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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형제다 앙리 뒤낭이 묻고 적십자가 답하다

박경서, 오영옥 저 | 동아시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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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2623062 / 248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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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만인을 위한 한 사람’은 없다 자선사업가, 제1회 노벨평화상 수상자, 적십자의 설립자, 백의의 신사, 만인을 위한 한 사람. 앙리 뒤낭에게 붙은 수식어는 다양하다. 그만큼 그는 다면적인 면모를 갖고 있으면서, 당시 세계사에서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호칭이 바로 ‘만인을 위한 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분명 앙리 뒤낭은 기억해야할 인물이고, 적십자의 오랜 역사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지만 섣불리 개인을 영웅시하는 것은 큰 과업이 오로지 개개인의 영웅의 몫이라고 호도할 우려가 있다. 앙리 뒤낭 본인 또한 그런 걸 원하지 않았고 그저 평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남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인 『솔페리노의 회상』에서 카스틸리오네 인근 부녀자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적극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 또한 이를 방증한다. 저자 또한 앙리 뒤낭과 함께 적십자정신의 기틀을 쌓고, 그 역사를 만들어온 수많은 공여자들에 주목한다. 저자가 2부에서 설명하는 적십자사의 역사는 단순히 기록에 대한 부차적인 설명이 아니라 그만큼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적십자 운동을 이룩해왔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과거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자연 상태의 무질서함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를 극복하고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리바이어던’은 단일한 인격이 아니라, 무수한 사람이 모여 하나의 기치 아래 통합하여 이루어지는 존재다. 말하자면 ‘만인을 위한 만인’이다. 인도주의는 한 명의 영웅적 개인이 아닌, 만인의 헌신이 모여 완성되는 것이다. 이 땅 위에서 이어진 인도주의에 대한 헌정 2019년은 인도주의 확산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솔페리노 전쟁이 일어난 지 160년이 되는 해이자 국제적십자사연맹이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평생을 인도주의와 인권 활동에 몸바쳐온 저자 박경서 박사는, 자신이 대한적십자사 회장으로 취임한 후, 이처럼 기념할 만한 시기를 맞이한 것을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여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서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 그의 아내이기도 한 공저자 오영옥 교수는 스위스 역사를 전공한 서양사학자로서, 단순히 뒤낭의 삶의 족적을 좇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그에 더해 그 시기의 시대적 배경과 의미까지도 추적할 수 있는 전문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 거기에 더해 인권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박경서 박사가 1부를 해제하고, 근현대의 적십자사의 여러 면모를 설파함으로써 완성된 것이 이 책이다.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빠졌더라면 결코 완성될 수 없었을 이 책은, 단순히 앙리 뒤낭과 적십자사의 역사에 대한 무미건조한 기록을 넘어, 적십자정신에 대한 애정과 인도주의에 대한 헌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 소개

전남 순천 출생. 광주 서중·일고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Goettingen)대학 사회학과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인도 한림원 명예철학박사, 영국 에딘버러대학 명예신학박사를 수여받았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에서 교수로서 1976년부터 1982년까지 6년간 사회학을 가르쳤고 동 기간 중 재단 법인 크리스찬 아카데미 부원장을 역임했다. 1982년부터 1999년까지 18년간 스위스 제네바 소재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아시아 국장과 아시아 정책위 의장을 역임했다. 동 기간 중 중국, 인도, 북한 등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을 방문해 개도국의 고뇌와 민족 문제를 배웠고, 2000년 귀국하여 동북아 평화연구소를 개설했다.


 


2003년 5월 <문화일보>의 평화 인물 100인에 선정되었고 대한민국 초대 인권 대사(2001-2007), 국가 인권위원회 상임위원(2001-2004), 진실과 화해위원회 자문위원(2007-2010) 통일부 정책위원회 위원장(2007-2008),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2006-2009)을 역임했다. 현재 유엔 인권정책센터 이사장, 국가인권위원회 자문위원,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 학술원 석좌 교수와 평화학 연구소장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역서로 《조선에로의 여름기행》, 《사회의식과 사회비평》, 《독일 노동 운동사》 등이 있으며 저서로 《지구촌 시대의 평화와 인권》,《세계 시민-한국인의 자화상》.《WCC창으로 본 70년대 한국 민주화 인식》등이 있다. 


