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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칼뱅의 생애와 사상 서구 문화 형성에 칼뱅이 미친 영향

알리스터 맥그래스 저 | 이은진 역 | 비아토르 | 201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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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8255443 / 536쪽 148 x 220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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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서구 문화와 유럽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비범한 인물,
장 칼뱅의 생애와 그가 남긴 문화적 유산!
- 역사적 서술과 신학적 해설을 훌륭하게 결합한 책!

칼뱅의 밀도 있는 삶과, 그를 둘러싼 종교적·사회적·문화적 쟁점들을 살펴보고, 서구 문화에 미친 흔적은 추적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역작. 이미 증명되었듯이, 칼뱅이 전개한 이론과 관점과 체계는 그의 역사적 위치와 개인적 특성이라는 한계를 초월하여 하나의 커다란 흐름과 운동을 만들어 내었고, 그것을 지탱하고 유지할 만한 힘을 갖추게 되었다. 칼뱅은 종교 사상가이자 신학자다. 그러나 칼뱅이 전개한 종교 사상의 독창성과 힘과 영향력을 고려하면, 그를 그냥 ‘종교 사상가’나 ‘신학자’라고 부를 수만은 없다. 그는 언어와 매체, 사상을 통달하는 비범한 능력, 조직과 사회 구조의 중요성을 꿰뚫는 통찰력, 당대의 종교적 필요와 가능성을 직감적으로 알아채는 능력을 바탕으로 종교 사상과 행동 사이에 동맹을 성취했다. 그리하여 그 시대로서는 기적과도 같았던 칼뱅주의를 탄생시켰다.

따라서 칼뱅을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현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현대 문화는 과거의 기억으로 계속 형성된다. 칼뱅은 제네바 어딘가 비석도 없는 무덤에 묻혔지만, 그의 사상과 영향력은 그가 창조에 이바지했던 서구 문화의 세계관 속에 살아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칼뱅의 삶과 영향력, 그의 신학과 정치사상, 그리고 유럽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과정을 새롭고 명쾌하게 탐구하는 한편 노동, 부, 시민권, 자본주의, 자연과학을 바라보는 현대 서구 문화의 관점에 칼뱅이 끼친 엄청난 영향을 자세히 추적한다.

출판사 리뷰

칼뱅은 어떻게 역사상 가장 강한 세력 가운데 하나를 만들어 냈는가? 16세기에 유럽에서 개혁주의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종교적으로 파문을 당한다는 의미였고, 공동체에서 배척당한다는 의미였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토록 위험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칼뱅은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하다 역사에 박제된 사상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서양 역사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지금 이 시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세력을 만들어 냈다. 칼뱅은 조국인 프랑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여러 도시를 떠돌다 정착한 제2의 고향 제네바에서도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다. 이 시대의 영향력 있는 신학자이자 복음주의 지성으로 손꼽히는 저자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아무런 정치적 기반이 없던 칼뱅이 어떻게 빠른 시간 내에 제네바 중산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의 사상에 매료된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의 주류가 되었는지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짚어 낸다.

저자 소개

  • 저자 : 알리스터 맥그래스
저자 : 알리스터 맥그래스
존 스토트, 제임스 패커의 뒤를 잇는 복음주의 기독교 진영의 대표 신학자. 옥스퍼드대학교 과학과 종교 '안드레아스 이드레오스' 석좌교수이자 과학과 종교를 위한 이안램지센터 책임자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자연과학, 지성사, 기독교신학 분야로 각각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과학과 기독교 신학의 상호작용에 관해 광범위하게 저술했다. 그는 그레셤 신학 교수이기도 한데, 이 자리는 당대의 주요 사안에 대한 신학의 공적 참여를 촉진하고자 1597년에 개설된 런던시의 공공 교수직이다.
맥그래스는 1953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철저하게 무신론을 견지하며 자연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사귄 그리스도인 친구들의 삶에 감화를 받아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진정한 기독교의 본질을 깨닫고 회심했다. C. S. 루이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으며 《C. S. 루이스》(복있는사람)를 집필하기도 했다. 다른 저서로는 《도킨스의 신》(SFC출판부), 《인간, 그레이트 미스터리》, 《신학이란 무엇인가》,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평생 가는 길》(이상 복있는사람),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삶을 위한 신학》, 《회의에서 확신으로》(이상 IVP), 《한 권으로 읽는 기독교》, 《십자가로 돌아가라》(이상 생명의말씀사), 《우주의 의미를 찾아서》(새물결플러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기독교 변증》,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이상 국제제자훈련원), 《하나님의 칭의론》(CLC), 《기독교의 역사》, 《에이딘 연대기》(이상 포이에마), 《도킨스의 망상》(살림) 등이 있다.

