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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850246 / 264쪽 188 x 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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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어머니가 맡았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작가의 전작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사상 투쟁과 혁명, 쿠데타로 얼룩진 격동의 스페인 근대사 속을 헤치고 나온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아나키스트인 그는 스페인 혁명에서 공화파 병사로 참전하여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신념과 열정을 다해 싸웠고, 혁명이 일단락되고 가정을 꾸린 이후에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이제 그 이야기에서 어머니에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이었던가를 되짚어 보자. 전작을 읽은 독자라면 ‘지나치게 종교에 침잠하며’ ‘국가 우선을 가족 우선’으로 바꾸게 한 족쇄, 나이가 들며 상호간의 증오로 결국은 갈라선 존재로만 작가의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격동에서 주목받은 사람들은 스파르타쿠스단의 ‘붉은 로자’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남성들이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문학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여주인공 마리아가 맡았던 역할을 상기해 보아도 그녀는 헤밍웨이의 서사에서 이른바 ‘혁명의 꽃’ 역할을 맡은 데 불과했다. 그야말로, ‘영웅담도 비극도 오로지 남성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인 셈이다. 아나키스트 아버지와의 끈끈한 유대감에 자부심을 가진 작가가 아버지의 영웅담이자 아버지의 비극을 그린 이야기에서도 어머니는 그저 ‘아버지의 이야기에 종속된’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그것은 온당한 평가였을까? 작가는 자신이 어머니를 매우 과소평가했고, 순전히 아버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로만 사용했음을 깨달았다. 작가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이러한 안배가 극적인 연출을 위해 일부러 택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행한 선택이라는 점이었다.
어머니의 시선을 따라간 또 하나의 스페인 현대사
이제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탐구에 들어갔다. 친척과 지인들을 통해 어머니가 그간 거의 털어놓지 않았던 당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조각을 모으고, 설핏 들었던 사건들의 배경 인물을 조사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작가가 빠트린 부분을 채워 나가고자 하는 시작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에서 빠트린 부분을 채우기’가 아니라, ‘역사의 뒤편에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고난과 싸워 나가며 남자들과 함께 지금의 스페인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또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복원하며 아버지에게 시련을 안겼던 ‘위대한 스페인’의 내막을 살피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창공을 가르는 위대한 비행을 꿈꾸었던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쓰여진 ‘스페인 근대사’에 이어, 이제는 부러진 날개를 안고도 오히려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었던 어머니의 시선을 따라 그려진 또 하나의 ‘스페인 근대사’를 탐구해 보자.
“어머니, 팔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예요?”
“늘 그랬지. 늘 그랬어.”
‘페트라 오르도네즈 알타리바(스페인, 1918~1998)’
모두가 가난한 동네였다. 스페인 카스티야 지역의 시골 마을 포주엘로 데 라 오르덴에서 태어난 페트라는 난산으로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다. 이발사이자 담배 가게 주인, 그리고 3류 극작가이자 연극배우, 공화주의자인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 상심한 나머지 갓 태어난 딸을 죽이려 들었고, 평생 가져가야 할 ‘부러진 날개’를 얻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는 죽임을 당할 뻔하고, 커서는 하반신을 못 쓰는 아버지를 돌봤다. 이어서 프랑코 정권의 장군 댁에서 메이드장으로 일하고, 결혼 후에는 가족에 헌신하며 깊은 가톨릭 신앙을 품고 평생을 보냈다. 수많은 정치적 혼돈이 있었던 현대 스페인을 살아가면서도 ‘철저히 방관’하는 식으로 충돌을 피하며 자신의 주관을 드러내는 일 없이 살았고, 아들은 어머니에 대해 ‘언제나 남들을 섬겨 왔던 사람’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아무 말 없이 평생을 살아 왔던 탓에 남편도, 아들도, 그리고 연인조차도 당신의 왼팔에 장애가 있다는 사실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도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다. 아무리 3류 극작가라도 한 편의 비극 작품을 쓸 수 있을 만한 사정들을 안고도 어머니는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뒤늦게 사실을 안 작가는 이제 어머니의 눈을 통해 스페인 근대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높이 날지 못했지만, 더 멀리 갈 수 있었던 어머니
페트라는 평생 높이 날고자 하는 꿈을 품었던 남편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언제나 세상을 향해 부딪치며 살았다면, 어머니는 태어나자마자 날개가 부러지고 목이 졸린 끝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택한 침묵 속에 있었다.
어머니는 어째서 그런 삶을 택했을까? 가톨릭 신앙을 마음의 지주로 삼으며 아버지를 모시고, 그 뒤로는 높으신 분들을 모셨다. 폭력적인 가장은 아니었으나 역시 가부장적인 남편과 함께 살았다. 그렇지만 어머니 역시도 자신만의 공간과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에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창공을 가르는 비행을 꿈꾸는 대신 부러진 날개를 추스르며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뛰어오르며 사는 데 만족하였으며, 그 덕분에 오히려 아버지보다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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