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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세계정치

하영선 저 | 한울아카데미 | 201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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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71889 / 528쪽 152 x 223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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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 저자 : 하영선
저자 : 하영선
국제정치 이론과 역사를 반세기 동안 연구해 온 한국의 대표적 국제정치학자다. 현재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이며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1980~2012)로 재직했고 미국 프린스턴대학 국제문제연구소와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의 초청연구원이었으며,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20년 동안 400편의 시론을 썼고, “하영선 칼럼”을 7년 동안 연재했다.
‘전파연구’, ‘한국 외교사’, ‘정보세계정치’, ‘동아시아연구원’의 연구 모임들을 이끌며 한국 국제정치학의 길을 개척해 왔다. 강의와 답사를 연계해서 ‘체험하는 외교사’라는 학습 모델을 개발하여 ‘서울대 교육상’을 수상하였으며, 서울대학교와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지난 15년 동안 동아시아질서 건축사와 한국의 생존전략을 젊은 세대들과 함께 공부하고 현장을 찾아보는 학술답사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 저서 및 편저로는 국제정치이론 분야에서 『사랑의 세계정치: 전쟁과 평화』(2019),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2017), 『복합 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2012), 『변환의 세계정치』(2012), 한국 외교사 분야에서 『사행의 국제정치: 16-19세기 조천·연행록 분석』(2016), 『역사 속의 젊은 그들: 18세기 북학파에서 21세기 복합파까지』(2011), 한국 외교정책 분야에서 『1972 한반도와 주변4강 2014』(2015),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복합과 공진』(2013), 『하영선 국제정치 칼럼 1991-2011』(2012), 『북한2032: 선진화로 가는 공진전략』(2010), 『한일신시대를 위한 제언: 공생을 위한 복합 네트워크의 구축』(2010), 한국개념사연구 분야에서 『한국 사회과학 개념사』(2018), 『냉전기 한국 사회과학 개념사』(2018), 『근대 한국의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 1/2』(2009/2012)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루소의 국제정치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개인과 전체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개별 국가도 살고 전체도 사는 답을 루소는 소국연합에서 찾아요. 국가연합이되 국가가 소국이어야 한다는 거죠. 하루 돌아다니면 누구네 집에 누가 아픈지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의 규모여야 서로에 대한 연민이 생겨서 어느 정도 나를 포기하고 일반의지로 가더라도 억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소국이 강조된 거예요. 그러나 소국에서 조국애가 커지면 커질수록, 일단 전쟁 상태에 이르면 상대와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되죠. 따라서 국제제도적으로도 개별 국가와 전체 국가가 함께 사는 합리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더불어, 개별 국가와 전체 국가가 정체성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사회계약론』에서 사회계약과 조국애가 필요했던 것처럼, 국제정치론에서도 국제사회계약과 인류애가 필요하죠. _ 40쪽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핵개발을 선택하는 순간 부딪히는 경제적·기술적·군사적 압박이에요. 북한도 지금 제재를 힘들게 견디고 있지만, 현재 한국 경제의 규모와 개방화 정도를 고려하면 한국은 북한보다 그 압박을 견디기가 훨씬 더 어려울 거예요. 한국은 현재 원자력 발전소를 24개 가동해서 국내 전력의 30~40%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세계 원자력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수출 경쟁을 시작한 원자력 선진국이에요. 그런데 한국의 원자력 발전은 국제 원자력 기술의 협력 속에서 가능해요.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려면 핵연료주기의 안정적 운영이 필수이고, 농축 우라늄이나 중수소는 군사적 이용을 하지 않는다는 엄격한 조건에서만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요. 따라서 폐쇄체제인 북한과 달리 개방체제인 한국은 현실적으로 국제 제재를 감당할 수가 없어요. _ 68쪽

