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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에릭오르세나 저 | 이세욱 역 | 열린책들 | 201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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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915357 / 611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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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 저자 : 에릭오르세나
오르세나는 필명이고 본명은 에릭 아르누다. 철학과 경제학, 정치학과 인문 분야를 넘나드는 세계적 석학. 1947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과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런던 정경 대학에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제1대학과 고등사범학교에서 국제 금융과 개발 경제학을 강의했다. 1981년 국제협력부 고문을 맡아 사회당 정부와 인연을 맺었으며, 정확한 불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미테랑 대통령의 문화 보좌관 겸 연설문 초안 대필자로 이름을 날렸다. 최고행정재판소 심의관, 국립 고등조경학교 학장, 국제해양센터 원장 등을 지냈으며, 1998년 프랑스 학술원의 회원이다. 로제 니미에상을 수상한 '로잔에서 산 것과 같은 삶', 공쿠르상을 수상한 '식민지 전시회'를 비롯해, '로욜라의 블루스', '어떤 프랑스 희극', '큰 사랑', '아홉 대의 기타로 엮은 세계사', '오랫동안', '새들이 전해 준 소식', '문법은 감미로운 노래', '두 해 여름', '코튼로드' 등을 집필했다.

머리말

<역자 해설>

세월아 비켜라, 사랑의 기사가 나가신다!

에릭 오르세나를 만나는 기쁨
역자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를 처음으로 본 것은 15년쯤 전 프랑스의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였다. 아마 <테 우 카페(차 아니면 커피)>라는 방송이었을 것이다. 주말 아침에 작가나 예술가 한 사람을 초대해서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사회자가 그의 가족사를 화제에 올리자, 그는 자기가 쿠바인의 후손이며 할아버지에게서 살사 춤을 배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사회자의 권유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즉석에서 살사를 추어 보였다. 춤에 관해서 아는 바가 없는 역자로서는 그의 춤 실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주 선선하고 자연스럽고 생기로운 그의 태도가 매우 경이롭게 느껴졌다. 소설가가 문학적인 대담을 하다 말고 춤을 춘다는 사실보다 그 꾸밈없고 발랄한 모습이 마냥 신기했다. 역자가 아직 엄숙주의적인 시각으로 문학을 대하던 시절이라서 더욱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 뒤로 오르세나의 소설들을 읽어보니 그의 글은 텔레비전에서 본 첫인상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지적인 재담과 해학에 담긴 인생에 대한 열린 성찰, 사랑과 행복에 대한 유쾌한 예찬, 소설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분출하는 삶의 환희, 언어에 대한 섬세하고 지극한 사랑……. 역자는 프랑스 문학의 희귀한 보석을 발견했다고 느꼈고 그의 번역자가 되기를 꿈꾸었다.
공쿠르상 수상작 『식민지 박람회』에서 『큰 사랑』과 『두 해 여름』을 거쳐 이번 작품 『오래오래』에 이르기까지 오르세나의 소설 세계에는 격조 높은 해학이 빚어내는 밝은 기운이 가득하다. 오르세나는 수많은 주제들 사이로 나비처럼 사뿐사뿐 날아다니며 인생의 꿀을 품은 꽃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의 작품들은 뜻밖의 즐거움과 광채를 도처에 숨겨놓고 있다. 이토록 진지하고도 발랄한 문학 세계를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을까?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프랑스 작가들 중에서 오르세나는 분명 희귀한 존재다. 『오래오래』가 출간되었을 때, 프랑스의 비평가들은 다시 한 번 그 ‘희귀성’에 주목했다.

