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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저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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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4841882 / 368쪽 152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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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 저자 : 배한철
저자 : 배한철
박물관과 유적지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문화재 기자. 발품을 팔아 얻은 생생한 체험으로 문화재와 역사에 관한 칼럼을 쓰고 관련 책을 꾸준히 출간했다.
대학에서는 이와 전혀 무관한 경영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정부 부처를 출입하면서 정책 기사를 주로 써왔다. 하지만 학창시절 관심분야였던 문화재와 역사 공부를 꾸준히 이어온 덕분에 2011년부터는 문화재 분야를 취재하며 못다 이룬 역사학도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국보에 깃든 고유한 아름다움뿐 아니라 국보가 간직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역사서와 고문헌을 깊숙이 탐독하고, 전국 유적지를 구석구석 답사하며 이 책을 썼다.
현재 〈매일경제신문〉과 네이버에 한국사와 고미술, 고전 등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을 쓴다. 저서로 《한국사 스크랩》(2015년 세종도서 선정)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책 선정, 2017년 세종도서 선정)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등 베스트셀러 역사 교양서가 다수 있다.

책 속에서


1,3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93년 12월, 부여시 능산리 고분군에서 주차장을 건설하던 중 놀라운 유물이 우연히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걸작 국보 중 하나인 백제 금동대향로다. 더러는 이 향로를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다 더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금동대향로는 발견 장소가 분명해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반면, 반가사유상은 그러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백제 대향로는 세계 각국의 유수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무수한 초청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 〈우물 속에 내던져진 왕의 분신_금동대향로〉 pp.34~35

금관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나라에 강력한 지배체제가 확립됐다는 것을 뜻한다. 신라에서는 절대적 권위를 부여한 통치자의 시대가 열렸던 5세기 초의 무덤에서 금관이 무더기로 등장했다. 마찬가지로 대가야도 왕권을 강화하면서 금관을 제작하게 되었다. 신라가 나뭇가지와 사슴뿔 형상으로 금관을 장식했다면, 가야에서는 풀잎이나 꽃잎 모양으로 금관을 꾸몄다. 신라의 금관보다 가야의 금관이 소형인 것은 가야가 연맹 체제로 유지돼 왕의 세력이 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맛은 가야 문화만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 〈공개조차 꺼렸던 소박한 가야 금관_고령 금관〉 p.52

임진왜란 때 왜군을 이끌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숭례문을 통해 서울에 들어왔고 또 다른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흥인지문으로 진입했다. 조선총독부는 1933년 우리나라 국보(당시 명칭 보물)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며 일련번호를 부여했는데, 공교롭게도 숭례문(당시 명칭 경성 남대문)을 보물 1호로 흥인지문(동대문)을 보물 2호로 각각 지정한다. 이에 대해 임란 당시 왜군의 한양 입성을 기념하기 위한 속셈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일제는 1943년까지 순차적으로 340건의 보물을 지정했다.
∎ 〈숭례문은 왜 국보 1호인가〉 p.56

1963년 5월 1일 국립박물관 미술과장 최순우와 준학예관 정양모에게 문교부 직원의 수출품 감정 의뢰가 들어왔다. 국내 공예품 회사가 미국의 연구소에 보내는 수출품이라는데 156점의 구입가가 2,000달러나 된다는 점을 수상히 여겼던 것이다. 인천 세관에 도착한 최순우와 정양모는 나무상자를 열어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상자엔 국보급 조선백자가 빽빽이 담겨 있었다. 미국인 두 명이 인사동을 다니며 쓸어모은 것들이었다. 최순우는 세관원에게 “세계 어디에도 자기 민족의 문화재를 수출하는 나라는 없다”며 반출을 불허했다.
∎ 〈국보를 수출하는 나라는 없다〉 p.81

