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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의 한국사 바다에서 밥상까지 조기로드에 얽힌 맛있는 역사

정명섭 저 | 들녘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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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9255281 / 308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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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 저자 : 정명섭
저자 : 정명섭
인문학과 소설, 픽션과 팩션,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전방위 작가. 대기업 샐러리맨과 바리스타를 거쳐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대중 강연을 병행하고 있다. 글은 남들이 볼 수 없는 은밀하거나 사라진 공간을 이야기할 때 빛이 난다고 믿는다. 『38년 왜란과 호란 사이』 『오래된 서울을 그리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조선 사건 실록』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라』 『역사 탐험대, 일제의 흔적을 찾아라』 등의 인문학 도서를 집필했다. 역사추리소설 『온달장군 살인사건』『적패』를 비롯하여 『개봉동 명탐정』 『무너진 아파트의 아이들』 『유품정리사』 『한성 프리메이슨』 『어린 만세꾼』 『상해임시정부』 『살아서 가야 한다』 『달이 부서진 밤』 『미스 손탁』『멸화군』 『불 꺼진 아파트의 아이들』 『어쩌다 고양이 탐정』외 다수의 작품이 있고, 함께 쓴 작품으로 『일상감시구역』『모두가 사라질 때』 『좀비 썰록』 『어위크』 등이 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 상을 받았다. 한국 미스터리작가모임과 무경계 작가단에서 활동 중이다.

책 속에서

어살은 밀물을 따라 들어온 물고기들을 포획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 걸려든 물고기들은 대개 가운데 혹은 가장자리에 만들어놓은 임통(袵桶)에 모여들게 된다. 어살을 이용하는 것은 가장 간단하면서 손쉬운 방식이기에 조선시대는 물론 그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명한 주몽설화에도 어살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고구려의 건국설화인 주몽설화는 전형적인 영웅설화인 동시에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 자료다. 영웅의 탄생과 새로운 국가의 건국을 이야기하는 장엄함 속에서 우리는 뜻밖의 사실들을 엿볼 수 있다.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가 해모수와 정을 통한 일로 아버지인 하백에게 쫓겨난 직후의 일이다.
유화는 두 명의 시녀와 함께 태백산 남쪽의 우발수로 쫓겨난다. 그곳은 부여의 금와왕이 통치하는 곳이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유화는 어살에 걸려 있던 물고기를 훔쳐 먹는다. 물고기가 자꾸만 없어지자 어살을 담당하는 고기잡이는 이 사실을 금와왕에게 고한다. 이에 금와왕은 그물을 물속에 던져 범인을 잡고자 했으나 그물마저 자꾸만 끊어진다. 결국 쇠로 만든 그물을 써서 유화를 물 밖으로 끌어냈고 그다음은 알려진 바와 같다. 둘이 함께 왕궁으로 갔다가 알을 낳았고, 그 알에서 주몽이 태어난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시대에 이미 어살과 그물을 사용했다는 점이다._<어살은 전설과 함께> 중에서


사람들이 바다를 두려워했던 이유 중 하나는 왜구였다. 고려는 매년 쳐들어오는 왜구 때문에 천도(遷都)를 추진했을 만큼 위기에 빠졌고, 조선 역시 대마도를 정벌한 다음에야 겨우 왜구를 막을 수 있었다. 조선의 태종은 건국 초기 중앙집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공도정책을 실시했다. 해안가의 마을들을 없애 내륙으로 옮기고, 섬에 사는 백성들도 육지로 옮겼는데 이 정책 덕분에 섬들은 오랫동안 무인도로 방치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인구가 늘어나면서 차츰 섬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섬에 들어온 사람들도 뱃일을 기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너무 위험하고 천대 받는 직업인 데다가 뱃일을 하는 사람들은 거칠고 무례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실제로 바다에서 그물을 내리고 물고기를 잡는 일은 기계를 사용하여 해결하는 요즘에도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모든 것을 사람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던 조선시대에는 더더욱 괴로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조기잡이가 대규모로 이뤄지고 수많은 어부들이 그 일에 종사하게 된 것은 오로지 돈 때문이었다. 농사일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들고 위험했지만 사흘만 일하면 1년 치 양식을 벌 수 있다는 ‘사흘 칠산’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운만 좋으면 큰돈을 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_<그들은 왜 바다로 나갔을까> 중에서