역자 : 이은진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에서 국제및공공정책학을 공부했다. 미국 워싱턴 D. C.에 있는 비정부기구 APPAAction for Peace by Prayer and Aid 인턴으로 일하며, 워싱턴 D. C. 시정부 아시아태평양 담당관실에서 번역 업무를 담당했다. 옮긴 책으로는 《나는 결심하지만 뇌는 비웃는다》 《아이아스 딜레마》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 《나르시시즘 다시 생각하기》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 《공감의 배신》 외 다수가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이은진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치학과 정책학을 공부했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 퇴사 후 번역가로 살고 있다. 주로 인문사회 분야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하며, 드문드문 기독교 책을 번역하기도 한다. 옮긴 책으로는 《그리스도처럼》, 《분별력》, 《반기문과의 대화》,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 《나르시시즘 다시 생각하기》,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 《공감의 배신》, 《책의 책》외 다수가 있다.

책 속에서

그러나 16세기만 해도 제네바는 서유럽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안정을 위협하고, 나중에는 북아메리카에 급진적으로 새로운 사회질서를 세우려 했던 국제 운동의 중심지였다. 그리하여 제네바는 종교적・정치적 전복의 아이콘이 되었다. 제네바에서 나온 사상 들은 기이하게도 수 세대에 걸쳐 유럽인을 매혹했고, 오늘날까지도 그 위력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다. 냉전시대에 사람들은 ‘모스크 바’라는 단어만 입에 올려도 사회, 정치, 경제 질서를 파괴하고 서구 문명을 궤멸시킬 것만 같은 섬뜩한 이미지를 자주 떠올렸다. 마찬가지로 16세기에 ‘제네바’를 생각하면, 유럽의 얼굴을 바꾸고 시대와 영토의 한계를 넘어 훨씬 오랫동안 훨씬 멀리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음모를 꾸미는 한 사람, 그리고 그가 주도하는 운동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사람이 바로 장 칼뱅이고, 그 운동은 당시 국제적으로 퍼져 나갔던 칼뱅주의다. _18쪽

그렇다면 칼뱅이 그토록 자신을 드러내길 꺼렸던 이유는 뭘까? 칼뱅의 복잡한 성격을 풀 열쇠는 칼뱅이 자신의 소명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은 드문 순간에, 칼뱅은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자신을 따로 구별해 놓으셨음을 굳게 확신하노라고 명확히 밝혔다. 칼뱅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다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았다.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을 인도하셨다고 믿었다. ‘내게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데도, 하나님은 나를 부르셨고 나의 인생행로를 바꾸셨으며 나를 제네바로 보내셨고 내게 사제와 복음 전도자라는 직무를 맡기셨다’라고 칼뱅은 생각했다. _47쪽

루터주의는 실제로 도시와 대학의 업무를 마비시켰고, 파리시에서 학식 있는 사람 중에 루터의 사상을 한 번도 접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일찍이 1519년에 파리 엘리트 지식인들 가운데 마르틴 루터의 저술을 적극적으로 찾아 읽는 독자층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사실이 동시대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의도는 선했으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선정적인 종교 가십으로 자주 왜곡되고 과장된 버전이 유통되었고, 심지어 진짜 루터의 사상보다 더 널리 퍼져 나갔다. _99쪽

