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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법 원리

William Geldart 저 | 박홍규 역 | 박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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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30310084 / 300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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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오랫동안 영국법을 강의한 윌리엄 마틴 젤다트(William Martin Geldart, 1870~1922) 교수의 명저 󰡔영국법 원리󰡕(Elements of English Law)의 번역이다. 1911년에 초판이 나온 그 책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영국법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고전으로 꼽혀 계속 간행되어 왔다. 최근에는 󰡔영국법 입문󰡕(Introduction to English Law)이라는 제목으로 옥스퍼드대학교 출판사(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11판을 거듭하고 있다. 편집자는 버킹엄대학교 교수이자 저명한 법정변호사인 데이빗 야들리(David Yardley) 경이다. 우리말 번역의 대상으로 삼은 책은 가장 최신판인 1995년에 나온 11판이다. 이 11판은 1973년 영국의 유럽공동체 가입 이후 근본적으로 변한 영국법의 최근 동향을 담고 있으므로 그 이전 판과는 내용에서 많은 변화를 보인다.
이 책은 영국법의 고전으로서 갖는 가치 외에도 최근의 법의 세계화 현상과 함께 영국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상황에서 영국법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좋은 텍스트일 수 있다. 특히 앵글로 색슨 시대 이후 수만 쪽에 이르는 제정법과 4천 권이 넘는 판결록에 이르는 방대한 영국법을 250여 쪽 정도로 간결하게 정리한 탓에 영국의 법학도나 법률가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법률가들에게 필수적인 문헌으로 손꼽혀 왔다. 이 책은 앞으로도 영국법 이해에 기본적인 도서로 유용할 것이고 법학도만이 아니라 영미법 지역에 무역을 한다거나 여행을 하는 일반인들에게도 영미법의 원리를 이해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일찍부터 명성을 쌓아 영국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영미법 국가에서 널리 읽혔고, 일본과 한국 등에서도 일찍부터 번역되었다. 일본에서의 최초 번역은 江家義男이 2판을 번역하여 1931년에 낸 것이었다. 이어 末延三次가 6판을 번역하여 1960년에, 그리고 末延三次와 木下穀이 8판을 번역하여 1981년에 東京大學出版會에서 각각 내었다. 한편 한국에서는 서희원이 5판을 번역하여 1958년 민중서관에서, 백상건과 이봉이 같은 5판을 번역하여 1960년에 박영사에서 각각 냈다. 1960년 이후 1980년까지 신판이 계속 번역되어 간행된 일본에 비해 한국에서는 5판 번역에 그쳤다.
나는 1981년부터 창원대학교 법학부, 1991년부터 영남대학교 법학부 등에서 영미법과 영서강독을 강의하면서 이 책을 교재로 사용하여 왔고 영미법에 관련된 논문을 쓰면서도 항상 이 책을 이용했다. 그러나 이 책은 영국 민형법의 설명에 치중되어 있어서(그 설명은 2019년까지도 대체로 유효하다) 법문화나 헌법 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또 1995년까지의 법제도 설명에 그치고 있으므로 그 후 지금까지 20여 년의 변화에 대해 알 수 없다. 이런 문제점을 보충하기 위해 아래에서 현재까지의 영국법과 사법제도 등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 전에 영국 사회와 역사 및 전통을 설명하고 다른 나라의 법과 영국법의 비교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본다.
영국법의 성립과 역사에 대한 인식은 영국법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사항이지만 그것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가능한 한 간단하게 다룰 것이다. 코먼로나 에퀴티 등에 대한 더욱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면 더 상세한 영국법 관련서를 살펴보기 바란다.


1. 영국법 공부의 의의

외국을 모르면 자국을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외국법을 모르면 자국법을 알 수 없다. 자국법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날 수 없다. 외국법 공부를 통하여 우리는 자국법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관점을 갖게 되며, 우리의 법을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다. 여기서 법이라고 하는 것은 헌법이나 민형법과 같은 실정법 분야만이 아니라 재판제도나 법률가제도를 포함하는 법문화나 법사상까지도 포함하는 의미이다.
그러나 종래 한국의 법학부나 로스쿨에서 그러한 외국법의 공부가 충분했다고 할 수 없다. 특히 세계의 양대 법계를 구성하는 영미법에 대한 공부, 그리고 그 기본인 영국법에 대한 공부가 충분했다고 할 수 없다. 공부를 위한 기본 전제인 연구도 충분하지 못했다. 해방 후 지금까지 70여 년이 흘렀지만 영국법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서나 단행본 하나 나온 적이 없다. 1960년까지 나온 거의 유일한 단행본이 이 책의 번역이다. 이는 한국의 국제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1960년 이후인 것을 고려하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1960년 이후부터 새롭게 번역되지 못했고, 다른 번역서나 국내 저술도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책의 번역이 절실했는데, 이후 60년 만에 나오는 이 책의 새로운 번역이 한국에서는 거의 유일한 영국법 개론서이다.
영국법에 대한 공부는 영국법만이 아니라 지난 6세기 동안의 대영제국 활동을 통해 식민지 등으로 영향을 받은 많은 나라들, 즉 19세기 말까지 전 세계의 5분의 1 이상의 토지를 차지한 대영제국에 속한 여러 나라들인 미국, 캐나다(프랑스 식민지였던 퀘벡 제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그리고 아시아의 인도, 싱가포르, 홍콩, 아프리카 여러 나라 등의 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령 영국법의 중요한 특징인 판례법주의를 그러한 나라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법의 기본적인 부분이 법전이 아니라 판례에 있는 판례법주의는, 재판을 할 때 한국과 같은 법전이 아니라 방대한 수의 법원 판결에서 유사한 사건들을 찾아 그 원칙이 되는 판결 이유(ratio decidendi)를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는 영국인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영국에는 13세기부터 전국적인 법원이 설치되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법이 발견되었고 그것을 판례법에 수록해 왔다. 이러한 역사를 알아야 영국에서 판례법주의를 취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성문법주의를 취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판례법주의를 비판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판례법주의나 그것에 대응되는 성문법주의에는 각각 그것이 형성된 역사적 이유가 있고, 그 제도의 운용에는 장단점이 있다. 우리의 성문법주의가 절대적으로 옳다고도 할 수 없다.
또한 재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실인정을 완전히 시민에게 맡기는 배심재판제도도 영국법에 특유한 것이다. 그러한 배심제도에 대해서도 한국에서는 비판이 있었고, 사법민주화의 일환으로 그 채택을 주장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반대가 극심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나라에서도 199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을 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영국법의 배심제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고, 그 시행도 극히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다. 영국의 배심제를 우리가 그대로 가져올 필요도, 가져올 수도 없지만 현재와 같은 기형적인 국민참여재판 제도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어서 이를 다시금 그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배심제에 비추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배심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 러시아, 스페인, 벨기에 등에서도 채택되고 있다.
영국법의 또 다른 특징인 의회주권도 대통령제를 취하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배심제와 마찬가지로 의회주권도 국왕의 전제정치를 방지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지 추상적인 정치이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21세기에 들어서 영국에서는 종래의 대법원이었던 상원을 대신하여 새로운 대법원을 신설하는 등의 대개혁에 의해 의회주권에 대한 제한이 행해졌지만 이 역시 역사적인 논의 과정을 거친 것이지 어떤 이상적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실정법 차원에서도 한국법은 영국법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다. 가령 헌법에 규정된 죄형법정주의는 1215년 영국에서 제정된 마그나 카르타(Magna Charta)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마그나 카르타에 대한 연구는 한국 헌법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8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 마그나 카르타가 제대로 연구되거나 학생들에게 충분히 교육되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영미법 강의 시간에 상세하게 설명했을 뿐 아니라, 연구실 벽에 붙여 두고 오가는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2. 영국의 사회와 법

