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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상 美味傷

시리즈 : 로망컬렉션 ROMAN COLLECTION [9]

권정현 저 | 나무옆의자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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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1571041 / 172쪽 130 x 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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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사랑이 떠난 자리에 ‘그것’이 들어왔다 나는 이제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별이란 “더는 한 존재와 눈을 맞출 수 없다는 슬픔, 더는 그 존재와 이 골목에 대하여, 이 나라에 대하여, 함께 밥을 먹는 기쁨에 대하여 말할 수 없다는 불안, 영원히 침묵해야 한다는 암담함, 두 사람 사이에 생겨난 언어의 영혼이 상실되고 그동안 쌓아 올린 말의 탑들이 무너져 추락을 거듭할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다. 그러니까, 누군가와 헤어져서 슬픈 게 아니라 밥을 먹고 대화하고 산책하고 살을 맞댈 대상이 사라져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학원에서 물리를 가르치는 강사이자 소설가인 ‘나’는 이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상심하여 헤어진 연인 ‘달’의 집 앞을 배회하다 골목 언저리에서 해골을 만난다.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을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발굴하여 집으로 데려가 씻기고 침대에 눕힌다. 그렇게 한 여자가 가고 다른 무엇이 그의 방을 채운다. 그의 방에서 그의 일부가 된 해골은 존재 자체로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조금씩 제 영역을 넓혀간다. 어느 날 그는 금속 막대로 해골의 가슴뼈 하나를 퉁겨본다. 믿을 수 없이 맑은 소리가 난다. 사랑해! 하고 뼈가 말한다. 그는 해골에 골(GOL)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름을 부여 받자 골은 갑자기 인격을 지닌 존재가 되어 그와 마주한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골을 사랑하게 되며, 골의 몸에 조금씩 살이 붙고 관절이 생기고 피가 흐르는 것을 느낀다. 그는 다시 달을 만나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 다짐하며 골을 끌어안고 차가운 입술에 입을 맞춘다. 골을 안고 골에 입을 맞추고 골과 대화를 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가슴 한쪽에서 불안감이 자라났다. 그럴수록 나는 그것에 집착했다. 매일같이 골의 몸을 씻고 텅 빈 하관으로 물을 넘기고 흰 손목을 꽉 움켜쥐며 온기를 확인하기 위해 애썼다. 꿈인 듯 생시인 듯 가슴으로 안겨오는 감촉을 느끼다가 놀라 눈을 번쩍 뜨기도 했다. (147쪽) 이러한 그의 집착은 자신의 몸짓에 아무 반응이 없는 골을 향한 횡포로 이어진다. 그는 자신의 열띤 마음과 달리 어떠한 말도 행위도 하지 못하는 골이 갑자기 보기 싫어져 골을 내팽개친다. 이제 골을 원래 자리로 보내야 할 때라고 생각한 그는 새벽에 골을 업고 달의 집 골목으로 향한다. 우리 모두 몸속에 해골 하나씩을 숨기고 있다 해골은 화자의 집착과 미망이 만들어낸 환영일까. 이제껏 그를 떠나간 여자들의 귀환일까. 역설적으로 해골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존재다. 까마득한 세월을 견뎌 화자에게 발견된 해골에게는 기억이 없다. 살아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슬픔과 기쁨을 맛보았든 해골의 과거는 오래전에 해골과 분리되었다. 수많은 질문과 기호를 숨기고 있는 해골은 보는 이에게 일차적으로 죽음과 체념을 상기시킨다. 우리 모두가 몸속에 해골 하나씩을 숨기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모두 똑같이 퀭한 죽음을 품고 살아간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화자에게 해골은 떠난 자들이 남겨놓은 그리움, 그들이 남기고 간 흉터를 지워내는 구실을 한다. 그러다 해골이 자신과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그것을 처음 있던 자리로 돌려놓기로 결심한다.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그것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는 골과 함께 마지막으로 달의 집 창을 바라보며 그동안 무엇이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는지를 자문한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지난 두 달 동안 나를 들끓게 했던 미혹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그것은 순식간에 내 삶을 전복시켰다. 나는 자신의 운명을 믿지 않았고 시간을 믿지 않았으며 공간에 대하여 공포심을 느꼈다. 매일 밤 나 자신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위해 술을 마시고 해골을 두드렸다. (……) 그런데 그녀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계속 뒷걸음질을 쳐온 것일까. (167쪽) 그는 골을 묻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한 존재가 한 존재를 떠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순환이고 중첩이며, 삶이란 요란하지도 않고 영원히 슬프지도 않은 것이라는 자각이 뒤따른다. 나는 달이라는 한 여인을 알고 있다. 어쩌면 달이라는 이름은 사랑에 빠진 모든 심장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때 그것을 완벽하게 소유했고 여전히 무수한 공간 속에 그런 기억이 중첩되어 있다. 시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멈추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추억은 갱신되어야 한다. (169쪽) 미미상: 추운 날 캄캄한 골목에서 불을 밝히고 우리를 기다리는 곳 화자는 한 존재와 철저히 단절되었다는 절망감을 잊기 위해 자주 골목을 거닐며 옛 시절을 회상하는데, 어느 날 늘 눈길만 주고 지나쳤던 미미상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술집에 들어간다. 해골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이 그립기도 했기에. 아름다울 미(美), 맛 미(味), 상처 상(傷)으로 이루어진 이름. 30대 중반의 여자가 운영하는 그곳에 홀로 앉아 그는 생각한다. 그녀도 결국은 몸속에 비슷하게 생긴 해골 하나를 숨기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미미상이 존재하는 한 마치 뼈대처럼 그녀가 거기에 있으며, 이 골목을 오가는 누군가는 그런 것에 의미를 두고 위안을 받을지도 모르겠다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달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골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후 그는 먼발치에서 마치 자신을 기다리듯 환한 불을 밝히고 있는 미미상을 바라본다. 골과 달 사이를 오가며 한없이 추락하거나 난폭하게 요동치던 마음을 단단하게 바로 세우리라 마음먹은 터. 그는 다른 시공의 문을 열 듯 그곳으로 헤엄쳐 들어간다. 불빛에 드러난 내 그림자를 질질 끌고 한 발 두 발 계단으로 내려갈 때 텅 텅, 발걸음 소리가 리듬을 타며 골목 바깥으로 새어 나갔다. 마침내 계단을 다 내려갔을 때 거기 전에 본 적 있는 어깨와 입꼬리와 허리와 미소와 말씨를 지닌 주인 여자가, 마치 내가 올 것을 예상이나 했다는 듯이 아무도 없는 가게 안쪽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눈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밖은 여전히 춥죠?” (170쪽