칼뱅이 주해 대상으로 선택한 세네카의 이 논문은 에라스뮈스가 1515년에 편찬한 세네카 전집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에라스뮈스는 히에로니무스의 저술과 신약성경 편찬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네카의 저술을 편찬하는 작업에 충분한 시간과 관심을 기울일 수가 없었다.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에라스뮈스는 1529년 1월에 개정판을 출간했다. 칼뱅 이 관심을 가진 것은 이 개정판이었다. 아마도 책의 서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라스뮈스는 자신이 출간한 세네카 저술을 개선할 능력과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누구든 환영한다고 정중히 요청했다. 그것은 명백히 달성할 수 없는 과업에 도전하라는 초대였다. 칼뱅은 학계의 인정을 받을 목적으로 이 도전에 응했다. 그것은 칼뱅의 미숙함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다른 이들은 그것이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감히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_120-121쪽

언어 문제 때문에 바젤에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칼뱅은 스위스 북부에 위치한 이 도시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칼뱅의 망명지였던 바젤은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시할 수 있는 망루가 되었다. 칼뱅은 제네바라는 도시에서 벌어진 극적인 사건들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종교개혁가 피에르 비레가 독에 중독되었다는 소식, 복음주의자들이 공개 토론에서 가톨릭 논객을 손쉽게 꺾었다는 소식, 8월 10일에 200인회에서 가톨릭 미사를 폐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칼뱅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비참한 사건들에 관한 소식도 바젤에서 접했다. 1535년 2월 16일 자신의 친구인 에티엔 드 라 포르주가 산 채로 화형당했다는 소식도 그중 하나였다. _146-147쪽

16세기에 접어들 무렵, 제네바는 사부아라는 태양 주변을 도는 많은 소행성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이 몹시 못마땅하긴 했지 만, 제네바 주민들은 불만을 토로하는 데 신중했고 그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었다. 제네바 안에서는 사부아의 영향력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제네바 밖에서는 스위스연방의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_165쪽

칼뱅이 ‘나는 종교개혁을 완수할 책임을 안고 지금 의기양양하게 제네바에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칼뱅이 이런 착각에 빠져 있었다면(문서로 된 증거는 칼뱅이 그러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 착각은 몇 달 안에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제네바 교회의 구조를 개혁할 수 있도록 시의회가 칼뱅에게 충분한 재량권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밀월 기간은 비교적 짧았다. 자기들의 지배권을 지키거나 강화하려고 애쓰는 약삭빠른 시의회 때문에 칼뱅의 계획은 번번이 틀어지고 말았다. 1540년대 후반이 되자, 칼뱅에게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정치적 지위가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아미 페랭과 관련 된 당파라서 ‘페랭파’라고도 하는 ‘방종파’가 득세하자 시의회는 점점 더 칼뱅에게 냉담해졌다. 결과적으로 시의회는 항상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길 고대하는 역-미코버처럼 행동했다. _197-198쪽

칼뱅과 바디아누스는 ‘종교개혁’에 뒤따르는 일을 상당히 다르게 이해했다. 바디아누스가 생각하는 종교개혁은 주로 삶과 도덕 의 기준을 개혁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여러모로 이것은 특정 한 종교적 관심사 및 현안과 연계된 지역 차원의 개혁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칼뱅이 생각하는 종교개혁은 교회의 기존 조직과 관습과 교리에 도전하는, 훨씬 더 급진적인 개혁 프로그램이었다. 이 개혁 프로그램은 지역적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지리적, 문화적, 정 치적 차이를 뛰어넘었다. 1555년부터 프랑스에서 칼뱅주의가 빠르게 퍼져 나간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칼뱅주의에는 바디아누스가 이해하는 종교개혁의 목표에는 사실상 빠져 있는 선교사의 열정이 있었다. 종교개혁 과정의 본질을 다르게 이해하다 보니 두 사람이 맡은 역할도 상당히 달랐다. 바디아누스는 지역 상황을 변화시키는 데 주로 관심을 보였다. 칼뱅은 처음에는 프랑스 인들을, 나중에는 전 세계인을 청중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정치적 현실 때문에 제네바가 처한 특정 상황을 놓고 고심해야 했지만, 칼뱅의 시야는 그보다 훨씬 더 넓었다. 제네바에서 자신의 위치가 굳건해지자(1555년 4월), 칼뱅은 프랑스 왕국에 복음주의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은밀하게 시작했다. _229-230쪽