 


 

이화여대 사학과 졸업 후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서양 근현대사를 공부했다. 이후 스위스 프리부르그대학에서 ‘Lizentiat’ 학위 취득 및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외대, 장신대, 덕성여대에서 문화사를,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유럽문화의 이해에 대해 강의했다. 《영원한 국모 마리아 테레지아》 《종교개혁 이후의 독일 교회사》(편저)등을 썼으며 《폭력에 대항하는 양심》 《체스, 아내의 불안》 등을 번역했다.

책 속에서

뒤낭의 설파처럼 적십자 운동은 만인이 공유하는, 진보이건 보수이건 노약자이건 젊은이이건 남자이건 여자이건 다 같이 손잡고 발전시키는 인류 보편의 운동임을 모든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_8쪽, 「책을 내면서」 중에서

그러나 이런 이방인들의 부와 행운은 거저 나온 게 아니라, 식민지 사람들의 고혈을 짜내서 나온 것임을 동시에 절실하게 느꼈지요. 뒤낭은 식민지 건설자로서 알제리를 찾아왔지만, 식민지 사람들을 인간 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마주하고자 애썼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네바에서 하던 것처럼, 알제리에서도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돕는 데 매진하였습니다.
_31쪽, 「세계로 뻗어나가는 박애정신」 중에서

이들이 외치던 “우리 모두는 형제다”라는 말은 이후 적십자의 표어로 재탄생합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스러져 가는 목숨과 신음의 틈바구니에서, 적십자정신은 그렇게 싹트고 있었던 것입니다. 뒤낭과 함께한 카스틸리오네의 시민들 하나하나가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들’이었습니다. ‘참혹한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적아의 구분 따위는 필요 없다’, ‘모두에게 똑같이 중립적으로 박애를 실천한다’라고 하는 적십자정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_51쪽, 「솔페리노의 포화 속으로」 중에서

가족, 친지들과도 얼굴을 마주칠 수 없었던 뒤낭은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파리로 향했습니다. 1867년은 그렇게, 뒤낭의 기나긴 고행이 시작된 해였습니다. 뒤낭은 이후 그것을 자신의 ‘경솔함’에 대한 대가로 이해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뒤낭은 아주 곤궁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슬픔과 좌절, 가난과 배고픔. 일생을 바쳐 이웃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그 문제들이 이번에는 자신을 덮쳐 왔습니다. 방 한 칸 구할 형편조차 되지 못해 노숙자들 사이에서, 다리 밑에서, 역의 대합실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_105쪽, 「영웅에서 나락으로, 망명자의 삶」 중에서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정도로 어려운 처지 속에서도 뒤낭은 인류애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하이덴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누군가에 대한 원망도, 신세에 대한 한탄도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메모에, 그는 <피비린내 나는 미래>와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는 문명의 야만성>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전쟁이 계속되는 미래와 그 미래를 회피하기 위한 방안을 예언자적인 시야로 서술하였습니다. 뒤낭은 문명의 진보가 새로운 무기를 낳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 사람의 거인이었습니다.

_164-166쪽, 「다시 찾은 명예」 중에서

적십자사가 해왔던 모든 일을 시시콜콜히 국민 여러분께 설명드릴 수도 없으니, 꼭 알아주었으면 하는 사실 위주로 설명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나 여기에서 소개되지 않은 많은 분들에게 오직 미안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적십자정신으로 뭉쳐 함께 인도주의 역사를 만들어온 동지들입니다. 언제나 고마움과 존경을 잊지 않고 있으며, 이런 아쉬움을 극복하고 부족한 저를 이해해줄 줄 아는 적십자의 가족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_235-236쪽,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중에서

목차

책을 내면서

1부. 인류애는 어디로 갔는가: 앙리 뒤낭의 생애와 적십자정신
제네바에서 싹튼 인류애의 씨앗
세계로 뻗어나가는 박애정신
솔페리노 전투의 전개과정
솔페리노의 포화 속으로
솔페리노의 회상
『솔페리노의 회상』의 내용 구성
5인위원회의 결집과 적십자의 탄생
제1차 제네바 회의(1863) 결의사항
육전에 있어서의 군대 부상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협약
영웅에서 나락으로, 망명자의 삶
적십자 표장과 오늘날의 적십자
도움의 손길
하이덴의 괴팍한 은둔자
다시 찾은 명예
뒤낭과 그의 시대

2부. 인류애는 우리 안에 있다: 앙리 뒤낭이 뿌린 씨앗과 대한적십자사
성자처럼 살고 개처럼 죽다
적십자와 나의 인연 그리고 인도주의
국제적십자위원회와 국제적십자사연맹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적십자정신과 그 역사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마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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