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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자나 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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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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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바이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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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지금까지 이승휴 선생이 쓴 『제왕운기』가 지닌 사료(史料)로서의 가치는 동시대에 간행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비해 부각되지 못하였다.
이에 『제왕운기』에 담겨 있는 내용, 즉 시(詩)로 쓰인 본문과 이에 대한 주석(註釋)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가? 이들 내용이 한국고대사와 고려사 연구에 유용하게 활용될 1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바탕으로 『제왕운기』에 실려 있는 내용을 새롭게 발굴·이해·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개최된 2016년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여 이승휴의 문학과 역사,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2018년의 《『제왕운기』에 담긴 한국의 역사와 문화 이해》를 공동 주제로 진행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선별하고, 이승휴와 『제왕운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글 2편을 모아서 『한국고대사 사료(史料)로서의 《제왕운기》』를 발간하게 되었다.
『제왕운기』에 실린 내용을 중심으로 주제를 선정하여 작성한 논문을 묶은 최초의 연구서이기에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감히 자부한다.
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고기(古記)」[『삼국유사』]는 단군의 일천여(一千餘) 생애를 언급하면서 정작 단군 자신의 결혼 관계나 후사(後嗣)에 대한 언급은 없이 대단원을 맺고 있다. 이에 비하여 「단군본기」[『제왕운기』]는 단군사적만을 기술한 「고기」보다 그 서술 범위를 확장하였다. 그러므로 본래 『삼국유사』 고조선 조의 「고기」가 있고, 이와는 별도의 「동명본기」[『제왕운기』]가 있으며, 이들을 아울러 하나의 계통으로 세워 본 것이 「단군본기」라 하겠다. _35쪽 ‘전려(前麗)’라는 표현은 곧 ‘후려(後麗)’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의 「전조선기」와 「후조선기」의 존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를 감안한다면, 당 고종은 ‘전려’인 고구려를 멸망시킴으로써 『제왕운기』에서 표현한 ‘전조선’으로부터 이어져 온 동국의 정통을 단절시킨 자가 되는 것이고, 그 뒤를 이은 당의 측천무후는 ‘후려’를 배태 또는 ‘복국(復國)’시켜 동국의 역사를 잇게 한 주체라는 의미가 된다. 바로 이러한 인식이 이승휴의 역사관에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_64쪽 이승휴 스스로 이때를 성대(聖代)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금대기」를 바라보는 이승휴의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런 정신은 사대부들의 보편적인 의식으로 두보(杜甫)가 말한 자신의 “임금을 요순보다 훌륭한 성군이 되게 하고, 다시 풍속을 순박하게 한다(致君堯舜上 再使風俗淳)”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사대부는 언제나 자신이 모시던 임금을 요·순임금보다 더 대단한 임금으로 칭송해 왔다. 「금대기」는 바로 이러한 사대부의식의 충실한 산물인 것이다. _108쪽 해석의 관건은 곡식 기장[피]과 왕의 관계다. 옛 백제 지역에서 간행한 『천자문』에는 왕(王)의 새김[訓]이 곧 기장이다. 『제왕운기』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기자조선’이 고대 중국의 성인 기자(箕子)와 무관함을 알게 된다. … 백두산으로부터 곡영(鵠嶺)에 도착한 도선 스님이 고려 태조 왕건의 집 터를 보더니 “기장을 심을 땅에 왜 삼[麻]을 심소?”라고 물었다. 시키는 대로 기장[?]을 심었더니 기장[王]이 나왔다는 고사(故事)로서, 이로써 ‘왕’을 고려 왕실의 성씨로 삼았다고 한다. _138쪽 이에 환웅신화를 수록한 네 가지 유형의 사서를 보면 환웅[단웅]은 천왕이라 불리는 신령으로서 신시를 열고, 역사 시대를 처음 연 고조선의 시조로 인식되는 단군을 낳은 신화상의 시조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능들은 천신이나 산신과 구분하여 이해되어야 할 신령임을 잘 보여 준다. 