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

임성욱 저 | 신서원 | 2019년 04월

북트리

정가
$70.00
판매가
$38.5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77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9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북셀프

1시간도 길다! 5분만에 OK! 매장에서 직넙 책을 찾아가세요. 500원 추가적립!(선착순 천명/일)

가능매장 : 신세계강남점

북셀프로 구매하기 북셀프란?

ISBN : 9788979401431 / 620쪽 152 x 225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42,300
  • 23,400
  • 16,920
  • 12,6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정판사 ‘위폐’ 사건은 조작되었다! - 모순으로 가득 찬 판결문 재판 당시 피고 및 변호인 측은 피고들이 위폐를 제조한 일이 전혀 없으며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며 무죄를 주장했고, 검사 측은 피고들의 자백이 진실이었다며 여러 증거를 들어 유죄를 주장했다. 재판부는 검사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피고들에게 최소 징역 10년, 최고 무기징역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했다. 이렇듯 피고/변호인단과 재판부/검찰 양자의 주장은 타협의 여지없이 완전히 상충되며, 어느 한쪽의 말이 진실이라면 다른 한쪽의 말은 거짓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진실 게임과 같다. 그렇다면 양측의 주장은 무엇이며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저자는 당시 검찰 및 재판부 측에서 작성한 자료인 위폐사건 공판기록 및 당시 변호인 측에서 작성한 자료인 소위 '정판사위폐사건’의 해부에 나타난 양쪽의 주장과 사실관계, 논리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정판사 ‘위폐’ 사건의 실체 규명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 그 결과 정판사 ‘위폐’ 사건의 판결에는 수많은 의혹들과 함께, 자체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여러 가지 모순점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에 대해 살펴보면 우선, 검찰의 ?공판청구서?는 ‘1945년 10월 하순’에 제1회 위폐 인쇄가 있었다고 했지만, 그 시기에 조선정판사의 사장 박낙종은 서울에 없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박락종의 부재증명을 반박하기 위해 검사와 판사가 함께 출장 조사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자 재판부는 피고들의 위폐 인쇄를 공모한 날짜를 ?공판청구서?에서 ‘1945년 10월 하순’으로 되어 있던 것을 ?판결문?에서 ‘1945년 10월 중순’으로 변경, 조작함으로써 부재증명 문제를 피해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조선공산당 본부가 조선정판사가 있던 근택빌딩으로 이전해 온 시기가 ‘1945년 10월 하순’이었다는 검찰의 주장과 모순된다. 결국 재판부의 판결은 치명적인 자체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사법당국이 피고들을 유죄로 몰기 위해 판결문을 조작하는 심각한 범죄행위를 저질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재판부에 제출된 증거물 중에는 정판사에서 인쇄된 위폐로 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재판부에서 피고들의 유죄를 입증한다고 인정한 실물 증거물 중 실제로 증거능력을 지닌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특히 인쇄에 사용되었다는 징크판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피고들이 정판사에서 인쇄했다는 위조지폐 역시 단 한 장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재판에서 사실의 인정은 반드시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상의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위배된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볼 때 재판부의 판결은 자체 모순을 비롯한 여러 치명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며, 사법당국 스스로가 피고들에게 유죄 선고를 내리기 위해 비합법적이고 무리한 방법을 사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정판사 ‘위폐’ 사건은 조작된 사건이며, 가장 보수적으로 판단하더라도 피고들은 최소한 검사 측의 공소 제기 사실에 대해서 무죄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정판사 ‘위폐’ 사건의 파장 - 1946년 갈등의 대폭발, ‘빨갱이 낙인’의 기원 미군정은 1945년 9월 진주 이래 좌익에 대한 탄압 방침을 세웠으며, 1945년 말 모스크바 3상회의를 계기로 좌익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올리기 시작했고, 1946년 5월 제1차 미소공위 결렬을 계기로 ‘좌익 분열’ 및 ‘조선공산당 고립화’라는 새로운 대좌익 정책 하에 본격적인 좌익에 대한 탄압을 개시했다. 그리고 정판사 ‘위폐’ 사건은 이러한 좌익 탄압의 새로운 국면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정판사 ‘위폐’ 사건 이후 미군정의 탄압이 가속화되자 조선공산당은 정당방위 차원에서 그때까지의 대미 협조 노선을 거두고 이른바 ‘신전술’로 전환하여 대미 강경 노선을 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공산당의 대미 강경 노선은 흔히 생각하듯 폭력적인 방식은 아니었으며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미군정은 이러한 조선공산당의 대응에 대해 더욱 강경하게 탄압했으며, 그 과정에서 조선공산당의 대응은 민중의 불만과 연결되어 9월 총파업, 10월 항쟁이 발발했고, 1946년 하반기 남한의 정세는 혼란과 갈등의 대폭발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판사 ‘위폐’ 사건을 조작 발표하여 미군정은 식량 정책 및 통화 정책 등 각종 경제 정책 실패로 인한 대중의 불만을 조선공산당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즉, 미군정은 정판사 ‘위폐’ 사건을 통해 조선공산당에 ‘경제 파괴범’의 낙인을 찍음으로써 조선공산당 및 좌익 측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던 것이다. 그에 따라 박헌영 및 조선공산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율은 급락했고, 조선공산당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일제강점기의 ‘반공주의 사상통제 체제’가 해방과 함께 소멸되었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빨갱이’ 낙인으로 부활하는 과정에서 정판사 ‘위폐’ 사건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판사 ‘위폐’ 사건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돌아보다 - 반공주의적 분열 통치술 20세기 한국 근현대사에서 일제, 미군정,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 점령군, 독재 세력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정치 권력은 국민 대중을 주권자가 아닌 통치의 대상으로 간주했으며, 체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권력을 유지 혹은 연장하기 위해 반공주의 체제를 가동시킴으로써 정권 유지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세력을 배제하고 탄압하며, 대중을 분열시켜 통제해왔다. 저자는 그러한 방식을 ‘반공주의적 분열 통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정판사 ‘위폐’ 사건에 대해 한국 근현대사의 권위주의 정권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반공주의적 분열 통치술의 일환으로서 꾸며낸 조작 사건의 대표적 사례’라고 역사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또한 그러한 일제적 전통(일제 잔재)이 1945년 광복 이후 단절 또는 청산되지 못한 채 미군정기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내려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라고 역사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저자 소개