저자 소개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천안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굿바이 명왕성』(2009), 『골목에 관한 어떤 오마주』(2017), 장편소설 『칼과 혀』(2017), 『검은 모자를 쓴 여인』(근간), 장편동화 『톨스토이 할아버지네 헌책방』(2012) 등이 있다. 2016년 현진건문학상, 2017년 혼불문학상을 받았다.

머리말

 

작가의 말

1.
상원사에 갔다가 〈십우도〉를 본 뒤
소설로 형상화해보리라 마음먹은 적이 있다.
오늘 그것을 이루었다.

2.
소설가가 되기 전부터 궁금했다.

내가 사랑 이야기를 쓴다면
어떤 모양과 빛깔을 갖게 될지.

나는 숱한 위선의 순간을 건너왔으므로
사랑에 대하여 지고지순하다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1천 개의 꽃과 바늘과 벌레와
1만 개의 배반을 지나왔다고 말할 수 없다.

(당신들과 만찬가지로)

하니,
누가 그것에 대하여 내게 말해다오.

추운 날 우리가 얼마나 자주
미미상 앞을 서성였는지.

마흔의 끝자락에 닿았는데
나는 여전히 그것을 모르겠다.

책 속에서


한 시간쯤 지나자 묻혀 있던 존재가 완전히 드러났다. 그것은 해골이었다. 왜 이런 게 여기 있지? 어이가 없었다. 이런 물건은 무덤이나 과학 실험실에 있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 내가 아는 한, 해골은 아무렇지도 않게 도시 뒷골목 쓰레기 속에 묻혀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길이는 150센티미터쯤 되었는데 만약 실제 사람의 뼈라면 어린아이나 여자의 유해로 추측되었다. 라이터를 켜서 표면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퀭한 두 눈 구멍은 밖으로 나올 걸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허공만 쳐다보았다. 이가 정갈하게 배치된 턱은 손가락 하나가 드나들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꼭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한때는 저 둥근 구멍 속에 눈동자가 있어서 하늘을 쳐다보거나 나뭇가지의 존재를 느끼고 바람에 눈을 찡그렸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해졌다.(28쪽)

더운 물로 씻어내니 해골은 더욱더 하얗게 빛났다. 해골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나는 혼자만이 온전히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광경 앞에서 다시 한 모금의 연기를 뿜어댔다. 이상한 비유지만 달이 떠난 자리에 해골이 남았다. 마치 임무 교대라도 하듯이 둘은 씩씩하게 자리를 바꾸었다. 떠나는 개체들 가운데 누구도 진심 어린 눈물 따위는 흘리지 않았다. 교미를 할 때는 제 흥에 겨워 사랑한다고 떠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바보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인간은 그냥 그렇게 만들어진 종이라는 확신이 든다. 되는 대로 그날 기분에 따라 떠들어대는 것이다. 감정에 철학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았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38~39쪽)