⑴ 영국
우리가 말하는 영국이란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를 포함하는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UK)를 말한다. 이를 ‘연합왕국’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한국에서 그것을 ‘영국’이라 부르는 것은 ‘연합왕국’의 구성국인 잉글랜드의 한자 표기에서 나온 것이다. 즉 잉글랜드(England)의 잉(Eng-)을 음역(音譯)한 것이 한자의 영(英: 중국어 발음이 Yīng)이고, 랜드(-land)를 의역한 것이 국(國)이다. 이처럼 영국이라는 말은 잉글랜드를 중국식으로 표기한 것이니 우리는 우리식으로 달리 부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영국으로 표기하겠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각각 독립한 나라로서 그 자신의 군주와 정치적인 구조를 가지며 9세기부터 존재해 왔다. 웨일스는 1284년에 <러들랜 법>(Statute of Rhuddlan)에 따라 잉글랜드 왕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1536년과 1542년의 <연합법>(Act of Union)에 의해 정치적, 행정적, 법적으로 통합되었다. 이어 1707년 연합법(Acts of Union)에 의해 스코틀랜드와 합병하였다. 이로써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형태로 정치적 연합이 이루어졌다.
그 뒤 1800년 <연합법>(Act of Union)에 의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에 아일랜드 왕국이 병합되었다. 당시 아일랜드는 <리머릭 조약>(Treaty of Limerick)에 따라 1541년부터 1691년까지 점차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아 가던 상태였다. 그에 따라 1801년에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성립하였다.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 독립은 2년 전에 아일랜드 섬의 분할에 따른 결과며, 얼스터 지방(province)의 9개 주(county) 가운데 6개 주가, 1927년에 현재 이름으로 바뀐 영국령으로 남겨졌다.
영국의 법체계는 3개, 즉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 나누어져 있다. 이 책에서 영국법(English Law)이라고 함은 주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법을 뜻한다. 반면 스코틀랜드는 독자성이 강하여 스코틀랜드법(Scots law)은 잉글랜드법과 구별된다. 북아일랜드는 법적으로 잉글랜드법의 영향이 강하지만 그것과 상이한 법체계를 갖는다. 그러나 영국은 연방제 국가가 아니라 단일제 국가이다. 영국의 중앙 의회인 웨스트민스터 의회는 법적 주권체로서 세 법 체계에 공히 적용되는 법을 제정할 수 있다.
현재의 영국은 이상과 같지만, 1960년대 이전의 영국은 대영 제국(British Empire)으로 불렸다. 그것은 15세기부터 영국인을 포함한 유럽인들이 해양을 통해 유럽 밖으로 진출한 대항해 시대 이후 1931년 영국 연방이 성립할 때까지 영국에 복속되거나 영국이 건설한 세계 각지의 식민지와 통치 지역을 거느린 제국을 일컫는 말이었다. 1921년 당시 전 세계 인구와 인구의 약 4분의 1을 지배한 영국은 가장 거대한 식민지를 차지하고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영토(식민지 포함)를 가진 나라가 되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1,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영국 본토인 그레이트브리튼 섬과 북아일랜드, 잔류 해외 영토 등을 제외한 대부분이 독립하여 영국 연방의 형태로 남아 있다.

⑵ 영국, 민주주의, 계급
흔히 영국을 민주주의가 가장 먼저 발달한 나라라고 하지만 2018년 영국의 보수적인 잡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세계 167개국을 상대로 조사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에 의하면 영국은 14위에 그치고 있다. 노르웨이 1위를 비롯하여 수위권인 북구권 국가들을 위시하여 독일 13위, 한국 21위, 일본 22위, 프랑스 29위, 대만 32위로 대륙법 국가들인 반면, 영미법 국가들은 뉴질랜드 4위, 캐나다 6위, 아일랜드 7위, 호주 9위, 미국 25위, 남아연방 40위, 인도 41위를 차지했다. 이를 보면 영미법과 대륙법이라는 법체계의 구별은 반드시 민주주의 지수와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과는 대체로 일치한다. 예외가 있다면 국민소득 6위인 미국과 거의 바닥 순위인 인도 정도다. 물론 미국보다는 인도가 더 놀랍다. 가난과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위의 조사는 선거절차 및 다원주의, 시민의 권리, 정부의 기능, 정치참여, 정치문화라는 다섯 가지 범주로 평가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 순서에 대해 납득은 가지만, 왕이 엄존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인 영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영국의 왕이나 일본의 천황을 흔히 실권이 없는 상징적 존재라고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 보면 상징적 존재라는 것이 참으로 무서운 것임을 알게 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왕을 싫어하지만, ‘일본이 폐위시킨 조선의 왕세자를 해방 직후에 한국에 데려와 상징적 존재인 왕으로 복귀시켰다면 남북이 분단되었을까’라고 상상해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왕의 상징성은 크다고 본다. 영국에서는 형사사건을 재판할 때 ‘국왕 대 피고인’이라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이는 국왕이 정의의 원천이자 근거임을 말하는 것으로 역시 상징적인 것이지만 의미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또 영국의 상중하 계급구조는 카스트제도를 갖는 인도에서만큼이나 고착적이라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라고 하는 19세기 배경의 영국 계급사회를 풍자한 1964년 영화가 있지만 21세기인 지금도 그 기본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2000년 영화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도 발레 무용수를 꿈꾸는 어린 아들에게 탄광 노동자인 아버지가 발레는 상류계급의 것이라고 말리지만 좌절하지 않고 성공한다는 이야기이다. 두 영화 모두 개천에서 용 나는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겠다.
일상회화의 악센트나 생활습관은 물론 사고방식마저도 계급화되어 있는 사회가 영국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뜻하는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들 하지만(사실 그런 계층 이동이 과거에도 얼마나 많았을지 의문이다) 영국사회에서는 일찍부터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영국이 세계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였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자본주의가 더 늦은 나라에서도 이미 극복한 계층고착화를 아직까지 유지하는 영국에는 다른 고질적인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의 법정 영화를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검은 가운에 백발의 가발을 덮어 쓴 법률가들이 등장하는 것을 쉽게 보는데 그것이야말로 우리 법률가는 특수계급이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이 보인다. 영국에는 변호사도 사무변호사(solicitor)와 법정변호사(barrister)라는 두 개의 계급이 있다. 그중 법정에 들어가는 법정변호사 출신만이 상급법원의 재판관이 된다. 그들은 대부분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대학교 출신들이다. 두 대학에서는 법조인만이 아니라 의사와 같은 전문직이나 회사의 관리직을 부모로 둔 학생이 전체 학생수의 78%에 이른다는 최근의 조사보고가 있다. 또 영국 대학 전체로는 사립학교 출신이 10% 미만이지만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두 대학교에서는 43%를 차지한다.

