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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

오찬영 저 | 북드라망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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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351225 / 168쪽 132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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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나를 뛰어넘는 한 번의 도약으로 비상할 것인가? 혹은 끝없는 허무 속으로 침잠할 것인가?
에이해브 vs 이슈메일 ― 『모비딕』에서 펼쳐지는 두 삶의 태도, 그리고 철학-하기!
미국이 낳은 세계적 고전 『모비딕』을 삶과 운명에 대한 두 가지 철학적 태도를 대별시키며 다시 읽기를 시도하는 책. 절대자를 함축하는 흰고래에게 도전하는 주인공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의 타나토스와 포경선 위의 아웃사이더이자 화자인 일개 선원 이슈메일의 삶에 기반한 지혜와 유쾌함이 대별되며, 일상의 ‘철학-하기’가 왜 필요하며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또 이 책은 비극적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살아남는 유일한 생존자 정도로 여겨지는 이슈메일의 캐릭터가 품고 있는 ‘철학’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에이해브의 “No!”의 경직성을 넘기 위해서는 그 반대편의 “Yes!”가 아니라, “그리고”(and)로 나아가는 이슈메일의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는 것. 그런 통찰을 가진 사람은, 이슈메일이 말한 대로, 망망대해의 포경 보트 위에 있다 해도 안락한 자기 집의 난롯가에 있는 것보다 더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안락한 육지를 뒤로 하고 망망대해로 나아가려는 이들에게 함께 ‘앎의 항해로’를 향해 나아가자고 권한다.

