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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하여

원제 : On Death

팀 켈러 저 | 윤종석 역 | 두란노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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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3138247 / 119쪽 112 x 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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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충분히 슬퍼하되, 깊은 소망을 품고” 그리스도인이 죽음 앞에서 누리는 독보적인 소망 언젠가 맞게 될 사랑하는 이의 죽음, 그리고 우리 자신의 죽음을 대하는 법을 기술했다. 죽음을 어떻게든 부정하는 현대 사회에서 성경에 주어진 믿음의 자원으로 죽음에 직면하도록 가르친다. 가장 깊은 슬픔을 맞닥뜨리는 이 인생의 고비를 은혜와 인내와 기쁨으로 접근하고 경험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성경에서 절망과 부정의 대안을 찾아내는 팀 켈러에게서 지혜와 긍휼이 엿보인다. 죽음의 의미를 하나님의 생명관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게 돕는 강력한 책이다. 특히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몸이 아픈 이들이나 언젠가 닥쳐올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이들, 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이들이 일주일 동안 날마다 묵상할 수 있도록 관련 성경 말씀을 소개했다.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이 약속을 붙들어 깊은 소망을 품을 수 있도록 돕는다. - 본문 맛보기 <캐시 켈러 서문 중에서> 나이가 들어 갈수록 남편과 나는 목회 현장에서나 개인적인 관계들 속에서나 죽음을 접할 일이 더 잦아진다. 절친한 친구들과 가족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지난 18개월 동안 우리 집안에서만 세 차례나 장례를 치렀고, 임종을 앞둔 친구와 친척과 함께 죽음에 직면하는 법을 놓고 대화를 나눈 것도 불과 지난 석 달 사이의 일이었다. 그런 대화 중에 우리가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바로 이 책에 담겨 있다. 2018년 1월 6일 남편 팀이 내 동생 테리의 장례식에서 전한 설교가 이 책의 기초가 되었다. 동생은 유방암이 신체 다른 곳까지 전이되었고, 결국 오랜 투병 끝에 크리스마스 날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동생도 알았기에 남은 시간 동안 마지막 힘을 다해 우리에게 자신의 영결 예배에서 부를 찬송가를 골라 주었고 기도문도 적어 주었다. 특히 장례식 때 자신의 일생만을 기릴 것이 아니라(물론 우리에게 한없이 사랑받고 존경받던 테리였다) 반드시 복음을 전해 달라고 팀에게 당부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는 으레 생각이 깊어지게 마련”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동생은 자기 장례식에 참석할 사람들도 각자의 죽음을 준비해 가기를 원했다. <16-17쪽 중에서> 과거에는 사람들이 죽음을 가까이서 보았다. …(중략)… 오늘날에는 의학과 과학 덕에 조기에 사망하는 많은 원인들을 해결했고, 절대다수의 사람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병원과 호스피스센터에서 쇠약해져 가다가 사망한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도록 단 한 사람의 죽음도 지켜보지 못하는 일이 당연해졌다. 서구 사회의 경우 장례식에서 뚜껑이 열린 관에 잠시 눈길을 줄 때를 제외하고는 죽은 사람을 볼 기회도 없다. 아툴 가완디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이, 현대 사회가 이토록 죽음을 숨긴다는 것은 모든 문화 중에서 우리야말로 임박한 죽음의 불가피성을 부정하며 산다는 뜻이다. <33-34쪽 중에서> 죽음 앞에 서면 자아에 대한 불만이 훨씬 또렷해진다. 이전처럼 양심을 침묵시킬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극중 인물인 햄릿은 자살을 생각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결심한다. 사후의 무엇에 대한 두려움 곧 “어느 길손도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미답의 나라”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심판이 두려워지고, 그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세상으로 달아나느니 차라리 지금 이 세상의 고통을 묵묵히 견딘다.” 