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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898366 / 351쪽 15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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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나는 하이데거(1889-1976)에서부터 출발하겠다. P. 130~131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은 나까지도 집어삼키는 체계의 바다로 잠수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부정확하게 말한다면, 그 말로 인해 내가 말하려 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난다. 내가 독일에서 독일어를 공부하고 있었을 때, 어느 날 밤 (물론 말을 유창하게 배우는 데 도움을 주므로) 독일인 친구와 함께 맥주를 마시러 외출하였다. 최고의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 맥주를 해치우고 나서도, 목이 말라 시냇가로 뛰어온 사슴처럼 아직 ‘한 잔 더(another)’ 마시기 위해, 나는 바텐더에게 최선을 다해서 독일어로 말했다. “아인 안더러, 비테(Ein andere, bitte), 다른 걸 주십시오.” 남자 바텐더가 내게 어떤 다른 걸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내 친구가 내게 정확한 독일어 표현으로 다른 종류의 맥주를 내가 주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말하려고 한 뜻이 아니었다. 나는 같은 것으로 하나 더를 뜻하는, “노흐 아인말, 비테(Noch einmal, bitte)”라고 말했어야 했던 것이다. 언어 규칙은 나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나의 목마름과 나의 아주 작은 생각하는 자아와는 전혀 상관없이 제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P. 131 전적인 몰입―언어를 배우는 최고의 방법―도 규칙의 바다 속으로의 몰입이다. 내가 입을 열자마자, 물려받은 전제들의 전체 역사가, 명시적 의미와 숨은 의미의 해일이 나를 덮치며, 내가 전혀 몰랐던 고대 계보의 홍수가, 고대적 표현들 및 나중에는 직해적 의미로 경화되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표현 방식들의 홍수가 내게 밀려들며, 연상, 암시, 말장난, 각운과 리듬, 은유와 환유, 누적된 내포와 외연, 그리고 일반적으로 나 자신의 의식적인 의도로는 오직 제한적으로만 통제되는 온갖 의도되지 않은 언어적 효과들의 바다가 내게 들이닥친다. 데카르트가 자기의 모든 전제를 내버리겠다고 말하면서 펜을 들고 <성찰>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는 착각하고 있었다. 만일 데카르트가 정말로 진지했더라면, 그는 자기의 프랑스어와 라틴어도 내버렸어야 했을 것이고, 펜을 내려놓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까? P. 143 해석적 명령은 끝까지 간다. 그 명령―우리가 해석해가야 한다는 부름이나 명령―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항상 그리고 이미 아주 집요하게 우리에 대해 소유 권리를 주장한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우리를, 바로 이 무지에 의해서, 바로 이 질문에 의해서 정의되는 우리를, 우리이게끔 해주는 바로 그것을, 그런 것이 있다면,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 지은이의 말 존 카푸토(지은이)의 말 “그건 해석(interpretation)하기 나름이야.” 이런 말은 여러분이 그렇게 말하고 싶다 해도 사람들을 아주 기분 나쁘게 만드는 말이다. 하지만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을 제쳐두고 나면, 이 말은 건전한 철학적 주장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실은 하나의 사실이다. 정말 그런가? 이는 여러분 얼굴에 코가 붙어 있다는 것만큼이나 분명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문해보라. 지금 여러분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실들이 있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는 말(term)과 사물의 테두리(framework)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어야 한다. 여러분은 코를 세고 있는 것인가, 의자를 세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아원자 입자를―또는 그 무엇을―세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수를 세어가기 전에 해석을 필요로 한다. 모든 것이 해석의 문제라는 이론을 해석학(hermeneutics)이라고 한다. 이것은 사람들을 지극히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또한 전적으로 타당한 말이기도 한 것이다. 해석학은 냉정하고 진지한 이론이며, 과학과 예술에서의 우리의 창의성 밑에, 정치학에서의 우리의 민주적 자유 밑에, 그리고 혁신적인 제도와 살아 있는 전통 밑에 자리하고 있다. 해석학 없이 모든 사태는 급정거해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한 유명한 연사가 책상을 내리치면서 ‘사실은(The fact of matter…)’이라고 주장할 때마다, 그 연사가 힘주어 의미하고자 하는 것이 그 어떤 해석이든지 간에, 올바른 철학적 반응은 해석되지 않은 사실(facts of matter)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실 문제는 사실을 가려내는 해석의 문제이다. 해석학은 사실과 해석 간의 구분을 철저하게 검토하는 이론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인 것이다. 역자후기 현대 유럽 대륙 철학의 중요한 방법론으로서 현상학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해석학이다. 주지하다시피 원래 해석학은 성서 해석학, 문헌 해석학에서 출발하였으나, 슐라이어마허에게 와서 해석 방법 일반에 관한 이론으로 확립되었다. 