그러므로 환웅[단웅]천왕, 즉 천왕의 성격을 천신, 산신, 또는 불교적 연원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별도 성격을 지닌 신령으로서의 천왕을 설정하여 그 기능과 의미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에 필자는 환웅신화에 등장하는 천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고 본다. _163쪽 『제왕운기』 소재(所載) 이야기에는 얼핏 보면 한·중 간의 역사적 인물들이나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신이성(神異性)과 비범성(非凡性)이 형상화되어 있기에 역사적 진실성이나 현실성이 동떨어진 허구적인 설화로 볼 여지도 있겠으나,『 제왕운기』의 설화는 한국 역사적 현장성과 식자층(이승휴 등 지식층)의 주체의식(主體意識)이 글(문자)로 찬술(撰述)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와 문학이 공존하는 한국 민족문화의 소중한 원천의 자산임에는 틀림없다. _220쪽 이승휴는 1274년 동주부사로 임명되었으며 이때 동안거사(東安居士)를 자호로 삼았다. 그런데 여기서 동주는 궁예가 후고려를 세웠던 철원을 말한다. 이승휴는 이곳에서 궁예와 후고려에 대한 여러 자료를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궁예가 세운 ‘고려’를 숨기고 마치 궁예가 처음 세운 나라가 마진인 것처럼 서술하였지만, 이승휴는 궁예가 세운 나라를 ‘후고려’라고 명시하였다. ‘후고려’란 이름을 통해 궁예가 세운 나라가 고려였고 고구려도 고려로 나라 이름을 바꾼 이후 고려로 불렸음을 알려 주고 있다. _251쪽 이승휴가 활동하였던 시대는 기존의 귀족문화가 해체되면서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준비하는 시기였다. 이때에는 강계의 난, 몽골의 침략과 몽골에의 복속으로 인한 사회적인 변화와 신분 계층 간의 변동기에 중앙관계로 진출하려는 일군 사인(士人)이 있었다. 이들은 ‘능문능리(能文能吏)’의 교양과 능력을 토대로 사회 변혁에 부응하는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면서 그 시대를 계도해 간 신진사대부였다. 이승휴와 같은 초기 신진사대부는 유학을 정신적 근간으로 삼고, 나아가서는 광세재민하고 들어와서는 수신제가하는 의식을 갖추었다. _304쪽
「고기(古記)」[『삼국유사』]는 단군의 일천여(一千餘) 생애를 언급하면서 정작 단군 자신의 결혼 관계나 후사(後嗣)에 대한 언급은 없이 대단원을 맺고 있다. 이에 비하여 「단군본기」[『제왕운기』]는 단군사적만을 기술한 「고기」보다 그 서술 범위를 확장하였다. 그러므로 본래 『삼국유사』 고조선 조의 「고기」가 있고, 이와는 별도의 「동명본기」[『제왕운기』]가 있으며, 이들을 아울러 하나의 계통으로 세워 본 것이 「단군본기」라 하겠다. _35쪽
‘전려(前麗)’라는 표현은 곧 ‘후려(後麗)’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의 「전조선기」와 「후조선기」의 존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를 감안한다면, 당 고종은 ‘전려’인 고구려를 멸망시킴으로써 『제왕운기』에서 표현한 ‘전조선’으로부터 이어져 온 동국의 정통을 단절시킨 자가 되는 것이고, 그 뒤를 이은 당의 측천무후는 ‘후려’를 배태 또는 ‘복국(復國)’시켜 동국의 역사를 잇게 한 주체라는 의미가 된다. 바로 이러한 인식이 이승휴의 역사관에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_64쪽
이승휴 스스로 이때를 성대(聖代)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금대기」를 바라보는 이승휴의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런 정신은 사대부들의 보편적인 의식으로 두보(杜甫)가 말한 자신의 “임금을 요순보다 훌륭한 성군이 되게 하고, 다시 풍속을 순박하게 한다(致君堯舜上 再使風俗淳)”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사대부는 언제나 자신이 모시던 임금을 요·순임금보다 더 대단한 임금으로 칭송해 왔다. 「금대기」는 바로 이러한 사대부의식의 충실한 산물인 것이다. _108쪽
해석의 관건은 곡식 기장[피]과 왕의 관계다. 옛 백제 지역에서 간행한 『천자문』에는 왕(王)의 새김[訓]이 곧 기장이다. 『제왕운기』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기자조선’이 고대 중국의 성인 기자(箕子)와 무관함을 알게 된다. … 백두산으로부터 곡영(鵠嶺)에 도착한 도선 스님이 고려 태조 왕건의 집 터를 보더니 “기장을 심을 땅에 왜 삼[麻]을 심소?”라고 물었다. 시키는 대로 기장[穄]을 심었더니 기장[王]이 나왔다는 고사(故事)로서, 이로써 ‘왕’을 고려 왕실의 성씨로 삼았다고 한다. _138쪽
이에 환웅신화를 수록한 네 가지 유형의 사서를 보면 환웅[단웅]은 천왕이라 불리는 신령으로서 신시를 열고, 역사 시대를 처음 연 고조선의 시조로 인식되는 단군을 낳은 신화상의 시조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능들은 천신이나 산신과 구분하여 이해되어야 할 신령임을 잘 보여 준다.
