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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해제식 하셨나요? 천연기념물인 당신에게 주는 헌정글

정진화 저 | 더로드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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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3380634 / 308쪽 152 x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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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프롤로그 내 인생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은 하루하루 꾸준하게 성장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것과는 무관한 인생을 살아왔다. 지금부터 수 년 전, 나는 우연히 어떤 모임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자기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나간 삶을 돌아보고 오늘을 잘 살며 미래를 가꾸어가자는 내용의 세미나였다. 행사가 무르익으면서 중간 쯤 되던 어느 날, 진행하는 선생님이 각자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주면서 자기가 걸어왔던 그동안의 인생흐름에 대해서 그래프로 그려보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다. 나는 오더대로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왔다 갔다 하는 내 인생의 지나간 흔적들을 굵은 펜으로 표기하였다. 아마도 그날 그 시간이 내가 다른 사람과 달리 예사롭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던 날이었을 것이다. 나를 뺀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등, 중등, 고등, 대학, 성년, 결혼, 직장 등 아주 낮은 단계부터 마치 계단을 밟듯이 차츰차츰 상승하는 그래프를 그렸다. 그런데 내 것을 보니 나는 위로 치솟았다가 다시 아래로 내리박는 사이클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그룹의 사회를 맡은 한분이 내 것을 보더니 “선생님은 이렇게 커브를 그리듯이 상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셨네요.” 그때까지만 해도 굴곡진 인생은 누구나 다 그런 줄만 알았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살고 있는 줄만 알았다. 10명 정 도가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나처럼 생긴 그래프를 그린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옆 테이블도 마찬가지였다. 순간적으로 나에게 쏠린 눈길들로 인하여 나의 볼은 불그스레해졌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고 조금은 걱정되기도 했다. “지옥과 천당을 오갔습니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하하 ” 웃어넘기면서 살짝 대답을 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의아해하던 눈길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세미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잠시 마음이 어두워지면서 우울한 기분이 엄습했다. 그리고 지나간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일순간 나의 자존감이 급 수직 하강하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은 무겁기는 했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럴 때마다 직방으로 마음을 회복하는 방법을 나는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이야기할 이 책의 주제들이다. 그러므로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면 독자들도 다 알게 되리라. 나는 곧바로 다시 평상시의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치 달리기를 하다가 잠깐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바로 폼을 끌어올려 달리는 선수처럼 멀쩡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런 종류의 황당함은 사실 진짜 황당함 축에도 못 끼는 것이니까. 나는 1등에서 꼴찌로 추락을 하고 다시 꼴찌에서 기사회생하여 1등으 로 올라 섰다를 반복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되풀이 되는 인생길에 이제는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1등에서 꼴찌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인생의 굴곡을 만난 것은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때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반장 아니면 부반장을 하였다. 특히, 중학교 3학년 때에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잘나갈 때는 최고성적이 평균 99점을 기록하였다. 요즘 같으면 올100이 수두룩해 별거 아니라 생각하겠지만 지금부터 40년 전에 가까운 시절의 이야기이라 는 것을 생각해야한다. 전교생 시험인 중간고사에서 전 과목 100점 중에 단 한 과목에서 문제 를 잘못 봐서 85점이 되는 바람에 평균 99점이 된 것이다. 평균 99점은 개교 이래 기록이라고 했다. 1등하는 일은 나에겐 흔한 일이었다. 시골 의 중학교이긴 했지만 나는 수재였다.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들께 칭찬을 독차지하는 존재였다. 주변에 항상 친구들이 많았고 나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 빛나던 영광은 딱 거기까지였다. 청운의 꿈을 품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방황하는 시기에 접어 들게 된다. 그로 인하여 내 생애 첫 암흑의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성적이 급격 히 하락하여 자그마치 57명 중 51등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57명 중, 앞에서 1등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 만 57명 중 57등을 하는 것도 하늘의 도움 없이는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 다. 이런 말은 1등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고 또 57등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리라. 중학교 때는 앞에서 1등을 하였고 고등학교 때는 뒤에서 1등을 하였 다. 