클라우제비츠는 순수하게 폭력의 논리에 충실한 절대전쟁이 현실적으로는 정치적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한 거예요. 현실전쟁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기 때문에 폭력 논리로만 끝낼 수는 없어요. 실제 타자를 내 뜻대로 따르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폭력의 논리만 따라서 타자를 완전히 죽이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죠. 군사적으로는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하도록 만들기 위해 상대방을 살려야 하죠. _ 123쪽

1960년대 북한의 3대 혁명 역량 강화 전략은 1970년대 이후 전체 역량 강화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고,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어요. 그러나 최근의 《로동신문》을 보더라도 북한이 21세기 세계를 바라다보고 생존전략을 마련하는 데 3대 혁명 역량의 지평이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반면 한국은 북한의 3대 혁명 역량의 입체성과 비교할 때 국제, 분단, 국내의 삼중 지평으로 세계를 복합적으로 보고 있지 못해요. 한국 외교정책은 남북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 분단체제의 시야에 주로 몰두하고 있고, 중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체제와 남북한의 국내체제가 남북한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동시에 복합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부족해요. _ 138~139쪽

현재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남북한이 군사 균형을 이루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정태나 동태의 군사 균형이 아니에요. 전쟁을 최종 결정하는 것은 최전선에 있는 군 지휘관이 아니라, 서울과 평양의 최고 정책결정권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세력 균형관이 가장 중요하죠. 통치권자는 단순히 무기체계의 양과 질을 곱한 세력 균형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최종 결과가 일방적 승리냐, 아니면 팽팽하게 맞선 전쟁이냐, 또는 일방적 패배냐라는 어려운 판단을 내려야 해요. 결국 형세와 기세를 합한 총체적 판단이 필요한 거죠. 형세는 양국의 객관적 군사력의 모습이지만, 이런 형세를 보고 최종적으로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통치권자의 기세예요. 형세는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하지만, 기세를 읽는 것은 상대방의 머리와 가슴을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측정하기가 훨씬 어렵죠. _ 141쪽

남북한 관계가 적에서 친구로 바뀌기 위해서는 우선 양국이 평화협정을 지키는 상호 신뢰가 전제돼야 하지만, 남북한은 이런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기존 방안을 신뢰하고 있지 않아요. 따라서 유럽과 달리 한반도에서는 첫 단계로 ‘신뢰 구축 방안을 위한 신뢰 구축 방안’이 우선 필요해요. 상대방의 신뢰 구축 방안에 대한 상호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초보적인 단계는 남북한 당사자가 상설적으로 만나 정보를 완전하게 나눠서 상대방을 속일 수 없게 하는 거죠. 다음 단계로는 남북한이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정치적 신뢰 구축이 대단히 중요해요.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방의 정치·사회 체제에 대한 존중과 내정불간섭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져야 하죠. 이런 정치적 신뢰 구축 위에 다음 단계로 군사적 신뢰 구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어요. _ 151~152쪽

1945년 8월 15일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도 한반도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어요.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도 제대로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일본이 패전하는 사태를 맞게 돼요. 경성방송국이 한국어 방송을 제대로 시작한 것은 8월 15일이 아니고 9월 초예요. 해방은 됐지만, 일본인들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혼란스러운 분위기였죠. 미국도 정책 결정을 놓고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미소가 앞으로 협력할지, 아니면 갈등할지를 미국 행정부도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하고 국무부에 의견을 묻고 있었어요. 당시 국무부도 의견이 갈려서 조지 케넌의 비관론도 있었지만, 다수는 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이 냉전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는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일반 민중과 지식인들은 일본을 패망시킨 미국과 소련을 모두 전승국으로 받아들였죠. 전승국이 된 미국과 소련이 일본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고 남북한에 각각 진주했죠. 1945년 해방 직후 한반도의 좌우익 세력은 모두 친미·친소적인 분위기였어요. _ 177쪽