출판사 리뷰

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 지은이 인터뷰 1. 미국의 대표적인 고전 『모비딕』을 선생님의 시선으로 읽어 낸 이 책에서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란 무엇을 말하는지요?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모비딕』은 ‘피쿼드 호’라고 하는 포경선이 흰고래를 쫓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네요. ‘흰고래를 찾으러 가는 항해로가 두 개였나?’ ‘배가 두 척이었나?’ 이 ‘항해로’란 단순히 바다 위에서 목표물을 쫓는 길 그 이상의 어떤 철학적 선분이라고 생각했어요. 흰고래는 진리와 삶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품고 있는 하나의 기호로 볼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 속에서 두 캐릭터가 고래를 대하는 각기 다른 방식의 태도를 비춰 봤을 때, ‘두 개의 항해로’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그 유명한 에이해브 선장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 족적을 남길 만큼 강렬한 인상답게, 열정적이고 광기를 품고 있는 캐릭터죠. 셰익스피어 비극 작품의 주인공 같은 냄새도 얼핏 풍기고요. 서양 영화에서 많이 봤을 법한 무모하고 초인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모비딕』의 결말을 비극으로 이끄는 데 거의 모든 원인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극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이해브와는 다르게 이슈메일이라는 캐릭터가 있어요. 사실 이슈메일을 새롭게 포착해 냈다는 게 저한테 있어서는 가장 큰 수확이었어요. 비극을 비극으로만 끝내지 않으려면, 또 철학을 함에 있어서 가장 귀중하지만 쉽게 소홀히 할 수 있는 재료인 ‘일상’과 ‘현장’을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가장 적절한 답안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캐릭터였거든요. 이 두 캐릭터를 대조하는 것이 이 책의 큰 줄기라서,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2. 19세기 미국의 상황을 담고 있는 『모비딕』이 21세기의 한국에 사는 청년인 선생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종교적인 코드 때문인 것 같아요. 『모비딕』은 성서적 요소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책입니다. 저는 모태 기독교인이었고, 원래부터 종교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원래 알고 있었던 성경에 대한 지식들과 『모비딕』이 겹치는 걸 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작가가 어떤 식으로 성서를 변용했는지 주목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왜 하필 성서를 차용했는지 파고 들어가게 되고, 19세기 미국의 종교적 상황과 모순 역시 볼 수 있게 됩니다. 최첨단 과학의 시대를 사는 21세기의 한국인이지만 저를 이루는 생각들의 근원을 추적해 올라가 보면 종교가 결코 빠질 수 없어요. 특히 미국의 영향력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대한민국 기독교요. 미국과 한국, 이 두 나라는 물질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실감했어요. 그래서 『모비딕』은 한국인들에게도 충분히 낯설지 않은 고전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19세기의 미국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전, 막 팽창을 시작하려는 미국을 볼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서로 상반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혼란스럽지만 기이한 조화를 이루면서 막 뒤섞여 있는 거죠. 종교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신에 대한 생각들, 각종 신화와 전설 속의 이야기들이 당시 기술력의 최고 응집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포경선 위에서 펼쳐져요. 굉장히 흥미롭죠. 고대와 현대, 원시 자연과 최신 과학을 동시에 목격하는 기분이랄까요.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고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추출해 낼 수 있었어요. 이 이야기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생애에 걸쳐 던질 수 있는 화두들입니다. 종교와 신, 사람의 운명, 행복과 고난,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요, 이렇게 『모비딕』을 통해 건져낼 수 있는 수많은 화두들을 가지고 결과적으로 저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기 해부적 글쓰기를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이렇게 종교와 성서라는 코드를 통해 1850년에 출판된 책이 2019년의 청년에게도 생생하게 와 닿습니다. 『모비딕』을 읽으며 고전이란 그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잘 비춰주는 시대성을 지님과 동시에 어느 세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통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텍스트임을 다시금 깨달았어요. 3. 허먼 멜빌이 『모비딕』에서 변주하고 있는 성경의 인물들과 내용들이 놀랍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부분이 충격적으로 와닿으셨는지요? 저처럼 성경을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읽어 온 사람이라면 서양 고전들이 재밌게 느껴지는 포인트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바로 ‘전복성’이요. 성경에서 고정된 캐릭터, 변하지 않는 상징들로 교회 내부에서 통용되는 것들이 고전에서 완전히 뒤엎어지는 게 정말 재밌거든요. 악역과 선역이 뒤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신이나 신에 가까운 엄청난 권위의 예언자들이 갑자기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 뜬금포로 등장하는 순간의 느닷없음은 정말 재밌는 ‘성서 브리콜라주’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교회를 다녀보면 알겠지만 수천 년의 역사, 거기에 인류 최고의 경전이라는 무게감 앞에서는 반박은 고사하고 2차 생산조차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엄숙함이 있단 말이죠. 