그 어린 시절 나에게 찾아 온 이 무너짐이라는 것이 가져다준 충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나를 지켜보던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이 문제를 그들에게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불과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 말이다. 귀인을 만나다 20대로 접어들어 나는 그저 그런 직장들을 전전하다가 회사를 그만두 고 실업자가 되었다. 어중간한 회사를 다니기보다는 좀 더 안정적이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회사를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었고 처음엔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라 생각하고 집에서 놀면서 취업 준비를 해나갔다. 하지만 노는 날들이 점차 길어지고 있었다. 이때의 실업자 경험으로 지금도 쉬고 있는 우리 젊은이 들의 마음을 안다. 지방에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1년을 놀다가 서울에 이력서 몇 통을 냈다. 며칠 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 다음날 가보니 괜찮은 회사였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내 졸업장으로는 들어가기 어려운 회사라는 사실을. 그런데 용케도 나는 부름을 받았고 신입사원이 되었다. 믿지 못 할 일이었다. 이것이 두 번째 굴곡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상승의 시작이었다. 한참을 후에 안 일이지만 서울 본사에 나와는 전혀 일면식도 없었던 어떤 사람이 인사과에 간부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사 후, 몇 년 후에 본사로 발령이 나서 잠깐 근무한 적이 있는데 혹시나 해서 그분의 인적사항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고향이 충청북도 ***군***면 ***리였다. 나는 그때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 했다, 주민등록상의 본적지가 **리만 다를 뿐 군과 면 단위까지 나와 똑 같은 것이었다. 이런 것을 지금으로 하면 인사 청탁 비리 같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분명히 밝혀두거 니와 작고하신 아버지도, 그 간부란 분도, 나도 전혀 한 번도 본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 때의 가정 형편으로서는 인사 청탁을 할 만큼의 경제적인 상황은 더욱 아니었다. 서울 인구가 자그마치 1천만 명이나 된다. 그 많은 서울 사람가운데 내가 지원한 회사에서 그것도 군과 면 단위까지 같은 동향의 사람을 만날 확률은 거의 로또 수준의 확률인 것이다. 로또 맞을 확률이 800만분의 1이라면 나는 1천만분의 1이었다. 지금도 이 일은 미스터리하다. 그저 운이 좋았고 그래서 귀인을 만난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나의 이력서를 보고 인사 담당자였던 그가 픽업하였을 것이라는 짐작은 가지만 지방의 그저 그런 대학을 나온 나로서는 대기업에 준하는 회사를 들어 가게된 것은 그저 행운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일이리라. 어쨌거나 밑바닥 꼴찌에서 나는 비교적 좋은 회사로 승천하는 순간이었다. 연봉도 좋았고 사원에 대한 복리 후생도 좋았다. 다닐만한 회사였다. 요 기간 동안에 열심히 직장생활해서 결혼도 하고 돈도 벌고 집도 사 고 차도 샀다. 30이 되기 전에 아파트를 구입한 것은 또래에서는 내가 1등 이었다. 딱 거기까지 아마도 10대 때에도 그랬듯이 또 20대에도 그랬듯이 좋았던 날들은 이 번에도 딱 거기까지였다. 30대 접어들어 나는 모 학교 앞에서 주점을 차리게 되었다. 그때까지 모은 돈과 대출까지 받아 가게를 인수하였다. 하지만 막상 가게를 열고 보니 개업식 날만 반짝 했을뿐 1~2 주가 지나자 손님은 하나도 없고 사 실상 속아서 인수받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봐도 이 일은 무리가 있었다. 가게를 인수하는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직장 신용 대출까지 얻어 거의 전재산을 베팅하다시피 한 것이다. 하지만 장사는 되지 않고 나는 점차 망해갔다. 빚쟁이로 몰리는 것 은 시간 문제였다. 다시 굴곡의 시작이었다. 이번에는 급 하강이었다. 재수 좋게 귀인을 만나서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직장생활 잘 한다싶더니만 그만 사업에 손댔다가 망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이 시절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변변한 직장도 없이 놀던 꼴찌 신세에서 1등으로 수직 상 승했다가 다시 정상에서 꼴찌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기를 다시 1년여. 죽기 살기로 이 위기를 탈출할 궁리를 모색하였 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각고의 노력 끝에 ‘스페셜 안주’ 개발에 성공하여 손님들의 반응을 차츰 얻어가기 시작했다. 날마다 손님들이 몰리더니 어느 시점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예상은 적중하였다. 다시 힘차게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였다. 마침내 그 상가거리 20여동 중에서 내 가게가 매출 1위 가게가 되었다. 언젠가 상가협회에 가입한 사장들의 모임에 내가 초대되었을 때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연세 지긋한 사장님들의 시선은 나에겐 훈장과도 같은 것이리라. 성공을 자축하기 위하여 그동안 신세졌던 지인들을 불러서 대접했던 날,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겹다.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순간이었다. 꼴찌에서 1등으로 다시 올라 서는 순간이었다. 아. 그러나 화려한 날들도 잠시. 10대와 20대에 좋았던 일들도 딱 거기 까지였듯이 이번에도 그랬다. 30대에 좋았던 날들은 딱 거기까지였다. 또 다시 시련의 모진 바람이 나를 휘감았다. 40대를 앞둔 어느날, 직장 을 그만두게 되는 일생일대의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내 인생에서 영영 회복 불가능한 사태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꽉 막히고 숨조차 쉴 수 없는 조직 사회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정든 회사를 10여 년 째 되는 해에 때려 치게 되었다. 그동안 모아둔 돈을 야금 야금 까먹고 통장의 잔고는 텅 비어 갔다. 이때부터 또 다시 어려운 길을 가게된 것이다. 하루하루가 초조함과 긴장감의 연속이었고 결국 많은 자본을 다 잃고 떠돌이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수년간 고생하다가 40대 초반 무렵, 지인과 함께 투자전략실을 운영 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하지 못한 홈런이 터졌다. 2008년 미국과 유렵의 금융위기 국면에서 ‘검색시스템’이라는 상품을 개발하여 나는 다시 대박을 맛보게 된다. 대전과 경기도 지역을 오가면서 바쁜 나날 속에 점점 역량을 키워갔던 게 성과를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드디어 5년이 되 던 해에는 내가 다니던 교회에 십일조 1천만 원을 하는 기적을 이룬다. 십 일조 1천만 원이면 한 달 수입이 1억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말이다. 