한국전쟁의 발발 과정에서, 미소 관계와 함께 중요한 것은 이승만과 김일성의 관계였어요. 1980년대의 한국 현대사 논쟁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누가 먼저 한국전쟁을 시작했느냐는 거죠. 당시 문헌을 찾아보면 이승만과 김일성은 둘 다 남북협상으로 통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어요. 김일성은 전쟁 통일을 실제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었고, 이승만은 위협용으로 북진론 이야기를 해요. 북진해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자는 거죠. 김구는 남북협상을 끝까지 시도했던 인물로, 협상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협상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운명이 국내보다도 국제 영향력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을 간파하고 미소 관계가 협력보다는 갈등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점을 비교적 빨리 판단한 세력들이 국내 정치권력을 장악해요. _ 187쪽

국제정치학은 장소의 국제정치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미국 혹은 한국의 국제정치학은 자기 나름의 문제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 한국 국제정치학의 문제의식이 “우리 겨레가 왜 이렇게도 취약한가”였다면, 미국 국제정치학의 과제는 “미국이 어떻게 하면 계속 잘살 수 있는가”가 되겠죠. 미국 국제정치학의 이런 목적론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다만 미국 국제정치학의 최대 과제는 미국이 21세기 세계질서의 중심국가로서 역할을 계속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19세기의 제국주의적 국제질서가 아닌 21세기의 공치주의적 세계질서를 함께 건축하는 거죠. 한편 한국 국제정치학의 우선 과제는 대국 주도의 세계질서에서 비대국으로서 생존, 번영하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에요. 따라서 같은 세계질서를 고민하더라도 삶터의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른 고민을 하게 되죠. _ 203~204쪽

미국 국제정치학은 북한 핵문제를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제재 및 억제의 논리나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6자회담 같은 협상의 논리로 풀어보려고 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어요. 북한은 객관적 국제정치 형세를 주관적으로 재구성하는 국제정치 심상이 달라요. 주인공이 외면세계를 어떻게 내면화하고 기세를 드러내는지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주인공이 외면으로 드러내는 언행을 통해 내면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야 해요. 구체적인 예를 들면, 북한 김정은 연기의 기본 원칙을 찾으려면 북한의 대표적 일차자료인 《로동신문》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로동신문》은 사실 전 세계 신문 중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신문이에요. 한국어를 아는 것만으로는 《로동신문》을 제대로 읽을 수 없어요. …… 한국 학생들은 북한어를 제대로 모르면서도 《로동신문》을 대강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죠. 하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보다도 더 못 읽을 수 있어요. _ 225~226쪽

1989년 국제정치이론을 가르칠 때까지 나는 현실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한 지평을 넓히기 위해 서양 해석학의 3원칙이나 동양의 이의역지(以意逆志) 원칙에 따른 지적 연애가 필요했어요. 첫째로, 상대방과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나를 떠나서 상대방의 내면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해요. 둘째로, 상대방의 언행 속에서 상대방을 제대로 찾을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상대방의 꿈, 삶, 앎, 함을 복합적으로 읽어야 하죠. 셋째로, 상대방 지평과의 제대로 된 만남을 통해 내 지평을 넓혀나가야 해요. _ 233쪽

일본의 주요 역사학자들과 경제대국 일본의 학술 지원을 받은 해외 학자들은 일본의 국내 역량이 상당히 축적돼 있어서 조선이나 중국과 달리 서양의 문명표준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요. 그러나 핵심적인 이유는 전통적 동아시아 천하질서에서 중국이 중심에 있었고, 청대의 조선은 스스로 소중화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이 문명의 표준을 자진해서 포기하고 새로운 문명표준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데 있어요. 일본은 스스로를 문명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일본을 문명의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실제로 일본은 천하질서의 주변국으로 상대적인 기득권이 중심국가보다 적었기 때문에 천하질서의 주변에서 국제질서의 주변으로 옮기는 일이 상대적으로 수월했죠. 물론 동아시아 삼국 간에 국내적인 여건의 편차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국제 역량과 위치에 따른 영향이 훨씬 중요하게 작용했어요. _ 290~291쪽

