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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개정증보판!
테크놀로지가 예술 매체의 발전에 끼친 영향을 미학적으로 통찰한 책!
예술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예술이라고 하는가? 이 두 질문은 어떻게 다른가? 또 미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예술과 미학의 관계는? 사진 영화 등 아날로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또 다른 예술 분야가 열렸는데, 그렇다면 전통 예술과 이 예술 분야는 어떻게 다른가? 이 질문의 미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가상현실의 영역이 등장하였는데, 이 새로운 분야의 매체 미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본서에서는 이들 주제에 대하여 탐구한다.
본서는 “예술과 미학의 대화(Dialogue between Arts and Aesthetics)”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대화를 통해, 예술은 그 미학적 사유를 더욱 심화시켜 나갈 것이고, 미학은 그 예술적 내용이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지금까지 예술가의 활동과 예술 작품의 의미는 예술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비평, 미학, 철학의 영역과 맞물려져 그 의미의 재해석이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본서에서는 아폴론적 예술 분야인 조형예술을 이야기의 중심 소재로 하여 20세기의 예술과 미학의 흐름을 살펴본다. 그러나 “과거는 미래로부터 복귀한다.”라고 했던가! 역시 순수한 현재는 없는 것이기에 시대를 초월하여 예술에 대한 담론들을 끄집어내고자 하였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예술과 테크놀로지가 융합되는 지점을 매체미학의 맥락에서 그 의미를 탐구해보았다. 예술 분야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이 주제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예술과 미학, 매체미학이 주요 탐구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예술과 미학의 대화가 필요한가? 우리가 예술의 시원은 잘 알 수 없겠지만 미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등장하기 전부터 예술은 존재하였고 예술에 대한 사유도 면면이 이어져 왔다. 물론 우리가 15,000년 전에 라스코(Lascaux)의 동굴벽화를 그린 원시인이 그것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그렸는지는 알 수 없더라도 말이다! 앞선 인간들에 의해 남겨진 흔적에 대하여 어느 시점에선가 후대에 이르러 심미적으로 반복 누적된 감상과 독해에 의해 예술이라고 칭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미학이라는 학문은 그 출발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18세기 중반에 바움가르텐(Baumgarten)이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으로 아이스테티카(Aesthetica)를 언급한 이후에, 19세기 초반에 철학자 헤겔(Hegel)은 이 애스테틱(Ästhetik)을 “아름다운 예술에 대한 철학”으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비판하면서 “미학에 의해 예술이 죽음에 이르렀다.”라는 견해도 있고, 또 한편 “철학은 예술에 빚지고 있다.”라는 견해도 있다. 아울러 이러한 이해의 어려움을 넘어서고자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유인 “가족유사성(Familienänlichkeit)” 개념에 의거하여 예술과 미학에 대한 여러 견해의 흐름을 매트릭스(matrix), 즉 하나의 항아리에 담아보려는 당대의 사유에까지도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예술과 미학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학(美學)으로 통용되는 애스테틱(aesthetics, Ästhetik)은 고대 헬라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언급한 감각적 인식(aisthēsis epistēmē, 아이스테시스 에피스테메)의 아이스테시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개된 아날로그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이 애스테틱의 본래적 의미가 되살아나고 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사진에 대한 연구에서 천재적으로 포착한 ‘시각적 무의식’에서 매체미학이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에서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이제 실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아울러 이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디지털 가상의 매체미학의 예술적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 것이다. 이것이 본서의 제목인 『예술과 테크놀로지』가 의미하는 맥락 중의 중요한 부분이다.
