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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의 시선 연대보다 강력한 느슨한 연결의 힘

김민섭 저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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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나는 지방대 신간강사다'에서 대학의 민낯을 고발하고, '대리사회'에서 한국 사회의 천박한 욕망을 파헤친 처자가 '느슨한 연결'의 희망을 말한다! -MD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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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9065424 / 252쪽 14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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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정의롭지 못한 대학을 고발하다 한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대학생과 대학원생은 여러 공간에서 노동을 한다. 각 부처에서 ‘근로장학생’이나 ‘조교’라는 정체불명의 직함을 단 행정노동자로 존재한다. 그런데 노동하는 학생들에게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대신 등록금의 일부가 감면되거나 근로장학금 명목으로 돈이 지급된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사회적 안전망, 즉 최저시급?주휴수당?4대 보험?퇴직금 등 세상의 상식은 무시된다. 이것은 위법은 아닐지라도 편법이다. 법의 느슨한 지점을 이용해 그 경계를 넘나들며 벌이는 비열한 행위다. 모든 학생은 강의실에서는 학생이고 노동의 현장에서는 노동자다. 배움의 주체로서 학업에 필요한 아낌없는 지원을 받는 동시에 노동의 주체로서 온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대학은 이들을 학생으로도, 노동자로도 바로 설 수 없는 유령으로 만들고 있다. 시간강사법은 2011년 12월 국회를 통과하고서도 그 시행이 몇 차례에 걸쳐 유예되다가, 2019년 8월부터 시행되었다. 이것은 1년 이상 고용 보장, 건강보험 보장,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지급 등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담은 법이다. 그 취지는 좋으나, 결과적으로 시간강사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악법으로 전락했다. 전국 420개 대학·전문대학 가운데 약 20퍼센트인 76곳이 2018년보다 교원이 50명 이상 감소한 것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대학들은 시간강사들을 대학의 유령으로 만들어버렸다. 시간강사는 대학이라는 구조 안에서 절대적 약자이자 ‘법이 버린 존대’다. 한국의 대학들은 오랫동안 시간강사들을 구조적으로 착취해왔는데,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위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면서 안타까운 현실이다. 2018년 2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대학원생노조)이 출범했다. 대한민국에 대학원생 제도가 생긴 이래 가장 상징적이고 급진적인 사건이다. 당사자들은 “우리는 학생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다”라고 선언하고, 대학 측과 단체교섭이 가능한 조직체를 만들었다. 몇 년 전부터 교수와 대학원생의 ‘갑을관계’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2015년 인분 교수 사건, 2017년 서울대 팔만대장경 스캔 노예 사건 등 대중의 공분을 산 여러 사건이 발생했다. 대학원생노조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당사자성에 있다. 현직 대학원생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만든 전국 단위의 조직이기에 당위성이나 진정성도 강력하다. 당사자가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지 않으면, 그를 둘러싼 문제들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생들의 삶을 변혁시킬 수 있는 거점으로 거듭날 것이다. 청년을 이해한다는 것 웹툰에는 오늘을 읽어내는 힘이 있다. 더불어 웹툰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직접 창작자이자 향유자로 나서고, 자신들이 바라보는 사회를 그대로 그려낸다. 웹툰은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적합한 읽을거리가 되었고, 한국 사회의 가장 젊은 감각과 실재를 촘촘히 드러낼 수밖에 없다. 웹툰은 젊은 세대들에게 하나의 ‘생활’로 자리 잡았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생활 텍스트’로 자연스럽게 곁에 두고 읽게 되었다. 2012년 <미생>이 그랬고, 2017년 <팀장님 만화>가 그랬다. <미생>도 <팀장님 만화>도 그 시대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동시대를 실시간으로 반영하거나 다가올 시대를 예비했다. 웹툰을 비롯한 서브컬처 장르들이 시대적으로 갖는 가장 큰 가치는 그것이 젊은 세대를 이해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 수많은 청년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취업이 잘 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취업을 포기하기에 연쇄적으로 연애, 결혼, 출산, 육아, 주택 등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88만원 세대’를 넘어서 무급 인턴마저 스펙이 되는 시대가 왔다. 누가 취업했다고 하면 인턴인지, 비정규직인지, 정규직인지 확인해야 한다. 취업을 앞둔 청년들의 간절함, 두려움, 조급함의 크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취준생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혹한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 어느 세대보다도 빨리 ‘꼰대’가 된다. 성장이 정체된 한국 사회에서 취업과 생존을 위한 가혹한 경쟁을 해온 지금의 청년세대는 거기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어떤 보상 심리를 간직하게 된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그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아재’와 ‘꼰대’가 될 사회적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다. 타인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들 개인의 분노는 글쓰기로 전이될 때 무척 큰 힘을 가진다. 고백이나 고발이라고 할 수 있는 글은 독자들에게 쉽게 분노를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그 파급력은 엄청나서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공론화에 이르지 못하고 개인의 분노에 머물게 된다면, 그 분노는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다. 그 대신 증오로 발전하고, 개인들에게 단절·폐쇄·고립 등의 근거를 제공하게 된다. 우리는 개인의 분노를 사회적 분노로 확장시키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 증오는 모든 자리를 폐허로 만든다. 