  • 저자 : 임성욱
저자 : 임성욱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한국학과에서 본서의 저본이 된 [미군정기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로 2015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역사 공부를 시작했으며, 종적으로는 그 이전 시대인 일제강점기와 조선시대로, 횡적으로는 주변 국가인 중국과 일본의 역사로 관심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목차

머리말
일러두기

제1장 서론
1. 문제 제기
2. 선행 연구 검토
3. 연구서 구성 및 연구 자료 소개

제2장 배경
1. 미군정의 대좌익 정책 변화 과정
1) 해방 이후 모스크바 3상회의 이전
2) 모스크바 3상회의 이후 제1차 미소공위 결렬 이전
3) 제1차 미소공위 결렬 이후
2. 조선공산당의 대미 노선 변화 과정
1) 해방 이후 모스크바 3상회의 이전
2) 모스크바 3상회의 이후 제1차 미소공위 결렬 이전
3) 제1차 미소공위 결렬 이후
3. 정판사 ‘위폐’ 사건 관련 기본 정보
1) 근택빌딩과 조선정판사
2) 정판사 ‘위폐’ 사건의 피의자
3) 정판사 ‘위폐’ 사건의 경찰 관계자
4) 정판사 ‘위폐’ 사건의 법조인

제3장 전개
1. 정판사 ‘위폐’ 사건의 전개 과정
1) 제1시기: 수사 및 조사(1946년 5월 초~7월 28일)
2) 제2시기: 1심 재판(1946년 7월 29일~1946년 11월 28일)
3) 제3시기: 1심 종결 이후(1946년 11월 28일~1950년 7월)
2. 정판사 ‘위폐’ 사건에 대한 대응
1) 미군정의 대응
2) 우익의 대응
3) 좌익의 대응

제4장 논란
1. 정판사 ‘위폐’ 사건에 대한 의혹
1) 미군정 공보부 발표 내용에 대한 의혹
2) 뚝섬 위폐 사건과 관련된 의혹
3) 경찰의 고문과 관련된 의혹
4) 위폐 시험 인쇄에 대한 의혹
5) 안순규의 위폐 인쇄 현장 목격 증언에 대한 의혹
6) 장택상의 침묵에 대한 의혹
2. 정판사 ‘위폐’ 사건 판결의 모순
1) 제1차 위폐 인쇄 시기에 대한 모순
2) 송언필, 김창선의 조선공산당 재정 상태 파악에 대한 모순
3) 김창선, 정명환의 징크판 재생 및 제작에 대한 모순
4) 증거물의 실재에 대한 모순
5) 검사 측 증인 현을성, 이구범, 이영개의 증언의 모순

제5장 영향
1. 정판사 ‘위폐’ 사건과 해방 정국의 정세 변화
1) 미군정의 위기 모면
2) 1946년 하반기 갈등의 대폭발
3) 일제강점기 억압적 국가기구의 부활
2. 정판사 ‘위폐’ 사건과 한국 사회의 반공주의
1) ‘낙인찍기’를 통한 반공주의 체제 형성
2) ‘기억의 조작’을 통한 반공주의 체제 공고화

제6장 결론

참고문헌
찾아보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