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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8140824 / 412쪽 213 x 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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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포스터를 통해 보는 흥미로운 사실들 소비에트 체제가 제작한 최초의 포스터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부친인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가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제작한 포스터의 재판이었다. 〈전쟁의 희생자를 돕자〉라는 제목의 원작은 드로잉은 그대로 살리고 〈피의 대가〉라는 제목으로 1918년에 새롭게 발행되었다. 출판사 측은 파스테르나크에게 그의 모든 작품이 이제 국가에 귀속되며 대가없이 사용함은 물론 그의 허락 없이도 사용될 수 있다고 못박았다. 그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몽골의 현대사는 흥미롭다. 몽골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전쟁에서 북한을 지원했기 때문에 미국의 개입에 반대하는 내용의 포스터를 후원했다. 지나치게 큰 소총을 든 북한군은 칼로 아이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미군을 내리치려 한다거나 미국의 폭격에 파괴된 건물들을 묘사하거나, 김일성 국가주석을 영향력 있는 인물로 그리는 포스터들에서 당시 몽골의 국제관계를 읽을 수 있다. 1960년대 초반 무렵 몽골은 소련을 지원하기로 하고 중국의 노동자를 축출했고 중국의 경제적 원조를 거절했다. 프로파간다 전쟁은 몽골과 소련을 같은 편으로, 중국을 다른 편으로 놓았다.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뚱의 포스터에 대해서는 진품과 싸구려 (복)제품 모두에 대한 수집가 시장이 존재하기도 한다. 일상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포스터들 포스터를 통해 당시 공산주의 정책뿐만 아니라 생활상도 포착할 수 있다. 중국에서 1956년부터 시작된 ‘사해四害’ 추방 캠페인에 관한 포스터는 당시 중국 인민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해는 쥐, 파리, 모기, 제비를 말하는데, 모든 인민은 이 더러운 동물들, 특히 제비를 제거하는 데 동원되었다. 아이들과 성인들이 열성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결과 수백만 마리의 제비가 제거되었다. 그들은 제비를 겁주어 쫓아내기 위해 북을 두드렸고 새총을 쏘았으며, 제비를 잡고자 나무를 쓰러뜨렸다. 실제로 많은 이들은 더 많은 제비를 죽여 그에 뒤따르는 칭찬과 보상을 얻기 위해 제비를 기르기도 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이 캠페인을 위한 포스터는 실내용과 거리용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북한사회를 이해케 한 1.200장의 북한 포스터 정보제한으로 북한의 포스터를 연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으나 네덜란드 수집가 빌렘 반 데르 베일의 컬렉션을 통해 가능해졌다. 빌렘 반 데르 베일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의 우표거래상이다. 조선우표사와 수시로 허물없이 연락을 취해온 결과 1998년에는 북한으로부터 방문초청을 받게 되었고 그곳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 지국을 통해 이루어진 사업은 우편과 관련된 자료들과 북한미술을 수집하는 일이었다.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처음에는 손으로 그린 포스터를 구입했으나 인쇄된 포스터를 보자마자 심장이 멎는 듯했다. 어릴 적부터 우표를 모아왔던 그로서는 프린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포스터 프린트를 소개받고 자신이 독특한 무엇을 발견했음을 깨달은 그는 맹렬히 그 세계로 뛰어들었다. 2011년에 간첩활동 혐의로 체포될 때까지 그는 총 24회 평양을 오갔으며 친구가 보여준 포스터들을 사들였다. 그는 작은 전단들과 구하기 어려운 인쇄물들을 비롯하여 총 1.200장 이상의 포스터를 모았다. 이는 북한을 움직이는 동력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수십 년간 연속적으로 등장한 포스터들은 북한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통찰과 함께, 사회계약, 경제발전, 행동규범, 성역할 등의 다양한 주제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해준다. 포스터의 쇠퇴 1894년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포스터가 ‘거리를 커다란 신문처럼’ 수놓으면서 ‘프롤레타리아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요 수단들’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공산주의 국가에서 포스터는 설득, 지시, 악담, 사회적 담론을 위한 매체로 활용되어왔다. 20세기 전반에 걸쳐 포스터는 혁명의 순간과 공산주의국가의 통치를 함께 한 강력한 프로파간다의 수단이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포스터는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다수는 예술적 진정성과 개인적 신념에 충실했지만, 메시지나 양식에 있어 모방이나 정형화된 표현을 일삼거나 별 매력이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매체로서의 포스터는 TV와 인터넷, 디지털 아트의 그늘에 가려 빛을 잃기 시작했다. 포스터를 통해 본 국제관계 포스터를 보면 당시 국제관계를 읽을 수 있다. 청의 지배 당시 엄청난 착취를 당한 몽골은 공산화가 되자마자 소련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였고, 북한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유지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였다. 몽골은 북한을 지지했다. 일제 제국주의의 핍박을 받은 모든 아시아 국가들은 일제를 최대의 악, 혹은 적으로 묘사하였다. 이들 포스터는 일제가 아시아에서 행한 횡포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다시 한 번 알게 해 준다. ‘프로파간다는 생동한다. 그것은 우리 투쟁의 심장이다. 우리는 결코 프로파간다를 포기할 수 없다.’ - 피델 카스트로 ‘언론은 집단적인 선전 선동가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대중 조직가이다.’ - 블라디미르 레닌 ‘판화는 우리 당의 가장 예리하고 강력한 무기이다.’ - 이오시프 스탈린 ‘위대한 과업이나 혁명에 요구되는 것은 열정이다. 그것도 엄청난 양의 열정과 대담함이 요구된다.’ - 체 게바라 ‘모든 것은 개인의 사상에 의해 결정되며 이념적인 동기를 가진 한 개인이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 김일성 ‘오늘날 우리는 강철을 말하는 시를 써야한다. 그리고 시인은 어떻게 공격을 주도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 호치민 ‘실제로 예술을 위한 예술, 계급을 초월한 예술, 정치에서 분리된 또는 자율적인 예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예술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적 이상의 일부이다.’ - 마오쩌둥 ‘언론은 우리의 주요한 이념적 무기이다.’ - 니키타 흐루쇼프
한국어판을 위한 서문
들어가기
1. 러시아/소비에트 사회주의연방공화국, 1917-91
2. 몽골공화국, 1924-92
3. 동유럽, 1945-91
4. 중화인민공화국, 1949
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48
6.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1945
7. 쿠바공화국,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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