당시에는 억울하게 죽은 무장이나 왕일수록 큰 힘을 가진다는 세간의 믿음이 있었다. 이것 또한 임경업 장군을 바다의 수호신으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특히 그가 망명하기 위해 거쳤던 황해도와 연평도 지역에서 인기가 높았다. 황해도 지역의 여러 섬은 물론 인천과 경기도 해안 지역에도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세워졌고, 매년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제사가 열렸다. 앞서 소개한 ‘가시나무를 갯벌에 꽂게 하여 조기를 잡았다’는 설화는 사실이라기보다 조기잡이들의 염원과 기대감을 반영한 상상력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것은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지역이 황해도에서부터 충청도까지 이어져서 당진과 태안 등지에 임경업 장군의 사당이 세워졌고 풍어제도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연평도를 비롯한 황해도 지역은 임경업 장군과 직접적인 인연이 있지만 충청도 해안 지역은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된 것일까? 연구자들은 연평도로 조기를 잡으러 왔던 충청도 어부들이, 아니면 반대로 황해도 연안의 어부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전파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충청도에서 임경업 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마을이나 섬이 모두 조기잡이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_<임경업 장군, 서해안 어부들의 신이 되다> 중에서


연평도 파시의 독특한 풍경을 만든 사람들은 두둑해진 어부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몰려든 장사꾼과 여인들이었다. 이들은 연평도 조기잡이 철이 시작되기 직전 섬으로 들어와서 섬 주민들의 집에 세를 들거나 임시가옥을 짓고 장사를 준비했다. 해안가에는 이런 임시가옥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서 흡사 난민촌을 연상시켰다고
한다. 조용하던 연평도 안에 술집과 음식점은 물론 여관과 이발소, 카페까지 생겨났고, 낭자군이라는 점잖은 별명으로 불린 술집 여인들도 백여 명에 달했는데, 이 숫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늘어났다고 한다. 조기를 잡으러 어부들이 몰려오고, 그 어부들을 따라 여인들이 온 것이다.
한적한 어촌 마을이 순식간에 향락과 유흥의 도시로 변해버린 것은 오로지 조기라고 불린 생선 때문이었다. 덕분에 연평도 파시는 법성포 파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조기잡이가 한창인 시절에는 연평도에서 근처의 당섬까지 배만 밟고도 건너갈 수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배들이 모여들었다. 덕분에 연평도에는 조기잡이가 벌어지는 두 달 동안 온갖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 이때가 되면 연평도 사람들도 바빠졌다. 돈을 받고 조기를 말려주거나 나무와 땔감을 팔기도 했다. 섬의 아낙네들은 밤새 퍼 올린 우물물을 머리에 이고 배를 돌아다니면서 팔았고, 약삭빠른 섬사람들은 선원들이 좋아하는 술을 담가서 팔기도 했다. 잠깐 동안 뜨내기손님들을 상대하는 장사였기 때문에 다들 어떻게든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아등바등했다. 그래서 파시가 아니라 작사(作詐)라고 부르기도 했다. 작사는 거짓 혹은 사기를 친다는 뜻인데, 두 달간의 아수라장을 경험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당연히 많았을 것이다. 한편, 연평도에 온 여인이나 장사꾼들은 오히려 태풍이 불어주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조기를 잡지 못해서 무료해진 선원들이 찾아왔기 때문이다._<조기 따라 어부 따라 봄날은 간다> 중에서


