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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자유와 화합의 기적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38일간(1989.10.3.-11.9)의 기록

베른트 외팅하우스 외 저 | 김성원 역 | 국민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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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8125227 / 336쪽 150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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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동독인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독일 통일 이야기〉 이 책은 동독 평화혁명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목격했던 80명의 독일인들이 써내려간 것이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서독 외무장관 등 몇몇 서독인들의 이야기들이 있지만 대부분 동독 사람들이 쓴 것이다. 그들의 꿈과 절망, 그들의 용기와 진실을 통해 한 통제된 사회주의 국가가 어떻게 변화되어 갔고, 이것이 어떻게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독일 통일을 가져올 수 있었는지를 서독이 아닌 동독의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베를린 장벽은 저절로 무너지지 않았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 그 벽을 무너뜨렸다. 독일 통일에서 교회의 역할을 보여주는 귀한 책〉 기도와 평화시위를 촉발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이 있었던 동독에서는, 동독 교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당시 동독 시민사회와 교회의 움직임을 가장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귀중한 책이다. 베를린 장벽과 분단이라는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형제 교회’로 연결되어 있었던 서독과의 교류를 통해 깨어 있었던 동독교회는 작은 기도로 시작해 마침내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까지 담아내는, 말 그대로 시민의 교회, 동독의 교회로 평화혁명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통제된 사회주의 국가에서 그나마 성역처럼 남아 있던 교회의 이 같은 평화와 민주의식은 수많은 시민단체, 언론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당시 베를린장벽 붕괴는 동독인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여기에는 폴란드와 헝가리의 민주개혁 움직임과 소련의 개혁·개방이라는 외부 자극도 한몫했지만 베를린장벽을 넘어 이민을 떠나는 수많은 ‘탈 동독’ 행렬에도 불구하고 동독에 남아 동독을 바꾸고자 했던 이들의 용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공통된 고백은 “베를린 장벽은 저절로 무너진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용기와 행동이 그것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장벽 붕괴는 하나님이 개입한 영적 사건이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까지 38일간의 여정을 일자별로 따라가 보면 한 가지 뚜렷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바로 ‘독일 통일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낭만적인 영적 문구가 아니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史實)이다! 80여 명이 증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이 바로 이 사실이었다. 동독 사회주의통일당의 대변인격인 귄터 샤보브스키가 1989년 11월 9일 기자회견에서 “모든 동독민은 자기 여권을 가지고 서독으로 아무 제한 없이 갈 수 있다. 이제 베를린 장벽을 넘어가도 된다. 지체 없이. 지금 바로”라고 말실수를 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장벽으로 달려갔고,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독일 통일이라는 세기적인 사건은 전혀 주도면밀하게 계획던 것이 아니었고 어떻게 보면 말실수 하나가 촉발시킨 역사의 우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통일을 자신들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무언가 더 높은 차원의 섭리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여겼다. 그들에게 통일은 전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누구도 베를린장벽이 그렇게 무너지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하셨다! 독일 통일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디자인하시고 진행하신 일이었다. 수많은 독일인들이 하나님이 입안하신 계획을 성실히 수행했다. 동서독 정치인들도, 고르바초프도, 생명을 걸고 거리에 나선 무명의 사람들도 모두 통독이라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의 수행자들이었다. 〈독일 통일에서 한반도 통일을 배운다〉 『독일 통일, 자유와 화합의 기적』은 동독의 상황이 아니라 마치 한국인들이 현대사를 거치며 만들어 온 민주혁명의 과정을 보는 것 같다. 이 책은 남북 분단의 벽을 허무는 통일 과정에서도 결국 시민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한반도 평화의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통일 당시 독일의 환경과 요즘 한반도의 환경은 매우 다르다. 독일의 통일 방식이 한반도에 적합하지도, 적용되지도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독일과 한반도 간에 동일한 사실이 있다. 바로 ‘통일은 시민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과 ‘한반도 통일 역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한반도를 덮고 있는 온갖 부정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희망을 갖는 근거다. 분명, 한반도에도 ‘하나님의 개입’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독일 통일 과정에서 증명되었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평화를 심고, 하나 됨을 추구하는 용기 있는 남북한 시민들이 결국 한반도 통일을 이룰 것이다. 이것이 이 책에 등장하는 80여 명의 증언자들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내용이라 믿는다. 〈1989년 가을의 동독에서 독일통일을 지켜본 80여 명의 생생한 증언〉 “7만여 명의 군중들은 우리가 국민이다!를 외쳤다. 관리들은 평화 시위대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안절부절했다. 어떠한 분쟁도 없이 사람들의 거대한 물결이 도심으로 밀려들어 왔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출발한 그곳에 다시 돌아왔다. 모든 것이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창문 한 장 깨지지 않았다.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아무도 체면을 잃지 않았다. 그 누구도 생명을 잃지 않았다. 기적이었다.”(크리스티안 퓌러, 1989년 당시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교회 목사) “독일의 평화혁명은 말씀의 결과이자 실현이다. 이 말씀의 선포는 묶여 있던 우리의 신앙을 일깨워 주었다. 예언적인 말씀들은 상황을 직시하게 했고 이는 결국 학교의 학생들과 거리의 시민들로 하여금 행동으로 말하게 했다. 칼을 쳐서 보습으로(미 4:3)라는 성경 구절이 독재의 기운을 제압한 것이다.” (하랄드 브레트슈나이더, 1989년 지역 청년담당 목사) “동독 40년,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람들은 이제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거리의 촛불이 그것을 증명했다. 때는 무르익었다. 씨는 싹을 틔우고 있었다.”(한스죄르그 바이겔, 작센 주 지역총회 회원) 접기