근데 그게 19세기 미국의 책 속에서 작가적 상상력으로 완전히 다르게 탄생한 것은 경이로워요. 『모비딕』은 제1장부터 끝장까지 성경적 함의를 절대 놓치지 않고 있어요. 이 책을 처음 읽어 내려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딱 앞의 몇 장만 읽고서도 ‘이건 올해 내가 정말 써야 할 고전이다! 잘 선택했구나!’ 하는 감탄이 딱 들었었거든요. 사실 성경을 읽어 왔던 배경 때문에 『모비딕』에 더 끌리고 꽂혔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만약 성경을 계속 읽어온 모태 신자다, 구약과 신약 경전 순서를 나열하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다, 하는 분이라면 『모비딕』을 읽어 보시라고, 특히 『모비딕』의 ‘요나서’를 리라이팅한 부분을 꼭 읽어 보시라고 강력 추천하고 싶어요. 허먼 멜빌도 분명 성경을 엄청나게 애독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다독’이 아니라 ‘애독’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렇게 성경이라는 텍스트에 흠뻑 젖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을 캐릭터의 교차, 기독교적 상징의 융합 등 상상할 수 없는 만남들을 전부 해내고 있거든요. 거기에 감초처럼 더해지는 성경 말씀들도 굉장합니다. 『모비딕』을 읽으며 성경을 비종교적인 텍스트로 읽는 시선을 하나 확보한 것 같아요. 교회에 다녔을 때는 상상할 수도, 시도할 수도 없는 관점이었거든요. 4. 당신이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죽음을 옆에 끼고 사는 격렬한 포경 보트 위에서도 집 안의 화롯가 옆에 안전하게 앉아 있는 사람보다 더 큰 공포를 느끼지 않을 거라고 하는 이슈메일의 말에 깊이 공감하시는 듯합니다. 선생님께 ‘철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슈메일의 말입니다. 문장이 좀 복잡한데, 거꾸로 더 쉽게 말해 보면 “철학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편안한 집 안에 앉아 있어도 저 바다 위에서 험하게 고래잡이 하는 사람들보다 더 공포스럽게 살 수밖에 없다”가 되겠네요. 이슈메일이 토해 낸 명문들이 책 속에 너무나 많아요. 그리고 이 문장들은 전부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알게 되는 삶과 운명’의 원리들을 담고 있어요. 딱딱한 철학서의 논증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더럽고 치열한 3D업종에 종사하는 한 포경선원의 입을 빌려 왜 철학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 『모비딕』의 묘미예요. 제게 있어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앎의 여정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속에서 자신이 사랑한 육지와, 사람들과, 배경들과 헤어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요. 왜 이별을 해야 할까요? 지금의 삶도 충분히 좋고 안락한데. 그렇지만 삶과 운명, 죽음, 생로병사 같은 중요한 질문들을 무지 속에 그냥 던져놓는다면, 어느새 ‘공포’로 변환되어 버린 삶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고와 죽음들이 수없이 쏟아지나요? 뉴스뿐만 아니라 당장 주변만 봐도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떠오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죠. 그런 의문들을 그저 내버려둔 채 건드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집 안의 안락한 곳에 앉아 있더라도 마음은 수심과 번뇌로 가득할 수밖에 없어요. 딱 현대인들의 알 수 없는 불안함을 정확히 지적한 문장 아닌가요? 저도 그랬어요.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고, 왜 살아야 하는 건지 방향키를 잃어버렸을 때, 눈앞의 사건이 해석이 되지 않을 때, 그때는 당장의 일상이 공포와 불안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나이가 몇이든 언젠가는 이 본질 앞에 서서 자신만의 대답과 탐구의 결과물을 증명해야 될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래서 철학함은 삶의 의무에요. 누구든 결코 피해갈 수가 없어요. 5. 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 분들에게 특별히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세요. 독자들이라... 살면서 독자를 상정한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저는 늘 비밀스럽게 글을 썼거든요. 누가 보여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보여 줄 사람도 없었지만요. 항상 노트북의 비번을 꼭꼭 잠가 뒀던 기억이 나요. 책을 내는 과정은 제가 해오던 작업과 완전히 달랐어요. 늘 누군가와 함께하는 과정의 연속이더라고요.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끊임없이 다른 이들과 소통해야 하고, 최종적으로 독자라고 하는 불특정다수를 설정하고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쓰는 거니까요. 도대체 누가 과연(?) 내 책을 읽을까? 알 수가 없죠. 그런데 제가 읽어 왔던 모든 책들 역시, 서로 얼굴도 뭣도 모르는 어마어마한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만남이었음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책이 끌어당기는 인연장이란 것이 뭔지 처음으로 감지되는 느낌이었어요. 앞으로는 저 역시 독자로서 읽어 나갈 책들 하나하나가 더 깊게 와닿을 것 같아요. 결국 책을 하나 집어 든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사건인가,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나의 글은 고래처럼 세상을 마음껏 떠돌고 있겠구나 생각하면 가슴이 뛰죠. 인연도 이런 귀한 인연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욕심이겠지만, 읽으면서 ‘어, 나도 이랬었는데’ 하는 공통분모를 독자 분들과 작게라도 형성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힘은 글쓴이와 독자 간의 보편적인 영역이 얼마나 공유되었는가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비딕』이라는 거대한 고래에 기대어 제 나름대로 너무나 중요하고 꼭 탐구해 보고 싶었던 질문들을 이리저리 찔러보는 과정을 이 책에 모두 담았어요. 말이 길어졌는데, 결론적으로 이 책의 독자 분들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저자 소개