사람들은 제사상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조기를 떠올렸다. 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할 바는 있다. 조기야말로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었으니까. 한양은 물론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 안심하고 제사상에 올릴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아무도 제사상에 조기를 올리라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제사상을 차린다고 결심했을 때 자연스럽게 조기를 포함시키게 된 배경이다. 물론 이것은 엄밀히 말해 유교라는 의례에 대대로 조기를 즐겨 먹었다는 관습이 결합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벌어졌다. 우선 조기에게서 군자의 덕을 찾는 이야기가 나왔다. 조기는 네 가지의 덕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 물속에서 흐트러짐 없이 갈 길을 가는 예의가 있고, 둘째, 잡혀서 소금에 절여도 굽히지 않는 의가 있으며, 셋째, 내장에서 냄새가 나지 않아서 깨끗하고, 마지막으로 더러운 곳을 피해서 몸을 깨끗하게 할 줄 안다는 것이다. 매우 재미있는 해석들이다._<조기가 제사상을 점령한 이유> 중에서


바다에서 지내는 조기를 인공적으로 양식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조다. 수조가 곧 조기의 생활 터전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조기 양식에는 원형 수조를 쓴다. 조기가 빙빙 돌면서 헤엄을 칠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다. 수조는 외부 충격을 적게 받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야 하고 수심은 항상 1미터를 유지하도록 조절해야 한다. 참조기는 민감한 어류라서 약간의 충격이나 소음에도 상태가 나빠질 수 있으며 벽에 머리를 부딪쳐서 폐사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양식장은 조용한 곳에 만들어야 하고 최대한 어둡게 해야 한다. 먹이에 영양제를 섞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양식장의 조기는 자연 상태처럼 봄철에 산란을 유도한다. 암컷과 수컷이 짝을 지어서 산란한 알들은 그물에 모아져 다른 수조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별된 수정란들을 인공으로 부화시키는데 이렇게 태어난 치어들에겐 수조가 고향이 된다. 이후 양식장 출신 조기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낯선 바다에 방류된다. 인간의 남획으로 사라진 조기를 역설적으로 인간이 다시 살려낸 셈인데, 이는 한국인의 오랜 식생활 친구인 조기를 잃지 않겠다는 의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_<조기의 신세계> 중에서 

목차

저자의 말_조기,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다

제1장 어느 물고기 이야기
조기의 일생
내 이름을 찾아줘 | 조기 패밀리와 그 상속자들 | 조기의 일생
수조 안의 조기
매트릭스 |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조기를 양식했을까? | 슬픈 신세계

제2장 조기와 어부
포작간과 생선간
국영 어부의 탄생 | 문제는 공납이야 | 우리는 포작간이다 | 생선간은 어떤 일을 했을까?
조기 잡는 사람들
그들은 왜 바다로 나갔을까? | 자, 떠나자 조기 잡으러 | 바다 생활이 끝난 후
어살 이야기
어살은 전설과 함께 | 진화하는 어살
주벅
섬사람들을 어부로 만들다 | 녹도 주민들은 왜 주벅을 즐겨 썼을까? | 조기, 녹도의 진풍경을 연출하다
주낙
낚시로 조기를 잡았다고? | 주낙을 이용한 예들
전통적인 그물 낚시
중선망과 대량 포획 | 정선망, 빼앗긴 바다와 함께 사라지다
또 다른 그물, 망선망과 궁선망
역동적인 망선망 조업 | 궁선망
꽁댕이배
다정한 이름 꽁댕이배 | 변산반도의 꽁댕이배는 어디로 갔을까?
일본에서 건너온 안강망
안강망의 등장 | 안강망의 빛과 그늘
해방 이후의 신기술, 기선저인망과 유자망
기선저인망 | 유자망
바다의 한일전
조선 바다의 침략자 | 조선 바다, 일본 바다 |숨어 있던 갈등이 터지다 | 위기의 조선 어부들 | 조선의 어업은 과연 후진적이었나?