⑶ 영국 사회의 보수성과 진보성
영국 사회가 보수적이라고 하는 점은 주지된 사실이다. 물론 의외의 진보적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영국 사회의 계급 구분이 철저하고 법조나 대학과 같은 상류 사회일수록 그 계급성이 더욱 확고하다는 점은 영국에서 살아 보거나 영국 대학교에서 공부를 해 본 경험에 의해 나 자신도 익히 실감한 적이 있다. 사회구조만이 아니라 수많은 유적의 풍경도 전통적임을 보여준다. 가령 웨일스 지방에만 100개가 넘는 성이 있고, 영국 전역에서 수천 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들을 수없이 볼 수 있으며, 조그만 마을에도 엄청난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들을 볼 수 있다. 그런 전통의 엄수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한국보다 훨씬 유적 보존에 힘을 쓰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보기 어렵다.
영국의 보수성은 프랑스혁명과 같은 역사적 단절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은 명치유신에 의해, 한국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 경험에 의해 역사적 단절을 겪었다. 명치유신 후 일본의 법도, 식민지 이후 한국의 법도 그 전의 법과는 전혀 다른 것인 점도 마찬가지 단절이었다.
영국 보수주의의 선구자라고 일컬어지는 버크(Edmund Burke, 1729~1797)는 프랑스혁명에 반대하여 쓴 󰡔프랑스 혁명의 성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and on the Proceedings in Certain Societies in London Relative to it, 1790)에서 인권 보장과 같은 지극히 추상적인 이념에 근거하여 사회제도를 전복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비판하고 현실 정치가 다루어야 하는 것은 복잡하게 연관된 이해관계의 조정이며, 그것을 소수의 머릿속 생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프랑스혁명이 결국 공포정치로 나아간 것처럼 역사에 대한 참된 평가는 어느 정도의 시효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장기간 검증되는 제도가 우수하다고 주장했다. 버크도 모든 개혁에 반대한 것은 아니지만, 개혁은 기본의 법과 정치제도를 전폐하는 것이 아니라 개량과 보수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버크의 주장은 판례법주의의 기본정신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은 보수적인 가운데 진보적인 색채도 보여준다. 1921년 노동당이 세계 최초로 집권한 것도 그 하나다(의회나 정당의 역사가 세계에서 가장 긴 탓도 있었다). 최근의 그것은 1979년 이래 계속 집권한 보수당을 누르고 20년 만에 1997년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43세의 블레어(Anthony Charles Lynton Blair, 1953~)가 수상으로 등장하면서 내세운 ‘쿨 브리테니카’, ‘모던 브리턴’이라는 구호다. 그 일환으로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라는 현대미술관이 세워지고 ‘런던 아이’라는 거대한 관람차도 전통적인 의회 건물 곁에 만들어졌다.
블레어 정권은 그 전 정권에 비해 전통을 지키기보다도 더욱 적극적으로 EU에 접근했다.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된 것이 상원인 귀족원이 사법권(재판권)을 갖는 최고법원이라는 점이었다. 블레어 정권은 그것이 유럽사회의 기본적 가치인 권력분립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 2009년에 폐지했다.
또 블레어의 싱크탱크로 불린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는 다양한 민족의 공존을 외치면서 ‘국제주의적 민족주의’(cosmopolitan nationalism)를 주장했다. 이는 1990년 이래의 이민 급증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조인이 주로 상류계급에서 배출된다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2006년 재판관의 선출방식이 바뀌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한다.
⑷ 법체계의 비교
한국법은 대륙법인 독일법과 프랑스법을 모방한 일본법의 아류이다. 대륙법은 영미법과 달리 로마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법전 중심의 성문법주의를 취한다. 그런 대륙법을 일본이 모방했고, 그 일본법이 식민지 과정을 통해 한국에 들어와 지금까지 한국법의 기본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해방 후에는 미국법 등의 영향이 있지만 헌법이나 노동법 등에 한정적이고 민형법과 소송법을 중심으로 한 시민법 체계는 여전히 대륙법으로 판례법주의를 취하는 미국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미국법의 영향이라는 것도 판례법주의와는 무관하고, 제정법주의를 취하는 헌법과 노동법 등의 일부 영역에 불과하다. 판례법주의 외에도 법조일원성이나 배심제라는 공통점이 영미법에는 존재한다.
그러나 같은 영미법이라고 해도 영국법과 미국법은 다르다. 전체적으로 보면 영국법은 형식 지향인 데 반해 미국법은 실질 지향이다. 이는 영국에서는 의회가 제정한 것은 무조건 법으로 인정됨에 반해 미국에서는 대법원의 위헌입법심사에 의해 그 내용을 판단하는 탓이다. 또 미국법은 일반조항이 많아 유연한 반면, 영국법은 유연성이 결여되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미국 법원에서는 법의 목적 등에 비추어 판단하지만 영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또 선례 존중도 미국의 경우, 선례가 옳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무시하고 변경하는 권한이 재판관에게 인정되는 반면, 영국에서는 1898년 이래 상원 및 영국대법원의 판결은 기본적으로 하급심을 구속한다.
영국법의 이러한 특성을 형성하는 배경의 하나가 법조일원성이다. 즉 대법원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구조의 재판 제도와 우수한 변호사(베리스터) 중에서 재판관이 나온다는 관행의 지속에 의한 상류계급적인 동질성의 유지이다. 미국에서도 법조일원성이 유지되지만 변호사의 자격이 여러 주에서 독자적으로 부여되어 영국과 같은 일체성은 약하고, 영국식의 피라미드 구조가 아니다.
배심제도 미국의 경우에는 형사사건에서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가 헌법(3편 2장 3항)과 인권을 정한 제6 수정헌법에 규정되어 있고, 소액이 20달러가 넘는 민사사건에서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도 헌법(제7 수정)에 규정되어 있으며, 배심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어 민의를 반영하지만, 영국에서는 민사배심의 인정범위가 좁고(사기나 명예훼손 등) 징벌적 손해배상도 인정되지 않으며 전반적으로 배심에 대한 사회적 열의도 얕다. 따라서 미국법은 재판에 사회의 민의나 여론을 반영하는 정도가 영국법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는 영국법이 미국법보다는 덜 민주적이다.

⑸ 판례법주의
법의 세계에서 중심은 무엇일까? 한국을 비롯한 대륙법 국가에서는 법전이 법의 기본이고 그 법을 만드는 국회가 중심이라고 답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반면 영국에서는 법원이 법의 중심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앞에서 보았듯이 영국에서는 13세기경 현대 법원의 기원이 되는 법원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법원이 적용할 수 있는 법체계가 없었다. 따라서 민형사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법을 창조하게 되었고, 그러한 해결이 일정한 패턴으로 수렴되어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중요한 판결을 모은 판례집이 등장했고, 그것이 코먼로였다.
앞에서 보았듯이 역사적 계속성도 영국법의 특징이어서 초기 판례법은 후기 판례법에 의해 수정되면서 지금까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져 왔다. 따라서 매우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도 판례법에 의한다. 그런 점에서 판례법을 운용하는 법원이 법의 중심이다.
뿐만 아니라 법원은 영국 정부 기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의회주권이라고 하지만 18-19세기까지 입법의 범위는 대단히 좁았다. 반면 법원의 역할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판례법이 충분히 발전한 뒤에 그것을 보충하는 것으로 제정법이 등장했다. 또한 법조일원화도 법원을 법의 중심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앞에서 법의 기본적 부분은 판례법에 의한다고 한 중요한 보기가 계약과 불법행위 및 모살 등이다. 최근의 중요한 사례로는 1991년 상원에서 배우자 사이의 강간을 인정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향상이라는 사회변화를 가미하여 그것과 반대였던 1954년 판결을 뒤집은 것이었다.
영미법에서는 판결에 이르게 된 법원칙을 ‘판결 이유’(ratio decidendi)라고 한다. 가령 모살은 신체에 상해를 가할 목적으로 살해한 경우를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의 판결에서 내려진 판결 이유는 장래의 유사 사건에서 구속력을 갖는다. 이러한 구속력은 대륙법에서보다 훨씬 강력하다.


