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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

장호철 저 | 인문서원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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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542569 / 432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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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부역문인들의 삶과 친일 행적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다 “《매일신보》에 창씨개명으로 히가시 후미히토(東文仁)가 된 소설가 김동인의 친일 논설 「반도 민중의 황민화」가 실린 1944년 1월 16일 새벽,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민족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가 숨졌다. 이튿날인 1월 17일,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 이광수는 ‘축 입영(入營)의 노보리(깃발)’와 ‘센닌바리(천인침)’를 찬양한 「학병 보내는 세기의 감격?입영기(入營旗)」라는 글을 《매일신보》에 발표하였다. 이틀 후인 1월 19일, 마쓰무라 고이치(松村紘一)가 된 시인 주요한이 《매일신보》에 「천인침(千人針)」을 발표하였다.”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게 독립과 해방을 위해 몸을 던진 민족시인의 삶과 친일문인들의 삶이 마치 별개의 경로로 전개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기실 이들의 삶과 문학은 이렇듯 동시대에 엇갈리고 있었다. 지난 시대의 역사지만 우리가 친일부역의 역사와 문학을 공부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은 어떻게 친일부역의 길로 들어섰는가? 일제 말기에 조선의 지식인들이 대일 협력에 대거 나서게 되는 계기는 대체로 만주사변(1931) 직후, 중일전쟁(1937) 직후, 태평양전쟁(1941) 개전 이후 등 세 단계로 나뉜다. 나름대로 국제 정세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던 조선 지식인들이 일제의 침략전쟁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세 사건 직후에 결정적으로 무너진 것이다. 이들은 일제가 선전한 ‘대동아공영권’ 또는 ‘아시아·태평양 체제’의 구축이 불가항력이라고 ‘오판’하였다. 이로써 보듯이 그들의 친일은 “그때 태어났다는 것, 그때 살았다는 것 자체가 친일이 될 수도 있”는 정황론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변절 이후 친일 문필 활동은 물론, ‘호국신사 어조영지 근로봉사’나 ‘군복 수리 근로’ 등에 동참하고, ‘저축 강조의 결전 대강연회’, ‘순국영령방문단’, ‘대동아전 1주년 기념 국민시 낭독회’ 등에 부지런히 참여하였다. 또한 그들의 친일은 그저 일제의 프로파간다에 이용당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해방되는 그날까지 동족을 향해 친일과 순종을 강요하고 징병과 학병을 위한 선전·선동에 매진하였다. 친일작가 정인택은 1945년 8월에 조선문인보국회 소설부회 간사장을 맡음으로써, 박영희는 1945년 8월 1일 조선문인보국회 평론부 회장으로 선출됨으로써 마지막 친일부역의 역사를 완성하였다. 최남선은 해방되던 해에 「특공대의 정신으로 성은에 보답합시다」라는 글을 통해 “대동아의 전쟁은 하늘을 대신하여 불의를 치는 싸움”이라며 “조선 동포도 대동아 민중으로서” 특공대 정신으로 거룩한 사업에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김동인은 1945년 8월 15일 해방되는 날까지도 일본의 패망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당일 오전 10시 조선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을 만나 ‘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줄 것을 부탁하였다. 해방 이후 그들의 행적은 더욱 화려하다. 이처럼 친일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단순하게 학도병에 지원하라는 식의 구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발성으로 끌어내는 확고한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갖췄으며,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소멸되지 않기에 계속하여 이식·번식하고 증가하였다. 최재서는 일본정신에 바탕을 둔 국민문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국민문학론’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박영희는 평론의 형식으로 일제의 각종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조선인과 조선 문인이 가져야 할 자세와 ‘국민문학’, ‘전시문학’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친일작가는 모두 27명이다.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에 실린 28명 가운데 21명(이광수·김기진·김동인·김동환·김억·김종한·노천명·모윤숙·박영희·유진오·이무영·정비석·주요한·채만식·최정희·최남선·최재서·백철·이석훈·김용제·정인택)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의 6명(윤해영·서정주·이원수·유치진·장덕조·이인직) 등이다. 김문집과 장혁주, 정인섭, 조용만 등 16명은 일반에 낯설거나 덜 알려진 이들이라서 책 끝에 ‘나머지 문인들’로 모아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저자는 그들의 친일 행적을 밝히는 자료들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문인들이 어떻게 친일부역의 길을 걸어갔는지를 생애와 작품을 연결하여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저자 소개

