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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 8일간의 외교 전쟁

세르히 플로히 저 | 허승철 역 | 역사비평사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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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6962997 / 756쪽 152 x 224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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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얄타회담의 시간과 장소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가장 철저하게 보안에 부쳐진 비밀이었다.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라는 3거두가 회담을 통해 획득해야 할 전리품은 세계를 삼켜버린 전쟁의 종식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20세기의 가장 비밀스런 평화회담을 진행했다. 그들은 수백만의 병력을 이동시켰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대로 전승국의 정의를 분배했다. 이 과정에서 평화의 지속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다른 국가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수백만 명의 난민을 동쪽과 서쪽으로 보냈다. 지정학적 야망과 자존심, 가치 체계의 경쟁, 자신들의 국가가 보유한 가장 영민한 협상가들 사이의 권력 경쟁이 1945년 2월의 여드레 동안 얄타에서 펼쳐졌다.

 

출판사 리뷰

6년여에 걸친 세계대전, 8일간의 외교 전쟁 ―다른 목표와 이견의 상충, 협상의 전략과 기술 스탈린과 루스벨트, 처칠은 서로 상충되는 목표를 가지고 얄타에 왔다. 미·영·소는 나치 독일을 패퇴시킨다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그 이후 어떤 공동의 목표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자 달랐다. 루스벨트는 세계평화기구 창설과 세계경제 경쟁에서 미국의 우위 달성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처칠은 점점 쇠약해지는 대영제국의 위상을 높이고 유럽 지역에서 영향권을 가지려 했다. 스탈린은 국제적 고립 끝에 강대국의 지위를 인정받고 동유럽에서 영향권을 확대하고자 했다. 공동의 적을 무찌른다는 목표에서는 같지만 전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확실히 달랐다. 그 때문에 실제 전장에서는 미·영·소가 대연합을 이루어 공동의 적과 맞섰지만, 얄타에서는 연합국 간에 치열한 외교 전쟁이 치러질 수밖에 없었다. 얄타에서는 지도자 개인들이 갖고 있는 원칙과 가치뿐만 아니라 하나의 의제를 놓고도 서로 간 충돌했다. 루스벨트와 처칠은 의회에서 쌓은 경험을 통해 노련한 토론의 대가이지만, 스탈린 역시 현실 정치의 베테랑으로서 회담 분위기를 쥐락펴락했다. 얄타회담에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 외향적 구성만 보고 우리는 흔히 루스벨트와 처칠이라는 두 서방 지도자가 한 팀을 이루어 소련의 스탈린에 맞서는 토론을 벌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루스벨트는 세계평화기구의 창설 및 유럽·태평양에서 군사적 승리를 염두에 두면서 유럽 문제를 부차적 관심 사항으로 두었기에 스탈린을 경쟁자라기보다 잠재적 우방으로 여겼고, 처칠은 무엇보다 지중해의 통제권을 영국이 장악하길 원하고 동유럽의 독립이 영국의 안보에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스탈린을 경쟁자이자 잠재적인 적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회담에서 협상 의제에 따라 미국과 영국은 같은 입장을 취하기도 했지만, 서로 갈등하면서 소련 측의 입장을 지지하기도 했다. 루스벨트는 ‘재판관’의 역할을 맡으며 상충하는 의견을 조정하려 했고, 처칠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답게 문학적 인용을 해가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고(얄타회담의 작전명 ‘아르고호’도 처칠이 제안했다), 스탈린은 두 국가에 심어놓은 스파이를 통해 얻은 정보를 가지고 여유를 부리며 회담에 임하다가도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울 때는 의자에서 일어나 걸어 다니며 연기를 하듯이 웅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은 공식 회담 중에 각기 별도로 사전 미팅을 갖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편지를 보내 의견을 개진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기도 했다. 얄타회담이라는 거대한 외교 전쟁 속에 세 강대국의 지도자는 개별 사안에서 외교 전투를 치렀다. 정치·군사·외교 논쟁을 넘어 인간사를 아우르는 이야기 ―인과관계적 사건 서술, 회담의 이면, 개인들의 풍부한 에피소드 저자는 얄타회담을 냉전이라는 역사적·지적 맥락에서 끄집어내야 얄타가 역사에서 제대로 위치를 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냉전은 적어도 서방 측에서는 크림반도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여러 개인들이 내린 결정에 의해 나중에 시작되었다. 