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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인터뷰 : 황형철 시인 구름은 한때 물이었고, 구름 또한 물이 된다. 세상은 돌고 돈다. 순환이고 질서다. 자연과 사람은 일심(一心)이지 않나. 그러나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폭력은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나의 생명과 다르지 않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유기적인 자연의 흐름에 집중하는 것도 결국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과정이자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태생적으로 부채를 타고난 존재다. 낮고 작아 좀처럼 눈길이 가닿지 않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시를 쓰게 한다. 상식을 배반하는 정치, 정직한 노동이 외면받고, 마땅한 도리나 예의가 어긋나는 일상이 시인을 괴롭힌다. 이 부채를 시로써 갚으려고 평생을 고심한다.
체질이 굼뜬데 시간은 너무 빠르다. 저만치 앞서간 것들이 부럽지는 않으나 지나온 길에 아쉬움이 자욱하다. 시에 갇힌 인연의 숨들이 가쁘니 미안하다. 매 순간 진정이었고 간절했다고는 하나 불찰이 없지 않을 것이다. 곰곰 돌아볼 일이다.
가만 보면 남은 여정이 많지 않다. 세상은 더 급하게 흘러갈 것인데 내 짧은 보폭으로 바람을 동경할 수 있을까.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햇살, 눈부시다.
2020년 1월
황형철
어떤 집념이
수직의 절망을 오르게 하나
소리도 없이
활발한 폐활량으로
결연하게 그늘을 넘으며
세상 가장 낮은
공손으로
제 길을 낸다
긁힘도 깨짐도 낙서도
벽의 요란은
침묵으로 덮으며
벽을 사이에 두어
생겨난
요원한 경계마저 허물고
아무 결탁 없이도
잠잠히 공(空)을 채우며
오르고 또 올라
마침내 담쟁이는
벽의 전부를 지운다
「결벽」 전문
거짓말은 아니지만
언제 밥 한번 먹자, 밥 한번 먹자
잘 지키지도 않는 공수표를 던지는 건
밥알처럼 차지게 붙어살고 싶기 때문이지
단출한 밥상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것만으로
어느 틈에 허기가 사라지는 마법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까
「밥 한번 먹자」 부분
큰넓궤에도 피고 너븐숭이에도 피고 빌레못굴에도 피고 섯알오름에도 피고 송령이골에도 피었다
바람 불어도 흔들리지 않게 파도 덮쳐도 꺼지지 않게 애지중지 겹겹으로 불씨 에워싸 금방이라도 타오르겠다는 듯 환하지만
삼촌이 건넨 식은 지슬 같아서 어멍이 잡아준 마지막 손길 같아서 누군가 몰래 머뭇거리다 내건 조등(弔燈) 같아서
어쩌나 차마 고개 들 수 없다 바라볼 수 없다 만개한 숲으로 들 수가 없다
꽃이 지는 찰나에도 꽃을 붙들고 있는 그림자가 유난히 깊은 어둠 같기만 하여 붉게 뜨겁게 가슴이 타기만 하여 파리한 나무처럼 서서 한참을 울었다
「4월 동백-섬3」 부분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5·18 엄마가 4·16 엄마에게”
기교나 수사 따위에
애써 공들이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분하고 답답한 마음 알아주는 것
내 일인 양 가슴이 저미어 다름없이 흔들리고
애틋하고 가엾이 생각하여 가만있지 못하는 것
정작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 보탬 주는 것
시시하다 싶을지 모르지만
시란 그런 것
정치도 그런 것
「다저녁 무렵」 전문
내 뒷모습은 나 자신의 절반인 것인데
사이도 좋게 딱 반반씩 나눈 것인데
번번이 앞모습만 매만졌다
벽에 의자에 침대에 바위에 나무에 너에게
툭하면 앉고 기댄 탓에
세상의 소란 다 삼킨 채
짓눌린 나의 뒤여
아무것도 가질 수도 만질 수도 없이
잠잠한 그늘만 드리운 뒤야말로
응당 앞이 아닐까 하는 생각
뒤라고 알고 지낸 많은 것들이
실은 진짜 앞이 아닐까 하는
「뒤」전문
1부
강
결벽
꽃에 이름을 걸고
다섯 그루
등 뒤에서
섬의 말
고목 아래
겨를
밥 한번 먹자
밭담 지도
다산을 빌려
그늘
눈물의 씨앗
첫 꽃이 피다
2부
어떤 지목(地目)
배추밭
꽃피는 며칠
4월 동백
시인
다저녁 무렵
바위무덤
느그들 나 보러 올 때 꽃이라도 보면서 오니라
버들강아지
시름
밥물
잘 마른 빨래 같은 날들
술도둑
봄날은 온다
3부
나의 여름은
뿌리, 하고 말하면
가자미의 시간
베란다 문을 두어 뼘 열어두고
거래
모로 누운 당신
명함
선을 긋는다
추천사
이응
공짜, 세화에서
사과나무의 둘레
오후
대추
4부
아물 때까지
필사
상강(霜降)
새새틈틈
무심
달팽이
단풍이 오는 속도
종(種)의 기원
졸업
견인
심금(心琴)
등산화 한 켤레
징검다리
뒤
해설
순환 자연을 꿈꾸는 미메시스의 시인
- 이병철(시인,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