  • 저자 : 오찬영
저자 : 오찬영
사회생활 4년차에 무려 5곳의 회사를 거친(!), 스스로도 출처를 알 수 없는 자신감과 배짱으로 무장한 92년생 비정규직 직장인. 오직 도서관과 여행, 이 두 가지에 몰입하며
흥미롭게 보낸 대학을 졸업하고 더 재밌는 공부 현장인 감이당에서 이제 4년차를 맞이하는 학인. 읽고 쓰는 건 그냥 다 좋다. 마르크스가 말했던가? 최소한의 노동을 마친 뒤 낚시와 시, 음악으로 즐기며 사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느니 뭐라도 좀 해보고 죽자는 일념하에 야근 없는 회사를 쫓아다니며 퇴근 후의 시간을 좋아하는 공부와 음악으로 꾹꾹 눌러 담아 채우고 있다. 덜 일하고 더 재밌게 살고 싶다.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게 많아서 가슴이 뛴다. 본성적인 공부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공동체에 와서 발 담가 본 것을 최고의 공부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머리말

사방팔방 길이 펼쳐진 이 멋진 작품 속에서 누구든 자신만의 길을 낼 수 있을 텐데, 나 같은 경우는 대조하면 참 재밌겠다 싶은 캐릭터 둘을 발견했다. 이 둘의 항해로를 선명하게 그려 나가는 과정은 또한 나를 둘러싼 모든 접점들을 두 가지 방식으로 탐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첫번째는 에이해브 선장이다. 그는 진리와 자연을 대하는 서구 문명의 원형 그 자체다. 그의 항로를 따라가면서 내가 믿었던 근대적 가치들과 신을 둘러싼 모든 전제들을 하나씩 풀어갈 수 있었다. 두번째는 이슈메일이다. 독특한 아웃사이더인 그의 항해로는 앞으로의 철학함에 있어서 공부의 비전과 방향성을 깨닫게 했다. 그는 내게 죽음과 비극으로 점철된 무거운 앎이 아닌 삶에 기반한 지혜와 유쾌함으로 가득한 신체성을 알려 주었다. ‘나’라는 인간의 계보학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동시에 새로운 비전의 가능성까지 발견할 수 있다니, 이 정도면 이 둘은 내 인생의 훌륭한 ‘사부님’으로 모셔도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모비딕』은 도발한다. ‘고래의 이마에 새겨진 경외스러운 칼데아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자, 한번 읽어 보라고! 이에 응답하고자, 열렬히 마음에 품었던 이 흰고래에 대한 내 나름의 미숙하고 서툰 독법을 아주 조심스럽게 세상으로 띄워 보낸다.


책 속에서

나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왜 굳이 머나먼 항해를 떠나려 하느냐고, 네가 딛고 선 땅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없느냐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이제 막 포경선에 올라타려는 이슈메일과 퀴퀘그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한 번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육지를 떠나야 할 때가 온다. 이 험난한 여행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가장 조심스럽게, 또 신중하게 챙겨야 할 동반자는 철학이 아닐까? 이제 막 돛을 달고 출항하려는 배에게 있어서, 순간순간의 방향키를 조정하고, 항로를 계획하며, 폭풍을 만났을 때 대처하는 법을 알려 주는 매뉴얼이 바로 철학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육지란 가족을 기반으로 세워진 종교적 세계관과 신앙을 의미했으며, 대학 시절을 거쳐 만난 새로운 바다는 바로 철학이었다. 바야흐로 안락한 육지를 뒤로 한 채, 이제 망망대해를 앞두고 내 안의 매뉴얼이 싹 갱신되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프롤로그 「상실의 위험에도 돛을 단다」, 16~17쪽)

호손과의 강렬한 만남으로 허먼 멜빌의 문학 세계는 분기점을 맞게 된다. 그의 서른한번째 생일을 막 지난 1850년 8월, 『모비딕』의 집필 방향이 처음 계획과는 완전히 다르게 바뀌어 버리고, 이 책은 이후의 모든 작품들에 있어서 허먼 멜빌만의 독특한 상징이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아담 이후 지금까지 모든 인류가 느낀 분노와 증오의 총량”을 흰 고래에게 터뜨리는 유별나게 사악한 에이해브가 탄생한 것이다. (1장 「허먼 멜빌, 사악함의 재탄생」, 30쪽)

『모비딕』의 주요 모티브인 「욥기」에서는 욥 앞에 강림한 신이 자신의 힘을 자랑하며 고래(리바이어던)를 내세우는 장면이 나온다. 압도적인 크기와 경이로운 힘, 자연의 불가지성(不可知性)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절대자의 현신. 이 정도의 스케일을 넉넉히 담아 낼 수 있는 동물은 지구를 통틀어 고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에이해브는 절대자를 함축하는 고래에게 감히 도전하는 자다. 어떻게 인간이 절대자의 힘과 대치할 수 있을까? 이 말도 안 되는 ‘무한도전’으로 뛰어들게 하는 것이 바로 광기다. 그는 한마디로 광기의 선장이다. 그래서 존재 자체가 진화 불가능한 폭발적 화염과 내리치는 번갯불로 계속 묘사된다. (2장 「에이해브, 광기의 타나토스」, 52쪽)