3. 영국법의 역사

⑴ 코먼로의 의미
Common law를 종래 보통법이라고 번역하기도 했으나 이는 독일법의 gemeines Recht와 혼동될 우려가 있으므로 최근에는 코먼로라고 표기한다. 코먼로는 독일법 등의 유럽의 대륙법(civil law)과 대비되어 영미법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이때에는 판례법만이 아니라 제정법도 포함하는 영미법 전체를 의미하게 된다. 나아가 교회법(ecclesiastical law)과 대비되는 세속법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코먼로는 보통 다음 네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common이라는 단어가 ‘공통의’라는 뜻을 갖듯이 common law는 ‘영국 공통의 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영국에서는 각 지역마다 관습에 의해 재판이 행해졌고 법도 지역마다 달랐으나, 12세기 이후 국왕이 국토 전역에 재판권을 확대하여 성립된 코먼로 법원(common law court)이 발전시킨 영국 공통의 법인 코먼로가 성립되었다.
둘째, 앞서 말한 코먼로는 재판관의 판결에 의해 형성된 판례법을 말한다. 판례(判例)는 시간을 통해 유사한 판결(判決)이 지속적으로 형성되면서, 일반적인 법적 원리가 규범화된 것이며 법규범으로서 성문법화되지 아니한 법을 말한다. 법원이 판결을 내릴 때 제시한 판결 이유가 법률로서 국민생활을 규율할 때 판례법이라고 한다. 영미법에서는 상급법원의 판결에 같은 종류의 사건을 재판하는 하급법원은 따라야 하며, 하급법원의 판결이라도 여러 번 같은 것이 거듭되면 상급법원도 이에 따라야 한다는 관행이 있다. 이것은 의외(意外)의 새로운 판단에 의하여 일어나는 법률생활의 불안정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셋째, 15세기에 와서 코먼로의 결함을 보충하는 형태로 에퀴티(equity)가 발전하면서 그것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코먼로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넷째, 대륙법과 영미법을 구별하기 위해, 즉 대륙법이 제정법을 중심으로 하는 반면에, 영미법은 판례법을 중심으로 하는 점에서 영미법을 코먼로, 또는 케이스로(case law)라고 한다. 비슷한 사건들의 판결이 축적되고 쌓이면서 일반적인 보통법 체계에서는 주요 법원(法源)으로서, 판례법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나 대륙법 체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대륙법 체계에서도 ‘사실상(De facto)의 구속력’이 인정되고 있다. 다만,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유사한 판결이 최근 들어 깨어지는 일이 더 빈번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사회의 발전과 개방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구성원의 활동영역이 더 넓어졌기 때문이다.

⑵ 코먼로의 역사
위에서 말한 첫째 의미의 코먼로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영국은 우리와 같은 단일민족의 나라가 아니라(물론 우리도 단일민족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지만) 4천 년 역사를 갖지도 않는다. 지금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서 흔히 보는 켈트인이 2500여 년 전인 기원전 6세기에 영국에 왔고, 1세기에는 로마제국의 속령이 되었다. 이어 5세기에는 지금 영국인의 주류를 형성한 앵글로 색슨(Anglo-Saxon)족의 조상인 게르만족에 속한 색슨족(Saxon)과 앵글족(Angle)이 왔다. Angle은 England의 어원이지만 그들이 영국인의 조상인 것도 아니다. 그 후 바이킹족 후손인 노르만(Norman)족이 프랑스에 세운 노르만디공국(Duché de Normandie)의 윌리엄이 11세기에 영국에 침략하여 윌리엄 1세(재위: 1066-87)가 되면서 노르만 왕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윌리엄 1세는 <둠스데이 북>(Domesday Book)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지 대장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중앙집권화에 노력했다는 것이다. 당시 왕은 국왕평의회(Curia Regis)의 전신이었던 고문들과의 회의로 정치를 했는데, 그 뒤 국왕평의회에서 의회와 법원이 분화되었다. 이어 그 넷째 아들인 헨리 1세(재위: 1100-36)가 왕의 수입을 관장하는 기구로 재무부와 상서부를 두었는데 후자는 에퀴티를 관할하는 대법관 법원(Court of Chancery)으로 발전했다. 코먼로를 운용한 국왕법원에서의 판결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에 대처한 것이 대법관 법원에 의해 발전한 에퀴티였다.
헨리 1세의 손자인 헨리 2세는 코먼로의 아버지라고 한다. 당시 영국에는 공통된 법이 없어서 1166년 헨리 2세가 각지에 순회재판관을 파견하여 재판을 하게 했는데 여러 지역의 관습 중에서 가장 적절한 것으로 재판한 것에서 코먼로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순회재판은 느렸기 때문에 13세기에 현재의 의회가 있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에 법원을 세우고 국왕법원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재무부에서 분화된 재무부법원(Court of Exchequer), 민사법원(Court of Common Pleas), 형사사건을 다루는 왕좌법원(Court of King's Bench)으로 구성되었고, 이는 1875년 고등법원(High Court of Justice)으로 통합되었다.
중세 초기까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야만적 재판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바꾼 것이 배심이었다. 노르만디에서 온 그것은 사실 확인을 위해 12명의 주민에게 증언하게 한 어사이즈로 둠스데이 북의 작성 시에도 사용되었는데, 이를 헨리 2세가 재판에 도입했다. 따라서 그는 코먼로와 함께 배심의 아버지라고 할 만하다.
헨리 2세의 손자인 헨리 3세(재위: 1216-72) 때에 법률가도 등장했는데 사무를 다루는 사무변호사와 변론을 담당하는 법정변호사가 처음부터 분화되었다. 이어 14세기부터 법정변호사가 법원의 감시하에 재판 실무를 담당하면서 재판관으로 선임되었고, 법조학원(Inns of Court)을 통해 법률가가 양성되었는데 그것은 지금도 법정변호사 양성 기관이다.
헨리 2세를 이은 왕은 사자심왕(Richard the lion Heart)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리차드 1세(재위: 1189-99)였다. 로빈 후드 전설이나 소설 <아이반호>에 등장하는 그가 재위 기간 내내 십자군전쟁에 참전하다가 전사하자 헨리 2세의 막내 아들인 존 왕(재위: 1199-216)이 뒤를 이었는데, 그는 전설이나 소설 등에서 보듯이 나쁜 왕이었다. 1215년 6월 15일에 존 왕은 귀족들의 강요에 의하여 몇 가지 권리를 포기하고, 법적 절차를 존중하며, 왕의 의지가 법에 의해 제한될 수 있음을 인정하도록 요구한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했다. 법의 적정절차를 규정한 그 25조는 지금까지도 현행법을 구성한다. 이 시기는 우리 역사에서는 고려 초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시의 법이 800년이 더 지난 지금도 현행법이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존 왕이 죽은 뒤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1337-453)에 돌입하는데 그 전쟁 비용을 위한 증세의 필요로 인해 국왕평의회에서 분화한 의회가 탄생했다. 14세기에 귀족과 시민이 각각의 회의를 구성한 것이 상하원의 기원이 되었다.

