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88941916147 / 264쪽 215 x 15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고성준
-
모린 J. 세인트 저메인
- 16,200
- 16,200
- 64,800
- 14,400
반디앤루니스 리뷰
템플턴 상 수상자 토마시 할리크의 대표작
전 세계 14개국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 한국 최초 출간
“하느님은 왜 침묵하고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2014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 상을 수상한 신학자 토마시 할리크의 저서가 한국 최초로 출간되었다. 그의 대표작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은 신앙과 불신앙에 관한 논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수님과 자캐오의 만남’이라는 성경 이야기를 모티브로 저자는 자캐오가 그랬듯이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 즉 종교나 신앙에 호기심은 있지만 태도가 애매한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스스로 신앙인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느님의 존재를 확신할 수 없는 사람, ‘하느님을 원망’하고 ‘하느님의 부재’를 뼈저리게 체험한 사람, 종교에 관심은 있지만 선뜻 그 안으로 들어가기는 싫은 사람, 하느님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신앙’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게 한다.
출판사 리뷰

하느님의 부재만큼 하느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느님을 절실히 요구하게 하는 것도 없다. 이 체험은 ‘하느님을 원망하고’ 결국에는 신앙을 저버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부재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여러 다른 길이 있으며, 특히 신비주의 전통 안에는 더 풍부하게 들어 있다. ‘하느님 없는 세상’을 뼈저리게 체험하지 않고는 종교적 추구의 의미, ‘하느님을 참고 기다리는 일’과 그 세 얼굴인 믿음・희망・사랑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의 의미를 깨닫기 어렵다.
모름지기 성숙한 신앙이란, ‘신의 죽음’ 또는 그보다 좀 덜 비극적으로는 신의 침묵이라고 일컫는 체험을 자기 안에 녹여내야 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물론 그런 체험은 내적 성찰을 통해, 피상적이거나 안이한 방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체험하고 극복해야 한다. 무신론자들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에게 인내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들의 진리는 불완전한 진리라는 말이다.(14쪽)
자캐오가 고질적인 개인주의자나 ‘아웃사이더’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열광의 무리에, 또는 분노의 무리에 줄을 서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그는 본능적으로 돌무화과나무 가지 속에 은신처를 찾는다. 교만해서 그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절대적 기준과 요구 조건에 견주어 한없이 부족한 자신의 ‘작은 키’와 큰 결함,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름을 불러준다면’ 자신의 사생활과 집착을 버릴 수 있고 기꺼이 버리려 한다. 그는 덥석 그 절대적 도전을 받아들고 자기 삶을 바꿀 것이다. 그러나 돌무화과나무 가지에 숨어 있는 이들에게 낯설거나 이질적이지 않은 사람, 그들을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 그들을 염려하는 사람, 그들 마음과 정신에 일어나는 일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캐오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
우리 가운데 수많은 자캐오가 있다. 우리 세계, 우리 교회, 우리 사회의 운명은 이 자캐오들을 얼마나 얻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렇다.(24쪽)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고통을 선하고 전능하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신학 분야인 신정론神正論의 영역에 속하는 물음들은 사실 매우 어렵다. … 수많은 고전 신학 이론도 이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에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신론이 그 대답을 주는가?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면 이 모든 문제가 우리에게 더 분명해지고, 우리가 악과 고통의 문제에 더 잘 직면할 수 있게 되는가? 세상은 정답이 없고 역설로 가득하다. 여러 대안적 설명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우리가 책임 있게 결정해야 한다. 당신은 이것을, 나는 저것을 선택했을 뿐인데 당신과 무슨 논의가 더 필요하겠는가? 나는 도발적인 종교 비평가들을 좋아한다. 예컨대,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이 번뜩이고 신앙에 관한 새로운 생각들을 자극하는 니체가 그러하다. 나는 신앙과 비신앙 사이의 문제들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보여 주면서 신앙이 무기력한 자기만족에 빠지지 않게 하는 이들을 좋아한다.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다시 한 번 신비의 깊은 골에 기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즐겁다.(126쪽)
그런가 하면 마법 같은 하느님이라는 유아적 개념을 오래도록 고수해 온 이들도 있다. 뻔한 위로와 얄팍한 낙관을 제시하는 신, 우리에게 봉사하는 ‘수호천사’, 늘 모든 것이 다 잘 되리라고 말해 주는 위로자, 우리가 비는 어리석은 소원들을 어김없이 들어주는 ‘심부름’만 하면 되는 가정 수호신으로 여기는 것이다. 작고 아늑한 방 같은 그런 신들은 삶에 심각한 위기들이 닥쳐오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런 신에게서 벗어난 이들이 마침내 ‘현실 세계’에 관한 진리를 알게 된 것을 뿌듯해하며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선언한다. 그들은 ‘하느님은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이라는 무대 뒤에 숨은 위대한 협력자의 그늘 아래 무한 권능에 대한 유아적 갈망을 이런 식으로 투사하는 것은 우상이며, 이 우상을 무너뜨림으로써 비로소 살아 계신 하느님, 아브라함의 순례하는 신앙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대기실에 들어섰음을 깨달은 것을 축하해 줄 그리스도인이나 유다인, 무슬림을 만난 적이 아마 없었을 것이다.(13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