  • 저자 : 장호철
저자 : 장호철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다. 그 세대의 특징은 1960년대의 가난과 70년대 산업화·도시화의 한복판을 지나왔다는 점인데 다행스럽게도 배를 곯으며 자라지는 않았다. 대신 대학물을 먹었고, 그것을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으로 학력을 마감한 옛 친구들에게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1984년 안강여고에 임용된 뒤, 순심고, 지보고, 의성여고, 안동여고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다가 2016년에 구미고에서 퇴임하였다. 《오마이뉴스》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를 운영하면서 같은 지면에 기사 200여 편을 포함, 모두 1천여 편의 글을 썼다.

책 속에서

친일파 옹호란, 사상사적으로 민주주의의 비효율성을 강조하고 쿠데타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며 나아가 부추기기도 하는 극우파적인 이데올로기다. 인종 편견, 신앙 편견, 약소국 억누르기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무력 침략을 감행해도 좋다는 파시즘적 가치관을 고수한다. 친일파가 ‘친미파, 독재권력 옹호, 민주화운동 반대, 평화통일 반대, 개혁과 개방 반대, 노동자·농민 등의 관점이 아닌 재벌과 상류층 이익 옹호, 사회복지보다 성장 일변도의 신화 옹호, 해외 파병 지지, 국가보안법 지지,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 지지, 일본의 대북 강경책 지지, 박근혜식 국정교과서 지지, 이명박·박근혜 등 지지, 태극기 부대 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터이다. 따라서 촛불혁명과 친일문학은 너무나 궁합이 안 맞고, 남북 민족화해와 평화의 시대와도 걸맞지 않다. - 「추천사」(문학평론가 임헌영)
친일 인사가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참회한 예도 드물지만, 후손이 선대의 친일 행위를 사죄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김동환의 삼남 김영식은 부친이 친일문인으로 지목된 것에 대해 ‘아무런 이의가 없다’며, 역사적 평가에서 공과가 교차된 선친의 행적은 그 분야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분명 교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총경으로 은퇴한 김영식은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 사죄하기도 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이 되었다고 한다.
- 04 김동환, 일제에 엎드려 ‘웃은 죄’

문인들의 친일 행위를 들여다보면 일정한 시기를 지나면서 이들의 반민족적 일탈이 매우 위태위태하게 치달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본인이 얼마나 체감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자기 부정과 굴욕의 수사들 너머에 최소한의 민족적 정체성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다.
노천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친일에 대한 변명이나 해명도 따로 보이지 않으니, 일말의 갈등이나 번뇌조차도 상정해 볼 수 없다. 정말 그는 친일부역, 그 반민족적 선택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던 것일까. 노천명의 친일은 일본의 패망이 다가오는 시기까지 일관되게 이루어졌다.
- 07 노천명, 여성 화자를 앞세운 친일시들

“애국문학자가 제작한 위대한 문학 작품은 그 한 자 한 구절이 포탄이며 전선 장병이 목말라하며 후방의 국민에게 요청하는 비행기이기 때문에 우수한 문학자를 결전하(決戰下) 생산 각 부분에 계속 투입하고, 그들에게도 생산 수량 전임제랄까, 일정한 기간 내에 국가가 요청하는 우수한 문학 작품을 생산시키자.”(「결전문학의 수립을 위해(決戰文學樹立の爲めに)」, 『문학보국』 1944년 8월호)
- 12 이무영, 총독상을 수상한 농촌소설가

그는 또 농촌 생산 현장의 ‘총후보국’을 독려하면서 지식인의 분발도 촉구하였다. 「지식인」(『동양지광』 1942년 7월호)에서 과거에는 ‘숨쉬는 편리한 농기구’ 정도에 지나지 않던 농민이 ‘열렬한 국가의식’ 아래 새로 태어났다고 칭송하였다. 그는 ‘놋쇠제품 헌납운동’에 참여하고, 쌀 절약을 위해 모내기 때에도 도시락을 싸 오고, 생산 확충을 위해 밤잠도 안 자며 가마니를 짜는 등의 모습을 보여 주는 농민과 견주어 이제 간신히 시국에 눈을 뜬 지식인으로서 부끄럽다고 자책하기도 하였다.
- 14 정비석, 낙원 일본을 칭송하던 『자유부인』의 작가