⑶ 에퀴티
재판의 목적은 분쟁의 해결인데, 판결이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려면 그것이 자의적이지 않고 객관적이라고 판단되어야 한다. 대륙법계에서는 제정법에 근거하여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될 가능성이 높지만, 판례법계의 경우에는 선 판결이 법이므로 그럴 가능성이 높지 못하다. 또 선례에 엄격하게 따르게 되면 유연성이 결여되어 타당한 구제가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코먼로를 운용한 국왕법원에서의 판결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에 대처한 것이 대법관 법원에 의해 발전한 에퀴티였다.
에퀴티 법리의 대표적인 예는 신탁(trust)이다. 신탁이란 신탁은행이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에서도 낯익은 제도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돈을 타인에게 맡겨 운용하도록 하여 이익을 보고자 하는 경우, 그 사람은 위탁자가 되고 수탁자인 신탁은행에 그 운용을 맡기는 것이 신탁이다.
영국에서 대법관 법원이 취급한 신탁의 하나는 미성년자의 토지보유권을 지키기 위해 설정된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토지보유에 관하여 미성년자가 토지를 상속한 경우, 영주가 미성년자의 후견인이 되고, 그 토지를 상속인이 성년에 이를 때까지 사용하여 수익할 수 있다는 후견권이라는 봉건적 제도가 있어서 미성년자에게 토지를 상속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토지보유자(신탁설정자)가, 미성년자인 상속인(수익자)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토지에서 수익을 주고, 성인이 된 뒤에는 토지의 부동산권을 양도한다는 약속하에 부동산권을 친구 등(수익자)에게 양도한다는 방식이 이용되었다.
그런데 수익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수익을 뺏는 사태가 발생하면, 코먼로는 수익자에 대해 약속을 지키도록 강요할 수 없었다. 코먼로는 토지보유자가 그 토지로부터 자유롭게 수익을 올리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되고, 수익자에게 약속을 지키게 할 소송개시영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신탁설정자의 요구에 응해 대법관 법원이 구제를 하게 되지만, 대법관은 약속을 어긴 배신적인 수탁자의 코먼로상 권리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 경우 대법관은 배신적인 수탁자에 대해 양심에 따라 행동하도록, 즉 토지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금하는 중지명령을 내렸다. 또 대법관은 배신적인 수탁자가 코먼로 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것을 금지하고, 그 권리가 코먼로에서 인정되었다고 해도 판결의 집행을 구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일 피고가 이러한 명령에 위반한 경우, 대법관은 피고를 법정모욕죄를 범했다고 하는 이유에서 구속하고 구금할 수도 있었다.
이에 대해 코먼로 법원은 인신보호영장(habeas corpus)에 의해 그 구속을 불법이라는 이유에서 피고를 석방하고자 했다. 그리고 대법관 측이 이에 불응하면 구금자를 법정모욕죄라고 하였다. 그래서 두 법원 사이에 관할권 분쟁이 생겨났다.
이러한 분쟁은 17세기 초엽에 당시 국왕인 제임스 1세(재위: 1603-25)에 의해 에퀴티가 우선한다는 결정이 내려져 해결되었다. 그 배경에는 에드워드 코크(Edward Coke, 1552~1634)를 비롯한 코먼로 법률가들이 코먼로를 잘 모르는 전제적 국왕이 재판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 반면, 국왕에 가까운 대법관에게 국왕이 더 호의적이었다는 점이 있었다. 17세기 후반에는 크롬웰(1599~1658)이 국왕 찰스 1세를 처형하면서 국왕에게 가까웠던 대법관 법원도 폐지하기도 했으나, 17세기 말 이후에는 코먼로와 에퀴티가 서로 협조하여 공존하는 관계가 되었다.

⑷ 의회주권
우리 헌법에서는 헌법재판소가 법률 등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갖기 때문에 법률을 제정하는 국회의 권한은 법적으로 제한된다. 반면 영국에는 의회에 대한 제한이 없다(EU법에 의한 것을 제외). 따라서 법률 제정의 형식적 절차를 지킨다면 그 내용이 어떤 것이라도 법률은 유효하다. 이를 의회주권이라고 한다.
‘국민주권’, ‘인민주권’이라는 말 대신에 영국에서만 의회주권이라고 하는 것은 영국 의회의 역사와 관련된다. 영국에서는 왕권에 대항하여 자유를 쟁취하는 오랜 투쟁을 언제나 의회가 주도하였다. 최초의 헌법인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를 비롯하여 권리청원․인신보호령․권리장전 등의 모든 헌법의 기본문서는 국왕에 대한 의회의 승리의 결과였다. 즉 국민의 힘이 아니라 의회의 힘으로 절대주의를 밀어내고 자유주의를 실현함으로써 국왕은 군림하지만 실질적인 통치권은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를 영국의 헌법학자 A. V. 다이시(1835~1922)는 󰡔헌법연구서설󰡕(1885)에서 “영국의회는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 외에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라고까지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 말이 의회만능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의회가 국왕을 맞아들인 명예혁명 후에는 국왕․상원․하원의 3자로 구성되는 의회가 최고 권력을 가진다는 뜻의 의회주권론이 J. 로크에 의하여 확립되었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의회주권은 이 3요소로 구성되는 의회의 최고 권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1973년 영국이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하면서 EC조약이 국내법이 된 뒤 EC법, 그리고 EU법이 국내법에 우선하게 되었다. 이어 1998년에 인권법이 제정되어 유럽인권조약의 인권 규정이 영국 법원에서도 적용되었다. 이는 의회주권의 제한을 뜻했다. 그러나 최근의 EU이탈을 둘러싼 브랙시트(Blexit) 재판에서는 전통적인 의회주권이 확인되었다.
브랙시트란 브리턴(Britain)에 출구(Exit)를 더한 말로서 영국이 EU에서 나오는 것을 뜻한다. 2019년 3월 29일에 영국은 EU를 이탈할 것으로 예정되었으나 이탈은 미루어졌다. 이는 그것을 결정한 2016년 6월 23일의 국민투표의 결과(찬성 51.9%, 반대 48.1%)가 나온 뒤부터 예상된 것이었다. 그 투표 결과는 정치적으로 존중되어야 하지만 법적인 의미는 갖지 않는 것이었으나 투표 이후 그 결과에 따라 브랙시트가 추진되어 왔다.
EU 이탈의 절차에 대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2017년 1월 24일에 EU 이탈은 영국의 헌법에서 확립된 룰(constitutional arrangements)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고, 영국 헌법은 대권에 의해 이러한 변화를 초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정부는 이 판결에 따라 의회에 EU 이탈 통지법안을 제출하고, 같은 해 3월 29일에 EU에 이탈을 통지했다. 영국은 2020년 1월 31일에 EU에서 탈퇴했다.