그는 살아가는 일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되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꽃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되 진부함에 빠지지 않는 보기 드문 프랑스 소설가이다. 언제나 연정을 품고 사는 이 남자, 없음으로 인한 피폐와 있음으로 인한 번민을 아주 멋지게 표현하는 그는 행복을 노래함으로써 우리에게 활력을 주는 작가다. (월간 『마가진 리테레르』 1998년 4월)

이 소설은 짓궂고 장난기가 많고 쾌활하다. 희귀한 문학적 환희의 산물, 다시 말하자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에 남다른 신명을 느끼는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인생의 도락과 찬란한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들, 시대의 분위기와 문화적인 배경을 암시하면서 사사로운 삶의 격정과 역사의 소용돌이를 결합하는 오르세나 특유의 해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르 몽드」 1998년 3월13일)

오르세나의 소설을 펼쳐드는 것은 바다에 풍덩 빠지듯 주인공을 따라 한바탕의 찬란한 꿈에 빠져드는 일, 검은 상자를 열고 생각지도 못한 보석의 광채를 발견하는 일,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사심 없는 예찬이 행복의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는 일, 평범한 일상이 기적으로 변하는 언어의 마술에 경탄하는 일, 한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소명임을 가슴에 사무치게 느껴보는 일이다. 나는 독자로서 그런 기쁨에 취한 나머지 『두 해 여름』을 번역했고, 그에 대한 애정을 점점 키워가던 끝에 그의 작품 가운데 내가 최고로 치는 『오래오래』까지 번역하고 말았다.

몇 겹의 삶, 그리고 그것의 문학적 승화
옛날 프랑스에 에릭 아르누라는 경제학도가 있었다. 철학을 공부하다가 정치학을 거쳐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꾼 그는 런던정경대학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경제학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오래 전부터 작가가 되기를 꿈꿔온 젊은이이기도 했다. 열세 살 나이에 <행복은 글쓰기에서 온다는 것을 직감하고>, 그때부터 매일같이 글을 써왔다. 자기 자신만을 독자로 삼은 11권의 습작 소설을 쓴 뒤에 그는 열두 번째 작품을 쇠유 출판사의 장 케롤에게 보여주었다. 시인이자 소설가이고 필립 솔레르스와 롤랑 바르트를 발굴한 안목 높은 편집자이기도 했던 장 케롤은 그 작품을 출간해 주기로 결정하고 나서 그에게 말했다. <당신도 알았으면 하는데 이건 아주 형편없는 작품이오. 그래도 중간에 당신이 작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페이지가 더러 있더군요.>(주간 『렉스프레스』 2000년 5월1일)