아마도 이 시절이 내 인생의 절정기였을 것이다. 이때 나는 중국도 가고 홍콩도 가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영광은 길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문제를 만나면서 어려운 길을 걷게 된다. 급기야는 법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집에 있는 온갖 물건들에 무시무시한 빨간 딱지를 붙이고 가는 사태를 만나기도 한다. 이런! 쫓겨날 판국이 된 나는 발만 동동 구르다 극적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되고 어두컴컴한 반지하방에서 다시 긴 서러운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그러기를 수년, 여기저기를 전전하면서 힘든 나날 속에 어느새 아이들은 커갔고 양육에 자유로워진 집사람과 의기투합하여 공단 주변에서 요식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몇 년간에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조금씩 성장하여 지금 은 주변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음식점으로 커졌다. 집사람은 2호점을 차리겠다는 계획 속에 하루하루 설레는 기분에 들 떠 있다. 지난 40여 년간 오만가지 인생 굴곡을 만났던 나는 무얼 더 확 장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하지말자며 극구 말리는 입장이 되 버렸다. 여기서부터는 집사람의 스토리이므로 나는 여기까지이다. 이게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그 후 집사람은 나름대로 맹활약하면서 나 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 하고 있다. (내 인생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이 책의 끝부분에 자세하게 수록해 놓았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 이렇듯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좀 다른 굴곡진 길을 걸어왔다. 평탄한 삶이 때로는 부럽기도 하지만 지금은 꼴찌와 1등을 오가는 삶이 어 느 정도는 적응 되었다. 이런 역정의 길을 통하여 많은 어려움 속에서 자존감을 잃어 방황하기도 하였고 또 기세 좋게 일어나 자존감을 되찾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단련되어갔다. 그 속에서 깨달음을 조금씩 얻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야할 길은 만만치 않은 길이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어려움도 많으며 온갖 역경이 도사리고 있고 때로는 위험한 항로의 연속일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할 점은 자존감이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그때 상황에 따라 풍랑을 만난 배처럼 몹시 흔들리기도 하고 번데기처럼 쪼그라들기도 하고 중년 아저씨의 아랫배처럼 부풀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와도 자존감을 지켜야하며 항상 자존감을 키우기 위한 노력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한번 쓰러지면 영영 일어서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달린다. 그것의 동력은 우리마 음 저 깊은 곳에 자리한 자존감에 달려있다. “나는 꼴찌다”와 “나는 천연기념물이다” 이 두 개의 명제는 이렇게 하여 탄생하였다. 두 명제는 내 삶의 굴곡진 인생 끝에 얻어진 결과물이다. 내가 시련을 만날 때 마다 마음 한구석에 절대 버리지 않았던 내용이며 이 두 개의 무기로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성장시켜왔던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위기를 진압하고 나는 다시 설 수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없었더라면 나는 무너져도 벌써 무너졌을 것이며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였을 것이다. “괜찮다, 괜찮아 1등에서 꼴찌로, 그리고 꼴찌에서 1등으로… 괜찮다, 괜찮아.”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나는 할 수 있어!” 나처럼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드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의 인생이고 나만의 것이고 누군가 대신 살아주지 못하고 스스로 걸어 가야할 길인 것을… 겉으로 위로하는 척하는 말들이 당신을 현혹하고 있다. 이렇게 현혹해놓고 그들은 정작 앞을 향해 달리고 있다. 자존감이 성장해야할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시간을 허송세월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천연기념물이라는 것은 단순히 크낙새와 장수하늘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당신과 따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누구와도 같지 않으며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이 우주의 고귀한 존재이다. 그것이 결국 무엇이겠는가. 바로 ‘천연기념물’인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바로 천연기념물인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귀하고, 값어치 있고, 만인에게 사랑받아야할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정진화
저자 : 정진화
한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8년생.
그는 자연과 환경을 사랑하는 우리 시대의 낭만 가객이다. 그에게는 별다른 이력이 없다. 그만큼 신선한 재료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십이라는 늦은 나이에도 그의 글에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글 속에는 젊은이의 무언가가 서려있다. 이지적이며 날카로운 관점을 유지하지만 그를 만난 사람들은 따뜻한 눈동자를 기억하며 사람 냄새를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는 걷는다. 걷고 또 걷는다. 지난 20년 동안 하루 두 시간씩 그가 걸은 길은 서울과 부산을 몇차례나 왕복한 거리다. 걸으면서 생각했고 그 생각들이 모아져 만화를 찢고 나오듯 봉인해제했다.
당신은 드넓은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이고 70억 인류에서 당신과 똑같은 사람은 없으며 당신은 천연기념물보다 100배 이상의 가치를 지닌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며 우리의 자존감을 고양시킨다.
코로 숨쉬는 것도 행복이라며 우리의 행복을 기원하는 그는, 열열한 행복주의자다.
그가 이제 우리 곁에 따뜻한 시선으로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다. 세상을 봉인해제 하려는 그의 감성을 새벽 풀잎에 맺힌 이슬에 비하랴.
이제 그는 우리의 것이 되었다. 그의 탄생은 이 세계와 우리를 봉인해제하는 것의 시작이다.
얼마나 맛난 음식을 차려 놓았길래 이렇게 소문이 자자한지 오늘은 꼭 그를 만나보자.