⑸ 법의 지배
‘법의 지배’는 법이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 등의 모든 권력보다 상위에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국가 권력이 법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법의 지배의 원리 하에서 법은 정의, 도덕 이성 및 합리성 등 법이 실질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을 갖춘 법을 뜻한다. 형식적으로 법의 외형을 가지고 있더라도, 내용이 독단적이거나 자의적인 경우는 ‘힘의 지배’가 아니라고 본다.
‘법의 지배’ 원리는 입법, 사법, 행정 등 모든 권력행위를 구속할 수 있으나, 대륙의 ‘법치주의’는 원칙적으로 행정부만 구속할 수 있으며, ‘법의 지배’ 원리가 실질적 내용이 정의, 도덕, 이성 및 합리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과는 달리, 형식적인 내용만 갖추면 된다. 가장 실질적인 차이점은 행정부의 위법행위 판단을 사법부가 하는 것과는 달리 행정부의 위법행위 판단을 행정부 내에서 한다는 것이다.
다만 현대에는 법치주의가 '형식적 법치주의'에서 '실질적 법치주의'로 발전하여 둘 사이에 큰 차이는 없어졌다. 현대의 법치주의는 법이 단지 형식적인 내용만 갖추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정의와 이성을 강력히 요구한다. 또한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대통령의 탄핵은 헌법재판소가 사법적으로 최종 심판한다.

⑹ 내각책임제
영국은 연방제 국가가 아니라 단일제 국가이다. 영국법에서는 국왕,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체 등이 기본적으로 사인과 마찬가지로 코먼로 법리에 따르기 때문에 대륙법에서 말하는 공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영국은 지방자치가 발달한 탓에 지금도 지방적 특색이 각 지방에 남아 있다.
영국의 정치에서 발달한 의원내각제의 근본인 의회의 책임성을 원칙으로 상징하는 정체를 책임정부(Responsible government)라고 한다. 영국은 입헌군주제에 입각한 의원내각제 국가이다. 종래 영국 헌법은 의원내각제의 전형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으나, 제2공화국 헌법을 제외하고 의원내각제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예는 없다. 제2공화국 헌법상의 의원내각제가 영국형의 순수한 의원내각제를 지향했다고 하지만, 도리어 대통령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측면이 많아서 우리나라 헌법사는 대통령제로 일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의 의원내각제는 독일 등의 의원내각제와 달리 입헌군주제에 입각한 의원내각제이다. 영국의 국가원수는 국왕이지만 국왕은 직접 통치하지는 않고 그가 임명하는 수상과 내각이 행정부를 구성한다. 행정부의 존립 근거는 하원의 신임이고, 이 신임권에 대응하는 행정부의 권한이 의회해산권이다. 하원에 대응하는 상원이 하원과 함께 의회를 구성한다.
영국의 헌법은 불문헌법이다. 영국에는 헌법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성문헌법은 없지만 불문헌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은 영국헌법의 본질과는 관련이 없는 형식적인 측면의 논의에 불과하다. 우리 헌법전과 같은 헌법은 영국에 없지만, 실질적으로 국가권력을 통제하는 규범인 ‘헌법’이라고 볼 수 있는 여러 원칙이나 룰은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영국에도 당연히 ‘헌법’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성문헌법이 없어도 민주적 정치체제에 의해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 통치가 가능함을 영국은 보여준다.
성문헌법의 부재와 함께 법원에 의한 규범 통제의 부재도 영국 헌정제도의 중요한 특징이었지만, 최근 영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가령 <유럽인권조약>을 국내법으로 계수한 1998년 <인권법> 제정으로 <유럽인권조약>상의 인권을 침해하는 입법행위는 법원에 의해 기본권 불합치 결정을 받게 되었고, 의회는 사실상 개정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이처럼 1998년 <인권법> 제정을 통하여 입법권과 행정권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강화한 것 외에도, 세습귀족의 폐지를 골자로 한 상원의 개혁에서부터 민족 단위로 독립의회를 구성하여 지방자치의 개념을 뛰어넘는 자치권을 부여하며, 국민투표나 주민투표를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강화까지 기존의 헌정구도를 전면적으로 개혁하고자 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5년 <헌법개혁법>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2009년에는 귀족원의 최고법원 시대를 끝내고 독자적인 대법원시대를 열었다.

4. 영국의 법원

⑴ 영국의 중요 법원
영국의 중요한 법원으로는, 2009년에 출발한 대법원(Supreme Court of United Kingdom), 항소법원(Court of Appeal), 형사법원(Crown Court), 고등법원(High Court of Justice), 치안판사법원(Magistrates' Court), 카운티법원(County Court), 그리고 2014년에 신설된 가정법원(Family Court) 등이 있다. 이러한 영국의 법원들은 대체로 대법원이 우리의 대법원, 항소법원이 우리의 고등법원, 형사법원과 고등법원이 우리의 지방법원, 가정법원이 우리의 가정법원에 해당하지만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⑵ 형사사건
⒜ 치안판사법원
먼저 형사사건은 형사법원과 치안판사법원에서 다룬다. 약식기소범죄(summary offences)라고 불리는 경미한 범죄는 치안판사법원에서 취급한다. 또 중간 정도의 범죄의 경우, 피고인은 형사법원이나 치안판사법원을 선택할 수 있으나, 대부분 치안판사법원을 선택한다. 쓰레기 투기, 다수의 교통범죄, 음주에 의한 경죄 등의 경미한 범죄, 그리고 피고인이 선택하는 경우의 절도, 약물범죄 등은 치안판사법원에서 취급한다. 경미한 민사사건의 일부, 소득세 등의 연체도 취급한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최대 6개월(복수 범죄인 경우는 12개월)의 구금이나 5파운드(1파운드를 1,500원으로 계산하면 약 750만 원) 정도의 벌금이 부과된다. 개별 사건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치안판사법원은 전국에 236개소가 있고(2017년) 전체의 80% 이상(2015-6년에는 약 117만 건)의 형사사건을 취급하여 영국 법질서의 기본을 형성한다.
또 약 1만 8천 명의 일반 시민(2017년)이 치안판사로 근무한다. 특히 법률문제에 관하여 자격 취득 이후 5년이 지난 법정변호사나 사무변호사인 치안판사 보좌관의 조건을 받는다. 이러한 일반 재판관 제도는 법과 시민 사이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관점에서도 정당화된다. 즉 법을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법이 전문가에게 맡겨지면 신비화되어 시민이 생각가하는 정의와 멀어진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그 제도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된다. 이는 뒤에서 보는 배심원 제도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 형사법원
형사법원은 모살, 강간, 강도 등의 중대한 범죄와, 피고인이 형사법원을 선택한 경우의 중간 정도 범죄를 취급한다. 전국을 런던, 브리스톨, 버밍엄, 맨체스터, 카디프, 리즈를 중심으로 한 6개 지역으로 나누고 전체 76개의 형사법원 개정소가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서 배심 심리가 열린다. 형사법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개정소가 런던에 있는 올드베일리(Old Bailey)로서 살인, 사기, 테러 등 중대한 사건을 배심으로 취급하므로 영국 형사사법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2015-6년에 형사법원 전체에서 8만 6천 건의 사건을 취급했는데, 유죄결정이나 양형에 관한 치안판사법원으로부터의 상소도 취급한다. 또 치안판사의 권한을 넘는 형벌이 부과되는 경우, 치안판사법원으로부터 형의 선고를 위임받기도 한다. 그 위임 건수는 2013년에 약 3만 5천 건이었다.