에릭 아르누는 자기 소설이 출간되리라는 사실을 논문 지도교수인 레몽 바르에게 알렸다. 몇 해 뒤에 프랑스 총리가 된 이 근엄한 지도교수는 제자가 진지하지 않은 경제학자로 비칠 것을 우려하면서 반드시 가명으로 소설을 발표하도록 권했다. 에릭 아르누는 자기가 좋아하던 쥘리앵 그라크의 걸작 소설 『시르트의 바닷가』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 오르세나를 필명으로 삼기로 하고 작가의 허락을 받았다. 그리하여 에릭 오르세나라는 작가가 세상에 태어났고 그의 첫 소설 『로욜라의 블루스』가 1974년에 출간되었다. 에릭 아르누의 나이 27세 때의 일이었다.
그렇게 작가가 되리라는 소년 시절의 꿈을 이뤘지만 그는 전업 작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대신 다른 직업을 갖기로 했다. 먹고살기 위해 글을 쓰기보다 <책들에게 필요한 시간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문학을 자유 지대로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이후로 그는 연구자, 교수, 정치가, 국제협력 전문가, 대학 행정가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다. 파리 1대학과 고등사범학교에서 국제금융과 개발경제학을 가르치다가 국제협력·개발부의 자문위원으로 행정부에 들어갔고 2년 뒤인 1983년에는 미테랑 대통령의 문화 보좌관이 되었다. 다시 2년 뒤에는 프랑스의 행정자문기구이자 최고 행정재판소인 <콩세이유 데타>의 심의관이 되었고 2000년에는 재판관으로 승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립 고등조경학교 학장과 국제 해양센터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대개의 경우엔 다방면에 걸친 이런 공직 생활이 글쓰기에 방해가 될 법하다. 그러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새벽에 두 시간씩 글을 쓰고, 나머지 22시간 동안의 삶은 자기 글의 소재와 자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에릭 오르세나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열정과 호기심의 화신인 그는 다른 직업들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그 경험과 깨달음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다. 그의 다양한 사회적 활동은 고스란히 창작으로 귀결된다. 고무를 비롯한 천연자원의 교역에 관한 연구와 국제협력·개발부와 외무부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은 『식민지 박람회』라는 소설의 가족 연대기에 녹아들었고, 대통령의 문화보좌관으로 엘리제궁에 살면서 연설문을 대필하고 국내외의 숱한 저명인사들을 만났던 경험은 『큰 사랑』이라는 소설의 바탕이 되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해마다 여름을 보냈던 브레아 섬의 추억과 청년 시절에 그곳에서 지식인들과 교류하고 아마추어 번역자로 활약했던 일은 『두 해 여름』이라는 유쾌한 소설로 거듭났다. 그런가 하면, 정원과 원예의 도시 베르사유에서 40년 가까이 살았던 것이며 국립 고등조경학교 학장을 지낸 경력이며 외무부에서 활동한 경험은 원예가 가브리엘과 외교관 엘리자베트의 전설적인 사랑 이야기 『오래오래』의 자양분이 되었다.
아무리 진기한 일들을 겪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아무리 멋진 곳들을 다녀보았다 해도 그 경험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재주가 없다면 훌륭한 문학이 생겨날 수 없다. 오르세나에게는 바로 그런 재주가 있다. 그는 이야기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주 재미있게 들려줄 줄 안다.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그런 취향과 재능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셨고 일상의 범사를 가지고도 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고 한다. 그런 능력에 지구적 스케일의 인생 경험이 더해져서 오르세나의 독특한 문학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내밀한 사생활과 시대의 큰 흐름을 절묘하게 결합한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자상하고도 시원시원하다. 그는 사랑 이야기를 해도 ‘큰물’에서 놀아본 사람답게 한다. 그것이 오르세나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다.

에릭 오르세나의 아바타 가브리엘, 현대판 돈키호테
바다와 항해를 좋아하는 에릭 오르세나는 자신의 문학 세계를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열도에 비유하기를 즐긴다. 세계 문학의 대양에서 아주 독특한 경관을 이루고 있는 오르세나 열도. 이 열도의 중심에는 『식민지 박람회』, 『큰 사랑』, 『오래오래』로 이루어진 가브리엘 섬이 있다. 이 세 소설은 3부작도 아니고 연작도 아니다. 스토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고 동일한 주제를 다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역자가 세 작품을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작가는 세 소설의 주인공에게 가브리엘 오르세나라는 똑같은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작품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물론 이름이 같다고 해서 세 소설의 주인공이 동일한 인물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시대적 배경, 가족사, 성장 과정, 직업 등이 다르니 동일한 인물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직업을 놓고 보자면, 『식민지 박람회』의 가브리엘은 영국 주재 브라질 대사관에서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 철학을 강의하다가 브라질의 천연고무와 인연을 맺은 덕에 타이어 전문기술자가 된 사람이고, 『큰 사랑』의 가브리엘은 중세의 기사도와 문법에 심취한 채 청년기를 보내고 자서전 대필 작가를 거쳐 대통령의 연설문 대필자가 된 인물이며, 『오래오래』의 가브리엘은 역마살이 낀 오르세나 가문의 내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식물의 침묵과 품격을 체화한 원예가이자 조경 전문가이다. 또한 가족사를 놓고 보더라도 『식민지 박람회』의 가브리엘은 멕시코에서 망명한 에스파냐 귀족 세뇨르 오르세나와 리옹 출신의 프랑스 처녀 마르그리트 사이에서 태어난 서적상 루이의 아들이고, 『오래오래』의 가브리엘은 쿠바인의 후손인 고무왕(王) 가브리엘 11세와 바스크 독립운동가 오찬다의 아들이다.
이렇듯 세 소설의 주인공은 서로 다른 가브리엘들이다. 『오래오래』에서 오르세나가 오마주를 바친 작가들 가운데 하나인 콜롬비아의 작가 알바로 무티스가 마크롤 가비에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일곱 편의 소설을 쓴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마크롤 가비에로와 달리 에릭 오르세나의 가브리엘들 사이에는 서로를 이어주는 분명한 끈들이 있다. 우선 자전적인 요소가 얼마간 반영된 작가의 분신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명시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식민지 박람회』의 가브리엘은 <슬픈 얼굴의 기사> 돈키호테처럼 얼굴이 수척하지 않은 것을 가장 가슴 아픈 일로 여기는 <통통한 얼굴의 기사>이다. 『큰 사랑』의 가브리엘은 20세기 중엽에 살고 있으면서도 중세의 기사도와 문법만을 인생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고, 프랑스 일주 사이클 경주 참가자들에게서 현대판 기사의 모습을 발견하자 말 대신 자전거를 타고 돈키호테 식의 여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가브리엘과 돈키호테의 상관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품은 단연 『오래오래』이다. 작가 오르세나와 생일(3월22일)이 같은 이 소설의 가브리엘은 돈키호테가 둘시네아 공주를 섬기듯 한 여인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한다. 그는 아버지의 여자 친구인 쌍둥이 자매 앤과 클라라에게서 여자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사랑의 기사로 거듭난다. 가브리엘의 연인 엘리자베트 역시 그에 못지않은 사랑의 기사이다. 두 남녀가 벌이는 사랑의 모험은 돈키호테의 모험보다 화려하고 행복하다. 여기에서는 두 사람 모두가 돈키호테이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오르세나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세 소설은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을 계속 교차시키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통해 세르반테스를 원조로 하는 서구 해학 문학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되살리고 있다. 이 점 역시 에릭 오르세나의 크나큰 매력이다.

