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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7443909 / 856쪽 160 x 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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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1권 ‘선사시대에서 중세까지’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 1』은 선사시대에서 중세까지의 세계를 조망한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류가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는 과정을, 농경의 시작과 함께 초기 제국이 탄생하는 과정을 다룬다. 또한 고립된 채 자기들만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문명을 이룬 아메리카와 태평양에 주목하고, 중국과 이슬람의 번영이 가져다준 영향을 논한다. 몽골의 흥기는 세계사에 어떤 전환을 가져왔을까? 폰팅은 근대와 현대를 서술하기 위한 서론이 아닌, 세계사 그 자체로서 선사시대와 고대, 중세를 밀도 있게 그려 낸다. 1권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과 포인트를 몇 가지 짚자면 다음과 같다. 이집트는 문명의 발상지가 아니다? 문명의 요람은 어디인가 최초의 전환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기원전 1만 년 무렵에 일어났다. 몇몇 집단이 기나긴 이동 생활을 끝내고 정착해 농경을 시작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폰팅은 농경을 채택한 이유보다는 그로 말미암아 발생한 변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초기의 농경은 채집과 수렵보다 단점이 많았는데도 생산력만큼은 높았다. 인구가 점점 늘어나자 ‘톱니 효과’가 나타났다. 농경을 일단 채택하고 나자 다시는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세계 4대 문명이라는 용어가 있다. 문명이 최초로 태동했다고 여겨지는 큰 강 유역의 네 곳, 즉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허의 문명을 지칭하는 용어다. 그런데 폰팅의 주장에 따르면 초기 문명의 본거지는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계곡, 중국, 메소아메리카, 안데스산맥 중앙이다. 이집트는 없다. 흥미롭게도 폰팅은 유럽 남동부와 이집트를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류한다. 각 문명은 독자적으로 시작되었고, 출현한 시기도 크게 차이가 났다. 문명의 출현으로 이어지는 인간 사회의 복잡한 변화를 단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후세 사람들의 노력이 의미가 없는 이유다. 세계사는 제각각 달랐던 그 모든 인간 사회가 차츰 긴밀해져 하나로 뭉치는 과정이었다. 위기를 맞이한 세계, 위대한 종교들이 확산되다 우연이었을까? 기원후 200년을 기점으로 유라시아의 동서에 있는 두 제국이 비슷한 시기에 혼란에 빠졌다. 중국에서는 후한이 무너져 소설 『삼국지연의』로 알려진 시대가 시작되었다. 로마 제국은 오현제 시대로 알려진 전성기를 끝내고 군인 황제들이 다투는 내전의 시대로 돌입했다. 국경 바깥에서는 ‘야만인’들이 두 제국을 호시탐탐 노렸다. 위기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폰팅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 시기가 세계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불교와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혼란이 위대한 종교의 확산을 부추긴 것일까? 북중국을 지배한 이민족 왕조인 북위의 치하에서 불교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로마 제국에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우대함으로써 옛 종교들을 ‘이교’로 만들었다. 이제 종교는 사회를 통합할 수도, 위협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이슬람의 발흥으로 절정에 올랐다. 7세기 초반에 아라비아반도에서 탄생한 이슬람교는 스페인에서 인도 북부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아우르는 이데올로기였다. 폰팅은 이슬람 제국을 지중해 세계와 인도양 세계를 하나의 체계로 연결한 최초의 제국으로 규정한다. 이후 1000년이 넘게 전 세계의 종교 중 가장 큰 규모와 위세를 자랑하게 될 이 종교는 디나르가 동일한 화폐단위로 통용되고, 아라비아어가 국제어로 쓰이는 광대한 세상을 탄생시켰다. 11세기는 중국의 세기였다! 산업혁명의 직전까지 간 중국 10세기 무렵에 유라시아 전역을 통틀어 가장 발달한 지역은 단연 중국이었다. 당이 멸망한 후의 혼란과 분열도 중국의 성장하는 경제력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중국이 유라시아의 서쪽과는 다른 흐름 위에 있었음은 거센 변화의 속도를 봐도 알 수 있다. 960년에 건국된 송은 경쟁 왕조들을 잇달아 공격해 2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오늘날 프랑스 면적의 일곱 배에 달하는 지역을 통일했다. 여기서 폰팅은 최근의 연구를 통해 나온 획기적인 주장을 소개한다. 송이 유럽보다 먼저 ‘상업혁명’과 ‘산업혁명’을 달성할 뻔했다는 주장이다. 그 주장대로라면 유약한 제국으로 알려진 송을 바라보는 관점은 바뀌어야 한다. 그만큼 송의 부는 어마어마했고, 기술적으로도 첨단을 달렸다. 철 생산량만 봐도 1076년에 들어 12만 5000톤에 달해,(산업혁명 전야로 일컬어지는 1788년에 잉글랜드의 철 생산량이 약 7만 6000톤이었다.) 11세기 말에 이르면 주요 철 생산지에서는 목재 부족으로 용광로에 불을 지필 숯을 만들 수 없을 정도였다.(18세기의 잉글랜드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 그리하여 중국의 철 생산업자들은 7세기 후의 잉글랜드와 똑같은 노정을 밟아, 용광로에 숯 대신 코크스를 집어넣는 방법을 이용하게 된다.