아직도 많은 사람은 임진왜란 때 서울을 점령한 적군이 경복궁에 불을 질렀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 문헌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선조(재위 1567~1608) 때 예조판서를 지낸 이기(1522~1600)의 《송와잡설松窩雜說》은 “방화의 주범이 우리 백성”이라고 명백히 진술한다. 《송와잡설》은 “왜적이 도성에 들어오기도 전에 성 안 사람들이 궐 내에 다투어 들어가서 임금의 재물을 넣어두던 창고를 탈취하였다.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등 세 궁궐과, 크고 작은 관청에 일시에 불을 질러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넘쳤으며 한 달이 넘도록 화재가 이어졌다”면서 “백성들의 마음은 흉적의 칼날보다 더 참혹하다”고 비통해했다.
∎ 〈경복궁을 불태운 조선 백성_경복궁 근정전〉 pp.123~124

첨성대는 우리 고대 건축물 중 유일하게 일체의 재건 또는 복원 없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통념과는 달리 첨성대에는 붕괴의 흔적이 다수 발견된다. 우선 17층을 기준으로 몸통 상부 석재와 하부 석재의 가공법이 서로 다르다. 하층부 석재는 전부 모가 둥글게 가공됐지만 상층부 석재는 전반적으로 모가 각진 데다 중간 중간 둥근 석재들이 불규칙하게 섞여 있다. 맨 꼭대기인 31층 정자석도 금이 가 있거나 모퉁이가 떨어져 나갔다. 28층에는 분실된 돌이 있고 28층 남쪽 석재들과 27층 서쪽 석재들은 서로 위치가 바뀌었다.
∎ 〈첨성대 위에 진짜 정자가 있었을까_경주 첨성대〉 p.177

동서고금의 수많은 일기 중에서도 《난중일기》는 가장 귀중한 문헌이다. 이 기록유산은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상황을 가장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알려준다. 당시의 정치·경제·사회·군사뿐만 아니라 조선 수군 연구와 전략, 전술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실록에서 언급되지 않는 일반 백성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거북선을 만들거나 활, 화살, 총포 등 무기를 만들던 장인들, 천대받던 승려들로 구성된 의병부대, 심지어 그가 잠 못 이룰 때 거문고를 타고 피리를 불어주던 부하들에 관한 내용도 꼼꼼히 쓰고 있다.
∎ 〈적의 전술 분석부터 일반 백성 이야기까지_난중일기〉 p.254

“낙랑고분에 순금 보화가 무더기로 묻혀 있다”는 엉뚱한 소문이 퍼지면서 1920대 초중반 불법 도굴업자들이 난무하는 최악의 ‘대난굴 시대’가 전개된다. 평양 시민으로서 낙랑 거울과 낙랑 토기 항아리 한 개쯤 없으면 바보 취급을 받는다는 말까지 떠돌 지경이었다. 낙랑고분 조사보고서도 “1,400기의 고분 중에서 도굴을 면한 것은 겨우 140기뿐”이라고 기술한다.
∎ 〈2,000년 전 한반도로 집단이주한 중국인의 자취_석암리 금제 띠고리〉 p.254

국보의 지정 여부는 문화재위원회가 분과별로 심의를 통해 결정한다. 그러나 종종 문화재위원들의 전문성 부족으로 적격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보 중 자격 미달이거나 가짜로 판명 나 영구결번된 것이 세 건이나 된다. 국가문화재 지정 과정에서의 부실 검증이 가장 큰 원인이다. 국보 제168호였던 백자 동화매국문 병은 제작 지역과 가치 논란이 끊이지 않다가 지정 46년 만인 2020년 6월, 국보 지위를 잃었다. 국가지정문화재에서 해제되면 해당 지정번호는 영구결번 처리된다.
∎ 〈국보 지정의 문제점〉 p.310

실학적 기풍이 빛을 발하던 시절에 지식인들은 정선의 혁신적인 그림에 열광했다. 정선은 18세기 후반 이후에 행세하는 거의 모든 집안에서 그의 그림을 소장할 만큼 화가로서 위상이 높아졌다. 그의 그림은 한양의 좋은 집 한 채 값이었다고 한다. 조선 화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성공한 화가’였던 것이다. 정선은 산수를 포함해 인물, 화조, 초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총 4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 〈생계 위해 그림 선택한 양반 화가_인왕제색도·금강전도〉 p.351