얄타회담의 참석자들은 이 회담이 끝이 아니라 생각했고, 평화협상은 계속될 거라고 여겼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얄타회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회담에 임했던 사람들의 희망과 실망, 기대와 포기, 신뢰와 불신, 원칙과 타협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와 같은 회담 참가자들의 기대와 실망의 바탕이 되는 동기, 사고, 행동에 대한 묘사가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얄타에서는 군사작전뿐 아니라 유럽 국경선 획정을 포함한 미래 지정학의 문제 등 복잡한 주제가 논의되었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만한 주제이지만, 저자는 회담에서 논의된 이야기 자체에만 치중하지 않고 그 논의의 배경이 되는 과거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또한 각 인물들의 면면을 세세히 그려낸다. 서방 측 군사령관들에게 좋은 인상과 신뢰를 심어준 소련 공군 부사령관 세르게이 후댜코프가 스탈린의 눈 밖에 나서 얄타회담 1년 뒤 총살을 당한 사건, 내무인민위원회 수장으로서 비밀경찰을 거느리며 스탈린의 공포 정책을 앞장서서 시행했지만 스탈린 사후 결국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당한 라브렌티 베리야, 소련 측 통역가인 발렌틴 베리시코프의 가족이 독일군 점령 시 부역 혐의를 받는 바람에 외무부에서 쫓겨난 일, 그리고 미국 정부의 각료는 아니지만 얄타회담 대표단에 들어간 독실한 기독교 신자 에드워드 플린이 종교 문제를 모스크바 측과 논의하는 과정, 미국 측 사진가 로버트 홉킨스와 소련 측 사진가 사마리 구라리가 얄타회담의 기념사진 촬영과 관련해 겪은 일, 루스벨트의 딸 애나 베티거와 처칠의 딸 사라 올리버, 미국대사 애버럴 해리먼의 딸 캐슬린이 회담에서 한 역할 등 회담 밖의 뒷이야기가 풍부하게 서술되어 있다. 얄타회담과 한반도의 운명 ―극동 문제에 관한 비밀 협상 일반적으로 우리는 얄타회담이 한반도의 분단을 초래했다고 알고 있다. 얄타회담은 한국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회담이기는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얄타에서 38선을 경계로 한 분단이 논의되지 않았다. 얄타회담에서 극동 문제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 대한 대가로 만주 지역에서 소련의 영향권 인정과 남부 사할린 할양에 치중되어 있다. 아시아 의제와 관련해 루스벨트는 한국에 대한 20~30년간의 신탁통치를 제안하고(이보다 앞서 1944년 테헤란회담이 끝났을 때 루스벨트는 한국에 대한 40년간의 신탁통치를 스탈린과 양해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관리 국가로 미국·중국·소련을 언급했다. 스탈린은 신탁통치의 기간이 짧을수록 좋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세 국가가 한국의 신탁통치를 맡되 영국이 반발하면 영국도 포함하기로 한 것이 전부다. 한국에 대한 거래는 이로써 끝나버렸다.(17장 극동 기습, 421쪽 참조)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루스벨트와 스탈린이 단 30분 만에 극동의 미래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 30분 동안 한반도 문제는 얼마나 차지하고 있을까? 그들의 머릿속에 약소국 한반도는 크게 자리하지 않았던 셈이다. 중요한 점은 얄타회담에서 세계의 분할이 이루어지거나 한반도의 분단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루스벨트와 스탈린은 ‘강대국의 권력 게임’을 계속 이어나가며 “해당 국가·국민과 어떤 상의도 없이, 그들에게 큰 질곡을 안기면서 자의적으로 영토를 잘라”내는 논의와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세르히 플로히
저자 : 세르히 플로히
1957년 옛 소련 고리키(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다. 드니프로페트롭스크대학(University of Dnipropetrovsk)을 졸업한 뒤 1990년 타라스 셰브첸코 키예프국립대학에서 국가박사학위(Habilitation degree)를 받았다.
1983~1991년 드니프로페트롭스크대학에서 강의하다가 1991년 캐나다로 이주하여 앨버타대학교 역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7년 하버드대학교에서 미하일로 흐루스키 석좌교수에 임명되었다. 강의와 저술을 병행하여 러시아·우크라이나 역사에 관한 여러 저서를 출간했다.
2015년 우크라이나어로 쓰인 뛰어난 문학작품과 연구에 주는 안토노비치 상(Antonovych prize)을 수상하고, 2018년에는 『체르노빌』로 최고의 논픽션 작가에게 주는 베일리 기포트 상(Baillie Gifford Prize, 사무엘 존슨 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술로는 The Origins of the Slavic Nations(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The Last Empire(Basic Books, 2014); The Gates of Europe(Basic Books, 2015); Lost Kingdom(Basic Books, 2017); Chernobyl: History of a Tragedy(Basic Books, 2018) 등이 있다.