⑶ 민사사건
⒜ 카운티법원
민사사건은 규모에 따라 카운티법원이나 고등법원으로 그 관할이 나누어진다. 교통사고 등의 신체상해(personal injury)는 5만 파운드(약 7,500만 원), 그 밖에는 10만 파운드(약 1억 5천만 원)까지의 청구는 카운티법원에서 취급한다. 에퀴티 분야인 신탁 등에 대해서는 35만 파운드(약 5억 2,500만 원)까지 카운티법원에서 취급한다.
카운티법원은 전국에 172개 지부가 있고(2017년), 2016년 4월에서 6월까지 약 40만 건을 다루었으나, 피고가 원고의 주장을 인정하는 등 심리까지 나아간 것은 2013년에 4% 이하였다. 또 1990년대의 울프 개혁에 의해 소액 소송의 신속한 해결이 가능하게 되었다.

⒝ 고등법원
High Court를 보통 고등법원으로 번역하지만, 우리나라의 고등법원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영국의 고등법원은 중요한 민사사건의 1심 재판을 담당할 뿐 아니라, 경미한 민․형사 사건의 항소심 재판까지 담당하기 때문이다. 고등법원은 담당 사건의 종류에 따라 대법관부(Chancery Division), 가사부(Family Division), 여왕좌부(Queen’s Bench Division)로 나누어지고, 보통 1명의 법관으로 구성되는 단독재판부에서 재판한다.
여왕좌부는 일반적인 민사소송을 취급하지만 대부분 계약이나 불법행위에 관한 것이다. 신체상해에 대해 5만 파운드 이상, 기타에 대해 10만 파운드 이상의 청구가 있으면 먼저 여왕좌부에서 취급한다. 여왕좌부는 항소법원과 함께 런던의 중앙법원시설(Royal Courts of Justice) 내에 있고, 런던 외에 25개 도시에서도 개설되어 있다. 2015년에는 여왕좌부 전체에서 13,000건의 소송절차가 개시되었다. 이는 1991년의 11만 건의 소송절차가 대폭 준 것으로 고등법원의 부담을 카운티법원에 이송한 결과였다. 또 여왕좌부에서는 보통 단독의 재판관이 담당하지만, 2인이나 3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 합의법정(Divisional Court)이 설치되어 행정 결정 등에 대한 심사도 하게 되었다. 이민과 난민의 신청이 증가함에 따라 2007-12년 사이에 87%나 증가했다. 또 치안판사법원의 약식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의 항소 사건을 다루고 있다. 또 명예훼손 등에 대한 민사 배심 심리도 여왕좌부에서 담당한다.
고등법원에는 에퀴티 재판을 인계한 대법관부도 있다. 단 전형적인 예퀴티 법원의 사례인 신탁관계 소송 외에도 저작권, 특허와 같은 지적 재산권, 토지 매매, 비즈니스, 산업관계, 사망자의 부동산 관리, 채무초과 등에 관한 소송 등을 광범위하게 취급한다. 대법관부도 중앙법원시설 내에 있는 것이 중심이고, 지방에도 8개소가 개설되어 있다. 2015년에는 대법관부 전체에서 7,850건의 청구와 절차가 게시되었으나, 그중 심리가 진행된 것은 182건에 불과했다. 대법관부에도 합의법정이 있고 카운티법원으로부터의 상소를 취급하지만 극소수이다.

⒞ 가정법원
가정관계 소송은 2014년까지 고등법원, 카운티법원, 치안판사법원에서 분담했지만 2014년 4월에 가정법원이 신설되어, 국제적 소송이나 후견 문제가 고등법원 가사부에서 다루어지는 사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정법원에서 다루게 되었다. 또 가정법원으로부터의 상소는 고등법원 가사부의 합의법정에서 다루어진다.
영국의 가정 관계 소송이 한국의 그것과 특히 다른 점은 이혼소송에서 쌍방의 동의에 의한 합의이혼이 인정되지 않고,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될 수 없음을 증명하고 법원의 판결이 이를 인정할 것이 요구된다. 구체적으로는 부정행위, 동거를 불가능하게 하는 사정, 5년 이상의 별거 등을 증명할 필요가 있고, 양자가 이혼에 동의하는 경우에도 이혼을 위해서는 2년 이상의 별거가 요구된다. 이혼소송은 상당히 많아서 3개월간 3만 건에 이르기도 했다.

⑷ 항소법원
고등법원과 마찬가지로 런던 중앙법원시설 내에 있는 항소법원은 민사사건에 관한 항소법원인 민사부(Civil Division)와 형사사건에 관한 항소법원인 형사부(Criminal Division)로 나누어진다. 형사부는 형사법원의 1심 형사판결에 대한 피고인의 유죄 인정 또는 양형 부문에 관한 항소사건을 취급하고, 민사부는 고등법원, 구역법원, 기타 특수법원의 1심 민사 판결에 대한 항소사건을 취급하는데, 모든 사건은 항소허가를 받아야 하며, 보통 3명의 법관으로 구성되는 합의재판부에서 재판이 이루어진다.

⑸ 대법원
영국 정부는 2003년 상원의 사법적 기능을 폐지하고 새로운 대법원을 신설한다고 발표한 뒤 2005년 <헌법개혁법>(Constitutional Reform Act)에 의해 2009년 10월 1일, 대법원을 신설했다. 이는 <유럽인권조약> 6조에서 판사는 독립되어야 하고 독립된 것으로 보여야 한다는 규정과 관련하여, 기존의 상원 상임 법관(Lords of Appeal in Ordinary or Law Lords)이 상원 의원이었던 점이 입법부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고 보일 수 있었기 때문에 내려진 조치였다. 기존의 상원 상임 법관 12명이 신설된 대법원의 대법관(Justice of the Supreme Court)이 되었다. 대법원은 영국의 최고법원으로서 민사의 경우에는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의 최종심이고, 형사의 경우 스코틀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최종심이다. 그러나 미국의 연방대법원이나 유럽의 헌법재판소와 같은 위헌법률심사권은 없다.


5. 영국의 법률가 제도

⑴ 법정변호사와 사무변호사
앞에서 보았듯이 영국에는 법정변호사와 사무변호사가 있다. 법정변호사는 13세기, 사무변호사는 19세기 영국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머리에 가발을 덮어쓰고 가운을 입는 변호사가 법정변호사이다. 법정변호사는 상급법원을 포함한 영국의 모든 법원에서 변론과 변호를 할 수 있다. 그는 다음 4개의 법조학원, 즉 Middle Temple, Inner Temple, Lincoln’s Inn, Gray’s Inn 중 어느 것에 속해야 한다. 중앙법원시설에 위치한 그 넷은 모두 법정변호사의 자치조직으로 선거로 뽑힌 평의원에 의해 운영된다. 2014년 시점에서 실무에 종사하는 법정변호사는 1만 7천 명 정도이다.
법정변호사가 되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며 법학사 학위(법학사 취득 시 1차 시험인 CPE: Common Professional Examination을 면제받는다), 법정변호사 전문 교육 과정(Bar Professional Tarining Course) 및 견습 과정(pupillage)을 최고의 실력으로 마쳐야 한다. 성공한 정상급 고참 법정변호사는 독립 위원회에 신청하여 ‘왕립자문변호인단’(Queen’s Counsel, QC)에 임명될 수 있는데, 이들은 변론 우수성을 인정받는다. 실크(silk)라고도 하는 QC는 실제로 1,500명 미만이다.
영국에서는 법적 업무를 의뢰하고자 하는 경우에 먼저 사무변호사를 찾아가야 한다. 그 업무는 유언 작성, 토지나 가옥의 매매, 이혼문제와 같은 일상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소송 제기, 계약서 작성 등의 비즈니스 업무, 고용문제, 이민 신청 절차, 영업허가 취소, 지적 재산권 문제 등 더욱 다양하다. 그래서 최근 그중 하나나 둘을 전문으로 하는 사무변호사도 생기고 있고, 수백 명의 사무변호사를 고용하는 회사도 생기고 있다.
사무변호사는 위의 상담 후에 법원에 가서 의뢰인을 위해 변론하는 변호사로서도 활동한다. 특히 치안판사법원과 카운티법원에서 주로 활동한다. 또 자격을 갖추면 형사법원이나 고등법원과 같은 상급법원에서도 변론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는 상급법원의 경우에 사무변호사는 법정변호사의 보조 역할을 해 왔다. 이는 의뢰인을 직접 접촉하는 자가 사무변호사에 한정되었기 때문이었다(2004년 이후에는 법정변호사도 접촉이 가능해졌지만 혼자서 민사소송을 개시할 수는 없다).
사무변호사가 되려면 3년제 법학부를 마치고 법학사 학위를 얻고 1년간(법정변호사는 2년간) 법실무 과정(legal practice course)을 거쳐야 한다. 그것은 과제, 실천적 기술, 필기시험을 포함하고, 회계학, 법정변론, 교섭술 등 폭넓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 뒤 사무변호사 사무실과 훈련계약을 맺고 2년간 실무수습을 받아야 한다. 2014년 8월 현재, 영국의 사무변호사는 약 13만 명이다.