저자에게는 본서를 집필하게 된 동기가 있었다. 대학에서 이 주제들에 대해 강의하면서 뭔가 쉽게 다가서면서도 더 심화된 사유의 길로 안내해줄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예술인문 교양서로 본서의 집필을 구상하였다. 저자는 본서가 대학의 예술인문 교양강좌를 위한 책이면서도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일반교양 독자들에게도 한 자락의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친절한 안내서가 될 수 있기를 꿈꾸었다. 그러나 예술과 미학에 대해 일반교양 차원에서 길잡이를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것도 20세기에 들어와 테크놀로지의 발전이라는 기술혁명에 조응하는 예술의 새로운 영역의 열림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는 흐름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니, 더욱 쉽게 다가설 수만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독자들에게나 공유되는 지점이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출판사 리뷰
왜 예술과 미학의 대화가 필요한가? 우리가 예술의 시원은 잘 알 수 없겠지만 미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등장하기 전부터 예술은 존재하였고 예술에 대한 사유도 면면이 이어져 왔다. 물론 우리가 15,000년 전에 라스코(Lascaux)의 동굴벽화를 그린 원시인이 그것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그렸는지는 알 수 없더라도 말이다! 앞선 인간들에 의해 남겨진 흔적에 대하여 어느 시점에선가 후대에 이르러 심미적으로 반복 누적된 감상과 독해에 의해 예술이라고 칭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미학이라는 학문은 그 출발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18세기 중반에 바움가르텐(Baumgarten)이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으로 아이스테티카(Aesthetica)를 언급한 이후에, 19세기 초반에 철학자 헤겔(Hegel)은 이 애스테틱(Asthetik)을 “아름다운 예술에 대한 철학”으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비판하면서 “미학에 의해 예술이 죽음에 이르렀다.”라는 견해도 있고, 또 한편 “철학은 예술에 빚지고 있다.”라는 견해도 있다. 아울러 이러한 이해의 어려움을 넘어서고자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유인 “가족유사성(Familienanlichkeit)” 개념에 의거하여 예술과 미학에 대한 여러 견해의 흐름을 매트릭스(matrix), 즉 하나의 항아리에 담아보려는 당대의 사유에까지도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예술과 미학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학(美學)으로 통용되는 애스테틱(aesthetics, Asthetik)은 고대 헬라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언급한 감각적 인식(aisth?sis epist?m?, 아이스테시스 에피스테메)의 아이스테시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개된 아날로그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이 애스테틱의 본래적 의미가 되살아나고 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사진에 대한 연구에서 천재적으로 포착한 ‘시각적 무의식’에서 매체미학이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에서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이제 실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아울러 이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디지털 가상의 매체미학의 예술적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 것이다. 이것이 본서의 제목인 『예술과 테크놀로지』가 의미하는 맥락 중의 중요한 부분이다. 저자에게는 본서를 집필하게 된 동기가 있었다. 대학에서 이 주제들에 대해 강의하면서 뭔가 쉽게 다가서면서도 더 심화된 사유의 길로 안내해줄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예술인문 교양서로 본서의 집필을 구상하였다. 저자는 본서가 대학의 예술인문 교양강좌를 위한 책이면서도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일반교양 독자들에게도 한 자락의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친절한 안내서가 될 수 있기를 꿈꾸었다. 그러나 예술과 미학에 대해 일반교양 차원에서 길잡이를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것도 20세기에 들어와 테크놀로지의 발전이라는 기술혁명에 조응하는 예술의 새로운 영역의 열림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는 흐름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니, 더욱 쉽게 다가설 수만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독자들에게나 공유되는 지점이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예술의 영원한 주제는 미메시스(mimesis)일 것이다. 이 미메시스는 헬라스어의 mimēsis에서 온 용어이다. 이 미메시스를 모방, 재현, 환영, 표현, 반영, 구원, 진리의 계기, 기술(記述, description) 등으로 파악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그 의미는 재해석되어 왔다. 그래서 이 미메시스라는 용어는 단순하게 하나의 번역 혹은 하나의 해석으로만 잡을 수 없기에 본서에서는 미메시스라고 그냥 쓰기로 한다. 예술과 미학의 대화를 주제로 하는 본서도 역시 미메시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1장, 예술과 미메시스)