그러므로 환웅[단웅]천왕, 즉 천왕의 성격을 천신, 산신, 또는 불교적 연원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별도 성격을 지닌 신령으로서의 천왕을 설정하여 그 기능과 의미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에 필자는 환웅신화에 등장하는 천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고 본다. _163쪽
『제왕운기』 소재(所載) 이야기에는 얼핏 보면 한·중 간의 역사적 인물들이나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신이성(神異性)과 비범성(非凡性)이 형상화되어 있기에 역사적 진실성이나 현실성이 동떨어진 허구적인 설화로 볼 여지도 있겠으나,『 제왕운기』의 설화는 한국 역사적 현장성과 식자층(이승휴 등 지식층)의 주체의식(主體意識)이 글(문자)로 찬술(撰述)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와 문학이 공존하는 한국 민족문화의 소중한 원천의 자산임에는 틀림없다. _220쪽
이승휴는 1274년 동주부사로 임명되었으며 이때 동안거사(東安居士)를 자호로 삼았다. 그런데 여기서 동주는 궁예가 후고려를 세웠던 철원을 말한다. 이승휴는 이곳에서 궁예와 후고려에 대한 여러 자료를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궁예가 세운 ‘고려’를 숨기고 마치 궁예가 처음 세운 나라가 마진인 것처럼 서술하였지만, 이승휴는 궁예가 세운 나라를 ‘후고려’라고 명시하였다. ‘후고려’란 이름을 통해 궁예가 세운 나라가 고려였고 고구려도 고려로 나라 이름을 바꾼 이후 고려로 불렸음을 알려 주고 있다. _251쪽
이승휴가 활동하였던 시대는 기존의 귀족문화가 해체되면서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준비하는 시기였다. 이때에는 강계의 난, 몽골의 침략과 몽골에의 복속으로 인한 사회적인 변화와 신분 계층 간의 변동기에 중앙관계로 진출하려는 일군 사인(士人)이 있었다. 이들은 ‘능문능리(能文能吏)’의 교양과 능력을 토대로 사회 변혁에 부응하는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면서 그 시대를 계도해 간 신진사대부였다. 이승휴와 같은 초기 신진사대부는 유학을 정신적 근간으로 삼고, 나아가서는 광세재민하고 들어와서는 수신제가하는 의식을 갖추었다. _304쪽
책머리에 5
1부 이승휴의 사상과 문학
동안 이승휴 선생의 불교인식과 간장사(看藏寺) 17
김도현(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이승휴 『제왕운기』의 고구려·발해 인식 49
김진광(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응제시(應製詩)의 관점에서 살펴본 『제왕운기(帝王韻紀)』와 이승휴(李承休)의 역사인식 85
강석근(성결대학교 객원교수)
2부 한국고대사 사료(史料)로서의 『제왕운기(帝王韻紀)』
한국고대사 사료(史料)로서의 『제왕운기(帝王韻紀)』 119
신종원(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제왕운기(帝王韻紀)』에 수록된 ‘천왕(天王)’의 성격 151
김도현(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제왕운기(帝王韻紀)』에 인용된 설화의 성격 187
이창식(세명대학교 교수)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와 불교 ―불교 관련 용어를 중심으로 227
조경철(연세대학교 객원교수)
부록 『제왕운기(帝王韻紀)』의 산실(産室), 천은사(天恩寺)의 역사(歷史)와 이승휴 261
김도현(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