⑵ 영국의 재판관 제도
영국의 재판관 제도를 법조일원제도라고 한다. 법조일원제도란 재판관을 임용하는 경우에 변호사 등, 재판관 이외의 법률가로부터 임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과 함께 영국의 재판관 임용제도는 법조일원제도의 전형이지만, 미국과 달리 상급법원의 재판관은 법정변호사에서 임명된다. 법조일원제도에 반대되는 것이 한국의 관료재판관제도이다.
한국에서는 법원조직법에 의해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기가 6년이고 판사의 임기는 10년이며, 대법원장은 중임할 수 없으나, 대법관과 판사는 연임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판사의 연임은 임명권자의 자유재량이라는 견해도 가능하지만, 이를 재판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이는 영국 재판관의 종신제를 입법례로 삼는다.


6. 영국의 배심제

한국에서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의해 2008년 1월 1일부터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법에 의하면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와 뇌물죄 등 일정 범위의 부패범죄 및 합의부 관할사건 중 대법원 규칙이 정하는 사건 등의 중한 사건에 한정하여, 배심원은 사실의 인정은 물론이고 법령의 적용 및 형의 양정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권한이 있으나, 배심원단의 평결과 의견은 법원을 기속하지 아니하고 권고적 효력만이 인정된다.
반면 영국의 배심제는 일반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직업법관과 독립하여 형사사건에서는 유․무죄의 판단 등 사실문제에 대한 평결을 내리고, 법관이 그 사실판단에 대한 평결결과에 구속되어 양형 재판하는 제도를 말한다. 영국에서는 약식기소로 충분한 사건(summary offences, 쓰레기 투기, 교통범죄의 대부분, 음주에 의한 경범죄 등)이나 중간범죄(절도, 약물범죄 등)로 피고인이 선택하지 않은 경우에는 배심이 적용되지 않아 재판관 자신이 판단한다. 따라서 한국에서보다도 영국에서는 배심제로 재판하는 사건의 범위가 훨씬 넓다.
뿐만 아니라 앞에서 보았듯이 배심이 아니라 재판관이 판단하는 사건을 담당하는 치안판사의 대부분이 일반 시민이므로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정도는 한국에서보다도 그 폭이 훨씬 넓다.

저자 소개

  • 저자 : William Geldart
저자 : William Geldart

역자 : 박홍규
박홍규는 오사카시립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영남대학교에서 노동법을 가르친 뒤 퇴직했다.

역자 소개

  • 역자 : 박홍규

박홍규는 오사카시립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영남대학교에서 노동법을 가르친 뒤 퇴직했다.

목차

CHAPTER 01. 제정법과 코먼로

1. 법과 법률\t3

2. 제정법과 코먼로의 관계\t5

3. 선례의 구속력\t10

4. 판결 이유와 방론\t13

5. 재판관은 어느 정도까지 법을 만드는가?\t15

6. 판례법의 장점과 단점\t20

7. 코먼로의 다른 원천 \t24

8. 위임입법권\t25



CHAPTER 02. 코먼로와 형평법

1. 형평법과 도덕\t29

2. 법과 형평법의 관계\t30

3. 역사\t31

4. 현대 형평법의 주된 영역\t42

5. 법원조직법의 효과\t49



CHAPTER 03. 영국법의 기타 체계

1. 교회법원\t57

2. 검인과 유산관리\t58

3. 혼인과 이혼\t61

4. 해사\t62

5. 현대의 법원\t64



CHAPTER 04. 인과 인적 관계

1. 태아\t67

2. 미성년자\t68

3. 부모와 후견인\t73

4. 적출\t76

5. 입양\t77

6. 기혼 여성\t78

7. 혼인과 이혼\t83

8. 정신이상\t88

9. 국왕과 그 피용인\t90

10. 국적과 주소\t91

11. 법인\t94

12. 사단과 시설\t98

13. 대리와 조합\t100

14. 적성(enemy status)\t103



CHAPTER 05. 재 산

1. 재산의 개념\t107

2. 소유권과 점유\t109

3. 물적 동산과 인적 동산\t112

4. 토지보유조건\t114

5. 점유를 수반하는 부동산권\t116

6. 장래부동산권\t118

7. 공유\t120

8. 토지에 관한 기타의 권리\t121

9. 토지에 관한 인적 재산권\t123

10. 재산법\t127

11. 토지의 양도\t129

12. 계승적 부동산 처분\t132

13. 토지의 양도저당\t139

14. 동산\t143

15. 개인적 무체재산(intangible personal property)\t144

16. 신탁\t146

17. 동산의 양도저당과 동산질\t151

18. 유치권\t152

19. 강제집행 및 파산\t153

20. 유언\t155

21. 무유언 상속\t159

22. 유언집행자와 유산관리인\t162



CHAPTER 06. 계 약

1. 법률행위\t167

2. 양도와 계약\t168

3. 요식계약\t170

4. 약인\t171

5. 청약과 승낙\t172

6. 서면계약\t174

7. 착오\t176

8. 부실표시와 사기\t178

9. 위법성\t180

10. 계약상 권리 의무의 한계와 확대\t182

11. 유통증권\t184

12. 계약 위반\t185

13. 계약상 권리 의무의 종료\t188



CHAPTER 07. 불법행위

1.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t193

2. 책임의 일반 조건\t194

3. 책임의 소멸\t202

4. 특수 불법행위\t205



CHAPTER 08. 범 죄

1. 형사법의 법원\t221

2. 민사법과 형사법의 비교\t222

3. 범죄의 분류\t224

4. 일반 법리\t226

5. 대역죄\t229

6. 반정부 선동\t231

7. 공공질서 범죄\t231

8. 문서비방, 선동 및 왜설\t233

9. 살인\t236

10. 재산 범죄\t240



APPENDIX 더 읽기

1. 법이론\t247

2. 법과 그 역사\t248

3. 형평법과 신탁\t248

4. 가족법\t249

5. 재산법\t250

6. 계약\t250

7. 불법행위법\t251

8. 형사법\t252

9. 법원\t253

10. 헌법과 행정법\t253


찾아보기\t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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