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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시대, 1250~1550 중세 후기로부터 종교개혁기에 이르는 유럽 지성사와 종교사

스티븐 오즈맹 저 | 이희만 역 | 한울아카데미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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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68353 / 616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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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책 속으로 13세기 이성과 계시의 스콜라적 종합이 후대의 중세 사상이 그것으로부터 길을 잃었던 완벽한 규범이라기보다는 중세 말기의 지적 갈등과 교회 정치적 갈등 모두의 주요 원천이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이후의 장들의 논지가 될 것이다. 토마스주의의 거부가 아니라 교회 당국에 의한 토마스주의의 지속 내지 포용이 교회와 사회 모두를 위한 새롭고 중요한 문제를 초래했다. ... 중세 말기의 지성사와 종교사의 핵심적 쟁점은 이성과 계시의 종합을 가져다주었던 심성, 즉 중세 성기 신학의 대담하고 매력적인 통찰력이었다. _44쪽 ?제1장 중세 유럽의 지성사 이해? 교회 당국자들이 철학적으로 오컴의 유명론보다는 실재론을 선호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중세 교회는 온건한 실재론적 인식론 및 신학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 같은 견해는 명목론보다는 정신의 고상한 신학적 구도에 더욱 적합했다. 이는 교회의 교리가 합리적으로 존경을 받도록 하고 보편적으로 수용되도록 하려던 욕구에 훨씬 잘 부합했다..... 중세 교회는 실재론과 관련하여 심지어 보다 깊은 정치적 이해관계도 가지고 있었다. 14세기 교회 당국은 오컴의 사상에서 교회의 배타적 중재적 역할에 대한 위협을 인식하게 되었다. 신과 인간의 실재적 관계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신과 인간의 중재자로서의 교회는 지배적인 지위를 가지게 된다. _98∼99쪽 ?제2장 스콜라적 전통? 신비주의적 방식을 추종한 사람들은 많이 있었으나, 체험을 한 신비주의자는 매우 적었다. 신비주의는 단지 이론상으로만 민주화되었다. 누구나 신비로운 합일이라는 특별한 은총을 받을 수 있었던 반면에,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다수의 여론은 진정한 신비주의자를 거의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신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다수 사람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교회가] 두려워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주의는 중세의 지적 생활과 종교 생활의 공인된 특징이 되었다. 신비주의자가 경건함의 정점, 즉 현세적 삶에서의 가능한 최고의 종교적 목표에 도달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했다. _169쪽 ?제3장 영성적 전통? 우리는 종교개혁에 대한 학문적 지지와 대량 생산이라는 기술적 변화가 종교개혁의 태동에 메시지 그 자체보다 중요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메시지는 대중에게 폭넓은 영향을 주기 위해 인문주의자들과 인쇄술에 의존했지만, 이들 매체를 뛰어 넘었다.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적 배경은 분노한 가슴과 마음이었다.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개혁을 완수하고자 하는 결의는 종교개혁의 유일한 배경이었다. 이들 배경이 없었더라면 종교개혁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우리는 단호하게 주장할 수 있다. _286∼287쪽 ?제5장 종교개혁 전야? 루터에게 종교의 핵심적 쟁점은 신뢰와 믿음이었다. 즉 의심과 불확실성의 상태로부터 직접적인 증거가 없기 는 하지만 말씀과 약속에 대한 신뢰로의 전환이었다. 핵심 쟁점은 인간이 내면적으로나 외향적으로 의로운지 여부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신이 신뢰하는지 여부였다. 자신의 법률을 준수하지 않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신을 신뢰할 수 있는가? 개인의 구원이라는 개별적인 문제는 인간과 신의 성격에 관한 객관적인 문제에 비해 부차적이었다. …… 루터로부터 미국의 청교도들에 이르는 주류 프로테스탄트의 핵심적인 종교적 쟁점은 구원의 확신이었다. 즉 신앙의 합리성이나 신의 존재 증명이 아니라 신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신뢰였다. _339∼340쪽 ?제6장 마르틴 루터의 정신세계? 프로테스탄트들은 사목을 종교적 지위의 우월이 아니라 영적으로 동등한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는 윤리적 봉사라고 이해했으며, 사목적 권위가 성사의 주입으로부터라기보다는 신자들의 공동체로부터 직접 유래한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인식으로 성직자와 교구민들의 일상생활과의 효율적인 접촉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의 초기에 가정은 종종 예배를 드리는 필수불가결한 공간이 되었다. 1523년 프로테스탄트의 일상적인 경험에 공감한 루터는 1421년 이래 대주교직은 물론 사제 서품도 박탈당했던 보헤미아의 그리스도교 교도들에게 글을 쓰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이 ‘평신도의 가정’에서 완전히 유지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_533쪽 ?제12장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의 결혼과 사목?

저자 소개

  • 저자 : 스티븐 오즈맹
저자 : S. 오즈맹
예일대학교 사학과 교수 및 하버드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하버드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다. 사회사적 접근과 분석을 통해 종교개혁은 물론 종교개혁기의 사회와 문화에 관한 탁월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The Age of Reform 1250-1550(1980)으로 필립 샤프(Phillip Shaff) 학술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Mysticism and Dissent: Religious Ideology and Social Protest in the Sixteenth Century(1973), Reformation in the Cities: the appeal of Protestantism to sixteenth-century: Germany and Switzerland(1975), When Fathers Rules: Family Life in Reformation Europe(1983), Protestantism: the Birth of a Revolution(1992, 『프로테스탄티즘: 혁명의 태동』), A Mighty Fortress: A New History of German People(2004) 등 다수가 있다.