여행, 바다, 언어
에릭 오르세나는 <작가란 자신이 품은 의문에 대해서 책으로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즐겨 말한다. 그는 경제학도 시절부터 선진국과 후진개발도상국 사이의 경제적 격차와 그에 따른 세계경제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천연자원의 생산과 유통에 관하여 남다른 호기심을 느꼈다. 그런 호기심은 장기간에 걸친 연구와 현장 답사로, 그리고 그 결과를 담은 책의 출간으로 이어졌다. 오르세나는 지금까지 8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세계를 탐사했고, 긴 여행을 마치고 나면 매번 그 성과를 알뜰하게 정리해 냄으로써 전문성과 문학성을 고루 갖춘 탁월한 여행 작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오늘날 그는 스스로를 에르제의 만화 주인공 <탱탱>에 곧잘 비유한다. 비록 나이는 60대이지만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갖가지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젊은 민완기자 <탱탱>을 닮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르세나는 목화를 둘러싼 몇 가지 의문을 풀기 위해 다섯 대륙 여섯 나라의 목화 생산지와 면직 산업 중심지를 탐방한 뒤에 그 결과를 『코트로드』라는 책에 담기도 했고, <지구에는 언제까지나 물이 충분할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중해 연안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5대양 6대륙을 2년에 걸쳐 두루 돌아보면서 물이며 지구의 생태계와 관련된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나서 『물의 미래』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에릭 오르세나를 논하면서 바다와 항해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어린 시절에 매년 여름방학을 브르타뉴의 브레아 섬에서 보냈다. 거기에서 여름나기를 하는 것은 파리 중산 가정이었던 오르세나 집안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그에게 브레아 섬은 <바다이자 항구이자 학교였으며 행복과 자유와 모험과 사색이 있는 만남의 장소였다>(월간 『리르』 1997년 6월). 그는 거기에서 아버지와 함께 보트나 요트를 타면서 항해하는 법을 배웠다. 남미의 최남단 혼 곶 주위를 요트로 항해하는 것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꿈이었다. 그는 50대에 들어서서 그 꿈을 실현했다. 2002년 11월부터 8개월 동안 <아프리카의 문들>이라는 단체의 주관으로 문학과 항해의 결합을 통해 아프리카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멋진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항해를 좋아하는 작가 12명이 함께 요트를 타고 가면서 아프리카의 주요 해양 관문들에 관해 교대로 글을 쓰는 프로젝트였다. 에릭 오르세나는 이 행사에 참여하여 케냐 남부의 항구도시 몸바사에 관한 단편소설을 썼다. 바다를 좋아하는 오르세나는 해류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학술적인 조사와 탐사 여행을 벌였다. 그 결과는 『멕시코 만류의 초상』이라는 기행문학으로 나타났다. 그는 항해와 대탐험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가 특히 주목했던 것은 아메리카 대륙 발견의 이면에 감춰진 역사였다. 그는 크리스토포로 콜롬보(콜럼버스)의 동생인 지도제작자 바르톨로메오 콜롬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역사소설 『인도를 향한 대모험』(2010)을 통해 그 이면사를 다뤘다. 오르세나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이 소설은 10년에 한 번 꼴로 나온 두 걸작, 즉 『식민지 박람회』(1988)와 『오래오래』(1998)의 뒤를 잇는 또 다른 걸작이다(에릭 오르세나의 웹사이트 에 실린 『인도를 향한 대모험』의 소개 글 중에서).