이유는 “양심이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막아 보려 해도 죄책감은 집요하며, 특히 죽음 앞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현대 문화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별로 없지만 기독교 신앙은 우리에게 놀라운 자원을 준다. <39-40쪽 중에서> 모든 종교가 죽음과 내세를 말하지만, 대체로 주장하는 바는 영원에 대비하려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죽음이 닥쳐오면 우리 모두는 자신이 최선의 삶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마땅히 살아야 하는 대로 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죽기를 무서워하여 끝까지 거기에 매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독교는 다르다. 기독교는 나 혼자 죽음에 맞서 내 인생 이력으로 충분하기만을 바라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기독교에는 죽음을 이기신 챔피언이 계시다. 그분이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고 덮어 주신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빌 3:9) 그분의 완전한 이력에 의지해 죽음에 직면한다. 이 사실을 믿고 알고 받아들이는 정도만큼 우리는 죽음의 세력에게서 해방된다. 그러므로 죽음이 “어느 길손도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미답의 나라”라던 햄릿의 말은 틀렸다. 죽음에서 돌아오신 분이 계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세력을 멸하신 결과로 “세상의 냉혹한 벽에 틈새가 열렸다.” 이것을 믿음으로 붙들면 더는 흑암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55-57쪽 중에서> 오랜 세월 사람들은 소금을 쳐서 육류를 보존했다. 소금에 절이면 고기가 썩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슬픔도 소망이라는 소금을 치지 않으면 고기처럼 상한다. 죽음 앞에 슬퍼하고 격노하는 것은 거대한 악에 내보이는 온당한 반응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소망이 있어, 마치 고기에 소금을 바르듯 그 소망을 슬픔과 분노에 ‘바를’ 수 있다. 슬픔을 억누르거나 절망에 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분노를 억제하거나 무조건 다 터뜨리는 것도 영혼에 이롭지 못하다. 그러나 슬픔을 소망에 절이면 지혜와 긍휼과 겸손과 애정이 싹튼다. 충분히 슬퍼하되 깊은 소망을 품으라! 내가 왜 이를 중용이 아니라 양극단의 조합이라 했는지 알겠는가? 이렇게 하면 단순히 극기할 때보다 더 힘이 나고, 절망할 때보다 더 마음껏 애통할 수 있다. <78-79쪽 중에서> 조지 허버트는 “죽음은 한때 사형집행인이었으나 복음 앞에서 한낱 정원사로 전락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죽음은 한때 우리의 숨통을 끊어 놓을 힘이 있었으나 이제 죽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를 하나님의 땅에 심어 비범한 존재로 피어나게 하는 것뿐이다. 오래전에 시카고의 유명한 드와이트 무디 목사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머잖아 시카고의 여러 신문에 드와이트 무디의 부고가 실리거든 절대로 믿지 말라. 그 순간 나는 지금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이다.” 슬퍼하되 소망을 품으라. 부정이나 착각에서 안심하고 깨어나라. 죽음 앞에 웃으며 장차 일어날 일을 생각하며 기뻐 노래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손을 잡고 계시면 당신도 노래할 수 있다. <98-99쪽 중에서> 주변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했다면 향후 어디에 살 것인지, 직업을 바꿀 것인지 같은 삶의 중대한 결정을 당장 내려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말라. 필시 지금은 그런 문제를 결정하기에 좋은 때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장기간 투병하거나 아예 한동안 의식을 잃었거나 혼미한 상태로 지내다가 사망했다면, 대개 고인이 떠나기 전부터 당신 마음속에서는 헤어짐을 준비하며 ‘정을 떼는’ 작업이 시작된다. 그러나 느닷없이 닥친 죽음에 충격을 받은 경우에는 꽤 오랫동안 비현실감이 떠나지 않을 수 있다. 즉 모든 게 꿈이나 한 편의 영화 같고 자신이 마치 남처럼 느껴진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냥 하루 단위로 살면서 ‘당면한 일만 하면’ 된다.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지도 않고 너무 적지도 않게 하라. 현실감이 찾아들고 마침내 고인을 놓아 보낼 수 있게 되면, 그때 더 좋은 상태에서 당신의 미래를 생각하면 된다. 너무 서두르지 말라. 자신에게든 다른 사람에게든 하나님께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시인하라. 의문을 품고 울분을 토하는 일이 ‘영적이지 못하다’라고 생각하지 말라. 예수님도 친구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우시고 분노하셨다. 욥도 주님께 울부짖었다. 욥은 목청껏 하소연하되 하나님께 했고, 당장 별 성과가 없는데도 부단히 기도하며 그분을 만났다.