모든 문제를 현상으로만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고 격리시킨다. 분노사회는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지만, 증오사회는 사회를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어느 공간에나 발화 권력을 가진 이들이 있다. 직위, 성별, 세대 등이 그것을 결정하기 마련이어서, ‘성실하게’ 살아온 한국 사회의 50대 남성들은 대개 대화의 지분을 조절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독점할 것인지, 적절히 분배할 것인지, 완전히 양보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대학의 강의실에서도, 가족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도, 평범한 술자리나 독서모임 같은 데서도 자주 벌어지는 모습이다. 어느 공간에서 ‘말’을 점유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욕구와 연결된다. 그들은 자기 서사를 강요하면서 타인들을 대리기사 같은 주변적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아재들은 자신의 권력에 대해 조금 더 검열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지금껏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온 세대는 별로 없다. 이제 아재들도 타인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타인의 말을 듣는 연습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2017년 8월 최영미 시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월세 계약이 만기되어 집을 비워야 할 처지가 되었고, 그래서 “방 하나를 1년간 사용하게 해주신다면 평생 홍보대사가 되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서교동의 아만티호텔에 보냈다. 그러면서 “그냥 호텔이 아니라 특급호텔이어야 한다. 수영장 있음 더 좋겠다. 아무 곳에서나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나”라는 내용을 덧붙이기도 했다. 최영미 시인은 가난하다. 그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고 다른 전업 작가들은 더욱 가난하다. 전업으로 글을 쓰는 시인과 소설가뿐만 아니라 번역가, 연구자, 저술가, 음악을 하는 이들도 미술을 하는 이들도 대개는 가난하다. 이름 없는 창작자들이나 젊은 연구자들의 생계는 가혹하다. 그들은 ‘가난을 강요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천주희 작가는 ‘느슨한 연대’를 주장했다. 평소에는 잘 알 수 없지만 어떤 일이 있어 잡아당기면 비로소 팽팽해지는, 느슨하지만 결국 연결되어 있는, 그래서 곧 만날 수 있는 그러한 관계가 있다. 그는 연구자뿐 아니라 모든 독립예술가가 4대 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국가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형태로든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자를 비롯한 독립 예술가들의 연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뿐만 아니라 비슷한 부류의 집단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우선은 기준을 만들고 합리적인 제도를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은 적어도 여기에 누군가가 있다는 외침이 될 것이다. 결국 인식과 제도의 문제다. 굳이 선행과 후행을 따지자면, 제도가 그 앞에 와야 할 것이다. 제도라는 것은 가장 위부터 아래까지 균등하게 닿아야 한다. 최영미 시인은 ‘아만티호텔’ 사건을 통해 우리시대 시인의 가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어쩌면 그는 ‘아만티호텔’이라는 신작시를 발표한 것이다. 그 시는 그가 혼자 쓴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자가 되고 나아가 저자가 된 평범한 우리가 함께 써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 모이면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 무엇과도 경쟁할 수 있겠다는 자존감, 그러한 감각들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나’에서 ‘너’로, ‘너’에서 ‘우리’로, 그러니까 개인에서 사회로 자연스럽게 물음표가 확장되는 것이다. 그에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만나게 된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함께 이 사회를 바꾸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무엇을 바꾸기 위한, 오늘 혁명을 하기 위한 투쟁이어서는 안 된다. 오늘만 광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의미를 부여하면, 자신의 광장에서 이미 N개의 촛불을 켜고 기다려온 사람들이 있음을 쉽게 잊게 된다. 청소년이, 여성이, 성소수자가, 장애인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리고 소외의 언어조차 부여받지 못한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저마다의 광장에 존재한다. 우리가 상상해야 할 ‘우리’는 아직도 너무나 많다. 연대는 그러한 이들을 기억하는 것,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한 느슨한 형태의 지속적인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김민섭
저자 : 김민섭
1983년 서울 홍대입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현대 소설을 연구하다가 ‘309동 1201호’라는 가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썼고, 그 이후 대학 바깥으로 나와서 ‘김민섭’이라는 본명으로 이 사회를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으로 규정한 『대리사회』를 썼다. 후속작인 『훈의 시대』는 한 시대의 개인들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언어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교수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어느 중간에 있는 경계인이었다. 저자는 그러한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에게 보이는 어느 균열이 있다고 믿는다. 그 시선을 유지하면서 작가이자 경계인으로서 개인과 사회와 시대에 대한 물음표를 독자들에게 건네려고 한다. 특히 가볍지만 무거운, 그러나 무겁지만 가벼운 김민섭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되고 싶어 한다. 지금은 망원동에서 글을 쓰고 책을 기획하거나 만들고 이런저런 노동을 하며 지낸다. 1인출판사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진격의 독학자들』(공저), 『고백, 손짓, 연결』, 『거짓말 상회』(공저),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공저), 『아무튼, 망원동』이 있고, 기획한 책으로 『회색인간』 등 김동식 소설집과 『저승에서 돌아온 남자』와 『무조건 모르는 척하세요』 등 ‘문화류씨 공포 괴담집’ 시리즈가 있고, 만든 책으로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와 『내 이름은 군대』가 있다.