저자 소개

  • 저자 : 베른트 외팅하우스 외
저자 : 베른트 외팅하우스 외 80여명
이 책은 독일 통일, 특히 1989년 베를린장벽이 기적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본 80여 명의 증언을 묶은 책이다. 크리스티안 퓌러 성 니콜라이교회 목사,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서독 외무장관, 요하힘 가우크 전 독일 대통령 등 유명인들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낯선 많은 무명의 사람들이 그날의 기억들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모두가 저자들이다.
책이 나오기까지 베른트 외팅하우스(Bernd Oettinghaus) 목사와 하랄드 브레트슈나이더(Harald Bretschneider) 목사, 프랑크 리히터(Frank Richter) 목사 등이 주된 역할을 했다. 그들은 책의 편집자 역할을 했고 여러 귀한 글들을 썼다. 특히 베른트 외팅하우스 목사는 한국어 번역본이 나오는데 크게 기여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는 그는 4명의 자녀와 5명의 손주를 둔 신학자이자 목회자다. 그의 어머니는 동독에서 살다 1957년에 자녀들과 함께 서독으로 이주했다. 대부분 친척들이 동독에 거주했기에 외팅하우스 목사는 친지 방문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자주 국경을 넘으며 엄혹한 동서독 분단의 현실을 경험했다. 크리스천이 된 이후 그는 독일 통일의 전 과정에서 기도의 힘이 작동됐음을 깨달았다. 외팅하우스 목사는 현재 ‘독일기도운동네트워크’ 대표로서 독일 전역을 다니며 하나님의 손길이야말로 미래 독일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역자 : 김성원
통일운동가이자 언론인. 대학 졸업 후 선교단체에서 10년을 보냈다. 학생 때부터 기자가 되기를 소망했으며 잠시 영국에서 공부한 이후 ‘국민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평생 소명이라 생각하던 통일 운동을 위해 2011년 통일문제 전문 인터넷 언론사인 ‘유코리아뉴스’를 창간했다. 지금은 평화통일연대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유코리아뉴스’ 편집장을 맡고 있다.

책 속에서

‘칼을 쳐서 보습으로’라는 구절은 평화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바람과 딱 맞아떨어졌다. 많은 이들이 책갈피에서 심벌만 잘라내 겉옷에 기워 입었다. 사람들 사이에 그 성경 구절이 퍼져나갔다. 점차 동독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구가 되었다. 젊은이들이 평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말씀인 ‘칼을 쳐서 보습으로’를 대화 가운데 인용하는 것 자체가 당시 동독 현실에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반대와 견제는 극심했다. 경찰은 계속 나를 감시했다. 그러나 미가 선지자의 외침은 동독 전역으로 확산됐다. 한 경찰의 말은 나로 하여금 두고두고 미소 짓게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미가라는 놈을 내 손으로 꼭 잡고 말 거야!”  하랄드 브레트슈나이더   (43~45쪽)


나에게는 분명해졌다. 40년이면 충분하다! 동독 건립 40주년을 기념하는 1989년에 새 일이 이뤄지리라. 이것은 우리 몇 사람들의 슬로건이 되었다. 역사를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는 ‘맹목적 우연’에만 의지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했다. 우리 조국은 두 번째 기회, 그리고 평화로운 이웃에 둘러싸인 삶을 선물로 받았다. 역사가들이 평가하듯 플라우엔은 이 평화혁명에서 한 발자국 앞서 있었다.  토마스 퀴틀러  (51~52쪽)


기도 운동은 겨자씨만큼이나 작게 시작되었다. 그것은 1980년 회개의 날에 ‘평화의 1분’으로 시작되었다. 12시 정각에 교회 종들이 일제히 울리면 1분간 기도하는 것이었다. 1982년의 ‘10가지 평화에 대한 묵상’에서 주간 평화를 위한 기도회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다. 매주 도심의 한 교회에서 월요일 5시에 기도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라이프치히에서 실현되었다.  크리스티안 퓌러   (70~72쪽)