1559년판 《기독교 강요》가 성공한 원인은 구성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필리프 멜란히톤은 1521년에 《신학총론Loci Communes》을 출판하여 루터파 조직신학 작품의 최종 양식을 확립했다. 이 책 초판에서는 루터식 종교개혁과 관련이 깊은 여러 주제를 간략히 논의했다. 그러나 논박과 교육을 고려하여 분량을 차츰 늘릴 수밖에 없었다. 멜란히톤은 놀라울 정도로 부적절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 결했다. 단순하게 새로운 주제를 추가한 것이다. 통일성을 갖추었던 체계가 그 때문에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주제를 이런 식으로 다루면 흐름이 어색해지고 구성이 무너지게 마련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16세기 후반과 17세기의 신학 논쟁에 필요했던 체계적 분석이 불가능했다. 반면에 칼뱅이 1559년판에 확립한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구성은 그의 세대뿐 아니라 최소 이후 한 세기의 필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했다. 루터주의는 멜란히톤이 잘못 내디딘 첫걸음을 제대로 만회하지 못했다. 개혁 전통의 신학자들이 프로테스탄티즘을 지성으로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칼뱅의 《기독교 강요》 최종판의 내용과 구성 덕분이다. _251-252쪽

목차

머리말 ― 009
1. 서론 ― 017
개혁에 대한 압력
수수께끼의 기원
2. 파리: 지성의 형성 ― 051
불확실한 파리 학창 시절
콜레주 드 몽테귀
파리에서의 학업 과정
파리대학교의 사조
루터주의에 대한 편견
3. 방황의 시기: 오를레앙, 그리고 인문주의와의 만남 ― 105
인문주의의 본질
프랑스의 법률적 인문주의
세네카 주석
1533년의 파리
만성절 연설
4. 인문주의자에서 종교개혁가로: 회심 ― 135
5. 제네바: 제1기 ― 151
도시 현상으로서의 종교개혁
칼뱅 이전의 제네바
제네바에 온 칼뱅
스트라스부르 망명 생활, 1538-1541
다시 제네바로
6. 제네바: 세력 강화 ― 195
칼뱅과 제네바 정부
치리회
세르베투스 사건
1555년의 혁명
칼뱅이 성공한 이유
7. 칼뱅이 말하는 기독교: 수단 ― 235
설득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
칼뱅과 프랑스어
《기독교 강요》


8. 칼뱅이 말하는 기독교: 메시지 ― 259
《기독교 강요》의 핵심 주제
사상의 구조
1599년판 《기독교 강요》: 개요
9. 사상의 침입: 칼뱅과 프랑스 ― 305
프랑스에 대한 영향력 증대
제네바에서 온 사람들
프랑스 칼뱅주의의 정치적 관점
프랑스 칼뱅주의의 사회적 배경
10. 운동의 시작 ― 335
사방으로 뻗어 가는 칼뱅의 영향력
칼뱅에서 칼뱅주의로
종교 체계
11. 세상에 대한 헌신: 칼뱅주의, 노동, 자본주의 ― 375
베버 테제
제네바의 초기 자본주의
칼뱅주의와 자본주의: 프랑스 사례
칼뱅주의 노동관과 자본주의

12. 칼뱅과 현대 서구 문화의 형성 ― 417
종교 차원에서 인정해 준 경제적 행동주의
칼뱅과 자연과학
미국의 시민 종교 현상
칼뱅주의와 천부인권
부록 1: 신학 및 역사 용어 사전
부록 2: 본서에서 언급한 칼뱅의 작품
약어표
주(註)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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