1943년 4월에 최재서는 『전환기의 조선 문학(轉換期の朝鮮文學)』을 발간하였다. 그는 자서(自序)에서 “먼저 가 버린 아들 강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친다”면서 “네가 죽었을 때 나는 막 태어난 『국민문학』을 너의 추억과 함께 키워 가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한다. 그 자신이 “일본 국가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이르기까지의 혼의 기록”이라고 하였으니, 이 책은 황국신민 최재서의 ‘국가 정체성 발견 기록’이라 할 만하다.
- 23 최재서, ‘천황에게 봉사하는 문학’ 완성

여기에 실린 단편 소설 「선령(善靈)」(『국민문학』 1944년 5월호)은 「고요한 폭풍」(1941) 이후 주인공 박태민의 정신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 어느 날, 한 시인이 그의 연재소설에 대해 시비를 걸면서 “아부하는 꼴이란 볼 만하더군!” 하고 냉소하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주먹을 휘둘러 그를 때려눕힌다. 착잡한 심리 상태가 민족적 양심을 지적한 시인에 대한 폭행으로 폭발한 것이다. 그는 권고받은 문학대회에 출석하는 대신 만주로 떠난다.
임종국은 이 작품의 주인공 박이 ‘이미 이성을 상실해 버린 친일파들의 자화상’이라고 지적한다. 짙어지는 ‘패전의 음영’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자신들의 선택에 대하여 ‘자기혐오’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혼을 팔던 이들 부역 문인들의 본능적 자기방어일지도 모른다.
- 25 이석훈, 일본인 이상의 일본인을 꿈꾼 작가

목차

추천사 친일문학을 아직도 따져야 하는 이유 (임헌영)
글머리에 ‘문학’을 가르치면서 느낀 갈증
01 이광수 피와 살과 뼈까지 일본인이 되려 했건만
02 김기진 황민문학으로 투항한 계급문학의 전사
03 김동인 ‘문필보국(文筆報國)’의 전범
04 김동환 일제에 엎드려 ‘웃은 죄’
05 김억 친일부역도 ‘오뇌의 무도’였나
06 김종한 덧없는 이미지와 서정성
07 노천명 여성 화자를 앞세운 친일시들
08 모윤숙 영욕을 오간 ‘렌’의 선택
09 박영희 ‘문학도 이데올로기도’ 모두 잊힌 문인
10 서정주 “친일은 하늘 뜻에 따랐다”
11 유진오 헌법 기초자로 기억되는 친일부역자
12 이무영 총독상을 수상한 농촌소설가
13 이원수 ‘고향의 봄’에서 ‘지원병 형님’까지
14 정비석 낙원 일본을 칭송하던 『자유부인』의 작가
15 주요한 ‘야스쿠니의 신’이 되도록 천황을 위해 죽으라
16 채만식 조선 사람은 ‘닛본징’이 되어야
17 최정희 ‘군국’의 어머니와 ‘황군’ 아들
18 최남선 죄과는 다섯 가지나 ‘나는 무죄다’
19 이인직 이완용의 비서로 한일병합 주도
20 윤해영 ‘선구자’는 일제에 포섭된 만주 ‘개척자’
21 장덕조 ‘총후봉공’ 제일선에 섰던 역사소설가
22 유치진 연극사 거목의 지난날은 비루했다
23 최재서 ‘천황에게 봉사하는 문학’ 완성
24 백철 친일부역하고도 한국 문화비평의 대들보
25 이석훈 일본인 이상의 일본인을 꿈꾼 작가
26 김용제 ‘시의 칼’로 동포를 찔러댄 시인
27 정인택 국책 선전으로 시종한 황국신민
나머지 문인들
글을 마치며 친일문인 기념문학상에도 ‘기억 투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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