책 속에서

대학원생 조교는 노동의 대가를 임금이 아닌 근로장학금으로 받는다. 그에 따라 ‘노동자’가 아닌 ‘학생’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모호해진다. 시간강사는 대개 한 대학에서 주 9시간 이상 강의하는 일이 드문데, 주 15시간 이하 근로자는 건강보험 등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받을 수 없는 ‘초단기 근로자’로 분류된다. 결국, 대학은 법을 잘 지키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법을 위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위법이 아닐지라도 ‘편법’이다. 법의 느슨한 지점을 이용해 그 경계를 넘나들며 벌이는 비열한 행위다. 그래서 나는 박준영 변호사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은 정의롭습니까?” 그것을 묻기에 더 적합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학과 교수와 조교」(본문 18~19쪽)

대학의 기업화는 적어도 ‘지성의 전당’,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학문의 가치를 지키는 가운데, 그 구성원들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대학은 자본을 유치하고 그 몸집을 불리는 데 주로 관심이 있고, 그 와중에 법의 눈치조차 제대로 보지 않는다. 대학에 “기업화라도 제대로 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의 대학은 시장의 논리와 교육의 논리 중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편취해 적용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합리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고, 정의롭다고는 더욱더 말할 수 없다. 「대학에 인권과 민주주의는 없다」(본문 54쪽)

