난다의 말대로 ‘개성을 부여받은’ 원자들 속에 중심을 두실 뿐 아니라 저마다 다른 모든 사람을 통해 당신의 특별한 선율을 노래하신다. 그 어떤 영적 스승도 다른 스승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신성한 영을 표현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 모두가 신성한 완전함, 예컨대 우주 보편적이고 어느 한 인간의 사유물일 수 없는 완전한 사랑의 본질을 표현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스승들이 신성한 영을 표현하는 방법은 저마다 독특하다.
-「과연, 예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중
진실은, 깊은 요가 수련으로 겪는 체험이 세계 도처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들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요기가 깊은 명상으로 경험하는 수준 높은 의식의 경지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나 아빌라의 성 테레사가 경험한 신비경과 같은 것이다. 어느 시대나 진지한 구도자들은 하느님을 사랑했고 그분과 통교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혀 새롭고 특별한 계시를 인류에게 전했다고는 할 수 없다. 정말 그렇다면 그의 가르침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진실은 ‘사나아탄’, 곧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가리키는 이름」 중
한 사람의 영성을 입증할 수 있는 건 과연 그가 신성하고 나 없는(selfless) 절대 사랑에 황홀하게 흡수당했느냐다. 앞서 말했지만 그런 영성은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무無집착, 나 없는 사랑, 조건 없는 친절과 고요와 용서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지극한 행복으로 나타난다.
-「어디서부터 바로잡을 것인가」 중
‘영원한 종교’를 가르치신 예수께서는 당시 유대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술어로 그것을 설명하셨다. 예를 들어, 그분은 ‘마야’의 우주적 힘을 ‘사탄’으로 칭하고, 그것이 인간을 추락시킨 의식하는 힘(conscious force)이라고 가르치셨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마야’에 대한 인도 스승들의 가르침과 겉으로는 다르지만 속에 담긴 진실은 다르지 않다. 마야도 사탄도 특별한 어떤 존재가 아니라 보편적인 실재의 의식하는 힘이다. 창조된 것들 가운데 의식 없는(unconscious)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나아탄 다르마의 한 얼굴인 힌두교는 모든 사람을 미망에 빠뜨리는 마야의 우주적 힘보다 주관적인 미혹을 더 강조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탄의 영향력은 개별적인 게 아니라 우주 보편적인 것이다. 다소 덜 노골적이지만 힌두교도 그렇게 가르친다.
-「새 포도주」 중
소개의 글 / 들어가는 말
[제1부] 바탕
제1장 불리한 여건들 / 제2장 진실을 가리키는 이름 / 제3장 참 종교 대對 거짓 종교(1) / 제4장 참 종교 대對 거짓 종교(2) / 제5장 종교의 목적 / 제6장 정도程度(degrees)의 문제 / 제7장 종교와 가슴 / 제8장 어디서부터 바로잡을 것인가? / 제9장 무엇이 하느님인가? / 제10장 누가 우리인가? / 제11장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인가? / 제12장 과연, 예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 제13장 사람 아들 대對 하느님 아들 / 제14장 사탄은 존재하는가? / 제15장 새로운 계시
[제2부]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있는 원석原石들
제16장 모든 것이 어떻게 비롯되었나? / 제17장 척추대로脊椎大路 / 제18장 뱀의 힘 / 제19장 인격적 구주의 필요성 / 제20장 새 포도주 / 제21장 하느님만이 구원하신다 / 제22장 우주 역사의 여러 세대들 / 제23장 잃어버린 시절 / 제24장 나오는 말
역자후기 / 추천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