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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고 - 잊혀진 제국 발해를 찾아서

시리즈 : 오래된 책방 [18]

유득공 저 | 정진헌 역 | 서해문집 | 200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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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8974832739 / 167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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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우리 사학사에서 최초로 발해사를 체계화시킨 조선시대 실학자 유득공의 저작이 완역되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 책 수십 종을 참고하여 발해의 역사를 기록하며, 발해를 우리 역사에 최초로 포함시킨 책이다. 유득공은 이 책에서 고려가 발해까지 우리역사에 넣어 남북국사를 쓰지 않았던 점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발해영토를 되찾으려해도 근거가 없어져버렸다고 통탄한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한국사의 판도를 만주 일대로 확장한 최초의 저서 『발해고』 『발해고』를 쓴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발해고의 서문에서 “고려가 발해사를 짓지 않아 고려가 끝내 약소국이 된 것”이라며 “참말로 한탄스럽다”고 일갈했다. 고구려의 후예 국가인 발해가 멸망하면서 만주 대륙은 우리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영토가 되고 말았다. 유득공은 이러한 상황을 개탄하며 민족사의 무대를 한반도로 가두고, 중국의 시선으로 역사를 보던 당시의 풍토를 비판했다. 당시 실학자들에게는 이처럼 기존의 시야를 넘어 ... 한국사의 판도를 만주 일대로 확장한 최초의 저서 『발해고』 『발해고』를 쓴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발해고의 서문에서 “고려가 발해사를 짓지 않아 고려가 끝내 약소국이 된 것”이라며 “참말로 한탄스럽다”고 일갈했다. 고구려의 후예 국가인 발해가 멸망하면서 만주 대륙은 우리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영토가 되고 말았다. 유득공은 이러한 상황을 개탄하며 민족사의 무대를 한반도로 가두고, 중국의 시선으로 역사를 보던 당시의 풍토를 비판했다. 당시 실학자들에게는 이처럼 기존의 시야를 넘어 역사를 널리 확장해서 보자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는데, 박제가도 이 책의 서문에서 “압록강 밖으로 한걸음도 내딛지 못했”던 역사를 한탄하며 이 저술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동북공정으로 중국이 우리의 북방사를 자기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고 고대사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상항에서 유득공의 『발해고』는 우리 후손들이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렇다고 만주 땅이 우리 땅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제대로 밝히고 증명하고 정리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유득공의 저술이 의미 있는 것은 이 저술이 감정적 언사나 주장으로 치장된 것이 아니라 당시 실학 시대의 영향으로 옛 문헌에 대한 고증과 나름의 과학적인 지명 추적 등으로 확실한 증거를 통해 이 저술을 완성한 점에 있다. 고증과 실증을 통해 완성된『발해고』 유득공은 서문을 마무리하면서 이 저술을 “사史라고 자처하지 못하고 고考라고 한 것은 사서로서 체계를 못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스스로 이 저술이 가진 사서로서의 부족함을 토로한 것인데, 그 부족함이란 유득공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즉 사서가 남겨져야 했던 시점이 한참 지난 후대에 씌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그리하여 유득공은 고려에 저술되어야 마땅한 것이 조선 후기에 와서야 씌어진 것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유득공은 한탄만 하지 않는다. 발해가 언급된 무수한 사서들을 국적을 가리지 않고 참조하면서 발해사를 다시 쓰려 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발해와 관련된 사실史實들은 그의 검증 작업을 통해 체계화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서자 출신임에도 능력을 인정하고 등용한 정조의 배려에 의해 가능했다. 정조는 유득공에게 평생 방대한 문헌들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검서관 직함을 맡겼는데, 이것이야말로 『발해고』 저술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유득공은 수차례 중국을 다녀오며 옛 문헌에서 확실한 증거를 찾아 이론을 만들어 나가는 고증학이라는 선진 문물을 접한 후 그 선진적 방법을 사용하여 『발해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남북국 시대론의 효시가 된 『발해고』 현재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과거의 ‘통일신라 시대’라는 용어 대신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남북국 시대는 유득공이 최초로 만들어낸 개념으로, 발해를 우리 역사 속으로 편입시킨 개념이다. 이 용어가 교과서에도 사용된 것은 유득공의 역사 인식이 타당성을 갖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유득공은 우리나라의 통일은 신라에서도 고려에서도 조선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았다. 신라와 발해가 양립했던 남북국 시대 이후 발해의 영토는 대부분 여진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통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역사의식은 중국 중심의 시각에서 자유로운, 한국사의 무대를 북방 만주 대륙으로 확대하여 바라보았던 조선 후기의 역사가인 안정복이나 김정호 등 학자들의 인식 체계에 바탕이 됐으며,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며 우리 역사 인식에 근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저자 소개

1748년(영조 24년)에 서얼로 태어났다. 1779년(정조 3년) 박제가·이덕무·서이수와 함께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에 임명되었다.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고, 1800년 그를 아끼던 정조가 승하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다가 1807년(순조 7년)에 60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발해고(渤海考)》,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사군지(四郡志)》 등 문학과 역사, 지리, 풍속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저술을 남겼다.


 

역자 소개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나 경희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실학 시대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고, 그중에서도 유득공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논문으로 '영재 유득공의 생애와 업적', '발해 주민 구성의 신해석', '유득공의 남북국시대론에 대한 인식', '유득공의 역사 인식'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실학자 유득공의 고대사 인식>이 있다.

책 속에서

고려가 발해사를 짓지 않은 것을 보아, 고려가 부진했음을 알 수 있다. 옛날에 고 씨가 북쪽에 있었으니 곧 고구려요, 부여 씨가 서남쪽에 있었으니 백제요, 박 씨, 석 씨, 김 씨가 동남쪽에 살았으니 곧 신라다. 이것이 삼국이다. 삼국사가 있어야 마땅한데 고려가 이것을 지은 것은 옳다. 부여 씨가 망하고 고 씨가 망하자 김 씨는 남쪽을 차지했고, 대 씨는 그 북쪽을 차지하고서 이름을 발해라고 했는데, 이것이 남북국이다. 그러니 마땅히 남북국사가 있어야 하는데도 고려가 이를 쓰지 않았으니 잘못이다. - 유득공의 서문 중에서

 

 

목차

목차
글을 시작하기 전에
유득공과 에 대하여
박제가의 서문
유득공의 서문
인용한 문헌
발해의 역대 임금(君考)
발해의 신하들(臣考)
발해의 지리(地理考)
발해의 관직(職官考)
발해의 의장(儀章考)
발해의 특산물(物産考)
발해의 언어(國語考)
발해의 외교 문서(國書考)
발해의 후예(屬國考)
유득공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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