나는 앞장에서 “예술의 영원한 주제는 미메시스(mimesis)일 것이다.”라는 화두를 꺼낸 바 있다. 플라톤의 예술론을 그의 유명한 미메시스에 대한 언급에서 살펴보았다. 그는 모방으로서의 미메시스에 대하여 언급하였던 것이다. 이제 모방으로서의 예술에서 ‘재현과 환영으로서의 예술’을 검토하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지오르지오 바자리(Giorgio Vasari, 1511-1574)에서부터 시작되고 20세기의 E. H. 곰브리치(E. H. Gombrich, 1909-2001)에 이르는 시대까지 중에서 예술을 재현과 환영을 중심으로 독해한 예술론에 대한 고찰이다. 말하자면, 재현과 환영으로서의 미메시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2장, 재현과 환영으로서의 예술)
20세기 초반의 예술의 흐름은 선언(manifesto)으로 특징 지워진다. 아방가르드 운동의 시대는 선언문의 시대이다. 필리포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1909), 트리스탕 차라의 「다다 선언」(1918), 바르바라 스테파노바의 「구축주의에 대하여」(1921),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1924) 등으로 표현되었다. 선언은 ‘내가 누구다!’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주체의 가장 직접적인 자기표현 방식인 것이다. 아방가르드 운동은 이전 세대의 제도예술과의 단절을 선언하였다. 이는 재현과 환영으로서의 예술이 사진과 영화 등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그 아우라를 상실해 가는 시점이기도하다. 아방가르드 운동으로 통칭되는 이 모더니티는 1930년대에 이르러 정점에 이르게 된다. (3장, 아방가르드와 20세기)
1837년에 다게르가 ‘다게레오 타입’이라고 부른 사진을 만들어 낸 이후 영화, 광고, 가상현실 등으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혁명은 예술과 미학에 일대 전환을 불러왔고 그 의미의 해석으로 등장한 것이 매체미학의 관점이다. 이 새로운 매체의 미학적 의미의 해석은 발터 벤야민으로부터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그의 논문 「사진의 작은 역사」(1931)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은 매체미학의 효시를 알리는 저술이다. 이 두 에세이를 중심으로 발터 벤야민의 매체에 대한 사유를 살펴보고 현대적 의미의 재해석을 해보려 한다. 특히 발터 벤야민이 제기한 ‘시각적 무의식’과 ‘시각적 촉각’의 개념을 르네 데카르트와 헤겔의 감각에 대한 사유와 비판적으로 비교하면서 그 미학적 의미를 고찰해보자. (4장, 매체미학의 전개)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 주도의 연합군의 승리로 마무리된 시점에 전후 세계질서 재편에 대한 논의가 브레튼우즈 체제(1945)로 일단락되었다. 이 브레튼우즈 체제는 20세기 초까지의 영국 중심의 세계 패권이 이제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이양되는 세계질서로의 명실상부한 전환이었다. 이 시기가 미국에서 모더니즘의 전성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동서 간 진영 논리의 한 축이었던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이 전개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작가와 비평가로 잭슨 폴록과 클레멘트 그린버그를 꼽을 수 있다. (5장, 모더니즘 회화)
아서 단토는 예술의 종말을 언급한다. 그가 말하는 예술의 종말은 말 그대로 예술이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술 내러티브의 종말’이라는 의미이다. 그에 의하면, “예술의 종말이라고 하는 테제는 철학적 미술사라 불릴 만한 것에 대한 하나의 기여이며, 혼돈스럽게 보이는 모던 미술에서 어떤 이해 가능성을 찾아내려고 하는 노력”이다. 20세기의 예술이 선언문으로 특징지어진다면, 예술 내러티브의 종말은 이 ‘예술적 신앙문서’인 선언문, 즉 내러티브의 종말이라는 것이 아서 단토의 견해이다. 이 종말이 의미하는 것은 이제는 예술이 취해야 할 특정한 역사적 방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즉, 이제 우리는 완전히 ‘예술 다원주의’의 시대 속으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6장, 예술 내러티브의 종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는 20세기 초에 진행된 아방가르드 운동들이 복귀한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모더니즘의 내적 자율성을 비판하는 네오아방가르드 운동이 전개되었다. 즉 콜라주와 앗상블라주, 레디메이드와 그리드, 모노크롬과 구축 등과 같은 예술의 흐름들이 복귀한 것이다. 과거가 미래로부터 복귀한 것이다. 과거의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미래로부터 ‘네오아방가르드’로 복귀한 것이다. 이것은 1950년대의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앨런 카프로 등의 작업과 1960년대의 마르셀 브로타스와 다니엘 뷔랑 등의 작업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다. 이 네오아방가르드는 동시대의 모더니즘에 대한 단절이면서 역사적 아방가르드적인 예술의 복귀로 특징되는 것이다. 현대 예술론에서는 이 단절과 복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견해들이 충돌한다. 여기에서는 페터 뷔르거와 할 포스터의 견해를 중심으로 비교하면서 네오아방가르드의 흐름과 그 의미에 대하여 고찰하려고 한다. (7장, 네오아방가르드를 위한 변론)