『서유견문』을 읽으면서 내가 특별히 주목했던 것은 14편의 ‘개화의 등급’이었어요. 유길준은 개화론자니까 서양 문물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이었을 것으로 얼핏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자는 ‘개화의 등급’에서 직설적 표현으로 자신의 문명관을 밝히고 있어요. 전통 없는 근대를 추구하는 ‘개화의 죄인’과 근대 없는 전통을 추구하는 ‘개화의 원수’, 전통의 긍정적 측면을 버리고 근대의 부정적 측면만 받아들인 ‘개화의 병신’이 동시에 존재하던 19세기 조선의 현실 속에서 유길준은 당면한 최대의 과제를 단순한 서양 문명의 소개가 아니라 전통과 근대의 갈등이 아닌 조화, 더 나아가 복합화라고 강조했어요. _ 308~309쪽

군사력이나 경제력 기준으로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인 한국의 젊은이들이 21세기의 시공적 상상력에서는 아태의 젊은 세대들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시공적 차원에서 동양의 과거에만 머물러서도 안 되고 맹목적으로 서양의 미래를 향해서 달려도 안 돼요. 서양의 탈근대로만 질주한다면 유길준이 ‘개화의 병신’이라고 비판하던 잘못을 범하게 될 거예요. 그렇다고 동양의 과거에만 머무르면 ‘개화의 죄인’이 되겠죠. 따라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동서고금의 삶을 복합적으로 품을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해요. _ 332쪽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다시는 지역질서를 마음대로 설계해서 미국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일본의 군대를 폐지하고 재벌을 해체하는 동시에 자위를 넘어서는 국제정치와 군사 문제를 독자적으로 다루지 못하도록 지적 통제를 가했어요. 그래서 일본의 국력에 상응하는 국제정치와 안보 전문가가 제대로 성장하기 어려웠죠. 인문사회 분야를 전공한 최우수 인력들이 학계보다는 기업, 관료, 언론계에 우선적으로 진출했어요. 따라서 일본은 미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국제정치 및 안보 분야에서 학계나 싱크탱크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새로운 질서를 건축해야 하는 세월이 오면 자체 설계력이 없는 소뇌나 무뇌 국가는 어쩔 수 없이 건축 설계를 주도하는 대뇌 국가에 기생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죠. 21세기 청사진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일본이 현재 겪고 있는 커다란 한계예요. _ 365쪽

일본의 대표 포털인 야후 재팬에서 일본의 꿈을 쳐보면 중국의 대표 포털인 바이두에서 중국몽을 쳐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별로 내용이 없어요. 상대적으로 현재에 만족해서 일본 사람들이 미래를 꾸미는 데 시간을 덜 쓴다고 할 수도 있죠. 그나마 작년 4월 29일 미국 상하 양원에서 했던 아베 총리의 연설이 21세기 일본의 꿈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즉, 국내적으로는 적극적인 평화를 모색하고, 국제적으로는 미일 관계를 ‘희망의 동맹’으로 만들겠다는 거예요. 조심할 것은 일본이 사용하는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은 기존의 평화 연구에서 사용하는 적극적 평화와는 전혀 다른 의미라는 거죠. _ 374쪽