버스기사인 허혁의 글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투박했다. 가끔은 이런 길로 가도 됩니까, 하고 승객인 내가 묻고 싶은 만큼 이상한 길로도 갔고,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직행버스를 추월하겠다는 듯 과속도 했다. 그러나 분명히 사람을 감동케 하는 힘이 있었다. 종종 시를 읊어 대서 사람을 눈물짓게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건너편 좌석에 나의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말을 걸어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곧 나에게 눈물겨운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앉았다. 허혁의 고백은 사실 자신의 공간에서 나사못처럼 살아가는 모두의 모습이고, 그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몸으로 쓰는 언어의 힘」(본문 100쪽)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 역시 조직 안에서 알게 모르게 대표적인 꼰대가 되기도 했다. 조교들을 관리하는 조교장이 되었을 때는 전임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후배들을 통제하고 감시했다. 내가 근무한 학과 사무실은 석사과정 합격통지서를 받은 예비 신입생들에게 방학 중 2개월이 넘는 기간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급 근무를 시키는 관례가 있었다. 학기 시작 후 일을 할 수 있게 인수인계를 한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후배 길들이기의 일환이었다. 그 어느 기업에서도 비숙련 노동자라는 이유로 무급 노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적어도 법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젊은 꼰대의 탄생」(본문 128쪽)

독자들에게 비난하고 혐오할 대상을 정해주고 필자가 나서서 온갖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무척 쉽다. 언론사는 그러한 글을 전략적으로 상단에 배치하고 자사의 SNS를 이용해 바이럴을 일으켜 노출한다. 여러 사람이 댓글을 달고, 공유를 하고, 속된 말로 열심히 ‘퍼다 나른’다. 내가 잘 읽지 않는 필자들의 글은 그렇게 사회적인 관심을 받는 일이 조금 더 많다. 그들은 분노해서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함께 분노하기를 요청한다. 그러나 그들의 글을 읽고 나면 분노보다는 다른 감정이 조금 더 커진다. 바로 ‘증오’와 ‘혐오’인데, 이것은 분노와 닮아 있지만 그 결이 다르고, 무엇보다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르다. 「분노의 글쓰기, 증오의 글쓰기」(본문 168쪽)

50대 한국 남성들, 그러니까 아재들의 자기 서사가 과도한 수준에 이르렀고 그들이 어느 자리에서든 입보다는 귀를 열어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대리운전을 하다 보면 그들은 ① 칭찬과 걱정으로 시작해, ② ‘노오력’으로 대변되는 자신에 대한 회고, ③ 노력하지 않는 후속 세대에 대한 비판, ④ 세태 규정, ⑤ 그에 따른 당부, ⑥ 가벼운 개그, ⑦ 행위에 대한 합리화로 마무리한다. 몇 가지 건너뛰는 이들도 있지만 대개는 이러한 유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글을 본 어느 50대 남성은 페이스북을 통해 “변소에 돌아다니니 똥냄새밖에 더 맡겠느냐”라는 문장을 남겼다. 특정 노동 행위에 대한 폄하가 도를 넘은 것이지만, 그 표현 자체에 반응하고 싶지는 않다. 「타인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들에게」(본문 185~186쪽)

우리는 광장보다는 ‘밀실’에 있다. 은밀하게 작동하는 생체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체와 언어, 나아가 사유(思惟)까지도 스스로 검열하고 통제해나간다. 광장은 그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주체의 몸에 균열을 내는 공간이다. 광장을 경험하는 것은 그간 익숙해진 ‘순응하는 몸’에서 벗어나는 일이 된다. 2016년 겨울의 그 광장에서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광장을 경험했다. 그들의 몸에는 크고 작은 균열이 이미 시작되었다. 거기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싶다. 「그해 겨울, 우리는 광장에 있었다」(본문 244~245쪽)

목차

추천사 ㆍ 6
머리말 ㆍ 8

제1장 대학은 정의로운가? : 위법과 편법의 경계에서

대학과 교수와 조교 ㆍ 17
위법과 편법 | “총장과 이사장을 고발하고 싶습니다” | 조교라는 정체불명의 직함 | 을과 을의 싸움 | “왜 교수들은 침묵하는 겁니까?”

