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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 경제의 아버지

시리즈 : 살림지식총서 [723]

양의모 저 | 살림 | 201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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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2240736 / 138쪽 120 x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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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책 속으로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맞는 ‘새 부대’가 되어줄 지도자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확실한 신념과 목표를 갖되, 그것을 이루기 위해 끈기 있게 국민을 설득해갈 수 있는 인물이라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그러한 지도자들이 존재했음을 배웠고 따라서 우리에게도 그러한 지도자상이 강조된다 해도 비현실적인 꿈은 아니라고 믿는다._4쪽 일본과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854년 개항 이래 메이지유신과 전후의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선진국을 따라가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여겼던 일본은 이미 경제대국이 된 지금 목표를 잃고 내부적인 대립과 투쟁을 겪고 있다. 우리 역시 이러한 점에서 같은 입장이라는 사실은 이미 소개한 그대로다._6쪽 시부사와의 삶에서 기업의 창업과 경영은 가장 핵심적 활동이었다. 모든 그의 업적은 이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창업에 관여한 기업은 정확하지 않으나 500여 개 정도로 봐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시부사와의 능력과 인격만 아니라 근대화의 과업을 수행해야 할 절박한 시대 상황이 그런 엄청난 결과를 낳은 것이다._44쪽 시부사와의 창업 활동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합본주의·기반산업주의·공익우선주의·이식산업중심 등이 바로 그것이다. 기업 창업으로 자신의 이익보다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우선시한 시부사와로서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시부사와는 그토록 많은 기업을 창업했음에도 미쓰이 가문이나 이와사키(岩崎) 가문처럼 재벌을 형성하는 일은 없었고 그것이 도리어 시부사와에 대한 일본사회의 신뢰를 깊게 한 것이다._52쪽 시부사와가 이렇게까지 많은 회사에 관여하게 된 것은 그의 성격과도 관계가 깊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그의 자상함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회사나 개인의 곤란에 발 벗고 나서다보니 어느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 되었다. 시부사와는 실업계에서 은퇴한 후에도 어려움에 처한 회사의 요청에 다시 복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_57~58쪽 이익이 충돌하고 서로의 견해가 엇갈려 위기에 처했을 때, 회사가 합병 등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 자금이 부족하여 도산위기에 처할 때 시부사와는 구원투수가 되어 혼신을 다했다. 또한 임원으로서 대주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기업의 발전에 공헌했다._63쪽 시부사와에게 사회공헌은 기업창업과 경영활동과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진 업적이었다. 경제는 그에게 자신의 신념을 실현시키는 장이었다. 올바른 길을 가고자 했고 경제가 소임이라 여겨 정치 대신 경제를 선택했고 공익을 위하여 경제 활동을 펼쳐가는 가운데 사회공헌으로 확대되어간 것이다. 양자 간에 차이는 없고 다만 자신이 경제를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에 보다 큰 비중이 경제에 놓였을 뿐이다._71쪽 그가 행한 사회공헌은 바로 그러한 인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휴머니즘일 것이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기독교의 황금률은 『논어』의 ‘인’의 정신이기도 하다. 그것이 그에게는 고통이라기보다는 삶의 보람이요 즐거움이었을 것이다._79쪽 시부사와의 도덕경제론은 이러한 사태들에 대하여 훌륭한 처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되풀이 되었던 잘못이 오늘날에도 재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에 대한 도덕적인 원칙이 없고 도덕과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시부사와는 도덕 없는 경제의 위험성을 수없이 경고하고 있다._113쪽 그는 『논어』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세웠지만 결코 관념에 사로잡혀 현실에 대한 그릇된 시각을 갖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쌓았기에 큰 성공을 거둔 지도자였다. 이념과 현실, 도덕과 경제, 원칙과 포용을 조화롭게 실천한 시부사와의 리더십이야말로 억압에 의한 외형적인 것이 아닌 진정한 통합에 의한 협력과 공생의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_118쪽

저자 소개

  • 저자 : 양의모
저자 : 양의모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히토쓰바시대학교 대학원 경제학연구과에서 경제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단국대·광운대·평택대·선문대·안양성결대 등에서 일본경제·역사·사회·경영·언어 등을 주제로 강의를 했다. 2009년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소 연구원, 2014년 순천청암대학교 재일코리안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지금은 인천대학교에서 동북아 통상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일본 산업혁명기의 산업정책 고찰』 『일본은 왜 이상한 나라가 되었는가』 『일본의 역사-일본은 왜 사무라이의 나라가 되었는가?(근간)』 『행복하기 위해 사랑하지 말라』 등이 있다.