미니멀리즘은 회화인가? 조각인가? 이러한 단순한 질문으로는 미니멀리즘을 파악할 수 없다. 3차원, ABC 미술, 일차적 구조물, 즉물적 미술, 미니멀 아트 등으로 명명된 이 예술의 흐름은 미국에서 1960년대 후반 미술 흐름의 정점이었다. 후기-모더니스트인 프랭크 스텔라가 캔버스에서 환영을 제거하기 위해 형태만 남기고 바탕을 깎아내어 성형 캔버스(shaped canvas)로 갔다면, 도널드 저드는 특수한 대상(specific objects)으로 향했다. 이 후기-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에서 미니멀 아트로 넘어가는 임계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로버트 모리스는 게슈탈트로 간다. 이를 통해 그는 모더니즘의 자율성과 미니멀리즘의 즉물성을 융합시킨다. 그의 관심은 이제 대상에서 수용으로 전환한다. 관람자에 의한 대상의 지각적 현전(presence)이 초점이 된 것이다. (8장, 미니멀리즘 이야기)
전통적 의미에서의 재현(representation)은 재현된 이미지가 그것이 지시하는 재현대상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지시하는 재현대상은 도상학적 주제나 실제 사물을 의미한다. 이 경우 원본 있는 재현으로서 유사(類似)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와 달리 원본이 없이 자기지시적인 약호로 다른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으로 상사(相似)를 의미는 재현이 있다. 즉 시뮬라크르한 것이다. 팝아트를 독해하는 시각에도 우선적으로 위의 두 가지의 방식이 있다. 첫째로, 팝아트를 후기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시뮬라크라로 독해(simulacral reading)하는 방식이다. 장 보드리야르, 롤랑 바르트 등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둘째로, 팝아트를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지시적 관점(referential view)으로 독해하는 방식이다. 토마스 크로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셋째로, 자크 라캉적 시각을 바탕으로 팝아트를 외상적 리얼리즘(traumatic realism) 방식으로 독해하는 것이다. 할 포스터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9장, 팝아트를 보는 시각)
이미지와 기호가 지시하는 그 무엇이 있는가? 시니피앙(기표)과 시니피에(기의)는 무엇인가? 기표는 대상(개념)을 지시하는가? 기표보다 기의가 우선인가? 아니면 기표가 우선인가? 더 나아가 기의라는 것은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이 예술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더니즘적인 사유와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유의 경계에 이러한 질문들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유는 기의를 괄호 치거나 더 나아가 아예 초월적 기의의 부재를 주장한다. 기표들의 유희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을 고찰할 때, 그 근저에 흐르는 철학적 담론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자크 라캉은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언어학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면서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분석한 무의식을 전면으로 끌어올린다. 자크 데리다는 초월적 기의의 부재를 선언한다. 포스트모던 예술의 난해성은 이 경계 지점에 대한 특별한 독해를 요청한다. (10장, 기호와 예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1975년에 청년 건축학자인 찰스 젠크스(Charles Jencks)에 의해 처음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E. H. 곰브리치는 그에 대하여 당대의 건축과 동일시 되어온 기능주의에 식상했던 사람이었다고 평가한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미완성의 기획으로서의 모더니티를 말한다. 철학자인 장-프랑수와 리오타르는 선진사회를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라고 정의하고, 그것은 모던적(moderne) 메타 이야기에 대한 불신이며, 이 불신은 분명히 과학적 진보의 결과라고 언급한다. 그런데 저항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창하였던 할 포스터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하나의 유행으로 취급되면서 어느덧 유행이 지난 구닥다리(démodé)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 (11장,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하여)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오후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자기가 가진 테크놀로지의 전 부와 바꿀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자기가 가진 전 재산과도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지만 다른 각도로 본다면 테크놀로지 발전 속도에 대한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디지털 테 크놀로지의 속도는 ‘킬러 앱스(Killer Apps.)’로서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내일 새롭게 개발할 테크놀로지의 가치가 오늘까지 축적된 테크놀로지의 가치보다도 더 높다는 함축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2장, 디지털 가상의 매체미학)