교수님들의 자화상 ㆍ 30
교수와 대학원생의 ‘갑을관계’ | 24시간 풀로 대기해야 하는 조교 | 교수님 대리운전 하는 노동자 | ‘괴물’이 된 대한민국의 교수들

대학에 인권과 민주주의는 없다 ㆍ 45
대학의 전횡에 맞선 싸움들 | 대학, 촛불을 들다 | 투기 자본과 대학의 ‘판돈’이 된 학생들 | “기업화라도 제대로 하라” | 법이 버린 존재, 시간강사

대학원생은 왜 노조를 설립했는가ㆍ ㆍ 59
대학원생은 학생이면서 노동자다 | 조명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한 대학원생 | 월 48만 원을 받는 ‘TA 제도’ |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는 절대적 약자 | 자신의 삶을 변혁시킬 수 있는 거점

사과하지 않는 선배들 ㆍ 74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 | “당신은 왜 여기에 있어요?” | “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합니다” |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 ‘추억’하지 않고 ‘기억’하기

염치를 아는 대학이 되기를 ㆍ 86

제2장 청년에게 말걸기 : 청년과 아재의 경계에서

몸으로 쓰는 언어의 힘 ㆍ 93
글은 스터디가 아니라 삶이다 | ‘공부 잘하는 놈’의 고백 | ‘그냥’ 버스기사의 고백 | 우리는 만나게 된다

오늘을 읽어내는 힘 ㆍ 105
주류를 지탱하는 무수한 비주류 | 생활 텍스트가 된 웹툰 | 동시대를 반영하거나, 미래를 예비하거나 | 고백은 손짓이다

젊은 꼰대의 탄생 ㆍ 119
‘취준생’을 마주한다는 것 | 정규직에 목숨 거는 신입사원 | “언제부터 꼰대가 되었습니까ㆍ” | 누구나 어제보다 꼰대가 된다 | 조직의 논리에 동화되는 괴물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ㆍ 133
어른이 된다는 건 너무나 피곤한 일 | 재능 기부라는 언어 권력 | “더치페이하는 게 편해요” | “제발 꼰대가 되어주세요”

광장과 월드컵 ㆍ 146
내가 겪은 한국 현대사 | 거리에서 응원을 한다니 | “제가 술을 한잔 사도 될까요ㆍ” | 500만 명이 모이다 | 몸에 새겨진 역사

살아보니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 ㆍ 161

제3장 연대하는 사회 : 느슨함과 긴밀함의 경계에서

분노의 글쓰기, 증오의 글쓰기 ㆍ 167
증오사회를 고찰하다 | 분노인가, 증오인가? | 숭고한 애도 | 증오는 모든 자리를 폐허로 만든다

타인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ㆍ 182
타인의 운전석에 앉는다는 것 | 발화 권력을 가진 존재들 | 젊은 대리기사를 찾는 손님들 | “연탄가스 마셔 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않겠다” | 타인의 말을 듣는 연습

작가는 왜 가난한가? ㆍ 199
최영미 시인은 가난하다 | 가난을 강요받는 삶 | 느슨한 연대 | 우리시대 시인의 가격

책을 둘러싼 모험 ㆍ 216
책은 ‘쓰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ㆍ | 초보 작가와 편집자 | 작가와 편집자,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까ㆍ | 독자는 작가의 삶의 궤적을 좇는다 | 사람들아, 책 좀 사라

그해 겨울, 우리는 광장에 있었다 ㆍ 236
100만 명의 나와 만나는 심정 | ‘산책’에 자괴감이 든 사람들 | 누군가에게는 이미 일상이 ‘식민지’다 | N개의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서다 | “우리, 여기에 있다”

참담한, 자본의 애도 ㆍ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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