라이프치히의 월요 시위에는 참석자 숫자가 다시 한번 두 배로 늘었다. 성 니콜라이교회와 다른 시내 교회 몇 곳에서 열린 월요기도회를 마치자 15만여 명의 사람들이 구도심으로 몰려들었다.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에서의 작전을 위해 6600명이 넘는 국가인민군대가 동원되었다. 그들은 모두 무기를 소지하되 자기방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위대에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언제든 사고가 일어날 개연성이 있었다. 모든 교회에서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모든 시민 그룹에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시위대에게 비폭력을 강조했다.   (122~123쪽)


동베를린엔 수만 명의 시위자들이 정부 청사를 향해 걷고 있었다. 시장 선거 출마자들의 리스트 공개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사람들이 읽어 내려갔다. 온 밤을 태울 촛불이 불을 밝혔다. 츠비카우에서는 1만 5000여 명이 모였고, 마그데부르크 1만여 명, 할레 1만여 명, 스트랄순트 4000여 명, 아이제나흐 3500여 명을 비롯해 20여 개의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모두가 사회주의통일당에 맞선 강렬한 시위였다. 비밀경찰은 이번 주에만 전국 154곳에서 시위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지금까지의 대화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조용하지 않았다.     (180~181쪽)


동독의 교회 신문들도 1980년대에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양의 신문을 발행하면서 사람들의 여론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대부분 한 번에 2만 부가 채 안 되게 발행된 이들 신문들은 동독에서 유일하게 허락받은 자체 독자를 가진 정기간행물들이었다. 이들 신문들은 매주 출간 때마다 특정한 글을 수정하거나 지우려는 언론통제와 싸워야 했다. 교회의 주간 잡지와 서독 특파원들이 없었다면, 새로운 동독을 위한 시위를 이끌었던 1989년 가을의 여러 활동들 상당수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스 위르겐 뢰더   (229~230쪽)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설치된 후 갈라진 하늘 아래서도 동서독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협력을 통해 특별한 교회 공동체를 지속했다. 동서독 교회의 교류에서 가장 의미가 큰 것은 양 진영의 크리스천들이 함께 모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각자의 체제하에서 어떻게 믿음을 삶에 투영하며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성경적 해답을 얻기 위해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이것이 동독 교회가 세계 교회의 흐름에서 고립화되거나 소외되지 않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들은 동독을 악마시하고, 서독을 신화화하는 것을 막았다.  하랄드 브레트슈나이더    (237~238쪽)


베를린장벽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았다. 우리가 그것을 무너뜨린 것이다! 1980년대 말, 동독에서 일어난 일은 단순히 세계의 동쪽 일부에서의 사건이 아니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 사건 이후 동독과 서독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전적으로 새로운 길을 가야 했다. 우리는 혁명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진짜 혁명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뭔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스테펜 라이헤     (243~245쪽)

목차

서문
추천사

1989년 10월 3일_자유를 위해
1989년 10월 4일_혼돈의 기차역
1989년 10월 5일_희망이 우리를 견디게 했다
1989년 10월 6일_진실은 드러나야 한다
1989년 10월 7일_하나님의 때를 알다
1989년 10월 8일_폭력에 맞서 토론을 벌이다
1989년 10월 9일_기도하라 그리고 정의로운 일을 실행하라
1989년 10월 10일_두려움과 돌보심
1989년 10월 11일_변화는 참여로부터 시작된다
1989년 10월 12일_비방 대신 토론
1989년 10월 13일_시작할 것인가 기다릴 것인가
1989년 10월 14일_탈출이냐 잔류냐
1989년 10월 15일_자유롭게 생각하고 공개적으로 말하라
1989년 10월 16일_늘어난 시위대와 비폭력
1989년 10월 17일_무장해제와 동원해제
1989년 10월 18일_호네커의 퇴장
1989년 10월 19일_가치 하락과 가치 상승
1989년 10월 20일_인내와 저항
1989년 10월 21일_죄를 드러내고 용서와 씨름하다
1989년 10월 22일_문화계 인사들의 용기
1989년 10월 23일_연대냐 조작이냐
1989년 10월 24일_시류 편승이냐 시류 역행이냐
1989년 10월 25일_지금 바로 민주주의를
1989년 10월 26일_대화가 시작되었다
1989년 10월 27일_자유의 날이 도래했다
1989년 10월 28일_진리와 함께 고난을
1989년 10월 29일_저항운동의 재평가
1989년 10월 30일_정직이냐 거짓이냐
1989년 10월 31일_화해와 겸손
1989년 11월 1일_고르바초프와 에곤 크렌츠
1989년 11월 2일_몰락이냐 지원이냐
1989년 11월 3일_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
1989년 11월 4일_희망을 품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다
1989년 11월 5일_새 출발을 향한 진통
1989년 11월 6일_사회주의로부터의 해방
1989년 11월 7일_무기 없이 평화 세우기
1989년 11월 8일_조국에 남아주십시오
1989년 11월 9일_기적을 경험하다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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