자연의 미지성을 극복하기 위해 신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전제는 더욱 공고해진다. 모든 과거가 완전히 고정된 채 영상처럼 재현되는 <겨울왕국 2>의 강물처럼, 이제 미래 역시 빈틈없는 계획과 필연으로 못박힌 채 정지되어 있다. 이러한 시간관은 바로 묵시록, 최후에 대한 기독교의 종말론과 아주 비슷한 배치를 가지고 있다. 미국인들의 대다수가 종말을 믿으며, 이 믿음은 그들의 역사관과 시간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만물의 끝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 종말이 도래한 이후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관념은 최후의 순간을 당기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이왕 다 죽을 거라면 맘 졸이지 말고 지금 죽어 버리는 게 낫다! 이것이 바로 타나토스적 충동, 죽음에의 욕망이다.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을 설정한 목적론적 세계관이 바로 기독교의 기본 배치다. (3장 「미국을 비추는 거울, 모비딕」, 95쪽)

이슈메일은 세상에 노예가 아닌 이가 누가 있냐고 반문한다. 이 노예란 단순히 계급적 의미를 벗어나, 샴쌍둥이처럼 얽히고설켜 서로가 빚진 상태인 인간관계의 실상을 비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선장에게 착취당하는 아주 보잘것없는 선원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즐길 수 있다. 최고참인 선장 역시 말단인 자신에게 의탁하고 있는 자임이 분명하므로.
에이해브와 이슈메일은 둘 다 통찰력을 지닌 캐릭터들이다. 그러나 전자는 이 때문에 괴롭다. 그가 추구하는 시선의 높이는 날카롭지만 그 예리함만큼 무겁고 비극성이 짙다. 반면 이슈메일이 확장시키는 시선의 넓이는 수평으로 확장되며 끊임없는 여백을 확보하고, 그 여백만큼 웃기고 쾌활하다. 그의 서사는 종말론의 엄숙한 플롯을 동력 삼지 않는다. 모두가 바다 깊이 침몰한 배에서 유일한 생존자로 허먼 멜빌이 선택한 이유가 아닐까? (4장 「이슈메일, 바다의 방랑자」, 121쪽)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 상실의 위험에도 돛을 단다

1장 허먼 멜빌, 사악함의 재탄생
1) 미국의 셰익스피어
2) 왜 사악함인가?
3) 잃어버린 야생을 찾아서
〈덧달기〉 허먼 멜빌과 너새니얼 호손

2장 에이해브, 광기의 타나토스
1) 『모비딕』, 성경의 오마주
2) 신 같은 인간
3) 에로스에서 타나토스로
〈덧달기〉 『모비딕』이 변주한 성경 속 인물들

3장 미국을 비추는 거울, 모비딕
1) 신대륙이 낳은 어린 고전
2) 흰 고래와 민주주의
3) 미국의 자연관 ① 미지성?-?흰색의 계보학
4) 미국의 자연관 ② 정복?-?〈겨울왕국〉과 『모비딕』
5) 아포칼립스, 종말을 향한 아메리카적 열정
〈덧달기〉 허먼 멜빌과 노예제

4장 이슈메일, 바다의 방랑자
1) 거대한 질주 속 미시적 생명선
2) 아웃사이더의 외침?-?“Call me Ismael”
3) 의심하라, 그리고 직관하라
4) 『모비딕』의 유쾌한 지정생존자
〈덧달기〉 이슈메일과 퀴퀘그의 우정

5장 고래잡이가 낳은 우주적 철학
1) 운명을 맛있게 소화하는 방법
2) 종말론의 종말
3) 에이해브의 ‘No’와 이슈메일의 ‘And’
〈덧달기〉 『모비딕』의 조연들

에필로그
1) 무지는 두려움의 아버지다
2) 원숭이 밧줄의 철학
3) 한때의 우화를 위한 글쓰기
4) 고전이 일상과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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