20년 이상 거미줄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사라세노는 거미 전문가, 건축가, 설치기술자들과 3년 동안 협력해서 미술관 5층 위의 높은 유리 천장 밑에 거대한 쇠줄 그물망을 쳤어요. 관람객들은 이 그물망을 단순히 쳐다보는 게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개념사대회에 참석했던 10인이 한 조가 돼서 그물을 탔는데 네트워크에 관한 책을 수십 권 읽은 것보다 훨씬 실감났어요. 왜냐하면 네트워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거미가 돼야 하는데 실제 거미가 되긴 어렵잖아요. 그런데 우주복 같은 복장과 신발로 무장하고 40미터 상공의 거미줄을 걸어 다녀보니까 두 가지 느낌이 들었어요. 우선 열 명이 함께 거미줄을 타면서 흔드니까 혼자서는 균형을 잡기 어려워요. 네트워크 균형은 세력 균형보다 훨씬 복잡한 거예요. 그런데 내가 쉽게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흔들려서 완전히 공포에 질릴 것 같은데 생각보다는 40미터 공중에 있다는 불안감이 없었어요. 그물이 촘촘하게 짜여 있어서 줄이 아니라 마치 천 같은 평면 위를 걷는 느낌이었죠. 세력 균형이 흡사 외줄타기의 균형 잡기 같다면, 그물망 균형은 그네타기의 균형 잡기 같아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 체험은 네트워크를 생각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됐어요. _ 392~393쪽

스페인의 세계적 건축가 가우디는 1882년부터 1926년까지 40여 년 동안 대표작인 ‘성가족 성당’을 완성하는 데 모든 정성을 쏟았어요. 그가 전차에 치여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지 100주년인 2026년을 준공 목표로 하고 있는 성당의 건축사를 되돌아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국제정치의 미래사 연구에서 중요한 것이 과학보다는 미학이라는 거예요. 1880년대에 가우디가 깔던 성당의 초석을 보고 2026년에 완성될 아름다운 성당을 미리 그릴 수 있게 해준 것은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미학적 판단이에요.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질서 건축이 얼마나 바람직하게 완성될 수 있는가를 미리 알기 위해서는 단순한 자연과학적 시나리오 전망이 아니라 흡사 떡잎을 보고 거목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미리 판단할 수 있는 미학적 안목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_ 395~396쪽

상상력을 발휘해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할 공간은 아시아태평양이에요. 흔히 공간 활용의 고민을 남북통일에서 시작하지만, 21세기 삶터를 제대로 마련하는 데 최우선순위로 두기에 남북은 너무 좁아요. 세계 4대 강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포위돼 있는 통일 한국은 분단 한국보다는 분명히 낫지만, 여전히 답답한 운신을 해야 해요. 그동안 동아시아라고 불러왔던 우리 삶터를 아시아태평양으로 넓혀서 부를 필요가 있어요. 물론 이름이 자동적으로 현실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을 꾸미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죠. 동아시아의 원래 뜻은 아시아의 동쪽이잖아요. 중국에는 동, 서, 남, 북의 아시아가 있고, 그중에 한국이나 일본은 동아시아에 포함돼 있죠. 한국도 17세기 명청 교체기 이후 소중화라는 표현을 쓰면서 우리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본 적이 있어요. 21세기 한국은 서쪽의 미국과 동쪽의 중국을 함께 품고 북쪽의 러시아와 유럽 그리고 남쪽의 동남아, 인도, 호주를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 질서를 건축할 필요가 있어요. _ 397~398쪽

군사 무대에서는 힘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으므로 한국은 미중의 갈등을 심화시키지 않고 긴장을 완화시키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경제 무대에서는 경쟁과 협력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손익계산을 해서 공동 번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해 나가야 해요. 그리고 환경, 문화, 지식, 통치 같은 신흥 무대에서는 중견국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죠. _ 400쪽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제재, 억지, 관여, 자기개혁의 4중의 복합적 노력이 필요해요. 우선 핵무기 생산 비용의 극대화를 위해 국제 제재를 통한 지속적인 압박은 불가피하죠. 다음으로는 핵무기의 효용성을 무효화하기 위한 억지 능력의 강화가 필요해요. 방어가 상대방의 공격을 사후에 막는 것이라면, 억지는 상대방이 감당할 수 없는 보복의 위협으로 공격을 사전에 막는 거예요. 그다음으로 요구되는 것은 비핵화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관여로 진정성 있는 체제 보장과 지구적 경제 지원을 이끌어내는 것이죠. 마지막으로는 무엇보다도 비핵화를 결단하기 위한 북한의 정치적 자기개혁이 중요해요. 이런 4중적 노력이 관련 당사국들의 공조 속에 복합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_ 402쪽

