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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5871964 / 260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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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전쟁사가들의 전쟁사가, 찰스 오만
중세 유럽 천 년에 걸친 전쟁의 흐름을 읽다
일찍이 움베르토 에코가 예언했던 것처럼, 중세는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미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재발견의 대상으로서의 중세는 서브컬처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됐으며, 사회학적으로는 점점 신봉건주의화되는 현대 문명을 경고하는 지표로도 논의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한 바탕에는 거듭되는 고고학적 발견과 전문 지식의 발전으로 보완되는 중세의 세부 영역들의 구체화 경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찰스 윌리엄 채드윅 오만, 줄여서 찰스 오만 경은 그 중세 유럽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뤘던 가장 선구적인 전문가들 중 한 명으로, 특히 중세 유럽 전쟁사에 관하여 지금도 레퍼런스로 활용되는 책들을 만든 최고의 권위자입니다. 윈체스터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한 찰스 오만은 옥스퍼드 대학교 현대역사학과 교수, 왕립역사협회와 왕립화폐협회 및 왕립고고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또한 1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하였으며, 이러한 화려한 경력과 연구의 성과를 증명하듯 1920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전쟁사를 통해 보여지는 중세 유럽
압축된 문장들로 쓰여진 특별한 역사의 연대기
연대기 저자들이 남긴 단편적이고 왜곡된 이야기들로부터 중세 전쟁을 재구성한 찰스 오만의 작업은 선구적인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기민한 분석과 극적인 서사가 매력적으로 혼합된 작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스타일은 본서 『중세의 전쟁 378~1515』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는 이 책에서 로마 제국이 분열되기 시작한 378년부터 르네상스 직전인 1515년까지의 시간 동안 일어난 중세 유럽의 중요한 전쟁들을 고찰함으로써 큰 틀에서 중세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봅니다.
이 책에서 찰스 오만은 우선 로마 제국의 분열이 중세 유럽 역사에 미친 심대한 영향력에 주목합니다. 이어서 무기와 전술·전략 변화에 관한 자료적 증거들을 바탕 삼아 가끔씩 거의 조너선 스위프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어조로 유럽 전쟁의 변화상을 큼직큼직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오롯이 전쟁 자체가 가진 역사의 흐름에 맞춘 그의 관점은 일반적인 역사서와는 다소 색다른 지점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이기에 간파할 수 있는 진실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나오는 오류들을 지적하고 현제(賢帝) 레온이 쓴 책 『탁티카』에 기반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군사 시스템을 분석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그간 과소평가됐던 세계사 안에서의 제국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복권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밀 병기로 이름 높은 비잔티움의 ‘그리스의 불’을 단칼에 가치 절하합니다. 왜냐하면 제국이 구축한 군사 시스템의 정교함과 비교하면 그리스의 불 같은 특수한 병기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중세의 재발견을 이끄는 새로운 관점
우리가 몰랐던 중세의 전쟁을 만나다
이러한 찰스 오만의 결론들은 여러 모로 논의되고 숙고될 화두들을 던져 줍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통찰력이 고고학적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한 근간의 중세사 연구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며, 이것이야말로 전쟁사가들로 하여금 찰스 오만의 책을 읽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찰스 오만이 여기서 보여준 내용들은 상당수가 사료적 근거와 함께 역사적 정설이 되어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책이 가지는 공인된 클래식으로서의 입지를 증명하는 부분이지만, 동시에 중세의 재발견과 함께 계속 논의되어야 할 지점들이 여전히 보인다는 점에서 현재성 또한 갖고 있습니다. 『중세의 전쟁 378~1515』는 중세 유럽의 또 다른 창을 열어 보임으로써 그 안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만드는 독서 경험이 될 것입니다.