책 속에서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맞는 ‘새 부대’가 되어줄 지도자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확실한 신념과 목표를 갖되, 그것을 이루기 위해 끈기 있게 국민을 설득해갈 수 있는 인물이라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그러한 지도자들이 존재했음을 배웠고 따라서 우리에게도 그러한 지도자상이 강조된다 해도 비현실적인 꿈은 아니라고 믿는다._4쪽


일본과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854년 개항 이래 메이지유신과 전후의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선진국을 따라가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여겼던 일본은 이미 경제대국이 된 지금 목표를 잃고 내부적인 대립과 투쟁을 겪고 있다. 우리 역시 이러한 점에서 같은 입장이라는 사실은 이미 소개한 그대로다._6쪽


시부사와의 삶에서 기업의 창업과 경영은 가장 핵심적 활동이었다. 모든 그의 업적은 이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창업에 관여한 기업은 정확하지 않으나 500여 개 정도로 봐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시부사와의 능력과 인격만 아니라 근대화의 과업을 수행해야 할 절박한 시대 상황이 그런 엄청난 결과를 낳은 것이다._44쪽


시부사와의 창업 활동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합본주의·기반산업주의·공익우선주의·이식산업중심 등이 바로 그것이다. 기업 창업으로 자신의 이익보다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우선시한 시부사와로서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시부사와는 그토록 많은 기업을 창업했음에도 미쓰이 가문이나 이와사키(岩崎) 가문처럼 재벌을 형성하는 일은 없었고 그것이 도리어 시부사와에 대한 일본사회의 신뢰를 깊게 한 것이다._52쪽


시부사와가 이렇게까지 많은 회사에 관여하게 된 것은 그의 성격과도 관계가 깊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그의 자상함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회사나 개인의 곤란에 발 벗고 나서다보니 어느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 되었다. 시부사와는 실업계에서 은퇴한 후에도 어려움에 처한 회사의 요청에 다시 복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_57~58쪽


이익이 충돌하고 서로의 견해가 엇갈려 위기에 처했을 때, 회사가 합병 등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 자금이 부족하여 도산위기에 처할 때 시부사와는 구원투수가 되어 혼신을 다했다. 또한 임원으로서 대주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기업의 발전에 공헌했다._63쪽


시부사와에게 사회공헌은 기업창업과 경영활동과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진 업적이었다. 경제는 그에게 자신의 신념을 실현시키는 장이었다. 올바른 길을 가고자 했고 경제가 소임이라 여겨 정치 대신 경제를 선택했고 공익을 위하여 경제 활동을 펼쳐가는 가운데 사회공헌으로 확대되어간 것이다. 양자 간에 차이는 없고 다만 자신이 경제를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에 보다 큰 비중이 경제에 놓였을 뿐이다._71쪽


그가 행한 사회공헌은 바로 그러한 인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휴머니즘일 것이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기독교의 황금률은 『논어』의 ‘인’의 정신이기도 하다. 그것이 그에게는 고통이라기보다는 삶의 보람이요 즐거움이었을 것이다._79쪽


시부사와의 도덕경제론은 이러한 사태들에 대하여 훌륭한 처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되풀이 되었던 잘못이 오늘날에도 재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에 대한 도덕적인 원칙이 없고 도덕과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시부사와는 도덕 없는 경제의 위험성을 수없이 경고하고 있다._113쪽


그는 『논어』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세웠지만 결코 관념에 사로잡혀 현실에 대한 그릇된 시각을 갖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쌓았기에 큰 성공을 거둔 지도자였다. 이념과 현실, 도덕과 경제, 원칙과 포용을 조화롭게 실천한 시부사와의 리더십이야말로 억압에 의한 외형적인 것이 아닌 진정한 통합에 의한 협력과 공생의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_118쪽

목차

머리말·왜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만나야 하는가?

제 1장 시부사와의 생애: 태동기(1840~1863)

제 2장 시부사와의 생애: 성장기(1863~1868)

제3장 시부사와의 생애: 도약기(1869~1973)

제4장 시부사와의 생애: 전성기(1873~1916)

제5장 시부사와의 생애: 황혼기(1916~1931)

제6장 시부사와를 무대에 세운 시대 배경-한국과 비교해본 일본 근대화의 특징

맺음말·21세기 ‘대한민국의 길’ 시부사와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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