역자 : 이희만
숭실대학교 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문학박사),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이다.
저서로는 『알자스 문화예술』(공저)이 있고, 역서로는 『12세기 르네상스』(학술원 우수도서), 『중세 유럽의 정치사상』 등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이희만

이희만
숭실대학교 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문학박사),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이다.
저서로는 『알자스 문화예술』(공저)이 있고, 역서로는 『12세기 르네상스』(학술원 우수도서), 『중세 유럽의 정치사상』 등이 있다.


 

책 속에서

13세기 이성과 계시의 스콜라적 종합이 후대의 중세 사상이 그것으로부터 길을 잃었던 완벽한 규범이라기보다는 중세 말기의 지적 갈등과 교회 정치적 갈등 모두의 주요 원천이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이후의 장들의 논지가 될 것이다. 토마스주의의 거부가 아니라 교회 당국에 의한 토마스주의의 지속 내지 포용이 교회와 사회 모두를 위한 새롭고 중요한 문제를 초래했다. ...  중세 말기의 지성사와 종교사의 핵심적 쟁점은 이성과 계시의 종합을 가져다주었던 심성, 즉 중세 성기 신학의 대담하고 매력적인 통찰력이었다. _44쪽 「제1장  중세 유럽의 지성사 이해」

교회 당국자들이 철학적으로 오컴의 유명론보다는 실재론을 선호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중세 교회는 온건한 실재론적 인식론 및 신학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 같은 견해는 명목론보다는 정신의 고상한 신학적 구도에 더욱 적합했다. 이는 교회의 교리가 합리적으로 존경을 받도록 하고 보편적으로 수용되도록 하려던 욕구에 훨씬 잘 부합했다..... 중세 교회는 실재론과 관련하여 심지어 보다 깊은 정치적 이해관계도 가지고 있었다. 14세기 교회 당국은 오컴의 사상에서 교회의 배타적 중재적 역할에 대한 위협을 인식하게 되었다. 신과 인간의 실재적 관계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신과 인간의 중재자로서의 교회는 지배적인 지위를 가지게 된다. _98∼99쪽 「제2장 스콜라적 전통」

신비주의적 방식을 추종한 사람들은 많이 있었으나, 체험을 한 신비주의자는 매우 적었다. 신비주의는 단지 이론상으로만 민주화되었다. 누구나 신비로운 합일이라는 특별한 은총을 받을 수 있었던 반면에,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다수의 여론은 진정한 신비주의자를 거의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신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다수 사람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교회가] 두려워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주의는 중세의 지적 생활과 종교 생활의 공인된 특징이 되었다. 신비주의자가 경건함의 정점, 즉 현세적 삶에서의 가능한 최고의 종교적 목표에 도달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했다. _169쪽 「제3장  영성적 전통」

 우리는 종교개혁에 대한 학문적 지지와 대량 생산이라는 기술적 변화가 종교개혁의 태동에 메시지 그 자체보다 중요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메시지는 대중에게 폭넓은 영향을 주기 위해 인문주의자들과 인쇄술에 의존했지만, 이들 매체를 뛰어 넘었다.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적 배경은 분노한 가슴과 마음이었다.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개혁을 완수하고자 하는 결의는 종교개혁의 유일한 배경이었다. 이들 배경이 없었더라면 종교개혁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우리는 단호하게 주장할 수 있다. _286∼287쪽 「제5장  종교개혁 전야」

루터에게 종교의 핵심적 쟁점은 신뢰와 믿음이었다. 즉 의심과 불확실성의 상태로부터 직접적인 증거가 없기 는 하지만 말씀과 약속에 대한 신뢰로의 전환이었다. 핵심 쟁점은 인간이 내면적으로나 외향적으로 의로운지 여부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신이 신뢰하는지 여부였다. 자신의 법률을 준수하지 않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신을 신뢰할 수 있는가? 개인의 구원이라는 개별적인 문제는 인간과 신의 성격에 관한 객관적인 문제에 비해 부차적이었다. …… 루터로부터 미국의 청교도들에 이르는 주류 프로테스탄트의 핵심적인 종교적 쟁점은 구원의 확신이었다. 즉 신앙의 합리성이나 신의 존재 증명이 아니라 신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신뢰였다. _339∼340쪽 「제6장  마르틴 루터의 정신세계」

프로테스탄트들은 사목을 종교적 지위의 우월이 아니라 영적으로 동등한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는 윤리적 봉사라고 이해했으며, 사목적 권위가 성사의 주입으로부터라기보다는 신자들의 공동체로부터 직접 유래한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인식으로 성직자와 교구민들의 일상생활과의 효율적인 접촉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의 초기에 가정은 종종 예배를 드리는 필수불가결한 공간이 되었다. 1523년 프로테스탄트의 일상적인 경험에 공감한 루터는 1421년 이래 대주교직은 물론 사제 서품도 박탈당했던 보헤미아의 그리스도교 교도들에게 글을 쓰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이 ‘평신도의 가정’에서 완전히 유지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_533쪽 「제12장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의 결혼과 사목」

목차

제1장 중세 유럽의 지성사 이해
제2장 스콜라적 전통
제3장 영성적 전통
제4장 교회정치적 전통
제5장 종교개혁 전야
제6장 마르틴 루터의 정신세계
제7장 종교개혁기 독일의 사회와 정치
제8장 인문주의와 종교개혁
제9장 스위스의 종교개혁
제10장 종파주의: 프로테스탄트 내부의 급진적 운동들
제11장 칼뱅과 칼뱅주의
제12장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의 결혼과 사목
제13장 가톨릭의 개혁과 가톨릭의 종교개혁
제14장 존 녹스: 폭정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의 저항
제15장 종교개혁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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