신종의 고단한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경잡기》에 의하면, 1506년(중종 원년) 영묘사마저 화재로 소실되자 경주부윤 예춘년이 노동동 봉황대 고분 옆에 종각을 지어 종을 가져왔다. 경주 읍성의 성문을 여닫을 때마다 종을 쳤는데, 철종 때 대사헌을 지낸 홍직필(1776~1852)은 “종소리가 도성 거리에 진동하여 성안에 가득하니 (…) 아직까지 천년 고국의 소리 울리는구나”라며 감상에 젖었다.
∎ 〈덤불 속에 버려졌던 신라의 종_성덕대왕신종〉 p.355

목차

머리말

1부 국보 발굴 현장 답사기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한 사마왕의 무덤 [무령왕릉 출토품]
사라질 위기에 처한 ‘국보의 맏형’ [반구대 암각화]
우물 속에 내던져진 왕의 분신 [금동대향로]
도굴범 쫓다 발견한 세계 최고(最古)의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공개조차 꺼렸던 고박한 가야 금관 [고령 금관]
?국보 토막 상식_숭례문은 왜 국보 1호인가

2부 돌아온 국보, 팔려간 국보
일본이 꼭꼭 숨긴 불화를 되찾아오다 [고려불화]
구입가 두 배를 불러도 팔지 않은 최고 청자 [고려청자]
국보를 수출하는 나라는 없다 [조선백자]
도쿄 요리점에 팔려간 다보탑 수호신 [다보탑]
?국보 토막 상식_세 번이나 놓친 몽유도원도

3부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아
황산벌 굽어보는 거인 불상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기적처럼 지켜낸 인류의 유산 [해인사 대장경판]
경복궁을 불태운 조선 백성 [경복궁 근정전]
혼인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정복 군주 [진흥왕 순수비]
석굴암 본존불은 왜 일본을 바라볼까 [석굴암 석굴]
?국보 토막 상식_전쟁을 이겨낸 국보

4부 아직도 풀리지 않은 봉인된 수수께끼
경주 김씨는 흉노 왕의 후손일까 [신라 금관]
이 엉뚱한 곳에 누가 거탑을 세웠나 [탑평리 7층 석탑]
첨성대 위에 진짜 정자가 있었을까 [경주 첨성대]
선화공주는 허구의 인물이었나 [미륵사지 석탑]
?국보 토막 상식_고유섭, 국보 연구의 선각자

5부 희비애환 인간사를 담다
인도 승려가 병든 모친 위해 쌓은 미인탑 [화엄사 석탑]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완성한 사찰 [부석사 무량수전]
고통받는 중생을 위한 구원의 무지개 [불국사 백운·청운교]
삶의 굴레를 벗어나는 깨달음의 순간 [금동미륵반가사유상]
?국보 토막 상식_국보 신고와 보상금

6부 위대한 기록을 담은 국보
최고의 어문학자 세종, 직접 한글을 창제하다 [훈민정음 해례본]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고대사 기록물 [삼국사기]
적의 전술 분석부터 일반 백성 이야기까지 [난중일기]
실록은 승자의 기록일까 [조선왕조실록]
?국보 토막 상식_국보 도난의 역사

7부 이국의 향기 품은 우리 국보
서역풍 불상의 얼굴은 한국인? [감산사 입상]
적국의 안녕을 위해 세운 탑 [경천사지 10층 석탑]
2,000년 전 한반도로 집단이주한 중국인의 자취 [석암리 금제 띠고리]
선덕여왕이 황제의 절을 지은 이유 [모전석탑]
?국보 토막 상식_국보 지정의 문제점

8부 국보 제작 비하인드
시주자의 얼굴을 새긴 못난이 불상 [철불좌상]
조각사의 르네상스를 꽃피우다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
저잣거리 전전했던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 [혜원 풍속도 화첩]
생계 위해 그림 선택한 양반 화가 [인왕제색도·금강전도]
덤불 속에 버려졌던 신라의 종 [성덕대왕신종]
?국보 토막 상식_국보의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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