저자 소개

맨해튼을 비롯해, 미국 뉴욕 세 군데 지역에서 약 6천 명의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리디머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담임목사다. 팀 켈러의 설교는 철저히 예수 복음 중심적이며,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지성으로이 시대를 통찰력 있게 읽어 준다. 그래서 신실한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구도자와회의론자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삶의 모든 현장이 복음에 깊이 뿌리박히는 데 집중하는 설교는, 교인들을 “맨해튼에서 가장활력 넘치는 회중”으로 변모하게 했다. 나아가 지역을 넘어 매주 3만여명 이상이 교회 웹사이트를 통해 그의 설교를 듣고 있다.
또한 팀 켈러는 한 시대의 문화와 사상이 만들어지고 집약되는 ‘도시 지역’ 선교에 헌신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전 세계100개 이상 도시에 430개교회의 개척을 도왔다. 한편 <뉴스위크>에서 “21세기의 C. S. 루이스”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변증가로서도 영향력 있는 행보를 보인다.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버크넬대학교(Bucknell University),고든콘웰신학교(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수학했다. 대학 시절 IVF 활동을 통해복음을 받아들였고, 신학교를 갓 졸업한 스물네 살의 나이에 버지니아웨스트호프웰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1984년부터는 5년간 모교인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강단에서 설교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저서로는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 《팀 켈러의 센터처치》, 《팀 켈러의 기도》, 《팀 켈러의 일과 영성》,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팀 켈러의 왕의십자가》, 《팀 켈러의 정의란 무엇인가》, 《당신을 위한 로마서 1, 2》, 《당신을 위한 사사기》(이상 두란노)가 있다.

역자 소개

《팀켈러의탕부 하나님》, 《마음의 길》,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 《차별없는 복음》, 《순종》, 《하나님의 임재 연습》,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 《결혼 건축가》 등 다수의 책을 번역한 전문번역가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골든게이트침례신학교에서 교육학(M.A.)을,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에서상담학(M.A.)을 전공했다.

책 속에서

<캐시 켈러 서문 중에서>
나이가 들어 갈수록 남편과 나는 목회 현장에서나 개인적인 관계들 속에서나 죽음을 접할 일이 더 잦아진다. 절친한 친구들과 가족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지난 18개월 동안 우리 집안에서만 세 차례나 장례를 치렀고, 임종을 앞둔 친구와 친척과 함께 죽음에 직면하는 법을 놓고 대화를 나눈 것도 불과 지난 석 달 사이의 일이었다. 그런 대화 중에 우리가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바로 이 책에 담겨 있다.
2018년 1월 6일 남편 팀이 내 동생 테리의 장례식에서 전한 설교가 이 책의 기초가 되었다. 동생은 유방암이 신체 다른 곳까지 전이되었고, 결국 오랜 투병 끝에 크리스마스 날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동생도 알았기에 남은 시간 동안 마지막 힘을 다해 우리에게 자신의 영결 예배에서 부를 찬송가를 골라 주었고 기도문도 적어 주었다. 특히 장례식 때 자신의 일생만을 기릴 것이 아니라(물론 우리에게 한없이 사랑받고 존경받던 테리였다) 반드시 복음을 전해 달라고 팀에게 당부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는 으레 생각이 깊어지게 마련”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동생은 자기 장례식에 참석할 사람들도 각자의 죽음을 준비해 가기를 원했다.

<16-17쪽 중에서>
과거에는 사람들이 죽음을 가까이서 보았다. …(중략)… 오늘날에는 의학과 과학 덕에 조기에 사망하는 많은 원인들을 해결했고, 절대다수의 사람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병원과 호스피스센터에서 쇠약해져 가다가 사망한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도록 단 한 사람의 죽음도 지켜보지 못하는 일이 당연해졌다. 서구 사회의 경우 장례식에서 뚜껑이 열린 관에 잠시 눈길을 줄 때를 제외하고는 죽은 사람을 볼 기회도 없다. 아툴 가완디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이, 현대 사회가 이토록 죽음을 숨긴다는 것은 모든 문화 중에서 우리야말로 임박한 죽음의 불가피성을 부정하며 산다는 뜻이다.

<33-34쪽 중에서>
죽음 앞에 서면 자아에 대한 불만이 훨씬 또렷해진다. 이전처럼 양심을 침묵시킬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극중 인물인 햄릿은 자살을 생각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결심한다. 사후의 무엇에 대한 두려움 곧 “어느 길손도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미답의 나라”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심판이 두려워지고, 그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세상으로 달아나느니 차라리 지금 이 세상의 고통을 묵묵히 견딘다.” 이유는 “양심이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막아 보려 해도 죄책감은 집요하며, 특히 죽음 앞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현대 문화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별로 없지만 기독교 신앙은 우리에게 놀라운 자원을 준다.