1998년에 오르세나는 프랑스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어,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난 해양학자 자크 이브 쿠스토의 17번 의자를 물려받았다. 그 뒤로 그는 특유의 재치와 이야기꾼의 능력을 발휘하여 프랑스 학술원에 부과된 본연의 임무, 즉 프랑스어에 규칙을 부여하고 프랑스어를 순화하여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일에 앞장선다. 문법과 구두법을 재미있게 가르치고 국어를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소설들(『문법은 아름다운 노래』, 『접속법의 기사들』, 『철자기호들의 반란』)을 잇달아 발표한 것이다. 이 <문법 소설>들은 오르세나가 이미 『두 해 여름』을 통해 보여준 언어에 대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두 해 여름』의 무대인 브레아 섬은 주민 모두가 나보코프 소설의 번역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언어가 풍요로운 섬이다. 소설의 말미에서 화자는 섬의 미래를 이렇게 상상한다. <사람들은 세계 공통어가 횡행하는 세상을 피해 우리 섬에 일종의 피정(避靜) 같은 것을 하러 올 것이다. 그리하여 거의 잊힌 옛날 언어로 전락해 버릴 우리말을 통해 인생의 몇몇 단면들을 새롭게 경험하게 되리라…… 삶과 언어의 미묘한 결을 새로이 볼 줄 알게 된 방문객들은 세계어의 단조로움에 꿋꿋이 맞설 수 있는 힘을 얻고 흡족한 마음으로 섬을 떠나게 될 것이다.>(『두 해 여름』, 열린책들, 188쪽) 오르세나는 강연이든 인터뷰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계 공통어에 밀려 다른 언어들이 죽어가는 현상에 우려를 표명해 왔다. 한 언어가 빈약해지거나 사라지는 것은 인류의 정신적 자산이 빈약해지고 단조로워지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문화부 장관보다 산책자
2007년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니콜라 사르코지는 새 내각을 구성하면서 에릭 오르세나에게 문화부 장관 자리를 제의했다. 오르세나는 그 제의를 거절했다.
이제 오르세나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행정 최고재판소의 재판관이라는 직함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건 명예직일 뿐이다. 오늘날 그는 누가 직업을 물으면 <작가이자 산책자>라고 답한다. 문화부 장관이 되기보다 산책자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그는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 영혼에서 머지않아 『오래오래』를 능가하는 대작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오래오래』, 세월의 침해를 이겨내는 원예가의 사랑법
프랑스 속담에 <사랑하면 세월 가고 세월 가면 사랑도 간다>는 말이 있다. 그렇듯 세월은 사랑의 가장 고약한 적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소설의 화자는 말한다. <사랑은 삶의 한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는 경험이 많아도 아무 쓸모가 없다. 경험이 도리어 방해가 될 수가 있다. 새로운 것에서 느끼는 감동, 그 아찔한 기분이 사랑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만날 때마다 세상의 첫날 아침을 맞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사랑이 이런 거라면 과연 어떤 연인들이 세월을 이겨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오르세나는 원예가 가브리엘과 <섬 같은 여자> 엘리자베트를 내세워 그런 패배주의적인 통설에 도전한다.
그들의 도전이 행복한 결말로 이어진다면, 그 성공의 주된 요인은 정원을 가꾸고 풍경을 창조하는 남자 가브리엘의 특별한 사랑법에 있다. 오르세나는 격조 높고 해학적인 문체로 그 사랑법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 나간다.