P. 20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기의 프랑크족, 부르쿤트족, 그리고 알레만니족과 같은 게르만인들은 더 이상 1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투구나 갑옷도 없이 나뭇가지로 만든 약한 방패와 오직 창 한 자루에 의존해 전쟁을 하며’ 궁지에 몰린 상태로 전선에서 싸우던 반쪽짜리 군대가 아니었다. 게르만 군대는 이제 철로 감싼 둥근 방패, 창, 스크라마삭스, 스파타, 프랑키스카로 무장했다. 게르만 병사가 이런 무기들을 휘두르거나 던지면 로마군의 갑옷을 찢거나 관통시킬 수 있었다. 백병전에서 사용되는 이 무기들은 로마군이 오래 전부터 사용했던 투창을 능가했다. 따라서 로마 제국의 보병대가 게르만족을 무찌르기란 이제 쉬운 일이 아니었다.
P. 51 잉글랜드는 게르만의 옛 전쟁 관습을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더 오랫동안 유지했다. 머시아와 웨식스가 다투고 있을 때, 급히 성장한 여러 지역의 세력들은 각각의 고위 관리와 지방 행정관 들을 필두로 하여 각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전쟁은 이러한 군대들의 임시적인 특성에 따라 돌발적이고 지속성 없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군대 조직이 너무나 허약했기 때문에 꾸준하고 점진적인 점령 전략의 전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따라서 많은 왕국들의 난투는 비록 격렬하고 끊임없이 일어나기는 했는데 이렇다 할 결과까지는 낼 수가 없었다. 9세기가 되자 웨식스를 중심으로 잉글랜드가 점차적으로 통일되려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것은 웨식스가 군사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왕실의 패망과 불운한 내부 사정 때문이었다.
P. 81 10세기 무렵 비잔티움 제국의 군대는 완벽에 가까웠고, 니키포로스 2세 포카스 황제가 효율성 면에서 보증하는 노련한 병사들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의 특기할 만한 특징은 병사들을 언제나 2열로 세우고, 예비 병력을 모아 측면에 따로 떼어 배치해서 전황이 바뀌는 일을 방지하려 한 점이다. 대열에 깊숙이 침투한 적은 난전의 와중에서 첫째 줄과 둘째 줄, 그리고 예비 병력이 가하는 세 번의 연속적인 공격을 당해내지 못했다. 비잔티움 사람들은 현재의 군사 과학이 성취했다고 자랑하는 위대한 수칙을 이미 발견했다. 바로 ‘기병전에서는 최후의 예비 병력을 가지고 있는 쪽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이다.
P. 108~109 용맹함이 기술과 경험보다 앞설 때, 전술과 전략은 모두 사라진다. 봉건 기사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특유의 오만과 무지가 개입하곤 했다. 시기와 장소는 달랐을지 모르지만 전투에서 벌어진 일들은 모두 똑같았다. 알 만수라 전투는 알주바로타 전투와 같다. 니코폴리스 전투는 쿠르트레 전투와 같다. 일단 서유럽 기사들은 시야에 적군이 들어오면 자신의 돌격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쇠사슬 갑옷을 입은 이 무리는 방패는 제 위치에, 장창은 창받침에 놓고 박차로는 군마를 조종하며 앞에 무엇이 있든 상관없이 적을 향해 무작정 돌격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석벽에 충돌하거나 수로에 빠지고, 수렁에서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거나 말뚝 울타리 주변을 헛되이 맴돌다 군인으로서의 생명을 끝내곤 했다.
서문
Ⅰ 전쟁의 형태로 본 로마에서 중세로의 이행 378~582
Ⅱ 중세시대 초기 476~1081
Ⅲ 비잔티움 제국과 그 적들 582~1071
ⅰ 비잔티움 제국의 전략
ⅱ 비잔티움 군대의 무기, 조직, 그리고 전술
Ⅳ 봉건 기사의 패권 1066~1346
Ⅴ 스위스 1315~1515
ⅰ 특성, 무기, 그리고 조직
ⅱ 전술과 전략
ⅲ 스위스 군대의 맹위
ⅳ 스위스군이 몰락한 요인들
Ⅵ 잉글랜드와 그 적들 1272~1485
Ⅶ 결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