역자 : 허승철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버클리대학교와 브라운대학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학하고, 1988~1990년 하버드대학교 러시아연구소(현 Davis Center for Russian Studies)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조지아와 몰도바 대사 겸임, 2006~2008)를 역임했으며, 1996년부터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1년 이후 한러대화(Korea-Russia Dialogue) 사무국장도 맡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사 시절 얄타회담이 열린 리바디아 궁을 세 번 방문한 것이 이 책을 번역하는 동기가 되었다.
주요 저서로 『우크라이나 현대사』, 『코카서스 3국의 역사와 문화』가 있고, 역서로 『벨라루스의 역사』, 『조지아의 역사』, 『1991』 등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허승철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버클리대학교와 브라운대학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학하고, 1988~1990년 하버드대학교 러시아연구소(현 Davis Center for Russian Studies)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조지아와 몰도바 대사 겸임, 2006~2008)를 역임했으며, 1996년부터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1년 이후 한러대화(Korea-Russia Dialogue) 사무국장도 맡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사 시절 얄타회담이 열린 리바디아 궁을 세 번 방문한 것이 이 책을 번역하는 동기가 되었다.
주요 저서로 『우크라이나 현대사』, 『코카서스 3국의 역사와 문화』가 있고, 역서로 『벨라루스의 역사』, 『조지아의 역사』, 『1991』 등이 있다.

목차

【권두부록】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얄타회담
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롤로그

1부 작전명 아르고호
01 대통령의 여행 / 02 몰타 회동 / 03 차르의 앞마당 / 04 붉은 주인

2부 전사들의 정상회담
05 3거두의 재회 / 06 겨울 공세 / 07 독일 문제 / 08 전리품

3부 새로운 세계질서
09 UN 안전보장이사회 / 10 독일 총통의 그림자 / 11 발칸반도의 분할 / 12 폴란드 쟁탈전 /
13 “우크라이나인들은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4부 외교관들의 체스판
14 UN의 표결 방식 / 15 폴란드 문제의 교착 상태 / 16 폭격선 / 17 극동 기습 /
18 “동맹국은 서로를 속이면 안 됩니다”

5부 타협의 바퀴
19 폴란드 포기 / 20 독일의 운명 / 21 해방된 유럽과 발칸 거래 / 22 이란, 터키, 제국 /
23 비밀 협정 / 24 전쟁 포로

6부 얄타 정신
25 최후의 만찬 / 26 결승점 통과 / 27 희망의 날들

7부 다가오는 폭풍
28 갈등의 조짐 / 29 스파이 전쟁 / 30 스탈린의 밀어붙이기 / 31 루스벨트 이후

에필로그
감사의 말 / 역자 후기 / 미주 / 찾아보기
【권말부록】 주요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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