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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발

시리즈 : 걷는사람 시인선 [15]

권지현 저 | 걷는사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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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128531 / 142쪽 12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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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1968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차세대예술인력집중육성지원금을 받았다. 

머리말

오래 걸었으나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먼 곳을 바라보고 싶었으나
발등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날도 있었다.
문득, 뒤돌아보니 많은 곳을 지나왔다.
이쯤에서 잠시 쉬었다 가면
내가 가야 할 길이 좀 더 선명해지겠다.

2019년 10월
권지현

책 속에서

어디서 무슨 일 있었구나
마당가에 네 만신창이를 들이던 저녁
절뚝이는 다리, 엉겨 붙은 피
꼬리마저 짤막하구나
— 「점핑 고양이」 부분


출산이 가까워지자 의사는 말했다
여자 몸이란 껍질이란다 아가야
여자는 아득한 협곡에 몸을 던지듯
외마디 비명도 없이 호흡을 놓친다
온몸을 휘감는 검은 물풀들,
여자가 급류에 쓸려나간다

여자 입술에 물을 적셔주니
흰 가운들 손에 불쑥 돋는 힘줄,
수문이 왈칵 열린다
탯줄로 이어진 아기는 응애애애,
푸른 단풍잎 손으로 허공을 쥔다

여자가 숨을 트며 강물 위로 떠오른다
- 「강물 위로 떠오르다」 부분


비행기는 언제 올지 오지 않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연착한다는 안내표시등 한 줄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나는 로비를 몇 바퀴나 돌고
하릴없이 아이스크림을 핥다가
마침내는 쪼그리고 앉아 지루하게 졸았다
항의하는 나를 마주한 공항 여직원 가슴께 걸린
얼굴 사진이 흐릿하게 지워져 있어

내가 가야 할 길마저 희미해 보였다
비행기는 오지 않고
결리는 허리뼈를 아주 잊을 때까지 오지 않고
우루무치행 비행기는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 「모른다고 하였다」 부분


설날 아침,
고아낸 곰탕 국물에 떡국을 끓여 내었다
식구들이 빙 둘러앉아 덕담 나누며
수저를 들었다 무심히 첫술 삼키는데
덜컥 목구멍을 찌르는 무엇,

묵은지 쌈 싸서 삼켜 보라는
말을 뒤로하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하고많은 날 중에
새해 첫 아침 첫술이 목에 걸리다니
잠입한 뼛조각이여,
참은 속울음
여기 부려놓았는가

처가댁으로 설 쇠러 간
의사가 호출을 받고 왔다
엑스레이 속 ‘큰 뼈’로
목에 상처가 남을 수 있다는데

입을 크게 벌려요, 떨어지는 구름
움직이지 말아요, 박히는 바람
튀는 햇살, 뒤로 가서 숨어요
내 울음 이런 것은 아닌데

제 살과 뼈를 싣고 갈 트럭 앞에
한사코 접질려 앉은 황소 눈알에서 후득
살 떨며 흐르는 눈물,
실은 등뼈가 우는 거네
등뼈 속울음이 살까지 번진 거네
울음 굳어가네

흐느끼는 속살이 뱉어낸
뼛조각 하나
물컹 젖어 있다
- 「등뼈 울음」 전문


시누이가 택배로 보내온 보행기
긴가민가 무심히 앉혀본다
우주선 타고 달나라에 도착한 첫걸음처럼
이 행성에 와 내딛는 최초의 몇 걸음,
펄쩍 놀라 팔다리 팔랑댄다
흠집 없는 복숭앗빛이네?
위험한 소행성처럼 모기장이며 베개에 부딪힌다
흔들리는 모빌 쪽으로 나아가는 작은 발

가만,
나는 무중력의 걸음이 빠져나간 배를 만져본다
- 「작은 발」 부분



목차

1부 우주를 쪼개다
물봉선
피닉스
냉동실
플래시,
검정 핸드벨
송곳니 자국
강물 위로 떠오르다
우주를 쪼개다
모른다고 하였다
느티나무 따라왔네
양말
검정 생콩
줄지어 흘러내리다
도피안사 금개구리

2부 마술사의 입
철대문
호암산 호압사
땀 전문가
작은 발
지도박물관
벤자민
목화
부족을 잃다
신도시 개발 구역
한 달 고양이
등뼈 울음
허공 식탁
시간의 역에서
단정한 침묵

3부 연고 한 통 같은 말
해쑥
나이테 탁자
유리벽지의 집
서내
어처구니
종합검진
블루베리 눈동자
민머리 까치
월아천
용은별서를 지나며
벽돌공장이 있는 풍경
숲 해설가
북향
연고 한 통

4부 그가 듣고 있다
홀드
겨울방학, 일직
유리 아티스트
그가 듣고 있다
열에 아홉은 회색늑대
사이클로이드 커브 빗방울
그림자 눈에게
훌훌 넘어가는 사람
가트의 그릇
얼굴 한 장
접힌 자국
초록새를 담아오다
레드우드 숲에서
점핑 고양이

해설
시간과 시선의 몽타주
- 김태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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