나는 돌아섰다. 나의 해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슬프고도 기쁜 사실이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쁨, 상대는 비록 사람이 아닐지라도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하지만 해골은 말을 하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퀭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천장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다. 그의 묵언은 끝없이 나를 시험한다. 해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 방 침대에서. 누구도 이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 혼자가 아닌 나는 어떤 밤길을 걸어도 행복하다. (54쪽)

우리 모두가 몸속에 해골 하나씩을 숨기고 있지만 어떤 사건이 제 몸을 두드리기 전에는 이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 앞에 한껏 꾸미고 앉아 웃고 있는 여인이 실은 퀭한 두 눈을 지닌 해골을 숨기고 있음을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만화에서 숱하게 해골을 접했지만 누구도 해골을 진지하게 들여다본 적은 없다. 주말이면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적당히 익은 햄버거를 씹어대면서 얼마나 많은 소들이 잔인하게 도살되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해골은 해골이다. 해골이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닐 수는 없겠다. 하지만 어떤 해골이든 그것은 단순한 해골이 아니다. (67쪽)

나는 며칠 전 한 여자와 헤어졌다. 어떤 변명의 말도 듣지 못했다. 아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함께 밥을 먹을 여자가 사라졌다. 함께 영화를 보고 정치인들 흉을 보고, 새로 나온 세븐일레븐 신상 도시락과 치즈불닭라면을 맛볼 상대가 사라졌다.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그러니까, 누군가와 헤어져서 슬펐던 게 아니다. 내 말을 들어주고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며 산책할 대상이 사라진 것이다. 충분히 슬퍼할 이유가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가끔 그녀의 집 근처에 갔으며 해골을 들여다보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73~74쪽)

골(GOL)!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돌연 하나의 이름이 뇌피에 새겨졌다. 그렇다, 이름을 붙여주자. 골, 나는 해골을 골이라 부르기로 결정했다. 이름을 부여 받자 골은 갑자기 인격을 지닌 존재가 되어 내 앞에 누워 있었다. 나는 골의 갈비뼈를 벤 채 침대에 누웠다. 뒷목에 견고함이 느껴졌다. 베개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이었다. 오른손으로 골의 목덜미를 쓰다듬어보았다. 언젠가 그녀의 목덜미를 천천히 쓰다듬던 기억이 났다. (85~86쪽)

“미미상 말입니다. ‘아름다울 미’와 ‘맛 미’는 알겠는데 상처 상(傷)은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맛과 아름다움과 상처가 어떤 조합을 이룹니까. 맛에도 상처가 있습니까?”
여자가 차분한 눈동자로 나를 보았다.
“왜 그러세요? 제가 혹시 잘못된 질문이라도…….”
내 질문에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지금까지 그걸 물어본 손님은 처음이라서. 혹시 국어 선생님이세요?”
“아뇨. 그냥…… 괜히 물었나요?”
여자는 대답 대신 다시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입에 걸었다.
“다음에 들르시면 알려드릴게요…….” (123쪽)

나는 소멸하는 시간이 두려웠다. 소멸하는 공간의 기억이 두려웠다. 문 밖의 시간들은 너무도 빨리 흐른다. 아이들이 후다닥 골목을 뛰어가듯, 멈춰 서 있는 나의 시간을 앞지르기 일쑤였다. 나는 시간이 갖는 이원성이 진절머리 나게 두려웠다. 나를 둘러싼 시간은 언제나 미래로 흘러갔고 나의 시간은 멈추거나 과거와 중첩된 채 좁은 방 안에 갇혀 머물길 바랐다. 나는 뼈대를 내어준 살덩이였다.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누구나 다 하는 이별 앞에서 너무 자주 맥주를 마셨고 추억 어린 골목을 그리워했으며 제풀에 상처 입은 자신을 보며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그러다가 잊혀지지 않기 위해, 남겨지지 않기 위해 버둥거렸다. (156쪽)

그녀가 갔다, 라고 적는다. 아니, 한 존재가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내 시야 속에서 소멸했을 뿐이다. 이 공간 어딘가에서, 다른 시간 속에서 그녀의 삶은 계속된다. 내 삶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그 자체로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이 내린 유일한 형벌이다. 유일한 보상이다. 충분히 사랑한 사람은 충분히 보상 받는다. 완벽함의 달성이 아니라 완벽함을 향해 가는 과정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나는 손을 내밀고 3층, 제 방 침대에 누운 한 여인에게 입을 맞춘다. 불멸의 입맞춤이 지나간 뒤에 상처는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린다. 그것은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깊은 고독 속으로 침몰한다. 봄이 와도 그 자리엔 어떤 꽃도 피지 않을 것이다. (168~169쪽)

목차

미미상美味傷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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