슐라이어마허에게 해석학은 이해 기술론(Kunst des Verstens)으로서, 이 기술론은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 행위, 올바른 해석의 실천을 의미하였다. 그 뒤에 해석학을 굳건한 철학적 방법론으로서 정초한 철학자는 빌헬름 딜타이이다. 딜타이의 해석학은 19세기 말 위기에 처한 철학의 자기 정체 확인 작업에서 비롯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근대에 들어 철학의 권위를 뒤흔드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그때까지 자연철학이라고 일컬어져왔던 철학의 한 분야가 뉴턴 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분가한 사건이다. 자연에 관한 연구는 이제 자연과학자들의 몫으로 넘어갔으며, 철학은 그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정신의 영역을 움켜잡고 자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자연과학이 분가에 만족하지 않은 채, 정신의 영역을 자기들의 학문 영역으로 편입시키려고 끈질기게 도전해왔다는 점이다.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역사, 예술과 같은 인문과학 또는 정신과학의 문제까지도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경향을 낳았던 것이다. 철학은 이에 맞서서, 철학을 자연과학과 대립되는 정신과학으로 규정하고, 정신과학의 방법론은 자연과학의 방법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신칸트학파의 철학과 딜타이로 대표되는 해석학이 바로 그것이었다. 해석학의 완성자 딜타이는 이런 배경 하에서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을 대립시키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자연을 설명하고 정신생활을 이해한다.” 정신과학을 이해하는 방법론이 바로 해석학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해’라는 개념은 딜타이에게 와서 자연과학과 대립되는 역사, 철학, 예술 등을 탐구하는 독자적인 방법적 개념으로 확립되기에 이른다. 그 후 인문학자들은 당당하게 자기들의 학문 영역을 옹호할 수 있게 되었다. “봐라, 인문학에도 자연과학 못지않은 방법이 있다. 우리도 진리와 객관성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은 다르다.”라고. 자연과학은 수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현상을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반면, 인문학에서 우리는 비수학적 의미를 가진 현상인 예술작품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적 이해에 도달한다. 인문학은 다르기는 하지만 자체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말
“그건 해석(interpretation)하기 나름이야.”
이런 말은 여러분이 그렇게 말하고 싶다 해도 사람들을 아주 기분 나쁘게 만드는 말이다. 하지만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을 제쳐두고 나면, 이 말은 건전한 철학적 주장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실은 하나의 사실이다. 정말 그런가? 이는 여러분 얼굴에 코가 붙어 있다는 것만큼이나 분명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문해보라. 지금 여러분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실들이 있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는 말(term)과 사물의 테두리(framework)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어야 한다. 여러분은 코를 세고 있는 것인가, 의자를 세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아원자 입자를―또는 그 무엇을―세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수를 세어가기 전에 해석을 필요로 한다. 모든 것이 해석의 문제라는 이론을 해석학(hermeneutics)이라고 한다. 이것은 사람들을 지극히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또한 전적으로 타당한 말이기도 한 것이다. 해석학은 냉정하고 진지한 이론이며, 과학과 예술에서의 우리의 창의성 밑에, 정치학에서의 우리의 민주적 자유 밑에, 그리고 혁신적인 제도와 살아 있는 전통 밑에 자리하고 있다. 해석학 없이 모든 사태는 급정거해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한 유명한 연사가 책상을 내리치면서 ‘사실은(The fact of matter…)’이라고 주장할 때마다, 그 연사가 힘주어 의미하고자 하는 것이 그 어떤 해석이든지 간에, 올바른 철학적 반응은 해석되지 않은 사실(facts of matter)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실 문제는 사실을 가려내는 해석의 문제이다. 해석학은 사실과 해석 간의 구분을 철저하게 검토하는 이론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인 것이다. -(지은이 <서론>에서)
현대 유럽 대륙 철학의 중요한 방법론으로서 현상학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해석학이다. 주지하다시피 원래 해석학은 성서 해석학, 문헌 해석학에서 출발하였으나, 슐라이어마허에게 와서 해석 방법 일반에 관한 이론으로 확립되었다. 슐라이어마허에게 해석학은 이해 기술론(Kunst des Verstens)으로서, 이 기술론은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 행위, 올바른 해석의 실천을 의미하였다. 그 뒤에 해석학을 굳건한 철학적 방법론으로서 정초한 철학자는 빌헬름 딜타이이다. 딜타이의 해석학은 19세기 말 위기에 처한 철학의 자기 정체 확인 작업에서 비롯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근대에 들어 철학의 권위를 뒤흔드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그때까지 자연철학이라고 일컬어져왔던 철학의 한 분야가 뉴턴 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분가한 사건이다. 