복합화 시대에 적합한 연기는 자신의 삶을 위한 자기조직화를 끊임없이 하면서 타자와 공진하는 거예요. 이것을 내 언어로 표현하면 사랑이에요. 루소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결국 나도 살고 너도 살고 그래서 우리도 사는 가운데 싹트는 것이라고 믿었어요. 너를 위해 내가 사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루소적인 사랑은 나와 네가 한마음 한뜻으로 같이 살아서 우리 모두가 살아남는 거죠. 즉, 공생적인 관계가 이뤄지는 거예요. _ 407쪽

첫 강의를 사랑의 국제정치학에서 시작했지만, 이런 꿈이 현실화되는 것은 쉽지 않죠.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50년 동안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미움과 폭력의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데 썼어요. 왜냐하면 근대 국제정치 드라마의 개별 국가들은 국가 이익을 위해 치열한 힘의 각축을 벌이면서 나와 네가 우리가 되어 함께 사는 사랑의 국제정치보다는 생존의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는 미움과 폭력의 국제정치를 겪게 될 위험성이 더 크기 때문이었어요. 과거 의존적인 미움의 국제정치의 현실을 잊지 말아야겠지만, 미래 의존적인 사랑의 세계정치의 꿈을 버려서는 안 되죠. 현실은 나와 네가 배타적인 경쟁 속에서 살고 있지만, 미래에는 자기애와 연민을 결합해 나와 너를 포함하는 우리가 함께 사는 복합질서를 건축해야 해요. 그리고 이런 삶을 한반도, 아시아태평양, 그리고 지구 공간에서 펼쳐나가는 꿈을 한 학기 동안 여러분과 함께 꾸고 싶었던 거죠. _ 408~409쪽

동아시아는 유럽에 비해 뒤늦게 근대 국제체제의 청춘기를 맞이해서 협력보다는 갈등을 겪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근대적 정체성을 넘어선 복합적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해야죠. 당장 근대에서 복합으로 바로 갈 수는 없겠지만,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이 동시에 아태인이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가 중요해요. …… 그러려면 특히 한중일이 서로 싸우지 않은 역사적인 체험을 공유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각생의 미움의 역사만 강조하고 공생의 사랑의 역사에는 무관심해요. 그러나 새로운 지역 정체성 형성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21세기의 문명사적 변환에 뒤쳐질 거예요. 그런 면에서 유럽의 국가들은 21세기 복합문명의 새로운 표준으로서 유럽연합이라는 중요한 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죠. 유럽연합은 현재 동아시아보다 생산성은 단기적으로 떨어지지만, 복합성의 측면에서 보면 장기적인 선행지표로서 주목될 만해요. …… 현실적으로 50개국의 연방으로 구성된 미국이나 28개국의 유럽연합과 분단 한국이 각기 하나의 정치단위체로서 한 무대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죠. _ 487쪽

역사의 숙제는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군사국가, 경제국가, 국민국가라는 근대국가 건설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데 역사적으로 실패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밀린 어제의 숙제와 눈앞에 다가온 내일의 복합국가 건설이라는 탈근대 숙제를 동시에 할 수밖에 없어요. _ 495쪽

목차

강의를 시작하며
1강 사랑의 국제정치학
2강 세계질서와 한반도의 핵무기
3강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4강 한국 현대 외교정책론
5강 현대 국제정치이론
6강 복합세계정치학
7강 한국 외교사
8강 한국 근대 사회과학 개념사
9강 동아시아 질서 건축사
10강 꿈의 세계정치학
11강 토크콘서트
강의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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