목차

프롤로그……5
내 인생. 1등에서 꼴찌로. 귀인을 만나다. 딱 거기까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

제1장 ASDS란 무엇인가
1. 잃어버린 나……25
2. 깨달아야할 것들……28
3. ASDS……31
4. 강력한 백신……33

제2장 왜 당신이 바로 천연기념물인가
1. 아무 것도 모르는 B씨……37
2. 왜 당신이 바로 천연기념물인가……42
3. 왜 당신이 바로 천연기념물인가2(자존감의 의미)……49
4.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존재자각)……58
5. 자기애……59
6. 자신감……60

제3장 위기들
1. 새로운 발견……70
2. 확고부동함……72
3. 위기들1……75
4. 위기들2(위장된 자기애)……79
5. 백신을 입력하라……85

제4장 당신의 행복에 집중하라
1. 부자 되세요 열풍……91
2. 생명은 단 한번뿐이다……93
3. 행복에 대한 자각……95
4. 행복의 주체……100
5. 껍데기를 벗고서……102
6. 비교하는 것은 싫어……104
7. 세계에서 가장 멍청한 일, 허영심……106
8. 적극적인 행복 찾기……108
9. 행복감별기……110
10. 자존감과 행복……117
TIP 즐거운 일상, 이젠 밖으로 나갈 차례이다……118

제5장 소확행을 넘어 중확행, 대확행으로
1. 소확행을 넘어 중확행, 대확행으로……131
2. 개인주의, 이기주의, 집단주의, 집단이기주의……134
3. 진정한 친구 찾기……138
4. 행복이란 내가 가진 것을 즐기는 것이다……145
5. 번 아웃(Burn Out)……152
알아볼까요?/ 중확행에는 환경도 중요해요 ……157

제6장 대확행: 개인
1.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과 광야의 시간……163
2. 진짜 희망과 헛된 욕망……167
3. 아름다운 꼴찌 이야기……173

제7장 대확행: 공동체
1. 녹록치 않는 현실, 이생망과 노답 사회……184
2. 이시대의 자존감과 행복……189 3. 나는 꼴찌다……192
4. 그래도 당신은 천연기념물이다……199

제8장 봉인해제식(대확행으로 가는길)
1. 거리로 나온 한국의 툰베리들……211
2. 국민기본소득과 청년소득……222
3. 빅 데이터 세, 신설……226
4. 청년소득……228
5. 모두가 행복해지기까지 ……229

에필로그……235
플러스 알파 / 요동치는 삶 1~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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