자연에 관한 연구는 이제 자연과학자들의 몫으로 넘어갔으며, 철학은 그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정신의 영역을 움켜잡고 자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자연과학이 분가에 만족하지 않은 채, 정신의 영역을 자기들의 학문 영역으로 편입시키려고 끈질기게 도전해왔다는 점이다.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역사, 예술과 같은 인문과학 또는 정신과학의 문제까지도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경향을 낳았던 것이다. 철학은 이에 맞서서, 철학을 자연과학과 대립되는 정신과학으로 규정하고, 정신과학의 방법론은 자연과학의 방법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신칸트학파의 철학과 딜타이로 대표되는 해석학이 바로 그것이었다. 해석학의 완성자 딜타이는 이런 배경 하에서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을 대립시키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자연을 설명하고 정신생활을 이해한다.” 정신과학을 이해하는 방법론이 바로 해석학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해’라는 개념은 딜타이에게 와서 자연과학과 대립되는 역사, 철학, 예술 등을 탐구하는 독자적인 방법적 개념으로 확립되기에 이른다. 그 후 인문학자들은 당당하게 자기들의 학문 영역을 옹호할 수 있게 되었다. “봐라, 인문학에도 자연과학 못지않은 방법이 있다. 우리도 진리와 객관성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은 다르다.”라고. 자연과학은 수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현상을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반면, 인문학에서 우리는 비수학적 의미를 가진 현상인 예술작품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적 이해에 도달한다. 인문학은 다르기는 하지만 자체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옮긴이 후기>에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은 나까지도 집어삼키는 체계의 바다로 잠수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부정확하게 말한다면, 그 말로 인해 내가 말하려 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난다. 내가 독일에서 독일어를 공부하고 있었을 때, 어느 날 밤 (물론 말을 유창하게 배우는 데 도움을 주므로) 독일인 친구와 함께 맥주를 마시러 외출하였다. 최고의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 맥주를 해치우고 나서도, 목이 말라 시냇가로 뛰어온 사슴처럼 아직 ‘한 잔 더(another)’ 마시기 위해, 나는 바텐더에게 최선을 다해서 독일어로 말했다. “아인 안더러, 비테(Ein andere, bitte), 다른 걸 주십시오.” 남자 바텐더가 내게 어떤 다른 걸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내 친구가 내게 정확한 독일어 표현으로 다른 종류의 맥주를 내가 주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말하려고 한 뜻이 아니었다. 나는 같은 것으로 하나 더를 뜻하는, “노흐 아인말, 비테(Noch einmal, bitte)”라고 말했어야 했던 것이다. 언어 규칙은 나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나의 목마름과 나의 아주 작은 생각하는 자아와는 전혀 상관없이 제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 (130-131쪽)
전적인 몰입―언어를 배우는 최고의 방법―도 규칙의 바다 속으로의 몰입이다. 내가 입을 열자마자, 물려받은 전제들의 전체 역사가, 명시적 의미와 숨은 의미의 해일이 나를 덮치며, 내가 전혀 몰랐던 고대 계보의 홍수가, 고대적 표현들 및 나중에는 직해적 의미로 경화되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표현 방식들의 홍수가 내게 밀려들며, 연상, 암시, 말장난, 각운과 리듬, 은유와 환유, 누적된 내포와 외연, 그리고 일반적으로 나 자신의 의식적인 의도로는 오직 제한적으로만 통제되는 온갖 의도되지 않은 언어적 효과들의 바다가 내게 들이닥친다. 데카르트가 자기의 모든 전제를 내버리겠다고 말하면서 펜을 들고 <성찰>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는 착각하고 있었다. 만일 데카르트가 정말로 진지했더라면, 그는 자기의 프랑스어와 라틴어도 내버렸어야 했을 것이고, 펜을 내려놓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까? -(본문 131쪽)
해석적 명령은 끝까지 간다. 그 명령―우리가 해석해가야 한다는 부름이나 명령―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항상 그리고 이미 아주 집요하게 우리에 대해 소유 권리를 주장한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우리를, 바로 이 무지에 의해서, 바로 이 질문에 의해서 정의되는 우리를, 우리이게끔 해주는 바로 그것을, 그런 것이 있다면,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본문 143쪽)
일러두기 4
감사의 글 9
서론: 해석의 문제 11
제1장 하이데거는 어떻게 모든 것을 변화시켰는가 31
제2장 다시 떠오른 하이데거 71
제3장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 93
제4장 데리다와 해석에 대한 두 가지 해석 119
제5장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그리고 프로그램의 시대 145
제6장 바티모와 로티의 악동 같은 해석학 171
제7장 정의의 부름과 법이라는 권총 189
제8장 가다머 식 간호사 215
제9장 포스트-휴먼이라는 유령 241
제10장 포스트모던, 포스트-세속, 포스트-종교 267
제11장 짧은 회고 297
결론 없는 결론 305
더 읽을거리들 311
옮긴이 후기 321
찾아보기 3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