세계의 유명 정원들을 무대로 삼은 화려한 사랑 이야기
오르세나는 현실의 공간을 매혹적인 문학적 조차지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두 해 여름』을 번역할 때도 느낀 바이지만, 그처럼 공간을 소설의 다른 요소들과 잘 어울리게 활용하는 작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래오래』는 주인공이 원예가이자 조경 전문가인 만큼 정원을 주된 무대로 삼고 있다. 주인공 남녀는 여느 정원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들을 돌아다니며 사랑의 전설을 만들어 간다. 파리 식물원은 사랑이 시작되는 곳이고, 베르사유 정원은 결별의 고통과 재회의 환희가 교차하는 장소, 세비야의 알카사르 정원은 정염의 불꽃을 활활 태우는 환상적인 공간, 영국 작가 색빌웨스트 부부가 창조한 켄트 지방의 시싱허스트 정원은 식물의 품격과 침묵 앞에서 인간의 욕망이 충돌하는 장소, 벨기에의 여러 정원은 조화와 행복의 공간, 브뤼셀 근처의 어느 저택에 만들어진 일본식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은 골계미가 넘치는 섹스의 장이다. 그리고 소설의 첫머리와 대단원을 장식하는 베이징의 원명원은 사랑의 완성과 회상의 장소이다.
역자는 작가가 그려낸 공간들의 매력에 이끌려 두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그 정원들을 두루 찾아가 보았다. 단지 번역 작업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정원들에 대한 작가의 안목을 배우고 원예가의 사랑법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오르세나는 어린 시절부터 베르사유 정원을 자기 집 안마당처럼 드나들며 정원에 대한 안목을 키웠고, 5년 동안 베르사유에 있는 국립 고등조경학교 학장을 지내면서 최고 수준의 원예가들이며 조경 전문가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한때 철학을 공부하기도 했던 그는 추상적인 철학보다 정원에서 더 많은 배운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정원은 <눈에 보이는 철학>이며 시간과 자연과 행복에 관해서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원을 찾아가고 정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정원을 예찬한다(2009년 9월13일에 방송된 프랑스2 TV 대담 프로 <테 우 카페> 중에서). 역자는 작가가 특히 좋아하는 정원들을 거닐며 그가 도달해 있는 경지를 조금이라도 엿보고 싶었다. 다른 어느 때보다 유익하고 행복한 번역 여행이었다.
이제 작가가 소설을 시작하면서 했던 말로 이 해설을 끝맺고자 한다.
무릇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다 함은 마치 바다에 빠지듯 한바탕의 꿈에 빠지는 것…….
나 역시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한바탕의 꿈에 빠졌다.

목차

목차
파리 식물원
사랑의 돈키호테, 기사 서임을 준비하다
전설에 대한 욕구
차를 마시며 배우다.1
천문대
차를 마시며 배우다.2
프랑스의 지위
전화박스
차를 마시며 배우다.3
납치를 당할지도 모를 한 여?자으 ㅣ일기
시싱허스트
왜?
숱한 결별
차를 마시며 배우다.4
왕의 채원
사랑의 조계(租界)
걷기 예찬
차응 마시며 배우다.끝
원명원(圓明園)
에필로그
역자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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