<39-40쪽 중에서>
모든 종교가 죽음과 내세를 말하지만, 대체로 주장하는 바는 영원에 대비하려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죽음이 닥쳐오면 우리 모두는 자신이 최선의 삶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마땅히 살아야 하는 대로 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죽기를 무서워하여 끝까지 거기에 매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독교는 다르다. 기독교는 나 혼자 죽음에 맞서 내 인생 이력으로 충분하기만을 바라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기독교에는 죽음을 이기신 챔피언이 계시다. 그분이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고 덮어 주신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빌 3:9) 그분의 완전한 이력에 의지해 죽음에 직면한다. 이 사실을 믿고 알고 받아들이는 정도만큼 우리는 죽음의 세력에게서 해방된다.
그러므로 죽음이 “어느 길손도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미답의 나라”라던 햄릿의 말은 틀렸다. 죽음에서 돌아오신 분이 계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세력을 멸하신 결과로 “세상의 냉혹한 벽에 틈새가 열렸다.” 이것을 믿음으로 붙들면 더는 흑암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55-57쪽 중에서>
오랜 세월 사람들은 소금을 쳐서 육류를 보존했다. 소금에 절이면 고기가 썩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슬픔도 소망이라는 소금을 치지 않으면 고기처럼 상한다. 죽음 앞에 슬퍼하고 격노하는 것은 거대한 악에 내보이는 온당한 반응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소망이 있어, 마치 고기에 소금을 바르듯 그 소망을 슬픔과 분노에 ‘바를’ 수 있다. 슬픔을 억누르거나 절망에 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분노를 억제하거나 무조건 다 터뜨리는 것도 영혼에 이롭지 못하다. 그러나 슬픔을 소망에 절이면 지혜와 긍휼과 겸손과 애정이 싹튼다.
충분히 슬퍼하되 깊은 소망을 품으라! 내가 왜 이를 중용이 아니라 양극단의 조합이라 했는지 알겠는가? 이렇게 하면 단순히 극기할 때보다 더 힘이 나고, 절망할 때보다 더 마음껏 애통할 수 있다.

<78-79쪽 중에서>
조지 허버트는 “죽음은 한때 사형집행인이었으나 복음 앞에서 한낱 정원사로 전락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죽음은 한때 우리의 숨통을 끊어 놓을 힘이 있었으나 이제 죽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를 하나님의 땅에 심어 비범한 존재로 피어나게 하는 것뿐이다.
오래전에 시카고의 유명한 드와이트 무디 목사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머잖아 시카고의 여러 신문에 드와이트 무디의 부고가 실리거든 절대로 믿지 말라. 그 순간 나는 지금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이다.”
슬퍼하되 소망을 품으라. 부정이나 착각에서 안심하고 깨어나라. 죽음 앞에 웃으며 장차 일어날 일을 생각하며 기뻐 노래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손을 잡고 계시면 당신도 노래할 수 있다.

<98-99쪽 중에서>
주변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했다면 향후 어디에 살 것인지, 직업을 바꿀 것인지 같은 삶의 중대한 결정을 당장 내려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말라. 필시 지금은 그런 문제를 결정하기에 좋은 때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장기간 투병하거나 아예 한동안 의식을 잃었거나 혼미한 상태로 지내다가 사망했다면, 대개 고인이 떠나기 전부터 당신 마음속에서는 헤어짐을 준비하며 ‘정을 떼는’ 작업이 시작된다.
그러나 느닷없이 닥친 죽음에 충격을 받은 경우에는 꽤 오랫동안 비현실감이 떠나지 않을 수 있다. 즉 모든 게 꿈이나 한 편의 영화 같고 자신이 마치 남처럼 느껴진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냥 하루 단위로 살면서 ‘당면한 일만 하면’ 된다.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지도 않고 너무 적지도 않게 하라. 현실감이 찾아들고 마침내 고인을 놓아 보낼 수 있게 되면, 그때 더 좋은 상태에서 당신의 미래를 생각하면 된다. 너무 서두르지 말라.
자신에게든 다른 사람에게든 하나님께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시인하라. 의문을 품고 울분을 토하는 일이 ‘영적이지 못하다’라고 생각하지 말라. 예수님도 친구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우시고 분노하셨다. 욥도 주님께 울부짖었다. 욥은 목청껏 하소연하되 하나님께 했고, 당장 별 성과가 없는데도 부단히 기도하며 그분을 만났다.

목차

<팀 켈러의 인생 베이직> 시리즈 서문
캐시 켈러 서문

1 언젠가 맞이할 나의 죽음, 준비하고 있는가
/ 회피와 부정, 죽음을 대하는 현대인의 두려움

2 사랑하는 이의 죽음,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당할 것인가
/ 충분히 슬퍼하되, 깊은 소망을 품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다 1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다 2

감사의 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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