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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9922619 / 164쪽 134 x 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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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피나 바우쉬 타계 10년, 그녀의 외투가 먼저 돌아와 있는 방에서 글과 그림으로 공명하는 두 예술가 예술가가 세상을 떠나도, 남아 있는 이들에 의해 다시 창조되는 예술의 무한함을 이 책은 돌아보게 한다. 적어도 예술가의 죽음은 그런 뜻에서 “더 이상 여기 없는 것이 아니라 없음으로 존재하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당신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요. 무용수의 발을 감싸 안아주는 신발일 수도, 텅 빈 공연장을 지키는 의자일 수도 있겠군요. 스스로 신이 되어 한 세계를 축조해가는 재미에 빠져 있을까요, 아니면 신이 만든 세계에 갇혀 불안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당신은 여전히 질문하는 사람이겠지요. 논리로 가닿을 수 없는 거리를 마음으로 성큼성큼 내딛으며 가고 있겠지요.” 그러므로 예술가에게 죽음은 “외투를 벗듯 몸을 벗고 한없이 가벼워지는 일”이다. 그리고 피나의 죽음은 “당신의 외투가 당신보다 먼저 돌아와 있다는 것만 빼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일이기도 하다.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위해 춤췄던 피나 바우쉬, 말해질 수 없는 것들에 단어를 건네는 시인 안희연, 말해질 수 없는 것들에 색을 입히는 일러스트레이터 윤예지는 그렇게 한자리에서 공명했다. 그 결과물이 피나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0년이 되는 2019년 6월 30일, 《당신은 나를 열어 바닥까지 휘젓고》라는 책으로 나왔다. 그리고 초여름의 축제처럼, 예술의 한계를 의심한 적 없는 독자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공명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피나가 열어 바닥까지 휘저은 시인의 마음 고독 속에서 빛을 더듬으며 쓴 절절한 연서 소설가 백수린은 이 책을 두고 “피나 바우쉬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자 불가해한 아름다움에게 바치는 젊은 시인의 절절한 연서”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이 책에는 피나를 수신자로 하는 편지 형식의 글이 중간중간 놓여 있다. 안희연은 편지를 통해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에 도사린 불안, 서울이라는 화려한 도시가 요청하는 고독, 예술가가 세상을 떠나도 작품은 그대로 남는다는 사실의 경이와 두려움을 고백한다. 이 편지들은 정중하되 솔직하고, 지극하되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 세상에 오가는 모든 다른 연서들처럼. 답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만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독자라면 동시에, 피나 바우쉬의 단호하고도 섬세한 답장이 함께 읽히는 듯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하나의 예술로 열려 바닥까지 휘저어진 마음이 무언지 이해하고, 나만의 ‘카페 뮐러’를 짓고 부수어본 독자라면 말이다.
P. 19 그러니까 나는 춤추는 법을 잊은 것이 아니라 춤을 발견하는 ‘눈’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 후론 눈을 뜨고 다니려고 노력했다. 놀랍게도 이젠 춤 아닌 것이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춤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 춤이다. 자주 가는 카페의 2층 창가, 책으로 빨려들어갈 듯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인의 어깨, 춤이다. 목줄에 묶인 개에게 질질 끌려가는 인간, 춤이다. 홀로 늦은 저녁을 해결하려고 만두를 포장해가는 남자의 검은 비닐봉지, 춤이다. 꽃다발을 들고 기둥 뒤에 숨어 연인을 기다리는 남자, 춤이다. 이삿짐 트럭이 떠나고 전봇대 아래 홀로 남겨진 커다란 곰돌이 인형, 춤, 춤, 춤이다!
P. 31 작다는 말의 커다람을 이렇게 또 배운다. 눈을 감고도 충분히 앞을 보고 있었을 <카페 뮐러>의 무용수들처럼 나 역시도 눈을 감아본다. 눈을 감고 아래를 보는 것과 눈을 감고 앞을 보는 것의 차이에 아직은 둔감하지만 조금씩 연습해보기로 한다. 시인으로서 내가 감각할 수 있는 세계는 아마도 이런 것일 테다. ‘새가 날아간다’라는 문장과 ‘새로 날아간다’라는 문장 사이의 어마어마한 차이를 감지하는 일. 한 줄의 문장이 곧 하나의 우주임을 끈질기게 보여주는 일. 그렇게 한 단어, 한 문장 성실하게 만나다 보면 언젠가는 어둠도 암흑이 아니라 빛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P. 48 당신의 작품에서 숱하게 볼 수 있는 ‘반복의 동작들’도 제겐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한 행동을 한 번만 한다면 그건 그다지 공포스럽지 않아요. 문제는 반복입니다. 우매한 실수의 반복, 만남과 이별의 반복, 봄여름가을겨울의 반복, 아침점심저녁의 반복, 도레미파솔라시도의 반복, 우로보로스처럼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월화수목금토일의 반복, 팽그르르 돌아가는 팽이들, 나선형의 계단에 영원히 갇혀버린 사람들…. “우리는 다시 끝나지 않는 식탁에 앉아 질문으로 가득한 책을 써 내려가야 하겠지”라는 문장을 적었을 때가 꼭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삶이 지속되는 한 언제고 되돌아와야 할 장소로서의 식탁. 그러므로 끝나지 않는 식탁. 이 얼마나 무서운 장소인가요.
P. 69 좋은 작품은 관객의 시간을 뺏는 작품이 아니라 관객에게 시간을 주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행복했던 과거의 한때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앞당겨 살게 하는 것이든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객석에 남아 불 꺼진 무대를 바라보게 하는 힘, 그것이 있어야 한다고요. <봄의 제전>이 제게 남긴 것은 그러한 시간이었습니다. 죽음과 희생 없이는 왜 어떤 봄도, 탄생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지를 질문하는 시간.
그리고 저의 어떤 시들은 바로 그곳에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와락 시작된다 나는 언제부터 춤추는 법을 잊어버렸을까 첫 번째 편지: 세상의 끝까지 5일 단순한 건 없어요, 모든 건 복잡하다고요 눈을 감고 아래를 보는 것과 눈을 감고 앞을 보는 것 어려운 마음을 알아보는 눈 당신의 ‘카페 뮐러’는 어디인가요? 두 번째 편지: 끝나지 않는 식탁 달 달 무슨 달 하마와 함께하는 애도 파티 봄의 얼굴을 만질 때 세 번째 편지: 온몸에 화살이 박힌 것처럼 동률 시 ― 동률 너무 많지만 언제나 부족한 이야기 이해의 영역 목적어 찾기 네 번째 편지: 달콤 쌉싸름한 나의 도시 사소한 사랑의 발견 다섯 번째 편지: 작아서 커다란 혼자 있어도 혼자 있고 싶은 시간 말이 되지 못한 고통은 춤이 된다 시차와 낙차 여섯 번째 편지: 당신은 그냥 피나 바우쉬예요 갈망의 이미지 시 ― 갈망 흰가면올빼미와 검은가면올빼미 사이에서 마음은 나의 경험치가 시의 경험치라는 말 희디흰 안녕 시 ― 파랑 일곱 번째 편지: 외투가 먼저 돌아와 있는 방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