제3장 바다의 신들
어부에게는 신이 필요하다
불확실한 바다에서 살아남는 법 | 조기의 신 어부의 신
어부들의 수호신 임경업 장군
임경업 장군은 어떤 사람일까? | 임경업 장군, 서해안 어부들의 신이 되다 | 연평도의 조기잡이 제사 | 충청남도 홍성군 성호리의 풍어제 | 임경업 장군을 받들었던 지역의 특징들 | 그는 어떻게 조기잡이 어부들의 수호신이 되었나? | 임경업 장군 신앙의 전파
개양할미와 여덟 딸들
칠산 바다는 우리가 지킨다 | 개양할미, 칠산 바다의 수호신이 되다 | 칠산 바다 어부들이 여신을 수호신으로 삼은 이유
중국에서 건너온 신, 전횡
전횡은 누구일까? | 외연도의 전횡 풍어제 | 풍어제로 살펴본 외연도의 이모저모 | 전횡을 수호신으로 받든 또 다른 섬, 어청도와 녹도 | 신들이 사라진 바다

제4장 조기에서 굴비로
영원불멸의 이름, 굴비
이자겸과 정주굴비 | 어쨌든 굴비
조기를 잡고
찾는 사람이 많으니 더 많이 잡을 수밖에 | 조기잡이 대형화의 문제들
조기를 운반하고
상고선의 등장 | 해상 시장이 형성되다 | 빙어선과 조기로드
조기를 팔아 치우고
수산물 상인의 등장 | 마침내 밥상으로
조기의 변신은 무죄
생선을 보관하는 두 가지 방법, 절이기와 말리기 | 조기를 소금에 절이는 세 가지 방법 | 엮어서 말리기 | 굴비 말리는 풍경 | 메이드 인 조선

제5장 파도 위의 시장, 파시
이상한 시장
바다 위에 선 시장, 파시(波市) | 잡는 사람 파는 사람 먹는 사람
굴비의 고향, 법성포
파시평(波市坪)과 파시전(波市田) | 조기로드의 메카 법성포 | 조선은 사라져도 조기는 사라지지 않은 이유 | 밥상 위의 역사
청어에서 조기로, 위도 파시
어량소와 청어 | 위도의 조기 파시 | 치도리의 파시 | 위도 파시의 추억
일천 척의 배들이 모여든 연평도 파시
연평도의 조기잡이 | 조기 따라 어부 따라 봄날은 간다 | 북쪽 바다를 포기하다
마지막 전성기, 흑산도 파시
흑산도 파시 전성시대 | 새도 돈을 물고 다녔지만
조기의 황혼, 사월포의 파시
조기 대신 부세 | 사월포에 4월이 오면
마지막 파시, 재원 파시
가자, 재원도로 | 파시 풍경
일본이 만든 가짜 파시
청산도에 파시가 있었다고? | 일본, 청산도를 파괴하다
파시의 풍경, 파시풍
누가 파시의 모습을 일그러트렸을까? | 다르고도 같은 파시 풍경 | 파시의 흔적들
그 밖의 이야기
파시풍이란 무엇인가? | 파시를 타고 떠도는 이야기들 | 일본 연구자들, 파시 문화를 조작하다 | 파시의 변모 | 조기 파시의 진짜 풍경

제6장 조기의 길
조기, 한국인의 밥상을 점령하다
공납과 조기 파시 | 조기는 내 마음대로 잡지만 세금은 바친다? | 공납 체계 안에 들어온 어선들 | 바다에서 밥상까지 조기로드의 비밀 | 조기는 사대부의 사랑을 타고 | 유통 과정의 변화와 조기
절 받는 생선
양반과 뼈대 있는 제사상 | 제사는 완벽한 프로모션이었다 | 제사에 게을렀던 조선의 양반들 | 양반을 양반이게 해주는 가례, 제사 | 조기가 제사상을 점령한 이유

제7장 바다를 떠난 조기, 밥상에 오르다
조기를 찾아서
문헌 속의 조기 | 자린고비 이야기 속의 조기
조기의 이런 맛 저런 맛
보리에 들어간 굴비 | 소금에 들어간 굴비 | 고추장을 입은 굴비 | 승기악탕 속의 조기
조기를 요리하다
조기와 김치 | 여러 가지 조기 요리법 | 『조선요리법』에 나오는 조기 요리법 | 약으로도 쓰이는 조기
조기는 시절을 기억한다
조기의 신세계 | 조기의 역사, 조기와 함께한 역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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