본서를 집필하면서 기본으로 생각한 것은 사실(facts)과 주장(assertion)을 가능하면 엄밀하게 구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자라는 것이었다. 사실(facts)은 본서에 등장하는 작가, 작품, 비평가, 미학자, 철학자들의 표현과 사유의 내용을 그대로 일단 소개하는 것이다. 물론 주장(assertion)은 나의 생각을 코멘트로 덧붙이는 것이다. 그러나 초안을 끝내고 재독하였을 때, 나의 생각조차도 초고의 흔적 위에 또 다른 흔적들이 쌓이면서 미끄러져가고 있음이 보인다. 그저 나의 생각도 텍스트들의 한 텍스트로 미끄러져가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 하물며 앞에서 기술한 이들의 사유도 고정되어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들의 삶의 흐름 속에서 그들의 사유도 흔적 위에 혹은 흔적 뒤에 또 다른 흔적들이 뒤덮여 미끄러진다. 그들조차도 텍스트들 속으로 미끄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텍스트들로 되어가는 것만 같다. 그런 맥락에서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을 다시금 독해하게 된다. 그러기에 내가 느끼는 바는 “예술과 예술에 대한 사유에 무슨 정답이 있으랴!”라고나 할까! (후기)
인공지능(AI)도 하나의 매체다. 인간지능의 확장이다. 지금까지 사진, 영화, 라디오, TV, 컴퓨터, 로봇의 출현에 이르기까지의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 대해서 비관론적인 시각과 낙관론적인 시각이 교차해왔다. 인공지능의 등장에 대한 반응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나는 이 글에서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취한다. 인공지능(AI) 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을 매체미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탐구의 시작점을 열어보았다. (개정증보판 후기 - 미학에 대하여)
책머리에
1장. 예술과 미메시스
1. 모나리자 이야기
2. 플라톤과 미메시스
3. 헤겔의 미학
4. 게오르크 루카치의 미학
5. 칼 포퍼와 방법론적 유명론
6. 플라톤을 미디어 혁명가로 보는 견해
7. 예술과 미학
2장. 재현과 환영으로서의 예술
1. 예술 내러티브
2. 지오르지오 바자리 내러티브
3. E. H. 곰브리치와 칼 포퍼
4. 양식으로서의 매너리즘 비판
5. 회화적 재현의 심리학적 연구
6. E. H. 곰브리치의 레디메이드와 팝아트에 대한 견해
3장. 아방가르드와 20세기
1. 페터 뷔르거와 아방가르드
2. 큐비즘
3. 미래주의
4. 다다이즘
5. 레디메이드
6. 초현실주의
7. 구축주의
8. 아방가르드를 보는 시각
4장. 매체미학의 전개
1. 카메라 옵스큐라
2. 사진의 작은 역사
3. 아우라
4.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5. 시각적 촉각
6. 대중문화에 대한 시각
7. 발터 벤야민과 파울 클레
8. 매체미학의 전망
5장. 모더니즘 회화
1. 클레멘트 그린버그 내러티브
2. 더 새로운 라오콘을 향하여
3. 모더니즘 회화
4.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잭슨 폴록
5. 임마누엘 칸트와 클레멘트 그린버그
6. 후기 모더니즘과 형식주의의 와해
6장. 예술 내러티브의 종말
1. 아서 단토와 예술계
2. 예술의 종말
3. 헤겔의 역사철학과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4. 컨템퍼러리 미술관
5. 예술 다원주의에 대한 비판
7장. 네오아방가르드를 위한 변론
1. 네오아방가르드 흐름
2.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앨런 카프로
3. 마르셀 브로타스와 다니엘 뷔랑
4. 페터 뷔르거의 네오아방가르드에 대한 견해
5. 할 포스터의 네오아방가르드에 대한 옹호
6. 할 포스터의 연구방법론
8장. 미니멀리즘 이야기
1. 실재의 미술
2. 도널드 저드 - 특수한 대상
3. 로버트 모리스 - 조각에 관한 노트
4. 마이클 프리드 - 미술과 사물성
5. 미니멀리즘을 조각의 확장으로 보는 시각
6. 미니멀리즘을 지연된 작용으로 보는 시각
9장. 팝아트를 보는 시각
1. 앤디 워홀과 팝아트
2. 팝아트를 시뮬라크라로 독해하는 방식
3. 팝아트를 지시적 관점으로 보는 방식
4. 팝아트를 외상적 리얼리즘으로 읽는 방식
5. 이미지와 스크린
6. 외상적 환영주의, 수퍼리얼리즘과 차용미술
10장. 기호와 예술
1. E. H. 곰브리치 - 기호에 대한 이해
2. 미셸 푸코 - 재현, 유사, 상사
3. 자크 라캉 -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4. 자크 데리다 - 초월적 기의는 없다
11장.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하여
1. E. H. 곰브리치 - 모더니즘 이야기
2. 찰스 젠크스 - 포스트모더니즘론
3. 위르겐 하버마스 - 미완성의 기획으로서의 모더니티
4.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 포스트모던의 조건
5.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에서의 기호와 예술
6. 시차적 관점에서 보는 포스트모더니즘
12장. 디지털 가상의 매체미학
1. 매체미학의 전개에 대한 두 시각
2. 귄터 안더스 - 팬텀과 매트릭스로서의 세계
3. 마셜 매클루언 - 미디어의 이해
4. 기 드보르 - 스펙타클의 사회
5. 장 보드리야르 - 시뮬라크르 이야기
6. 빌렘 플루서 - 디지털 가상에 대한 옹호
7. 폴 비릴리오 - 전자적 판옵티콘 비판
8. 노르베르트 볼츠의 매체미학
9. 스티브 잡스와 미래 이야기
10. 인공지능(AI)과 매체미학
후기
개정증보판 후기 - 미학에 대하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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