현대 인류의 조상은 약 20만 년 전에(어쩌면 그보다 약간 이후에) 동아프리카의 어딘가에서 진화했다. 이들이 약 10만 년 전 무렵에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했고, (……) 동아프리카에서 출현해 이후 전 세계로 퍼져 나간 초기 인류의 집단 중 극히 일부에서 우리 모두가 나왔다는 사실이 바로 세계사의 근본적 통일성을 설명한다. ─ 1권, 57쪽
아메리카 대륙이 고립되어 있었다는 것은 곧 이곳에 발달한 문명들이 유라시아에서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특징을 여럿 가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 이곳에는 양, 염소, 돼지는 물론,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로서 소, 말, 당나귀 등 축력(畜力)을 제공해 줄 동물이 전혀 없었다. 안데스 지역에서 라마와 알파카를 길들이기는 했으나, 고작 짐을 운반하는 데에나 쓰였을 뿐이었다. 그 결과 바퀴의 제작 원리를 알아 장난감에 달기까지는 했어도, 그것을 활용해 육상 수송 수단을 발달시키지는 못했으며 농사의 모든 활동도 오로지 인력에 의존해 이루어졌다. ─ 1권, 197~198쪽
중국의 경우 기원전 10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먼 옛날 고전 문헌도 얼마든 원문 그대로 손쉽게 읽어 낼 수 있다. 문헌이 쓰인 당시의 언어가 정확히 어떤 것이었든 상관없이 말이다. 따라서 지중해와 유럽 세계의 언어가 그리스어, 라틴어, 갖가지의 현대 로망어, 영어, 독일어 등으로 갈라지면서 서로의 말뜻을 못 알아듣게 된 데 반해, 중국은 이런 식의 복잡한 변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언어 변화 때문에 ‘상실’을 경험한 유럽과 달리 중국은 예로부터 쌓인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전통을 온전히 지켜 올 수 있었다. ─ 1권, 326쪽
기원전 90년 이후의 약 한 세기는 한과 로마 제국 모두 내부 위기를 겪은 시기였다. 그러나 두 곳 모두 나라의 영토가 크게 줄지는 않았으며, 위기를 겪고 난 뒤에는 새로운 통치 체제를 출현시켜 기원후 2세기 말까지 오래도록 번영과 안정을 누렸다. 한과 로마처럼 멀리 떨어진 두 나라가 어떻게 이 단계에 들어 대략 비슷한 정치 노정을 걸었는지 그 이유는 확실치 않다. 아마도 우연의 일치였을 가능성이 크지만, 유라시아 대륙 각지의 상호 연결성이 깊어진 결과 한 지역에서 빚어진 분란이 다른 지역들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 ─ 1권, 437쪽
5세기에 로마 제국이 몰락한 이후 3세기 동안 서유럽은 규모도 작고 힘도 매우 약한 일련의 왕국으로 잘게 분열되었다. 이곳의 인구는 낮은 수준에 머물렀으며, 주민들이 드문드문 흩어져 살던 촌락들은 대체로 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에 고립된 채 거의 모든 생활을 자급자족으로 영위해 나갔다. 몇 군데에 성읍도 자리하고는 있었지만, 성읍이라고 해야 그 규모는 촌락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지역 내의 아주 근거리가 아닌 곳으로는 교역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통신 상황은 열악했고 군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원도 최소한이었으며, 국력은 대체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했다. 전반적으로 당시 서유럽의 경제 및 정치는 일본만큼이나 발달 수준이 낮았다. ─ 1권, 577~578쪽
기원전 2000년에 3000만 명가량이던 세계 인구는 1000년 후 5000만 명가량으로 증가했다. (……) 기원전 500년에는 인구가 두 배로 불어났고 기원후 1세기에는 또다시 두 배가 늘어 세계 인구는 약 2억 명을 헤아렸다. 하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돌연 상대적인 정체가 시작되어 장기간 그 추세가 이어졌다. 이제는 추가로 경작할 만한 땅이 거의 없었던 데다, 기술 발전도 전반적으로 정체를 보였고, 아울러 유라시아 대륙이 하나로 연결된 결과 질병이 널리 확산되면서 인구 증가에 심각한 제약이 찾아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기원후 1000년 무렵에 세계 인구는 약 2억 5000만 명 수준으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 1권, 615~616쪽
역사에서 몽골족은, 어떤 동기나 일관성도 없이 요란하게 정복, 약탈, 분탕질, 파괴를 일삼은 민족으로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는 실상에서 많이 벗어난 이야기다. 몽골족은 유라시아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제국을 이룩한 민족이었다. (……) 1200년 이후 약 150년 동안의 유라시아 역사는 대부분 몽골족의 영향을 논하지 않고는 그 이해가 불가능하다. ─ 1권, 752~753쪽
역사상 중대한 의미를 갖는 두 가지 발전이 한반도 내부에서 일어난 것도 조선 왕조 초창기의 일이었다. 그 첫 번째는 가동 활자 인쇄술이 세계 모든 곳을 제치고 한반도에서 제일 먼저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한글 창제다. (……) 하지만 모음 열한 개와 자음 열일곱 개로 이루어진 이 한글도 한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 1권, 806쪽
서론 세계사
1부 인류 역사의 99퍼센트(기원전 1만 년 무렵까지)
1장 기원
2장 채집과 수렵
2부 대전환
3장 작물과 동물
4장 문명의 출현
5장 고립: 아메리카 대륙과 태평양
3부 초기 제국들(기원전 2000~기원후 600년)
6장 초기의 유라시아 세계
7장 상호작용(기원전 2000~기원전 1000년)
8장 확장(기원전 1000~기원전 200년)
9장 유라시아 세계의 연결(기원전 200~기원후 200년)
10장 위기(기원후 200~600년)
4부 거대 제국(600~1500년)
11장 이슬람의 발흥(600~1000년)
12장 후기 유라시아 세계
13장 중국의 시대(1000~1250년 무렵)
14장 몽골 제국(1200~1350년)
15장 회복(1350~1500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